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91)
91화 20. 인생 10회 차는 직관한다 (2)
“헉!”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여기는 어딜까.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분명.’
마지막 기억은 암살자를 만나고, 습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것을 떠올리자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일어났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급히 고개를 돌리자, 자신보다 한참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쉽게 이길 수 있는 나약한 모습의 소년이.
‘가짜겠지만.’
흔히 암살자라고 한다면 은신술을 통하여 기척을 죽이고 상대가 방심한 틈을 노려 암습을 가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암살자의 유형은 다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어린아이나 노인의 모습으로 상대를 방심시키고, 그 허점을 노리는 이들 또한 존재했다.
‘이미 당했고.’
심지어 자신은 눈앞의 상대에게 이미 당한 상황.
“지금 상황을 이해했구나.”
눈치까지 빠른 것일까.
싸늘한 비웃음을 흘리며, 붉은 머리의 소년은 말했다.
“너, 납치된 거야.”
“역시!”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저 암살자가 1왕자인 형의 수족이었다면 이미 자신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니까.
‘추격자의 수가 생각보다 많다고 생각은 했는데.’
1왕자의 수족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였을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원하는 것이 있다는 거겠지.’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보였다.
“나를 아느냐?”
“나 본 적 있어?”
“초면이겠지. 그렇겠지.”
암살자가 타깃과 안면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굳은 표정으로 상대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은 마음의 거울.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으니까.
“내 이름은 칸나 베르크. 베르크 왕국의 2왕자이자 왕위를 이어받을 후계자다.”
상대의 표정에 흥미가 생겼다.
“저쪽에서 얼마를 불렀는지 모르겠으나, 그 두 배를 주마. 어차피 저들은 돈을 지불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왕세자를 죽이고, 역모를 도모한 죄를 뒤집어씌울 것이다!”
나를 도와준다면 모든 일을 용서하겠다. 아니, 오히려 포상을 내리겠다.
“내 말 맞지?”
그러나 붉은 머리의 소년은 히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급하게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눈앞의 소년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신보다는 조금 더 어린 이들.
‘동료인가?’
생각해 보니 기절하기 전, 자신이 보았던 이는 하나가 아니었다.
‘뭐지?’
그들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께서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하실 때, 대신들의 표정이 저랬는데.’
아주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맡았을 때.
그럴 때 저런 표정을 짓곤 했었다.
“도련님.”
그리고 들린 말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련님?”
암살을 업으로 삼는 가문이라도 있는 것인가.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대륙은 넓고, 가문은 많았으니까.
검술의 명가, 마법의 명가처럼 암살의 명가가 존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뒤에 서 있는 이들의 표정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전형적인 암살자들이라면 저렇게 표정에 감정을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니까.
“너, 너희는 누구인가.”
무언가 이상하다.
분명 기척이 없는 것이 암살자처럼 느껴지는데, 육감은 저들이 암살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칸나 베르크. 베르크 왕국의 왕세자다!”
“그건 아까 들었는데.”
나름 목소리를 높여 말했으나, 붉은 머리의 소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다.
‘뭐지?’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위치에 있는 자라면, 왕세자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역시 암살자인가?’
이미 내 목숨을 손아귀에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 생각해 보니 내 소개를 안 했네.”
인상을 찌푸리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피식 웃는 자는.
“르윈 디 드라이르프.”
암살자가 아닌 귀족이 맞았다.
다만.
“드라이르프?”
“아나 보네? 우리 집이 여기서 좀 잘나가는 거.”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
‘이건 좀 예상외인데?’
연기 좀 해 주고, 겁 좀 주면 알아서 자신의 신분을 말할 것이라고 르윈은 생각했고, 실제로 예상대로 상대는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대충 사연 많은 귀족 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왕자, 그것도 차기 왕으로 결정된 왕세자라니.
‘대박이네?’
낚아도 제대로 된 것을 낚았다.
다른 나라의 왕세자가 목숨을 위협받아 타국의 국경을 숨어들어 오다니!
‘세상은 개판이 맞아.’
어떻게 인생을 열 번을 사는데, 대륙이 멀쩡한 적이 없을까.
‘이러니까 매번 마족들이 쳐들어오면 뚫리지.’
필요할 때는 알아서 뭉치는 인류지만, 그 외에는 뭉치지 않는다.
아니, 뭉치지 않는 수준이라면 다행이었다.
서로의 것을 탐하고, 서로의 목에 검을 겨누는 것은 어느 시절이든 변하지 않았다.
‘배가 불러서는.’
얼마나 배가 부르면 역모일까.
‘아니면 배가 고파서 일어난 역모이려나?’
뭐가 되었든 좋은 징조는 아니다.
꼭 이렇게 인류가 분열하고 있으면 마족은 기회라고 쳐들어왔으니까.
‘이 새끼들이 시발점일 수 있지.’
베르크의 왕세자가 눈앞에 온 것도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세상이 망하는 것이랑 마신에게 지배를 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세계 멸망을 고를 것이 분명한 라헬이었으니까.
마신의 이득을 막기 위해, 왕세자를 자신의 눈앞에 데려다 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그 망할 신 때문에 의심병이 말기야.’
짧게 혀를 찬 르윈은 자신을 칸나라 말한 베르크의 왕세자를 내려다보았다.
일단 겉모습은 적게 치면 고등 교육은 다니고 있을 나이였고, 많이 쳐줘도 서른은 넘지 않은 모습이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스물 초반.
