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92)
92화 20. 인생 10회 차는 직관한다 (3)
마력포로 칸나를 쓰러트린 엘리는 그대로 르윈의 어깨에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맞나?”
“맞지.”
“내가 다 봤는데. 저기가 불쌍한 주인공이고, 우리가 악역 같던데?”
“요즘은 악역 주인공이 대세야.”
“그래?”
엘리와 대화를 나누며 르윈은 칸나의 옆에 쪼그려 앉아 칸나의 등을 콕콕 찔렀다.
“흠, 많이 안 좋네.”
기혈이 뒤틀려 있다.
중간중간 정체된 마력이 몸 곳곳에 남아 있었고,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음.”
마력이 뭉친 곳들을 적당히 찔러 주며 풀어 준 르윈은 칸나의 심장 부분에 손을 대고는 눈을 감았다.
‘그래도 여자는 아니네.’
잘 단련되어 단단한 가슴에 르윈은 안도했다.
‘가끔 남장한 애들이 튀어나와서 난리를 쳤는데.’
남장 여자, 혹은 여장 남자.
평범한 인생을 살면 만나기 힘든 것들이지만, 그렇기에 도망자들이 잘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살려고 노력하는 애들은 동아줄이 보이는 순간 잡고 놓치지 않는다.
고삐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고삐를 붙잡은 채 휘둘릴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건 손해지.’
용사로서 마족과의 전쟁을 생각해 둔 인생이라면 모를까, 이번 생의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그러니 굳이 그런 귀찮은 일에 알아서 발을 디딜 필요는 없었다.
“아.”
“왜 그러십니까?”
“죽었다.”
“결국!”
“아아…….”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순간 굳은 얼굴로 사망 판정을 내리자 곳곳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장난이다, 장난.”
늘 생각하는 거지만, 얘들 머릿속엔 내 이미지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단순히 놀라는 것이 아닌, 언젠가 일어날 일이 지금 일어나 버렸다는 듯한 한탄에 르윈은 짧게 혀를 차며 기절한 칸나를 가리켰다.
“일단 팔만 또 대충 묶어 봐.”
“또 풀 텐데요?”
“그러라고 묶는 거야.”
이전에도 형식적으로 헐겁게 밧줄을 묶었을 뿐이다.
한 번은 우연일 수도 있겠으나, 두 번 연속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연일 리가 없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면 진짜 버리든가 해야지.’
답답한 녀석을 고생해서 도와줄 필요는 없다.
쉽고, 간단하게.
“윽.”
그리고 잠시 후 일어난 칸나를 보며 르윈은 진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맞아. 너 납치된 거야.”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칸나를 보며 르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는 아니구나?”
“하.”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화가 나는 일이었으나, 몸 안에 잔잔하게 흐르는 마력을 느끼며 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졌다.”
***
“그렇게 된 것이다.”
대략적인 사정을 빠르고 간단하게 설명한 칸나의 이야기를 듣고 데이지는 빠르게 대답했다.
“도련님, 그만두시죠. 엄청 귀찮은 일입니다.”
“싫어.”
“…….”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데이지는 지친 듯 르윈의 침대 위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망했어.”
몰래 가문에 연락이라도 넣어야 할까.
아니, 그 전에 우선 베리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혼자 중얼거리는 데이지를 본 칸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르윈에게 말했다.
“저 아이는 괜찮은 것이냐.”
“자주 저러니 무시해라.”
“하.”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원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데이지는 빠르게 품속에서 델포스를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정리하면 자기 이득 좀 챙기려고 적국에 돈이랑 정보를 빼돌린 귀족들이 걸리니까 폐위당한 망나니 1왕자와 함께 역모를 일으켰다는 평범한 이야기네?”
“…어디가 평범한 이야기지?”
평범하다는 르윈의 평가가 칸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르윈에게는 평범한 일이었다.
“나라에서 역모가 일어나는 경우가 얼마나 된다고.”
