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0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00화
아침에 나를 찾아온 사람은 유리 언니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황녀님.”
유리 언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 침대를 정리해 주었다.
“지금 씻으실 건가요?”
“응.”
유리 언니는 이제 프로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나를 잘 케어해 주었다.
“오늘은 제가 꼭 감겨드릴게요. 앉아보세요.”
“……알겠어.”
유리 언니는 내 머리를 감겨주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익숙하게 거품을 내어 손가락으로 꾹꾹 내 머리를 눌러주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부담스러웠다.
내 세수는 내가 하면 그만이고, 머리 감는 것도 내가 하는 게 더 편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었다.
여전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유리 언니의 두피 마사지에 중독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유리 언니는 언제부터인가 물의 정령을 다루기 시작했다.
“도와줘, 방울.”
유리 언니가 다루는 하급 정령의 이름은 방울이.
물방울에서 따와서 방울이란다.
방울이는 아주 작은 요정 같은 생김새였다.
방울이가 내 머리를 한차례 휘감자 거품이 씻겨 내려갔다.
신기한 건 내 몸에는 하나도 안 튄다는 것이었다.
‘기분이 정말 좋다.’
나는 이제 이 신문명(?)에 익숙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머리가 깨끗해진다.
더 놀라운 사실은 머리를 따로 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물 자체가 정령수여서 정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없애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뽀송뽀송해졌어.”
“여기 앉으세요. 머리 빗겨드릴게요.”
“응.”
유리 언니는 내 머리를 빗겨주는 시간을 꽤 좋아했다.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했는데, 내가 황녀라서 그런 말을 해주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건지 아직 확실히는 알 수 없었다.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거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루루카 유모님의 솜씨에는 미치지 못하죠?”
“아니야. 유리도 실력이 무척 늘었어. 늘 고맙게 생각해.”
“뭘요. 제가 해야 할 일인 걸요.”
슥- 슥-
약간 인형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다 됐어요.”
유리 언니는 내 옷매무시도 가다듬어 주었다.
내 드레스에 약간의 얼룩이 있었는데, 그건 방울이가 해결해 주었다.
“옷에서 좋은 냄새가 나네?”
“히아민 잎새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냄새인데, 마음에 드세요?”
“응. 엄청 마음에 들어.”
뭐랄까. 촉촉한 숲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히아민 잎새의 향료로만 냄새를 추출한 건 아니지?”
“맞아요.”
나는 냄새를 킁킁 맡아보았다.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냄새만으로 모든 걸 알아낼 수는 없었다.
내가 궁금해하자 유리 언니가 입을 열어 흥미로운 얘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히아민 잎새에 파라곤틸 정제수를 섞은 다음, 베르커 추출법을 이용했어요. 섭씨 140도에서 기화되는 기체를 포집하여…… 다시 증류하고…… 해서…… 했답니다. 또한 앙플뢰라주 방식을 통하여…….”
“우와! 그렇게 해서 용매는 모두 날려 버리고 오일만을 추출해서 합성했다는 거지?”
“맞아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유리 언니와 손뼉을 마주쳤다.
짝! 소리가 났다.
마음이 통한 기분이었다.
‘이런 게 대화지!’
재미없는 레이나와의 대화보다 훨씬 더 유익하고 즐거운 얘기들이 오고 갔다.
그런데 내 옆에서 크흠, 하는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비아톤 선생님? 언제 오셨어요?”
“아까 왔습니다. 직접 들어오라고 말씀도 하셨잖아요.”
“제가요?”
기억나지 않았다. 유리 언니와 대화에 집중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그런 유의 얘기가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네. 선생님은 재미없어요?”
“……음, 재미있습니다.”
“거짓말. 딱 봐도 재미없는 표정인걸요.”
“티 났습니까?”
“네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재미없다는 게 신기하기는 했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취향이라는 게 있고 나는 취존을 할 줄 아는 어린이니까.
“그렇지만 이제 재미있어 보려 합니다.”
“……네? 그게 돼요?”
“되지요.”
그게 진짜 될까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같은 관심사로 즐겁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더 생기면 좋은 거니까!
“그런데 황녀님. 아무래도 여유시간이 좀 생길 것 같습니다.”
“왜요?”
“지르델 국왕이 복귀하던 중에 문제가 생겼거든요.”
“무, 문제요?”
“네. 기존에 이용하던 이동 관문이 하필이면 이때 망가져 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육로를 통해 돌아오게 되었는데 예정보다 3일에서 4일 정도 더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묘하게 비아톤 선생님의 표정이 수상했다.
