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0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02화
미하엘은 영 이상한 포인트에서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그, 그야…….”
내가 설레는 게 왜 기분이 나쁜 건지 잘 이해가 안 됐다.
“형이 나보다 세서 그래?”
“…….”
이제 알 수 있었다.
미하엘은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무슨!”
미하엘의 코에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콧바람이 흰색이었는데,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콧바람이 눈에 보인다니…….
‘저게 되네?’
맨날 느끼는 건데, 미하엘은 ‘저게 되네’의 의인화였다.
미하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에는 내가 이길 거야. 두고 보라고.”
미하엘은 전의를 불태웠다.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미하엘은 오늘도 패배했다.
미하엘은 씩씩대면서 목검을 들어 올렸지만 이내 풀썩! 하고 쓰러졌다.
기력이 쇠해 쓰러지고 만 것이다.
“오, 오빠!”
나는 깜짝 놀라 미하엘에게 달려갔다.
“드르렁- 쿨-”
미하엘은 엉망진창이 된 상태로 깊이 잠든 상태였다.
‘이게 된다고……?’
방금까지 젖 먹던 힘을 다해 치열하게 싸우다가 갑자기 이렇게 잠에 빠져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익숙한 듯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고?
황자가 지쳐 쓰러졌는데?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것에 일일이 다 놀라면 심장이 다친다.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3황자 카만 오빠를 바라보았다.
‘미하엘은 아직도 꼬맹이 같은데…….’
내 마음속에서 미하엘은 늘 그냥 미하엘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 같은 느낌은 없었다.
빌로티안의 육체는 남들보다 훨씬 빨리 성장한다.
그런데 미하엘은 12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살 꼬맹이 같은 모습이었다.
이 자체가 불가사의여서 황궁의 학사들도 연구하고 있다나 뭐라나.
그렇지만 카만은 달랐다.
‘와……!’
눈이 부셨다.
현재 나이는 15살일 텐데, 8살의 육체를 가진 내가 보기에는 완전히 어른 같았다.
선택식 때 봤었던 비교적 어린 모습의 카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진짜로 눈이 부시네.’
짧게 다듬은 은발 머리가 햇빛과 부딪쳐 반짝거렸다.
저게 3황자 카만 오빠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물결처럼 고운 은발.
아주 진부한 표현이기는 한데, 잔잔한 호수 같은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다섯 살치고 상당히 권태로운 표정이었으나 그 모습마저 우수에 가득 찬 방랑 시인 같은 느낌이었다.
여덟 살의 육체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또 진심을 토해내고 말았다.
“진짜 잘생겼어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입을 틀어막았다.
으악, 주책이지. 어린이 페널티가 왜 여기서 튀어나오고 난리람.
다행히 오빠는 내 말을 못 들은 모양이었다.
“…….”
카만 오빠는 미하엘과는 성격이 정반대였다.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는 타입이었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려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안 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
“오라버니!”
“…….”
카만 오빠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힐끗 쳐다보았다.
미안하지만 나는 미하엘을 그냥 내버려 둔 뒤, 카만 오빠 쪽으로 도도도 달려갔다.
“저를 기억하세요? 제 이름은 이사벨이고요. 오라버니의 동생이에요.”
“…….”
그런 당연한 얘기를 뭐 하러 하느냐는 표정이 나를 반겨주었다.
얼굴에는 나른함과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용건은?”
“제대로 인사를 못 해서 인사를 하고 싶어요.”
카만 오빠는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너와 내가 인사를 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그야,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하지만 카만 오빠의 표정에는 딱히 변화가 없었다.
저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확실히 아빠랑 닮은 구석이 있었다.
뜬금없기는 한데, 갑자기 아빠 보고 싶네.
“…….”
카만 오빠는 괜한 시간 낭비를 했다는 듯 또 몸을 돌려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인사는 했다.’
뭔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에서 거의 최고로 짠하게 생각했던 캐릭터가 바로 3황자 카만이었다.
분량은 엄청 적지만, 그 적은 등장만으로도 상당한 임팩트를 남겼던 캐릭터.
‘카만이 나오면 나도 울었었는데.’
그 캐릭터를 눈앞에서 만나자 빙의를 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체감되었다.
내가 손나팔을 만들어 크게 말했다.
“이따가 오빠 막사에 찾아갈게요! 같이 저녁 먹어요!”
* * *
10년 전.
5살의 카만은 자신의 일기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빌로티안 황가의 자제들은 보통 성장이 빨랐는데 카만은 그보다 더 빨랐다.
특히 정신적인 성숙이 빠른 편이어서 또래의 아이들보다 사고의 깊이가 훨씬 깊고, 사용하는 어휘가 상당히 풍부했다.
[내게 가족이 그러했다.]5살의 카만은 일기장을 모두 불태웠다.
