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S공금]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화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국제적으로도 손꼽히는 명문인 한국 대학교 합격통지서를 확인한 날 밤.
그 날은 뭔가 많이 이상했다.
‘여긴 어디지?’
평생 누워 있던 병실과는 풍경이 너무 달랐다.
황금색 샹들리에가 보였고 벽면은 상아색 대리석이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향기도 늘 맡던 병실 냄새랑은 많이 달랐다.
‘의사 선생님들은? 간호사 선생님들은?’
저기요?
말을 해보려고 했는데…….
“으아아아앙!”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 뭐야? 몰카야?’
두 눈을 끔뻑거려 보았다.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끙차, 끙차.
힘을 주어 손을 올려보았다. 팔이 무척이나 짧았다.
“으아아아앙!”
내 목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울음을 토해내는 중이었고, 간신히 시선을 옆으로 돌려 내 짧디짧은 팔을 바라보았다.
오동통한 소시지 같았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 딸입니다!”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저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자마자 저절로 해석이 되었다.
마치 내 모국어처럼.
“화, 황녀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와, 나 이 세계에 환생했나 봐.
‘아니면, 혹시 빙의?’
나는 산파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런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빌로티안 황가에서 여아라니…….”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를 낳은 것이 전혀 기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꽤 기뻤다.
‘어! 빌로티안! 나, 이거, 알아.’
빌로티안은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황가의 이름이었다.
본신의 무력을 숭상하며 오로지 강함만이 그 가치를 증명하는 특이한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자식들을 자식이 아니라 후계자 후보로만 생각하는 무정한 혈족이며, 500년간 남자아이만 태어났던 가문이기도 했다.
‘여기에 황녀 이사벨이 태어나지. 그게 나인가 보네?’
빌로티안 황가의 검술은 남자의 마력 회로에 맞도록 설계되어 발전되어 왔다.
다시 말해 여자는 빌로티안의 검술을 익힐 수 없다는 뜻이다.
강함이 전부인 빌로티안에서 여아로 태어났다는 건, 여아에게는 저주였다.
‘당황하는 산파에 흐느끼는 어머니. 빌로티안 황가. 500년 만에 처음 태어난 황녀. 내 이름은 이사벨이라고요?’
내가 깨어난 이곳은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이라는 소설 속이 틀림없었다.
정주행만 17번을 넘게 했다.
어지간한 등장인물들은 다 꿰고 있고 설정과 줄거리도 다 외우고 있다.
나는 평생을 병상에 누워 있었고, 취미는 수학 문제 푸는 거랑 소설을 읽는 거밖에 없었으니까.
‘세상에나, 마상에나. 빙의인가 보다.’
사실 빙의보다는 꿈이라고 믿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빙의가 더 좋으므로 빙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애애앵!”
울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기뻤다.
거짓말이 아니라 난 빙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한국보다 여기가 훨씬 낫지.’
한국에서의 나는 고아였다.
내 친아빠란 작자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야반도주했고, 엄마도 얼마 후에 나를 버리고 도망쳤다.
둘 다 얼굴도 모른다.
그리고 4살이 되었을 때 소아암에 걸려 투병을 시작했다.
나는 비운의 아이로 매스컴에 종종 소개되었다.
이름 모를 많은 사람의 후원 덕분에, 병원에서 쫓겨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공부 머리는 꽤 있었다.
[병실에서 이루어낸 기적!] [기적의 아이, 한국대에 합격하다.]내 대학 합격 소식은 뉴스에서도 방영될 정도였다.
수많은 사람이 축하해 주고 치켜세워줬다.
감사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곧 죽을 건데 뭐.’
나는 죽음을 확실히 예감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차라리 빨리 죽어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와, 동네 사람들, 저 몸이 하나도 안 아파요!’
우렁차게 울고 있는데도 아프지가 않았다.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이 느껴져야 정상인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내가 이사벨에 빙의한 거라면, 21세에 죽겠네?’
이사벨은 태어나면서부터 시한부였다.
소설 속 설정인 ‘나르비달의 낙인’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르비달의 낙인은 손목에 새겨진 모래시계 형상의 문양이었다.
살아가는 내내 작은 모래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이 모래가 모두 떨어지면 죽음을 맞이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저주였다.
아무렴 어때. 지금은 하나도 안 아프다.
적어도 21살까지는 아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어차피 오늘내일하던 내게 21년의 삶이 더해진 셈이었다.
‘개이득이네!’
시한부이기는 하지만 무척 건강하고 예쁜 이사벨에 빙의했다.
‘와, 나 그럼 쿠키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겠네?’
평생 병원 밥밖에 못 먹었다.
그 흔한 콜라도 못 먹어봤다.
딱 반 모금 입에 넣어본 적이 있었는데, 간호사 선생님께 엄청 혼났다.
‘이 세상에 콜라도 있을까?’
본의 아니게, 나는 먹을 것에 꽤 진심인 편이 되어버렸다.
‘떡볶이는 없겠지?’
그건 한국 음식이니까 아마 없을 것 같다.
레시피는 알고 있는데, 아니, 이 상황에 무슨 떡볶이 타령이람.
