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95)
95화 20. 인생 10회 차는 직관한다 (6)
흔히 목숨을 건 싸움에서 살아남았을 때, 많은 것을 배운다고들 한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발전이 없었던 이들.
목숨이 걸리는 순간, 쉽게 그 벽을 넘는 일이 많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벽을 못 넘은 이들은 다 죽었기에 나오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르윈은 달랐다.
매번 목숨을 건 싸움을 했고, 매번 벽을 넘어야 했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 배울 것이 점점 줄어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잡기술’.
딱히 배울 필요는 없지만, 배우면 좋은 기술들.
그리고 지금 사용하는 기술 또한 그 잡기술에 해당하였다.
‘복화술’.
흔히 전장에서 눈먼 화살, 눈먼 마법에 맞고 죽는 이들이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 것도 벅차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 나를 죽이기 위해 살기를 내뿜는 이가 있는데, 다른 곳에 시선을 줄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한눈을 파는 순간 죽는다.
그렇기에 시선은 나를 죽이고자 하는 적에게 간다.
그렇기에 전장에서는 시각이 제한적으로 되고, 깃발로 신호를 보내도 못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신호를 알리려고 한다면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시각이 안 된다면, 다른 감각으로.
즉, 소리로 알려야 했고.
“나를 잡고 싶다면, 먼저 내 호위들부터 쓰러트려라!”
고작 남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혼란을 줄 수 있었다.
“이건 선전포고인가?”
“왕자님까지 그렇게 나오시면 진짜 곤란한데요.”
그리고 잡기술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르윈의 복화술은 바로 옆에 있는 이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마력을 이용해서 칸나의 주변으로 소리를 퍼트린 덕분이었다.
“내, 내가 한 거 아닌데?”
칸나의 주변에서, 칸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덕분에 누가 보아도 칸나가 말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저쪽이 호위인가?’
‘저 녀석들을 먼저 쓰러트리라는 말인가?’
베르크 왕국의 1왕자가 보낸 암살자들과 제국의 부장들의 시선이 서로를 향하게 만들었다.
“선배님도 일 좀 하세요.”
“뭘 해야 하는데.”
“인질 역할이요.”
“개새끼가.”
욕설을 내뱉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루테스는 알고 있었다.
‘이미 파도에 휩쓸린 상태지.’
괜히 그 파도에 역행하려고 하면 더 고생하는 법이다.
‘인질 역할이라.’
단번에 죽으면 죽었지, 인질이 되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적에게 목숨을 구걸할 바엔 죽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은 아니다.
‘바로 죽여 버릴 테니까.’
황위 계승에서도 밀린 황자를 굳이 타국의 인물이 죽일 리 없다.
죽인다면 불안 요소를 처리하려는 형제들의 짓일 터.
괜히 꼬리를 밟히면 귀찮아질 테니,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게 분명했다.
‘인질이라면.’
그렇기에 루테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질의 대사를 대충 말하였다.
“사람 살려.”
“…….”
영혼이 1도 담겨 있지 않은 외침에 르윈의 차가운 시선이 루테스에게 향하였다.
“이 새끼들이 나 죽인다!”
그 시선에 루테스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전하!”
그리고 루테스의 짜증이 닿은 것일까.
부장 트리오 중 감찰부장이 가장 먼저 튀어 나갔고.
“빌어먹을!”
그것을 보고 습격자들의 우두머리이자 베르크의 소드마스터, 베켄나가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 나갔다.
“이제 튀면 되겠다.”
그리고 앞뒤로 달려드는 강력한 기세의 두 세력을 보며, 르윈은 도주를 선택했다.
“나는 모른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루테스가 르윈의 손에 끌려갔고.
“진짜 내가 안 했는데!”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칸나 역시 루테스를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르윈 일행이 도주하는 속도보다 베켄나의 속도가 더 빨랐다.
소드마스터에 오른 이후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는 하지만, 소드마스터라는 이름이 어딜 간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도착하여 칸나의 목을 베려 했으나.
