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90)
90화 20. 인생 10회 차는 직관한다 (1)
“도련님?”
“쉿.”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르윈의 행동에 데이지는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
‘아시는 분입니까?’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갑자기 다짜고짜 움직이더니, 눈앞의 사람 하나를 기절시켰는데.
그게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드라이르프라고 하더라도 쉽게 해명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나마 상대도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하긴 했으니까.’
제발 아는 사람이어라.
모르는 얼굴이지만, 르윈이 아카데미에서 비밀리에 접촉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중 하나이기를 간절히 빈 데이지였지만, 늘 그렇듯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모르는데?”
주변에 들키지 않게 기척을 죽인 르윈은 축 늘어진 사람을 질질 끌어오며 대답했다.
“그, 그런데 왜.”
“뭔가 되게 수상하잖아.”
“수상하다고요?”
“응. 우리 보고 놀라기나 하고.”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있었다.
따로 은신술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르윈이나 라일라 덕분에 배운 감각이 있고, 숨쉬기 운동을 응용하면 쉽게 가능하다는 르윈의 말에 열심히 응용한 결과 나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면 누구나 놀랍니다.”
하지만 막 사용한 은신술이기에 그것이 풀렸을 수도 있다.
그 순간, 근처에 있는 사람이 자신들을 보았다면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터.
충분히 놀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데이지는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아마 아닐걸?”
하지만 르윈은 그러한 데이지의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은신은 완벽했어. 그냥 이 사람이 감이 좋을 뿐이야.”
그리고 그런 이들은 둘 중 하나였다.
타고난 감각이 좋거나.
‘이런 경험을 몇 번 했거나.’
얼마 전, 맞선을 보았던 황녀가 그러했다.
라일라를 보고 당황한 모습.
기절한 남자의 행동은 그 모습과 닮아 있었다.
‘은신술을 배운 자를 근처에 두고 있는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그러한 자들에게 목숨이 노려진 사람일 터.
‘그런 사람이 아카데미에 있을 리는 없으니까.’
십중팔구, 아카데미 학생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르윈의 예상이었다.
‘아카데미는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긴 하니까.’
바벨리안 제국이 아카데미 시스템을 잘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카데미를 처음으로 도입한 나라는 아니었다.
르윈의 전생에도 아카데미 경험이 존재했고, 르윈의 아카데미 경험을 떠올려 보면 아카데미를 향한 테러도 많이 발생하는 편이었다.
‘아카데미만큼 테러나 혁명하기 좋은 곳이 없긴 하지.’
귀한 집 자식들이 알아서 한곳으로 모인다니.
테러범이나 혁명군 관점에서 이만큼 일하기 좋은 곳이 또 있을까?
‘문제는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건데.’
그보다는 그런 이들에게 쫓기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일까.’
긴장감 없는 아카데미 생활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걸 놓칠 수는 없는 법.
“일단 방으로 데려가자.”
“도련님…….”
“아니면 내가 여기서 사람 기절시켰다고 광고라도 하게?”
“…….”
르윈의 말에 시종들은 울상을 지으면서도, 일단 사람이 없는 곳으로 옮기는 것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귀찮아 죽겠네.”
제국 건국제는 황실에서 주도하는 제국의 가장 큰 행사다.
그렇기에 건국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
아카데미의 학생회조차 숨 쉴 틈이 없는데, 그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제국의 공무원들은 어떨까.
“나도 남들처럼 축제 좀 즐기고 싶다.”
다크서클이 가득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서 축제를 즐기는 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기분.
“어릴 때 저런 걸 즐겨야 했는데.”
평범한 하급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출세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노력한 그였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끝에 수도에서도 손꼽히는 벨테스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도 노력한 끝에 기초 교육 과정 3학년부터 학생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중등 교육, 고등 교육을 끝낸 그는 프리 패스로 제국의 공무원이 될 수 있었고.
“잘리고 싶다.”
간절하게, 은퇴를 원하고 있었다.
“은퇴하시면 되죠.”
그의 말에 옆에서 조용히 푸념을 듣고 있던 여인이 대답했다.
그러나 남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표 쓰는 순간 우리 가문으로 직장 동료들이 들이닥치고, 그대로 가문을 거덜 낸 다음에 부장님이 오셔서 다시 일할래, 망할래? 할 겁니다.”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집 안을 털 동료와 상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그럴 리가.”
그에 옆에 있던 여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지만, 남자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럴 겁니다. 나도 딴 새끼가 사표 쓰면 그럴 거니까.”
“…….”
제국 재무부의 악명은 익히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정보부 직원은 소문으로만 듣던 재무부의 위험성에 작게 몸을 떨었다.
“옛날에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 인생이 편해질 거로 생각했는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들이 으레 그렇지만, 남자 또한 신동으로 소문이 났던 이였다.
그렇기에 부모님과 가문의 기대를 한껏 받았고 그 기대에 부응했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아카데미 학생회 시절부터 일, 공부, 일, 공부에 치이는 삶이었다.
하지만 버텼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일과 공부에 치이던 나날들이었지만, 버티면 미래가 보장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엘리트 공무원이 된 이후, 아카데미 임원들이 왜 공무원 프리 패스인지 알 수 있었다.
‘학생회 임원 업그레이드 버전이었으니까.’
