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93)
93화 20. 인생 10회 차는 직관한다 (4)
협상이 끝난 후, 르윈이 칸나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무링신 연구 동아리의 부실이었다.
“역시 아무도 없네.”
본래 건국제 행사에 맞추어 자신들의 성과를 보여 주기 위해 동아리들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기에 동아리실에도 부원들이 상주해야 정상이지만, 무링신 연구 동아리는 평범한 동아리가 아니었다.
“바쁘니까요.”
바쁘다.
이름 없는 신 연구 동아리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 이름이 무링신 연구 동아리가 되며, 부원들은 강제로 끌려다니는 중이었다.
“선배님들이 열심히 활동한다니, 참 기쁘네.”
강제로 종교 행사에 끌려가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을 선배들을 떠올리며 르윈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전원이 바쁜 건 아닐 텐데.”
“설마?”
르윈의 말에 데이지는 유일하게 바쁘지 않을 수 있는 부원의 이름을 떠올렸다.
‘루테스 전하까지?’
타국의 왕세자의 일에 바벨리안의 황자가 끼어든다?
불난 집에 불 끄는 거 도와주겠다고 찾아가서 기름을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련님도 그걸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
데이지의 눈이 거칠게 떨렸다.
이 인간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잘 알기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일 수 있었다.
‘재밌으라고.’
재미 하나에 타국의 왕세자와 자국의 버림받은 황자를 한곳에 모으는 미친놈은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데이지가 아는 르윈은 그 미친놈에 해당이 된다는 것이다.
‘아니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르윈을 바라보는 데이지였지만.
“아마 네 생각이 맞을걸?”
“아아…….”
굳이 안 해 주어도 될 확인 사살을 듣고 마음이 꺾여 버리고 말았다.
“왜 그러지?”
그 사실을 모르는 칸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데이지는 고민했다.
‘이걸 알려 줘야 할까?’
매도 먼저 맞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어차피 맞을 운명이라면 그냥 빨리 맞고 빨리 상처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러나 데이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이 존재했다.
가끔 르윈이 장난을 쳤으니까.
자기 생각이 맞을걸이라고만 말했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아니길 바랐다. 아니어야 했다.
“뭐야, 사람이 있었나?”
“선배님!”
그러나 동아리실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루테스의 모습을 보며 데이지는 절망했다.
“아, 안 돼.”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루테스가 동아리실로 온 것일까.
‘올 이유가 없는데.’
데이지가 판단하기에 루테스는 축제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행사를 싫어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기로 오실 줄 알았어요.”
그러나 데이지와 달리 르윈은 루테스가 동아리실로 올 줄 알고 있었다.
“올 줄 알고 기다렸다고?”
“네. 황실에서 사람 나왔죠?”
“그걸 어떻게?”
“건국제니까요.”
건국제 기간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는 건국제를 기념하는 축제를 진행한다.
건국제에 신경을 쓰는 황실에서 아카데미에 사람을 파견하는 건 당연한 일.
“그리고 황실에서 나온 사람이 황족을 찾아가는 것도 당연하죠.”
“젠장.”
짧게 혀를 차는 루테스의 모습에 다른 이들은 르윈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한테도 갔냐?”
“저도 오기 전에 튀었죠.”
황족을 찾아간다면, 공작가를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여기에.”
미리 대기하고 있는 르윈 때문에 긴장을 한 루테스였지만, 르윈의 설명을 듣고 안심했다.
적어도 무슨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나저나 저쪽은 누구지? 예비 신입이라도 데려왔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올해 동아리를 바꿀 순 없지만, 그렇다고 내년까지 기다리는 멍청이는 별로 없었다.
축제를 시작으로 2학기 동안 자신의 동아리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 그렇게 꼬신 이들을 내년 초 동아리 선택 기간에 데려오는 것이니까.
괜히 아카데미 축제 기간에 각 동아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 음.”