“어딜!”
제국의 감찰부장, 헤직스 또한 그에 뒤처지지 않는 실력자였다.
“나를 먼저 쓰러트려야 할걸!”
헤직스의 말에 베켄나는 확신했다.
‘호위가 맞는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왕세자가 제국의 황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멍청한 새끼!’
망나니 소리 듣는 1왕자도 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막다른 절벽에 몰렸다고 하더라도 제국을 끌어들이다니.
‘베르크는 망했다.’
제국을 끌어들인 순간, 왕세자가 살든 죽든 제국이 베르크에 간섭할 명분이 생기고 말았다.
“들이박아!”
제국의 내정 간섭을 받은 나라의 말로가 어떤지는 모르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조금씩 먹혀들어 가다, 정신을 차리니 제국에 편입이 된 국가가 한두 개인가?
베켄나의 검에 푸른색 마력이 압축되기 시작했다.
검강. 소드마스터의 상징.
‘빠르게 칸나 왕세자를 죽이고, 도망친다!’
어차피 제국군과 마주친 상황. 괜한 협상은 통하지 않는다.
다행인 점은 이곳이 제국 수도의 외곽이라는 점.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겠지만, 황제가 기거하는 수도보다는 쉬울 것이다.
“막아라, 헤직스!”
“나도 안다, 새끼야!”
그러나 베켄나의 검은 다시 한번 막히고 말았다.
심지어 그 대상 또한 같았다.
“소드마스터?”
제국에는 수많은 공무원이 있고, 부장급만 하더라도 자잘한 이를 다 포함하면 백이 넘는다.
그리고 그 많은 부장 중, 이곳에 모인 셋이 실세라고 평가받는 이유가 둘 있었다.
“몰랐냐? 하긴 내수용이라서 밖에는 안 유명하긴 하지.”
하나는 바로 외부가 아닌 내부에 검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
“이런, 미친!”
감찰이라는 것 자체가 외부가 아닌 내부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기에 소속된 이들이 외부에 유명하지 않고, 전투력 또한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은 베켄나 역시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감찰부와 재무부의 집중 공세를 받아 봤으니까.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소드마스터가 감찰부장 따위를 하고 있다고?”
아무리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인력 낭비가 심하다.
이 정도면 자신을 엿 먹이기 위해, 제국이 1왕자와 함께 오랫동안 준비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가 좀 잘난 나라라서.”
그런 베켄나의 반응에 헤직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부장급 인원에 소드마스터가 있을 정도로 인재가 넘치는 나라다.
“X나 잘나신 귀족분들 감찰하려면, 감찰부도 강해야 하거든!”
…같은 자랑은 아니었다.
애초에 인재가 많으면 자신들이 아직도 공직 생활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고 믿는 이들이 이곳에 모인 세 부장들이었다.
“누굴 놀리는 거냐!”
헤직스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베켄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고.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타국의 시선에선 농담처럼 들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헤직스 역시 이를 악물며 검을 휘둘렀다.
“큭!”
“권력을 휘두르는 검사에게 내가 질 것 같으냐!”
그리고 공방이 이어질수록, 헤직스가 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나태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베켄나는 수많은 전장을 경험해 본 베테랑이었고, 베켄나의 말처럼 헤직스는 검보다는 권력을 휘두르며 살아온 자다.
‘상식적으로 맞긴 하지.’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나, 제국의 공무원에게 무력시위를 하는 가문은 몇 없다.
진짜 걸리면 가문이 멸족되는 위기이거나, 아니면 감찰부를 들이박아도 멀쩡한 거대 가문이 아니고서야 누가 건들겠는가?
‘상식적으로는.’
그러나 현실은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었다.
적어도 감찰부장에게는 그러했다.
“미안하지만, 우리 제국이 많이 고였거든.”
“하?”
대부분은 그저 그런 가문이지만, 몇몇 남작가나 자작가 중에는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곳이 있다.
