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89)
89화 19. 인생 10회 차는 대회를 구경한다 (5)
검과 검이 부딪치고.
한쪽이 무릎을 꿇었다.
“졌습니다.”
목에 검이 들어오는 것으로 예리엘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겼다!’
승리를 직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리엘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상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더 오래 버텼어!’
축제 2일 차.
하인스와 예리엘은 각각 대회 16강에 도달했고, 먼저 대회를 진행했던 하인스가 패배하고, 그 이후에 예리엘마저 16강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그 이상한 인형 탈은 안 써!’
먼저 하인스의 경기를 본 예리엘은 확신할 수 있었다.
같은 16강 탈락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조금 더 버텼다는 것을.
같은 16강에서 탈락했다면 먼저 탈락한 사람이 패자다.
르윈이 그런 규칙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우길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 인형은 2개밖에 없다고 했으니까.’
그 우스꽝스러운 인형 탈은 무려 진짜 그리폰의 깃털을 이용해서 만든 탈이라고 했다.
제작 비용만 하더라도 평민 가족 1년 치 생활비는 족히 나오지 않을까.
정말로 존경하는 기사단이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인 예리엘이었다.
‘도련님도 한 명은 살려 준다고 했었으니까.’
그러니 패자는 하인스다.
예리엘은 그러한 확신을 가지며 부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섰다.
“졌습니다.”
그리고 일행이 있는 곳에서, 정말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만족스러운 성과였지만,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기에 세상 억울한 표정을 연기하는 예리엘이었다.
“흠.”
그런 예리엘을 보며 르윈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르윈 역시 목표는 우승이라고 말했지만, 정말로 우승을 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8강은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전 생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도 아니고, 엄청난 절기들을 가르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숨쉬기 운동을 가르쳤는데 16강에서 모두 탈락할 줄이야.
‘조금 더 굴려야 하나?’
요즘 동아리 시스템이 괜찮다고 들어서 놓아준 느낌이 좀 있기는 했다.
그리고 실제로 본 도서관 사서들의 실력이 만족스러웠기에, 공식적으로 가장 유명한 동아리 중 하나인 기사 동아리를 믿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세상사.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적하고 같이 죽는 운명을 아홉 번 경험한 르윈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뭐, 그래도 바뀌는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일.
지금 마음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예리엘이나 하인스가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회도 끝났겠다, 남은 축제는 즐기면 되겠지.”
르윈의 말에 잔뜩 긴장했던 예리엘과 하인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닥파닥.
“응. 응원도 끝났으니까, 데이지도 응원복 벗어도 돼.”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날개를 흔들며 빠르게 사라지는 데이지의 뒷모습을 보며 예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옷, 안 입어도 되나요?”
“왜, 입고 싶어?”
“아, 아니요!”
고개를 휙휙 젓는 예리엘을 보며, 르윈은 응원할 대상이 없기에 내년까지는 입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해 주었다.
“내, 내년까지요.”
그 말은, 내년에도 이런 일이 있을 예정이란 말인가.
“응. 그러니까 입기 싫으면 다른 사람보다 늦게 떨어져.”
내년에도 또 하는구나.
아카데미 생활이 아직 9년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최소 아홉 번의 대회를 참가해야 할 것이다.
‘건국제만 따지면 아홉 번이겠지.’
학년이 오를수록 제국의 인재를 테스트할 기회는 많아진다.
괜히 아카데미의 진짜 천재들은 아카데미가 아닌 제국 황실로 출석한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망했어.’
첫 대회부터 우승을 목표로 하라고 말하는 르윈이었다.
올해는 16강으로 만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년에는 ‘최소’ 기준이 16강일 터.
‘이러면 이긴 게 아닌데.’
차라리 조금 빨리 탈락해서 인형 탈 조금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니야.’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여기에 후회를 가지면 안 된다.
내년에 더 열심히 해서,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되는 게 아닌가.
‘내년의 내가 알아서 해 주겠지.’
예리엘은 미래의 자신을 믿고 고개를 끄덕였고.
‘안 되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혼나겠지.’
옆에서 듣고만 있던 하인스 역시 미래의 자신을 믿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축제를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하자.”
“그런 게 있어요?”
가난하게 태어났고, 그로 인해서 노예로 팔렸다.
잘난 외모 덕분에 노예임에도 좋은 취급을 받았지만, 그래도 노예가 축제를 즐길 정도는 아니었다.
드라이르프 가문에서도 마찬가지.
매년 행사가 있었으나, 즐기는 입장이 아닌 준비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나마도 별로 즐기지 못했고.’
건국제 같은 큰 기념일의 주인공은 드라이르프가 아니다.
오히려 제국의 유력 가문으로서 행사에 꼭 참여해야 하는 입장.
가주와 안주인이 없는 축제보다는, 오히려 가문의 핏줄의 생일이 더 큰 행사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는 처음인 예리엘과 하인스는 르윈의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자신만만한 르윈의 모습에 예리엘과 하인스는 기대감을 품었다.
그들 역시 아직 한창 어린 나이.
평소보다 시끌벅적한 아카데미의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돈이지. 이런 행사는 대부분 물건값을 비싸게 받거든.”
맞는 말이었다.
축제라는 특수한 환경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평소에는 사지 않을 가격에 물건을 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두 번째는 계획.”
“무슨 계획이요?”