“내년이면 아카데미에 다닐 나이가 아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르윈의 시선에 칸나가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졸업생인가?’
제법 나이가 있어 보였기에 루테스는 그러려니 생각했으나.
“애초에 이 아카데미에 다닐 생각도 없고.”
“응?”
이어지는 칸나의 말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학생이 아닌가?”
우리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는데, 이 아카데미에 다닐 생각이 없다니.
내년에 졸업할 나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자퇴도 아닐 텐데.
“맞다.”
칸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이르프에서 친한 척하는 선배, 황실에서도 사람이 나올 법한 인물.’
르윈이 말한 조력자가 아마 이 사람일 거다.
그렇게 판단한 칸나는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말하였다.
“나는 베르크 왕국의 왕세자, 칸나 베르크라고 한다.”
그렇게 내뱉으며 손을 내미니, 역시나 상대가 당황한다.
“이런 미친.”
내가 듣고 있는 게 사실이냐.
이건 장난이 좀 심하지 않냐.
그런 시선으로 루테스가 르윈을 바라보았으나, 르윈은 칸나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베르크의 왕세자라고?”
“그렇다.”
“네가 왕세자면, 나는 이 나라의 황자인데.”
“장난이 아니다!”
“나도 장난 아닌데…….”
터덜터덜 걸어와 동아리실에 있는 의자에 대충 앉은 루테스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듣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질 것 같은 한숨이었다.
실제로 루테스의 몸은 힘없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이게 뭔 개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욕설을 하는 모습에는 온갖 감정이 다 드러나고 있었다.
“설마?”
그 모습에 칸나는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아니지?”
아니, 아니어야 한다.
조금 전 데이지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칸나가 거칠게 떨리는 눈동자로 르윈을 바라보았지만.
“맞는데?”
“…….”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데이지에게 했던 대답과 비슷했고.
“우리나라 황자이자, 동아리 선배인 루테스 선배님!”
앞으로 우릴 도와줄 사람이라는 르윈의 말에 동아리실엔 기묘한 침묵이 가득했다.
***
“그러니까, 내전이 일어났다고.”
“네.”
“여기 왕세자는 건국제 겸 외교 차원에서 제국 수도로 넘어오기 전에 습격을 받았고.”
“그렇죠.”
“그렇게 도망을 치다가 수도 끝자락에 있는 베르샤 아카데미로 오게 되었다?”
“그게 지금까지의 이야기죠.”
르윈의 대답을 들은 루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상황은 이해가 되었다.
이해가 되었기에,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안 돼. 돌아가.”
“왜요!”
도울 생각이 1도 없다.
그렇게 말하는 루테스를 보며 르윈이 입을 삐죽였다.
“사람이 사람을 돕고 살아야지, 누가 돕고 살아요.”
“타국의 일에 우리가 끼어드는 거 아니다.”
괜히 내정 간섭이 될 수 있다.
안 그래도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뿌리는 제국인데, 한 나라의 내전에 간섭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베르크 왕국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왕국에서는 제국의 영향력 확장으로 볼 수 있지.”
지금을 평화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평화가 무엇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가.
“제국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다른 나라들도 준비를 하겠지.”
압도적으로 강력한 국가가 가만히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라가 명분을 얻고 움직이면, 다른 나라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할 만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다.
그렇기에 할 만한 일이긴 하다.
“문제는 내가 한다는 거지.”
루테스가 황실 아카데미가 아닌 베르샤 아카데미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
이미 후계 구도에서 떨어졌기에, 자신의 무해성을 증명하기 위해 변방을 자처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드라이르프와 손을 잡고 타국에 간섭하다니.
“내가 뒤져.”
목숨을 살려 준다는 것은 순순히 황위를 내려놓았을 때다.
그걸 다시 노리는 듯한 행동을 취하면 바로 밀어낼 것이 분명했다.
“우리 집은 저쪽처럼 인자한 곳이 아니거든.”
