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n Extra RAW novel - Chapter (98)
98화 21. 인생 10회 차는 황성에 간다 (2)
대륙의 역사를 통틀어, 제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한 시대에 하나의 나라만이 제국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것을 모든 나라가 인정을 하는 것은 물론 교단의 승인도 받아야 했다.
그렇기에 새로운 제국이 생기기 위해서는 이전에 존재했던 제국을 쓰러트리고, 압도적인 군사력은 물론 경제, 문화, 외교력 등을 보여 주어야 했다.
그리고 현재 바벨리안이라는 제국은 그 조건을 모두 충족한 것은 물론, 역대 그 어느 제국도 이루어 내지 못한 성과 또한 보여 주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아카데미 시스템.
이전에도 있었던 것이지만, 제국은 아카데미를 집중적으로 키웠고 발전시켰으며 더 나아가 황실 아카데미를 설립하면서 대륙 교육의 중심이 되리라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황실 아카데미는 대륙 최고의 교육 기관이 되었고, 세계 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덕분에 제국에 볼모로 잡혀간 이들을 황실 아카데미에서 교육한다는 사실에 더 뛰어난 자식을 볼모로 보내기도 하고, 그것을 ‘볼모 특채’라 부르며 황실 아카데미의 공정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겼을 정도다.
결국, 황실에서 먼 타국으로 온 손님들에게 그 정도 대우를 해 주는 건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일단락되었던 사건이지만.
덕분에 공식적으로 볼모 특채가 허용되었기에 많은 나라에서 자발적으로 볼모를 보내는 웃기지도 않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그렇기에 황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자존심이 강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대륙 최고의 교육 기관에 입학했다는 자신감.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다.
수도 5대 아카데미 중 한 곳에서 1등을 하느니, 차라리 황실 아카데미에서 꼴등을 하는 게 낫다는 말이 황실 아카데미의 학생들 사이에 퍼져 있을 정도.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수도 5대 아카데미를 폄하하는 발언으로 보일 것이고, 수도 5대 아카데미 당사자들도 그렇게 느끼겠지만, 놀랍게도 황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그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정말로 순수하게, 황실 아카데미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존심과 자존감으로 똘똘 뭉쳤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그만한 실력을 보여 주는 황실 아카데미의 학생들조차 우러러보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자존심과 자존감이 가득한 학생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대표였으니까.
황실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존재!
덕분에 간혹 일을 못하는 이들이 탄핵을 당하는 일도 종종 일어났으나, 최근에는 그런 조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역대 학생회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는 이.
황실 아카데미의 최연소 학생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그 이후에도 계속 학생회장을 연임한 라테일 디 드라이르프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리고 자존심 강한 황실 아카데미 학생들의 존경과 경의를 한 몸에 받는 라테일은.
“내년 총학생회장은 너다.”
“꺼져.”
여동생에게 차기 총학생회장 자리를 넘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많이 했다.”
진심을 가득 담은 말이었지만, 드라이르프 가문의 장녀인 르나인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응, 어림도 없어. 임기 꽉 채우고 졸업하세요. 그리고 총학생회장 자리는 둘째 오빠 주고.”
총학생회장.
그 자리는 절대 가볍지 않다.
기초 교육, 중등 교육, 고등 교육이라는 아카데미 교육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각각의 학생회를 모두 통솔하는 자리가 바로 총학생회장과 그 수족들이었기 때문이다.
학생 신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권력이 주어지지만, 동시에 그만한 업무량도 추가된다.
그리고 그 업무량을 경험한 이들은 말한다.
‘권력을 줘도 쓸 시간이 없다!’
권력이 1이라면, 그 1을 위한 업무량이 10 정도 되는 느낌.
이제 좀 권력을 휘두르려 하면 졸업이 눈앞이라는 소리가 마냥 장난만은 아니었다.
“내가 총학생회장 되면, 너는 고등 교육 회장인 거 알지?”
드라이르프 가문의 둘째, 라그일의 말에 르나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개소리하지 마. 난 중등 교육 끝나면 바로 은퇴할 거야.”
어림없는 소리라는 것을 르나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짜 싫은걸.’
일하는 것을 즐기는 변태는 세상에 얼마 없다.
그나마도 제국이 눈치채고 다 공무원으로 끌고 가서 일반인 눈에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빠들한테 속아 넘어가서 고생만 했는데, 이제 그냥 좀 놔줘.”