‘시간이 있었다면 정보 좀 얻어 놨을 수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왕세자가 나타나는 일은 르윈으로서도 상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본인에게서 정보를 얻어 내야 했는데.
“입을 안 여네.”
르윈 디 드라이르프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칸나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자국의 정보를 타국에 넘길 수 없다는 건가?”
“…….”
“뭐, 그럴 수 있지.”
이미 본인 입으로 베르크의 왕세자니 역모니 하는 소리를 한 이상 끝이었지만.
한 나라의 주인이 될 후계자로서, 입을 다무는 것은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데이지.”
“네, 도련님.”
“베르크 왕국에 사람 좀 보내.”
“…누구에게 말입니까?”
“신나게 칼춤 추고 있는 사람. 왕세자 싸게 판다고 하면 신나서 올걸?”
“도련님……?”
“무슨!”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당장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셋은 그런 경험을 통하여 이곳에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한 나라의 왕세자를 판다는 이야기는 데이지로서도 기겁을 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도련님, 그건 좀…….”
“가문 생각도 하시죠.”
예리엘과 하인스 역시 르윈의 의견에 반대했지만, 르윈의 생각엔 변함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얘랑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쪽 상황도 개판이잖아? 오히려 칼춤 추던 양반이 혁명에 성공하면 우리랑 친하게 지내지 않을까?”
“혁명이라니! 1왕자가 행한 일은 분명한 역모다!”
“심지어 칼춤 추는 양반이 1왕자라고 하네? 잘됐다. 먼저 태어났으니까 성격 더러워서 잘린 게 아니라면 정통성도 있어 보이고. 아, 서자라서 왕세자가 못 된 건가?”
그건 좀 애매한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르윈을 보며 칸나가 울부짖었다.
“그자는 어릴 때부터 성정이 난폭한 망나니였고, 결국 궁에서 사람을 죽였기에 폐위된 것이다!”
핏줄이 터진 것일까. 붉게 충혈된 눈으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데이지 등이 당황할 정도였지만, 르윈은 대수롭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 원래는 세자였다? 잘됐네. 그런 애들이 자기 사람들은 잘 챙겨 주더라.”
왕세자 넘겨주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을 거라고 흐뭇하게 웃는 르윈의 모습에 칸나의 이성이 끊어졌다.
“내 아까는 방심했다고 하나, 너 같은 어린애 하나를 이기지… 헉.”
은밀하게 몸 안에 마력을 돌리고 있던 칸나는 손목을 묶은 줄을 끊고 그대로 르윈을 향해 달려들려 하였다.
“그런 말 하는 애들은 대부분 못 이기더라.”
그러나 바닥을 박차기도 전, 르윈의 발이 칸나의 얼굴을 걷어찼다.
“도련님?”
상체를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는 칸나의 모습에 데이지가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왕세자인데, 이렇게 무례하게 굴어도 되는 건가.
“내가 안 때렸어. 자기가 와서 내 발에 박은 거지.”
“그걸 말이라고!”
입을 삐죽이며 무죄를 주장하는 르윈의 모습에 데이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왕세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가지 마.”
그러나 르윈의 제지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저쪽도 지금 급한 상황이야. 잘못하면 네가 인질이라고.”
“…….”
르윈의 말에 반론하려던 데이지였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흉흉한 기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죽을 수 없다.”
붉어진 눈으로 르윈을 노려보며 칸나는 이를 악다물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이들이 몇인가?
그들이 왜 자신을 희생했는가!
“나는 돌아갈 것이다.”
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서 역모를 막고, 1왕자를 처단해야 했다.
“누가 가지 말랬나.”
결의에 가득 찬 칸나의 모습은 비장했지만, 르윈은 그것을 보고도 그다지 감흥이 없어 보였다.
“아까까지 날 팔겠다 하던 놈이, 말은 잘하는구나.”
“입을 계속 다물면, 다른 쪽이랑 협상한다는 말이었지.”
“겁을 먹은 것은 아니고?”
한 나라의 왕자로서 어릴 때부터 온갖 영약을 먹고, 왕국 최고의 검사들에게 훈련을 받은 칸나였다.
아무리 재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실력이 보장될 수밖에 없었고, 재능 또한 괜찮은 편이었기에 또래 중에서 칸나를 이길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실제로 데이지와 예리엘, 하인스가 힘을 합친다고 하더라도 칸나를 이길 수는 없는 상황.
거기에 추가적으로.
“그렇게 하면 집 가기 전에 먼저 망가질 텐데.”
몸속의 마력이 폭주하고 있었다.
“하아!”
오랜 시간 도주한 몸이 멀쩡할 리가 없다.
그 상태에서 정신까지 흔들리니, 내부의 마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그대로 폭주하여 죽거나, 폐인이 될 확률이 높으며.
‘그럼 엄청 귀찮아지겠지.’
다른 나라 왕세자가 다른 나라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시체로 발견된다니.
이건 르윈도 좀 많이 귀찮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너무 놀렸나.”
폭주한 상태로, 오로지 자신을 향해 적의를 내뿜는 칸나를 보며 르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기절만 시키자.”
“내가 또 허무하게…….”
당할 것 같으냐!
그렇게 말하려던 칸나였지만, 복부를 강타하는 강력한 마력에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컥!”
갑작스럽게 날아든 이 마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엄청난 고통과 함께 다시 한번 감기는 눈으로 마력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저게 무슨.’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식물을 바라보며, 칸나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