“우선은 무엇을 할지, 그다음은 시간상으로 그게 가능한지를 확인해야지.”
안 그래도 학생의 숫자가 많은 베르샤 아카데미인데, 외부인까지 받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이 학생들의 가족이라고는 하나, 황성 근처에 가지 못한 이들 또한 베르샤 아카데미에 적지 않게 찾아오고 있었다.
“인기 있는 곳은 줄 서고 대기를 해야 하거든. 돈을 내면 모를까.”
물론, 그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는 있다.
잘나신 귀족 나리 중에는 평민들과 함께 줄을 서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해요?”
돈으로 새치기할 수 있다는 것에 불만이 나올 수 있었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평등한 교육’을 주장하는 아카데미에서 귀족이 돈을 내고 새치기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가능하지.”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액수를 들으면 인정할 정도의 금액이거든.”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다.
그리고 그 돈을 바탕으로, 평균적인 가격이 내려가기도 했다.
“돈을 내고 들어간 사람들 메뉴판은 따로 있거든.”
안 그래도 축제 가격으로 바가지인데, 거기에 몇 배는 더 가격이 붙는다.
정말 시간을 돈으로 사는 행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정도.
그 액수를 들은 이들 또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금액이었다.
“학생 용돈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금액이군요.”
“그렇지.”
대륙에 명성을 떨치는 식당도 아니고, 고작해야 아카데미 축제의 음식에 그 정도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돈을 가져다 버리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귀족 학생들은 물론, 어느 정도 이름 있는 가문조차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줄이 길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해.”
특히나 예리엘과 하인스는 르윈을 따라다녀야 한다.
평등을 주장하는 아카데미 안에서도 관심을 받는 르윈인데, 밖에서 들어온 외부인들은 드라이르프라는 이름을 신경을 안 쓸 수 없을 터.
“내가 한곳에 계속 있으면, 사람들이 엄청 몰릴 테니까.”
“…….”
“…….”
잘났다는 듯 행동하는 모습에 예리엘과 하인스의 시선이 차가워졌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주인이 정말로 ‘잘난’ 인간이라는 것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필요하지.”
“가장 중요한 거요?”
“돈이랑 계획 다음이니까, 시간?”
그럴싸한 말이었지만, 르윈은 혀끝을 차며 하인스의 대답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시간은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거고. 그보다 중요한 건.”
“중요한 건?”
“은신술이지.”
르윈의 말에 예리엘과 하인스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머리 위로 물음표가 뜨는 것은 덤이었다.
“라일라한테 기술 좀 배웠지?”
아니요.
그거 배울 수 있는 건가요.
예리엘과 하인스는 의문이 가득 담긴 얼굴로, 말없이 르윈을 바라만 보았다.
***
“국경을 넘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
바벨리안 제국의 국경 부분.
검은 로브를 입은 이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국은 지금 건국제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일단 안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 몸을 숨길 수 있습니다.”
“일단 5번대가 길을 막겠습니다. 주군께서는 그 틈에…….”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사지로 뛰쳐나가는 사람들을 그대로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주군을 부탁한다.”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한 명, 또 한 명.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면 늘 한 사람이 사라졌었다.
“이미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이러면 목적지를 변경할 수밖에.”
계획 또한 계속 차질이 생겼다.
최고의 수라는 것은 가장 좋은 경우를 뜻하는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 또한 예상하기 쉽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렇게 가장 좋은 수를 버리고.
그다음 수를 버리고.
그렇게 계속 좋은 수를 버리면,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도시를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쪽으로 가면.”
주변의 사람이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줄어든 상황.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제가 모시겠습니다.”
최후의 기사가 목숨을 걸고 돌파한 곳은.
‘베르샤 아카데미’.
건국제를 즐기고 있는 아카데미의 안이었다.
“…물.”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도주하느라 이틀째 식사는커녕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그렇기에 주머니를 뒤적거린 이는 제국 은화 몇 개를 확인하고는 주변의 가게를 확인했다.
“비싸군.”
제국의 물가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닐 터.
축제 기간의 바가지에 한숨을 내쉰 그는 평범하게 줄을 서고, 음료와 적당한 식사를 구할 수 있었다.
‘어색하지 않게.’
수하가 구해 온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학생 수가 적은 벨테스 아카데미라면 모를까, 베르샤 아카데미는 학생 수가 많았기에 학생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모른다고 해도 신입생이라고 생각을 하겠지.’
2학기에는 소수지만 전학생들도 생기는 것이 아카데미였기에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식량을 챙기고, 한쪽 구석에 설치된 테이블로 걸어간 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후.”
노점에서 파는 간단한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볶음, 거기에 적당한 차였지만,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한 지 한 달이 넘은 그에게는 만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탓일까.
“…….”
고개를 돌린 순간 보이는 네 사람의 모습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설마!”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암살의 위협에 놓여 발달한 감각이 아니었으면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의 은신술이었다.
분명 숙련된 암살자의 그것.
‘설마 여기까지!’
방심했다.
사람들이 가득한 축제 한복판에서, 이렇게 대놓고 움직일 줄이야.
“응?”
시선이 마주친 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자신의 은신이 간파되었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 모양이다.
“이런……!”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상대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컥!”
축적된 피로 탓일까.
단 한 방에 눈이 점점 감기는 것을 느끼며 그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축제는 역시 재미있어.”
붉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아직 어린 소년의 모습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