르나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학생회장으로서의 권력?
어차피 가문의 이름이 드라이르프다.
베르샤 아카데미처럼 막 나갈 수는 없겠지만, 가만히 있어도 학생회 임원 정도의 권력은 된다.
“속인 적 없다.”
“솔직히 르윈이 우리 아카데미로 안 올 줄 누가 알았겠냐.”
곧 입학을 할 르윈을 위해서라도 더 좋은 아카데미를 만들어 놓자.
그리고 르윈이 왔을 때, 학생회로서 학생들의 신뢰와 동경을 받고 있으면 얼마나 멋있겠는가!
“그딴 말로 꼬신 건 사실이잖아.”
그 말에 넘어가 학생회 임원 선거에 참여한 것이 문제였다.
드라이르프라는 이름, 이미 임원으로서 활약하는 오빠들의 존재, 그리고 그동안 제법 잘 살았던 인생 덕분에 르나인은 쉽게 학생회 임원이 되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중등 교육의 학생회장이 되어 있었다.
“속은 게 잘못이지.”
“이제는 변명도 안 하겠다?”
라그일의 한마디에 르나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를 노려보았다.
저 망할 오빠의 주둥아리에 속아, 방학에 집에도 잘 가지 못했다.
“옛날에는 사랑하는 동생에게 못해 줄 것이 없다더니.”
한때 드라이르프 가문의 막내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르나인이었다.
“그때의 라그일은 좀 역했지.”
“형은 다른 줄 알고?”
라테일과 라그일 역시, 그 과거를 인정하고 있었다.
“막내 성애자들. 르윈이도 새로운 막내가 태어나면 가차 없이 버리겠지.”
여동생의 한마디에 라테일과 라그일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한 프레임 씌우지 마라.”
“맞다. 막내가 아니라서 버린 게 아니라, 르나인 너라서 버린 거다.”
“귀여운 구석이 있어야지.”
“옛날에는 오빠, 오빠 하면서 잘 따르더니, 이제는 안 그러잖아?”
“오빠, 오빠 하면서 따르면, 어이쿠 우리 동생! 하면서 학생회장 자리 떠넘길 생각만 가득한 인간들이.”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리며 르나인이 이를 갈았다.
인생에 몇 없는 흑역사를 꺼내다니.
이 정도면 선전포고가 아닐까.
‘총학생회장 하라는 소리면, 선전포고가 맞지.’
아주 합리적인 판단 결과, 오빠 놈들의 선전포고를 받아들이려는 그 순간이었다.
“회장,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라.”
노크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매는 평소처럼 휴전을 진행했다.
“무슨 일이지?”
차가운 목소리에 여학생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고작 말 한마디에 사람을 이렇게 얼어붙을 수 있게 만들다니.
‘역시 냉혈의 라테일 님.’
목소리만으로 자신의 카리스마를 보여 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가까이에서 존경하는 총학생회장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 여학생이 몸을 작게 떨었고.
“일하러 온 것뿐인데, 사과할 필요가 있겠어?”
형 때문에 떨잖아.
그렇게 라테일에게 핀잔을 주는 라그일의 모습에 여학생은 다시 한번 감동을 했다.
‘역시 열혈의 라그일 님.’
황실 아카데미, 고등 교육 학생회장으로서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일의 선봉장 역할을 맡은 이다웠다.
늘 냉정한 라테일과 달리, 열정적으로 일을 몰아붙이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그를 따르고 있는 상황.
사실 그냥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을 뿐인 라그일이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슨 일이죠?”
“네, 네. 르나인 님.”
“저보다 선배시잖아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네, 네! 아니, 응.”
마지막으로 자신을 향해 방긋 웃어 주는 자애의 르나인을 보며 여학생은 생각했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대륙의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황실 아카데미에서도, 학생들의 아이돌적인 존재들.
그들이 한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리는데, 말까지 나누는 영광을 얻다니.
‘다 이 편지 덕분이야.’
그녀는 자신의 품속에 있는 편지에 감사하며, 그 편지를 르나인에게 넘겨주었다.
“마탑에서 온 연락인데, 총학생회장님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받았습니다.”
“마탑에서?”
베르샤 아카데미에 황탑이 있듯, 황실 아카데미 근처에도 하나의 마탑이 존재한다.