낮은 곳에서 제국을 섬기겠다고 주장하는 변태들.
감찰부장을 맡은 초창기, 헤직스는 그런 가문을 잘못 건드렸다가 호되게 당했다.
고작 남작이나, 자작가도 잘 알아보고 건드려야 할 정도로 고인 제국.
그 위인 백작이나 후작 가문은 어떻겠는가?
“소드마스터 감찰부장이 있어도 혼자서 버티기 힘들다고, 새끼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 말의 의미를 헤직스는 감찰부장이 되고 깨달았다.
개같이 고인 제국, 고인물 백이 없으면 알아서 뭉쳐야 했다.
“네놈은 검사로서의 자존심도 없는 것이냐!”
자신의 등을 향해 날아드는 검에 베켄나가 비난을 퍼부었다.
그 검의 주인이 헤직스가 아닌 탓이었다.
“아까 자기 입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검사라고 말했으면서. 말이 많네.”
그런 베켄나를 헤직스가 비웃었다.
“내가 그냥 검사로 보이냐? 난 공무원이거든.”
“주둥아리 놀릴 시간 있으면, 빨리 죽여라. 아저씨 힘들다고 난리다.”
“2팀장 붙었잖아.”
“몰랐냐? 2팀장, 재무부 팀장 라인 최약체다. 정보 특화야.”
“욕먹기 전에 끝내야겠네.”
투덜거리며 검을 회수한 이는 재무부장인 니하엘이었다.
그의 검에도 푸른빛 검강은 아니지만, 매우 짙은 푸른빛의 마력이 맺혀 있었다.
‘벽에 막힌 자.’
그 짙은 마력을 보며 베켄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언제든지 마스터라 불릴 수 있으나, 죽을 때까지 그 벽을 넘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경지.
소드마스터와는 단 한 끗 차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차이로 승패가 나누어지는 것이 검의 세계다.
벽에 막힌 자는 절대 소드마스터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소드마스터와 검을 맞댈 수준은 된다.
‘죽는다.’
그거면 충분하다.
상대가 둘 다 벽을 넘지 못했다면 모를까.
한 사람은 자신보다 실력이 낮을 뿐, 소드마스터다.
그것도 그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한 끗 차이 정도.
벽을 넘지 못한 자는 그 차이를 메꾸고도 남는다.
“제국은 자존심도 없나?”
“제국은 몰라도, 제국 공무원은 없어.”
“베르크 왕국은 공무원 복지가 좋나 보네. 거긴 공무원이 자존심도 따질 수 있나?”
피식 웃으며 도발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 두 사람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자존심 같은 건 버린 지 오래였다.
“여긴 공무원끼리 돕는 게 당연한 곳이라서.”
“약한 자들끼리 돕고 살아야지.”
제국의 수많은 부장 중, 이곳에 모인 셋이 실세라고 평가받는 이유.
그 두 번째는 매우 간단했다.
“억울하면 너도 친구 부르든가.”
“진짜 부르면 민폐지만.”
정보부, 재무부, 감찰부.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일을 하는 조직이자, 서로 비슷한 취급을 받는 부장들이었기에 일적으로 끈끈하게 이어진 사이였다.
즉, 셋이서 한 팀.
어떤 이들은 말한다.
세 부서가 손을 잡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정상 아니냐고.
그런 이들에게, 이들은 말했다.
그럼 자르라고.
그리고 이례적으로 황실이 직접 나서서 이 논란에 대해 말하였다.
세 부장은 제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노예, 아니 인재라고.
“원래 다굴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공무원의 필살기라고.”
“그리고 너 뒤에서 열심히 싸우는 우리 영감님 안 보이냐? 숫자는 자기들이 더 많으면서.”
“하.”
동네 양아치와 같은 말투지만, 둘의 주변에서 나오는 기세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왕국에 조용히 있을걸.”
괜히 1왕자의 편을 들었다.
그렇게 후회하면서도, 이미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깨달은 베켄나는 조용히 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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