……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의 물꼬는 닫히지 않았다.
‘호, 혹시 죽기 전에 술도 먹어볼 수 있어?’
얼마나 맛있으면 그거에 중독되고 그럴까.
좀 쓰다던데, 애들 못 먹게 하려는 거짓말이겠지?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먹어보고 싶다.
약간 어른 같고 그런 거 있잖아. 멋들어진 야경 보면서 와인 한잔 딱!
망상이긴 했지만 그게 내 소원이라면 소원이었다.
수우우우우울!
그렇게 소리쳤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냥 ‘으아앙!’ 하는 울음소리였다.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모없는 것이 태어났군.”
소설 속과 똑같았다.
「“쓸모없는 것이 태어났군.”」
「그는 감정 없는 눈동자로 새로 태어난 여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부정(父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눈동자를 또르르 굴려 불쑥 나타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본능적으로 외치고 말았다.
“으아어(잘생겼어)!”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정말 놀랐다.
저렇게 잘생긴 생명체는 처음 봤다.
소설 속 표현이 딱 맞았다.
「모든 이가 그를 일컬어 미인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감정 없는 인형이라 불렸지만 수많은 영애가 그 때문에 상사병을 앓았다.」
검은색 머리카락은 짧은 편이었고 눈썹과 눈매는 무척 날카로웠다.
눈빛이 굉장히 사나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저 남자는, 내 아버지인 론이 분명했다.
‘헤헤.’
나는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자마자 내 빈약한 상상력에 통탄하고 말았다.
‘제 상상보다 훨씬 더 잘생기셨네요.’
어찌나 잘생겼는지, 신생아인 내가 울음을 멈출 정도였다.
‘우와, 눈빛 살벌하셔요, 그마저도 잘생기셨고요.’
내게 저렇게 구는 건 이 세계관에선 너무 당연한 거였다.
론은 아내만큼은 매우 사랑하지만 자식을 자식으로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나는 그리 겁먹지 않았다.
소설 속, 시한부 인생을 갖게 된 이사벨은 어마어마한 악녀로 성장하게 된다.
‘온갖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다가 결국 21세에 자연사.’
참고로 덧붙이자면 이 철혈의 황가도 내가 죽는 날 멸망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 데려와서 무지막지하게 괴롭힌 남주가 각성하여 돌아와 빌로티안을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이었다.
‘어쨌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황가는 내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는 뜻!’
그러니까 쫄 필요 없다.
아버지가 내게서 몸을 돌렸다.
나한테는 단 한 움큼의 애정 어린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금 슬프기는 했지만 소설을 여러 번 읽은 독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었다.
‘그럼 이쯤에서 내 시한부 판정이 내려지겠지.’
그때, 내 손목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산파가 입을 열었다.
“폐하! 나르비달의 낙인이 있습니다.”
이 문신을 타고난 아이는 21세에 모두 죽는다.
‘그럼 이제 아버지는 관심 없다며 문을 닫고 나가겠지?’
차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관심 없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은 딱히 나쁘지 않았다.
‘21년.’
21년의 삶이 공짜로 더 주어졌다.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아가…….”
엄마는 내게 사과할 거다.
너를 낳아서 미안하다고.
“너를 낳아서 미안하구나.”
“우애애앵!”
아뇨, 나 진짜 완전 괜찮아요.
말해주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꼭 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비록 검술은 익힐 수 없겠지만요.’
제가 그래도 머리는 제법 똑똑한 편이거든요.
근데 미래를 좀 정확히 알아요. 세계관 최강자 후보들도 알고요.
‘이 세상엔 가상화폐 비슷한 것도 있답니다.’
명칭은 달랐지만 코인 비슷한 것도 존재하는 세상이다.
10년쯤 뒤에는 가격이 수십만 배 오른다.
심지어 난 그 코인의 창시자 나르모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뿐더러, 미래의 유망한 마법사들, 마도 공학자들, 사업가들의 이름까지도 알고 있다.
잘 생각해 보면 멸망 플래그를 피할 방법들도 꽤 있을 것 같았다.
‘우와, 21년을 보람차게 살아갈 방법이 못해도 열 개는 넘을 것 같아.’
끙차, 끙차.
몸을 꿈틀거려 보았다.
‘역시 판타지네.’
신생아가 의지대로 몸을 일으키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라고 하기엔 빙의도 하고, 말도 죄다 알아들으니, 그렇게 놀라울 일은 아니지만.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빌로티안 황가의 육체를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열심히 움직여 보았다.
산파는 내 갸륵한 정성을 알아봐 주었다.
“황후마마께 가고 싶은 모양입니다.”
산파가 나를 안아 주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꽤 재미있었다.
‘아기의 몸이 되니 별게 다 즐겁네.’
나는 엄마인 세르나 옆에 눕게 되었다.
끙차, 끙차.
나는 애벌레처럼 꿈틀거려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엄마의 체온이었다.
세르나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따뜻하고 졸려.’
신생아의 몸은 많은 잠을 필요로 한다. 결국 나는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의 검지를 꼭 붙잡고서.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