“……하필이면 이때 고장이 났다구요?”
“그러게요. 하필이면 이때 고장이 나버렸네요. 하하하! 테이사벨 이동 관문처럼 훨씬 더 효율적인 기술을 사용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요. 그렇죠? 하하하!”
“……혹시 아빠, 아니, 마부님이랑 따로 움직인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테이사벨 이동 관문의 중요성을 한차례 또 깨닫는 계기가 되겠네요. 하하!”
비아톤 선생님의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그…… 우연히 고장 난 게 맞는 거죠?”
“당연하죠! 아주 우연히 고장 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늘이 우릴 돕는 모양입니다, 이 정도면 필연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
어쩐지 평소보다 말이 훨씬 많은 비아톤 선생님이었다.
* * *
3일의 여유가 생긴 탓에 나는 미하엘 오빠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우리의 목적지는 3황자 카만이 훈련하고 있는 베이스캠프였다.
미하엘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과묵한 상태.
“긴장해서 그래요?”
“긴장? 내가? 내가 긴장을 했다고?”
미하엘 오빠는 으하하핫! 하고 크게 웃었는데 딱 봐도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엄청.
“그렇게 긴장되면 카만 오라버니와 결투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긴장 같은 건 전혀 되지 않아. 나는 오늘 그 악마를 무찌를 생각이거든.”
“……악마요?”
“그래. 그 형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거든.”
내가 알고 있는 3황자 카만은 그런 사람은 아닌데. 내가 아는 카만은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인데……?
“꼭 싸워야 해요?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어요?”
“무슨 소리야? 나랑 형은 사이가 무척 좋아.”
“방금 악마라면서요?”
“그건 칭찬이잖아?”
그게 어떻게 칭찬이냐!
순간 따지고 싶었지만 따질 수 없었다.
아마 ‘피도 눈물도 없이 강단 있고 아주 강한 형이야!’라는 칭찬이었던 것 같다.
“싸울 거라면서요?”
“그게 친한 거지?”
“그게 친한 거라고요?”
“내가 살아 있잖아?”
많이 싸웠다. → 그런데 살아 있다. → 안 친했으면 죽였(었)을 텐데. → 즉 우리는 친하다. → 우리는 사이가 좋다.
……라는 논리였다.
미하엘은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를 관두었다.
‘그래. 저 오빠가 언제부터 상식적인 오빠였다고.’
어쨌든 미하엘도 긴장이 꽤 풀린 모양이었다.
우리는 베이스캠프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제복을 차려입은 두 명의 기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와……!’
기사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오고 말았다.
저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길에 챌 만큼 많은 걸 보면, 역시 이곳은 이세계가 틀림없었다.
그냥 입구에 서 있을 뿐인데 저것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오빠는 입구를 통해 당당히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곳은 외부인 출입 금지입니다.”
“나 외부인 아니야. 황자 미하엘이야. 나 몰라?”
“압니다. 그래도 외부인은 외부인입니다. 출입증 가지고 계십니까?”
“없지!”
“그럼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우리 저번에 초콜릿도 나눠 먹었잖아.”
“제 입에 억지로 쑤셔 넣으셨지 않습니까?”
“나 여기 100번도 넘게 왔다 갔다 했어.”
“그중 16번, 제가 보초를 설 때 뚫고 지나가셨죠. 덕분에 16번 경위서 썼습니다.”
16번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에…….’
딱 봐도 저 기사님은 오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싫어하는 편인 것 같았다.
기사님의 표정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번에는 결코 뚫리지 않으리라!
“이번에는 검을 뽑아서라도 막을 겁니다, 황자님.”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미하엘은 오늘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일의 전후 사정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검을 뽑으면 냅다 좋아하고 보는 것이 미하엘이었다.
“오빠. 제국을 위해 헌신하고 계신 기사님을 곤란하게 만들면 못 써요.”
“우리는 친목을 다지려는 건데?”
어느새 검을 뽑아 든 오빠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즐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내가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살짝 숙였다.
“제국의 방패, 귀하의 헌신에 감사를 표합니다.”
제국의 기사를 대하는 공식적인 인사법이었다.
사실 이렇게 다가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기사님은 상당히 상식적으로 대답하며 내게 경례했다.
“황실의 봄에 경의를.”
또 봄이라네. 이제 겨울 초입인데.
내가 아직 모르는 제국 언어가 있는 건가?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정상적으로 출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 들려왔다.
“황녀님께서는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네?”
기사님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 저게 뭐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