무리한 전쟁으로 나라가 파탄이 나거나 폭군이 등장하여 과도한 노동과 세금을 강요했을 때.
그것도 아니라면 왕이 무능하여 귀족들에게 놀아나거나, 권력을 두고 형제끼리 칼부림할 때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일어나는 건 역시.
“제일 흔한 게 형제끼리 칼질하는 경우잖아?”
“…….”
맞는 말이긴 했다.
권력의 단맛은 우애 좋은 형제도 갈라놓으니까.
거기에 아예 없었으면 모를까, 권력의 맛을 이미 한 번 본 1왕자였다.
‘맛을 못 봤더라도 그럴 사람이지만.’
한 핏줄이지만, 가족으로 취급하지 않은 세월이 몇 년.
아니, 왕궁 전체가 가족이 아니라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확실히 끝을 맺었어야지.”
쯧쯧, 혀를 차는 르윈의 말에 칸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1왕자가 폐위되었을 당시, 죄를 물어 처형하거나 유배를 보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 취급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어도, 결국 피는 물보다 진했다.
목숨은 보장해 주었고, 유배도 왕궁 구석으로 봐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
동생을 죽이려 하고, 아버지 또한 위협했을 수도 있다.
“그랬어야 했지.”
왕위에 오를 자는 그 누구보다 냉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고작 이런 아이도 깨닫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르윈을 바라보자, 의문이 생기는 칸나였다.
“그나저나, 나이가.”
자연스럽게 반말하고, 윗사람처럼 굴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연하였다.
그것도 아주 차이가 많이 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울 나이, 열 살!”
“…….”
귀엽고, 뭐?
어처구니가 없어진 칸나의 귓가에 헛구역질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
“뭐, 왜, 사람 나이에 불만 있어?”
“아니, 그래도 내가 연장자인데.”
“가는 데 순서가 어디 있어. 지금 상황 보면 내가 그쪽보다 오래 살 것 같은데?”
“…….”
맞는 말이었다.
언제, 어디서 1왕자가 보낸 암살자가 달려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드라이르프 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나.”
그러니 반말 정도는 쓰게 내버려 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아이의 도움이었으니까.
“제국 아카데미에는 호위도 데려오지 못합니다.”
그 대답을 한 이는 데이지였다.
호위 등이 같이 오는 것이 가능했다면, 데이지가 나이를 줄여 가며 르윈과 같은 반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카데미 외곽 마을에 비밀 호위들이 있으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도련님이 아닌 가문의 허락이 필요할 것입니다.”
“…왜 난 몰랐을까.”
가끔 마을에 나가면 익숙한 기척이 느껴지기에 예상은 했으나, 데이지가 그걸 혼자 알고 있다는 것은 르윈의 예상 밖이었다.
“알면, 귀찮으니까요.”
“와.”
대놓고 배제했다는 말에 르윈은 감탄했다.
“그냥 뻔뻔하게 나오겠다?”
“다 훌륭한 주인님에게 배운 덕분이죠.”
“잘 배웠네!”
나날이 성장하는 데이지의 모습에 르윈은 박수를 쳐 줬고.
‘뭐 하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 주종 관계에 칸나는 혼란에 빠졌다.
“도련님 단독으로는 가문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가문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가문 몰래 숨겨 둔 사병이라도 있으십니까?”
“아까 말했잖아.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이, 열 살이라니까? 열 살이 어떻게 숨겨 둔 사병이 있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귀여울 수는 있으나,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도련님이라면 열 살이어도 사병을 숨겨 두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여운 건 인정해 주네.”
“공작님과 공작 부인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시니까요.”
왜 갑자기 이 주종은 서로 기 싸움을 펼치는 걸까.
‘지금 이야기의 주인공은 난데.’
심지어 이야기를 들어 보면 드라이르프 가문의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방법이 뭔가.”
지금 급한 건 칸나였다.
저 주종의 싸움보다는 자신의 생존,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 그거?”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르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가면 알게 돼.”
***
“와…….”
“왜 조합이 저러냐…….”