제국의 공무원이란, 그냥 학생회 시절보다 하는 일이 더 많고 더 어려워졌을 뿐이다.
즉.
‘학생회는 연습용이었지.’
괜히 아카데미 임원들이 예비 공무원 취급을 받는 게 아니다.
이미 공무원 생활에 훈련되었기에 가르칠 것이 적어 데려가는 것뿐이었다.
‘그걸 몰랐지.’
그저 열심히 공부하면, 미래가 편해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상사 놈들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뭐, 그래도.”
위안이 없는 건 아니다.
상사란, 곧 자신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존재였으니까.
“우리 부장님도 은퇴 못한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젊고 유능하기로 소문난 부장이었다.
고작해야 과장 정도가 한계인 나와 달리, 부장님이라면 큰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장관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더 빨리 은퇴하겠지.’
정년퇴직이든, 일 못해서 잘리든.
제국은 나 같은 무능력자보다는 부장님 같은 유능한 사람을 좋아한다.
남자는 그렇게 위안 삼으며,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을 손으로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베르크 왕국의 추격자들이 이 근처에서 없어진 건 확실합니까?”
“맞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주변에 뿌렸다.
“핏자국이 베르샤 아카데미 방향으로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제외한 나머지 인력은 지금 아카데미에 이야기를 전하고, 주변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축제에 재를 뿌리고 싶지는 않으니, 대놓고 움직일 수는 없다?”
“그렇습니다.”
건국제는 제국 최고의 축제다.
그런 축제의 현장에 다른 나라의 일로 재를 뿌리게 된다면 아주 많은 사람이 곤란해지고 말 터.
“조용히 끝내고 싶어서 우리까지 불렀다라.”
“재무부의 일 처리 능력은 제국 최고니까요.”
재무부.
얼핏 들으면 돈을 관리하는 내정 집단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재무부는 말 그대로 제국의 모든 재화를 담당하는 부서.
화폐를 찍는 것은 물론 제국의 유통 흐름을 관리하고, 제국의 곳간까지 관리하는 곳이다.
그러나 재무부가 맡은 가장 중요한 일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세금.
나라로 들어오는 세금을 받아 내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임무였다.
“참, 기쁜 말이네요.”
전혀 기쁘지 않은 얼굴로 남자는 한숨을 푹푹 내뱉었다.
그 또한 처음 재무부에 내정되었을 때는 좋았다.
그냥 돈을 관리하는 집단이니, 편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탈세 증거를 찾아내는 수사력, 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이들을 제압하는 무력, 숨긴 돈은 어떻게든 찾아내는 정보력까지!”
세금을 뜯어 가기 위한 재무부의 능력은 제국 공무원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금칠해 줘도 뭐 안 나옵니다.”
짜디짠 공무원 월급으로 뭐가 나오겠나.
그렇게 투덜거리던 남자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흠.”
여인이 뿌린 액체는 혈흔에 반응하여 형광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발자국도 있었고, 그 피를 밟고 쫓는 듯한 움직임도 있었으나.
“묘하게 공백이 있어.”
남자는 그사이, 미묘한 이질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핏자국이 베르샤 아카데미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안에 들어갔습니까?”
“아닙니다. 아카데미 주변을 이동한 흔적은 있지만, 내부로 들어간 흔적은 없었습니다.”
“고민은 했으나, 외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피했다?”
“저희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남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외교 문제를 생각했으면 아예 국경을 넘진 않았겠죠.”
도망자가 그런 걸 신경 썼으면 제국 국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을 것이고, 추격자 또한 외교 문제를 생각했다면 도망자가 국경을 넘는 순간 추격을 중단했을 것이다.
“이런 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의 부장이 자주 하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그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할 뿐이다. 그냥 우리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냥 세금을 걷는 것뿐이다.’
모든 일은, 그 결과를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이것도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쉽게요?”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에 남자는 베르샤 아카데미 방향을 바라보았다.
“추격자가 왜 안 들어갔을까.”
답은 간단했다.
“들어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도망자가 들어가지 않았기에, 추격자는 아카데미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럼 도망자가 왜 아카데미로 들어가지 않았나.”
추격자 때와 달리 이유가 많을 수 있겠으나.
그의 수많은 경험이 꺼낸 결론은, 단 하나였다.
“들어가면 안 되었으니까.”
그는 이런 경험이 많았다.
탈세하고, 비밀리에 재산을 숨기는 이들은 재산을 숨긴 장소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접근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도 모른 채.
“내부에도 사람을 보냅시다.”
저곳에 중요한 것이 있다.
도망자가 숨기려 한 것이고, 추격자가 찾으려 한 것.
“아마 베르크의 왕세자는 아카데미 내부에 숨어 있을 겁니다.”
베르크 왕국의 내전과 그로 인하여 튕겨져 나간 왕세자.
그것이 건국제로 보안이 취약한 틈을 타 제국으로 흘러들어 왔고, 덕분에 이 고생 중이다.
“건국제는 늘 이렇다니까.”
아카데미 시절부터 변한 게 없다.
모두가 즐기고 있는데, 나만 일하고 있다니.
이렇게 슬픈 일이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이나 해야지.”
아카데미 때는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이 아니지만, 지금은 진짜 칼 들고 협박할 상사들이 가득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