손으로 목을 쓱 긋는 루테스를 보며 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걸고 일어서는 선배의 도전, 감동적이네요.”
“이 새끼가. 할 생각 없다니까?”
이제 10대 초반인데,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집안의 핏줄들을 이긴다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찾아보려면 딴 새끼들 찾아봐. 너 내 동생이랑 맞선도 봤다며.”
그쪽에 연줄을 대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르윈은 인상을 찌푸렸다.
“걔는 좀.”
“그건 인정한다.”
저 새끼도 거르다니. 역시 내 여동생은 사람 새끼가 아니다.
그렇게 확신한 루테스는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칸나를 바라보았다.
“아니면 황실 쪽에 연락을 넣든가.”
그 정도가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의 전부였고.
“그럼 어쩔 수 없죠.”
르윈 또한 그것을 인정했는지, 순순히 물러났다.
‘잠깐.’
순순히라니.
‘저 새끼가?’
르윈하고 전혀 안 어울리는 행동에 루테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요?”
“그냥 넘어간다고?”
“제가 뭐, 도와 달라고 끝까지 붙잡을 줄 알았어요?”
“어.”
확신을 가진 듯한 루테스의 말에 르윈은 고개를 저었다.
“선배님은 늘 존재 자체로도 저에게 도움이 되는걸요.”
“안타깝네. 너는 존재 자체로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서로 도움이 돼야 함께하는 법인데, 르윈과 루테스의 관계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뜯어 가는 관계다.
“그러니 제발 좀 꺼져라.”
진심이 담긴 모습이지만, 르윈은 그저 실실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황실하고 연락을 하는 것까지는 도와주실 거죠?”
“싫은데?”
“그럼 계속 선배님 따라다니는 거고.”
“…….”
루테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데이지를 바라보았지만, 데이지는 자신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딱 거기까지다.”
자신의 이름을 빌려, 연락을 넣는 것까지만 도와주겠다.
그렇게 선을 긋는 루테스였다.
***
‘X발.’
화창한 날씨에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오고, 오늘을 즐기듯 활기찬 사람들의 웃음에 다시 한번 욕설이 나왔다.
‘아카데미 밖까지 나가야 한다니.’
저 미친놈은 왜 나한테 이런 시련만 가져다주는 걸까.
“이거 맛있는데. 드실래요, 선배님?”
폐위당한 형이 동생을 죽이려 역모를 일으켰다.
동생은 부하들의 희생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홀로 살아남아 타국에 의지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미 황위하고는 연관이 없는 몸이기에, 멀리서 희극으로 즐길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 새끼만 아니었으면.’
누가 말했던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희극은 비극이 되어 찾아왔다.
“많이 처먹어라.”
그리고 그 비극을 가져온 재앙은 어디선가 축제 음식을 사 와서 물고 뜯고 맛보고 있는 상황.
‘진짜 개 같다.’
귀찮게 달라붙는 것들을 떼어 내기 위해, 작년에 좀 난리를 친 업보인가.
그것이 원인이라면 작년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찾아가서 사과할 의향이 있었다.
“저쪽에 연락소가 있다.”
비록 황실에서 내놓은 자식이지만, 그래도 황족은 황족.
비밀리에 호위하는 이들도 있고, 황실과 직통으로 연락이 가능한 방법도 존재했다.
“생각보다 가깝네요.”
“아카데미에서 가까워야 하니까.”
아카데미 외곽에 가까우면서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
골목골목이 복잡하게 이어져 있어, 축제가 한창인 지금도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낮에만 다녀서 그렇지, 밤길에 다니면 위험한 놈들이 찾아올 것 같은 그런 곳들.
‘그래, 마치 저런 놈들이.’
“응?”
그런 생각을 하고 앞을 보니, 누가 봐도 수상한 티를 내는 검은 로브의 집단이 조금 먼 거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움직이지 마라!”
나를 인질로 잡고, 협박한다.
“뭐 하냐?”
그것도 우리 편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