백탑.
제국 수도, 바벨리안에 있는 마탑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탑이며 동시에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마탑인 백탑은 황실 아카데미와 비교해도 그 명성이 뒤처지지 않을 정도인 곳이었다.
“업무 협약인가?”
바로 근처에 있는 만큼 황실 아카데미와 백탑은 많은 일들을 연계를 하고 있었고, 이렇게 가끔 편지가 오는 경우가 존재하기는 했다.
‘이 기간에?’
그러나 오랜 기간 총학생회장을 맡은 라테일은 수상함을 느꼈다.
“수고했다.”
“네, 네!”
편지를 가져다준 여학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그녀를 돌려보내었다.
“아마 나한테 온 편지일 거다.”
“그렇겠지.”
무덤덤하게 편지를 넘기라는 손짓에 르나인은 피식 웃으며 편지에 마력을 담아 보내었다.
그리고 느릿하게 날아오는 편지를 지켜보던 라테일은 손이 닿는 거리에 편지가 도착할 때쯤 손을 뻗었고.
“르나인!”
그것이 마력으로 만들어진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여동생을 노려보았다.
“맨날 속으니까, 내가 호구인 줄 알아?”
손은 눈보다 빠르다.
그것을 증명하듯, 편지를 날려 보내기 위해 마력을 사용하는 척 환상 편지를 만들고, 거기에 시선이 간 틈을 노려 몰래 편지를 빼돌린 르나인은 이미 뜯긴 편지 봉투를 라테일에게 집어 던지며 말하였다.
“아카데미 모임에서 베르샤 총학생회장한테 부탁해서 르윈이한테 연락을 보낸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그걸 어떻게?”
“나도 다 심어 둔 사람이 있다 이거야!”
생각지도 못한 여동생의 난에 냉혈이라고까지 불리는 장남의 가면이 깨지고 말았다.
“내놔라.”
“그런다고 줄 것 같아?”
그런 오빠의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르나인은 빠르게 편지의 내용을 읽어 나갔고.
“맞네. 르윈이가 보낸 거.”
그것이 귀여운 동생의 필체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야!”
“나도 좀 읽자.”
둘째인 라그일의 손에 편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내 거야!”
“원래 네 것 아니잖아.”
빠르게 손을 휘저어 편지를 되찾으려는 르나인이었지만, 이미 뛰어난 검사로 평가받는 라그일의 신체 능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래, 그 편지는 내 것이다.”
“동생들한테 막내 소식도 숨긴 못난 장남은 입 다물고 있고.”
“큭.”
가차 없는 라그일의 말에 라테일이 이를 갈았고.
“르윈이가 곧 온다고 한 명만 마중 나와 달라는데?”
못난 장남과 달리, 자신은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듯 라그일은 다 읽은 편지의 내용을 모두에게 공유했다.
“내가 가지.”
가장 먼저 대답을 한 이는 역시 장남인 라테일이었다.
“작년도 고등 교육 검술전, 중등 교육 마법전 우승자인 너희는 곧 시작되는 대회에 참관을 해야 한다.”
여러 이유를 들어 대회에 불참하였지만, 마지막 시상식에 전 대회 우승자가 트로피를 건네주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고 제법 괜찮은 의견이라 통과가 되었기에 합당한 의견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그거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거잖아.”
“맞지. 교수라든가, 아니면 모든 학생분이 좋아하는 총학생회장님이라든가.”
그러나 두 사람이 인정할 리는 없었다.
애초에 우승자가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 가능한 이벤트성 시상식이었기에 딱히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보다는 총학생회장님이 더 바쁘시지 않나?”
“맞지. 우리가 일하면, 첫째 오빠는 같이 일해야 하니까.”
중등 교육, 고등 교육은 물론 기초 교육의 학생회를 총괄하는 곳이 총학생회다.
“총학생회장님 아웃.”
“나도 인정.”
이럴 때만 죽이 척척 맞는 동생들의 모습에 라테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럼.”
한숨을 내쉬는 라테일의 오른손에 검이 들려 있었고, 왼손에는 마력이 깃들기 시작했고.
“이긴 사람이 간다.”
“그게 맞지.”
“둘째 오빠, 일단 동맹?”
“콜.”
결국, 평소대로 남매 싸움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