축제를 틈타 베르샤 아카데미에 잠입한 재무부 소속 직원과 정보부 소속 직원은 몇 시간을 헤맨 끝에 원하던 이를 찾을 수 있었다.
베르크 왕국의 왕세자, 칸나 베르크.
자연스럽게 그에게 접근하여, 윗선에 보고하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왜 드라이르프 가문의 막내아들이 저기 있냐고.”
재무부 소속 남성의 한탄에 정보부 소속 여인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냥 이대로 접근해야 하나?”
직접 명령을 내린 재무부장은 이번 사건을 맡기며 이렇게 덧붙였다.
‘방해되는 요소가 있다면, 들이박아라. 후작가까지는 내가 책임을 진다.’
제국에 준귀족, 그리고 하위 귀족에 포함되는 남작가나 자작 가문은 차고 넘쳤다.
상위 귀족, 몇몇은 중간 귀족이라고도 부르는 백작가 또한 남작가와 자작가에 비하면 적을 뿐, 그 수가 제법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후작가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손이 조금 넘는 숫자.
단 열두 개의 가문.
수많은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가문이며, 하나하나가 대륙에 영향력을 끼치는 대가문이었다.
그런 가문과 시비가 걸려도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냥 하는 말 같지만, 자신이 내뱉은 말은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즉, 후작가까지는 진짜로 어떻게 해 줄 수 있다는 말.
그만큼 재무부장의 위치와 능력을 증명하는 말이었지만.
‘공작가는요, 부장님?’
하지만 그런 부장도 단둘뿐인 공작가를 들이박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애초에 언급조차 안 한 것이다.
“정보부장에게 연락은 됩니까?”
“지금 곳곳이 비상이라 연락이 어렵습니다.”
재무부장 선에서 안 된다면, 정보부장을 얹어야 한다.
아니, 그것조차 모자란다.
“젠장.”
제국민에게 드라이르프 공작가나 라인하르트 공작가는 드래곤 같은 존재였다.
그저 이름 하나만으로 잠시 숨을 멈추고, 경외하는 그런 것.
직접 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지만 그저 이름만으로 그만한 위압감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제국의 공무원들에게는 달랐다.
두 공작가는 자연재해였다.
드래곤처럼 직접 보지 못하는 환상이 아니라, 가끔 일어나는 자연재해와 같은 존재였다.
‘드래곤은 만날 일이 없지만, 자연재해는 매년 일어나니까.’
드라이르프도, 라인하르트도 기본적으로 매우 조용하고 신사적인 곳이다.
하지만 한번 움직이면, 그 작은 움직임에 공무원들은 죽어 나간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베르크의 왕세자를 발견하고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일단 전 부장님에게 연락을 넣겠습니다.”
“네. 저는 아카데미에 퍼져 있는 정보부 소속을 모으겠습니다.”
연락을 위해 잠시 자리를 벗어난 남자는 비어 있는 교실에 숨어들어 영상 도구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부장님, 접니다.”
『그래, 2팀장. 목표는 찾았고?』
“네. 그런데 일이 조금 생겼습니다.”
『뭔데. 설마 죽었어?』
“그건 아닌데…….”
차라리 그랬으면 편했지.
“곁에 드라이르프가 붙어 있습니다.”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2팀장이라 불린 남자는 말없이 영상 도구에 비치는 부장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한숨을 푹푹 내쉬고.
마른세수도 몇 번을 하고.
제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처먹는 자이자, 수많은 가문과 상단이 두려워하는 재무부장이지만, 이번만큼은 상대가 너무 나빴다.
『공작가 막내 도련님 맞지.』
“네.”
『이제 열 살이었나.』
“맞습니다.”
『하.』
그렇게 짧게 한숨을 토해 낸 재무부장은,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말했다.
『대기. 내가 직접 간다.』
“직접 말입니까?”
『그래… 정보부장 데리고.』
물귀신처럼 한 명 더 데려간다는 상사의 모습에, 2팀장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