재가 되어 사라지는 일기장을 담담한 눈으로 지켜보며, 자신의 감정을 모두 외면하기로 했다.
‘내가 빌로티안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옳은 길이다.’
카만이 꿈꾸는 세상은 이곳에 없었다.
빌로티안 황가는 카만이 꿈꾸는,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자식은 철저히 후계를 위한 도구였고, 황가는 빌로티안의 번영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자신을 가족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어머니인 세르나가 유일했다.
그러나 세르나는 지나치게 바빴다.
당시 미로텔 마법 연방과 상당한 무역 갈등이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7왕 중 네 명이 얽혀 있을 정도로 이권 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세르나는 황궁에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훨씬 많았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었고, 카만과 시간을 보내줄 수 없었다.
조숙했던 카만은 어머니의 사정을 완전히 이해했으나, 이해와는 별개로 점점 더 외로워졌다.
아주 가끔이지만 어머니와의 시간은 너무 달콤했었으니까.
그 행복함은 너무 짧은 신기루 같은 것이어서, 오히려 카만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
이후, 카만은 검술에만 몰두하여 빠른 성취를 이루어내기 시작했다.
꽉 막힌 규범과 규율 아래에 자신을 밀어 넣고, 기계처럼 검술만을 연마했다.
그가 검술을 연마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것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10년이 흘러 오늘이 되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어린애가 하나 나타났다.
‘그야,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황족에게 있어 ‘가족’만큼 무의미한 단어가 있는가.
저 어린애는 아직 세상 경험이 너무 없는 모양이었다.
그 어린애는 쓸모없는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이따가 오빠 막사에 찾아갈게요! 같이 저녁 먹어요!’
* * *
내가 기억하기로 카만은 작품 속에 딱 세 번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 번은 몇 년 동안 써왔던 일기장을 불태워 버리면서 펑펑 울었던 장면.
여기서 킬포가 하나 있는데, 아마 본인은 담담한 표정으로 불타는 일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한 번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 생각하기도 싫다.’
으으.
나는 몸서리를 쳤다.
소설 속 악녀였던 이사벨 때문에 맨날 속을 썩이던 엄마가 결국 요절하게 되는 그 장면.
이제는 없을 일이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무튼 소설 속에서 엄마가 죽고 난 이후 카만은 1년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카만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면은, 각성한 남주 아룬에 의해 빌로티안 제국이 멸망할 때였지…… 아마?’
그때 카만은 아룬과 대치하게 된다.
참고로 카만은 빌로티안 황가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검을 버리고 투항해라. 황제는 이미 죽었고, 나는 복수를 끝냈다. 네게 원한은 없으니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아룬 앞에서 카만은 검을 버리지 않는다.
카만은 싸늘한 주검이 된 아버지의 시체에 다가가 두 번 절을 올렸다.
「“나는 그래도 아버지를 사랑했었습니다.”
평생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그 말을 하고서 카만은 자결하였다.」
……라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었다.
사실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 속 대부분 포커스는 남주 아룬과 여주 레일라에게 맞춰져 있었다.
빌로티안의 3황자 카만은 그냥 지나가는 조연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은 카만의 사정과 내 사정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것이 있다.
내게 가족이 그러했다.」
나도 그랬다.
나한테도 가족이 없었으니까.
소설 내용을 떠올리고 카만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냥, 좀…… 보듬어주고 싶다.’
잘생겨서 그런 거 아니다, 진짜로.
지금은 진짜로 약간 누나 같은 마음이었다.
……진짜다.
간이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시게요?”
유리 언니가 물었다.
“응. 카만 오빠한테 가보려고.”
“저녁에 가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직 디저트 준비를 못 했는데…….”
“괜찮아. 저녁까지 돌아올 테니까 유리는 유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줘.”
“알겠어요.”
나는 막사 밖으로 나와 카만 오빠를 찾아다녔다.
‘뭐가 이렇게 넓어?’
안 되겠다. 길을 물어봐야겠다.
돌아다니는 병사들은 군기가 바짝 든 채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말을 걸기가 조금 무서웠다.
어차피 내가 말하면 다 잘 들어주기는 하겠지만, 이건 그냥 기분의 문제였다.
‘조금 친절해 보이는 아저씨한테 물어봐야지.’
그런데 그때, 나는 반가운 얼굴을 한 명 발견했다.
“어? 루카인 병장?”
에르베 산맥 제7 경계초소 병장 루카인.
예전에 황궁에 찾아왔었던 루카인 병장이 이곳에 있었다.
“화, 황녀님 아니십니까?”
루카인 병장은 대략 10명의 소대원을 지휘하며 걷고 있었다.
루카인 병장이 크게 외쳤다.
“전체 차렷, 열중 쉬엇!”
척! 척! 척!
병사들이 절도 있게 움직였다.
‘아, 아니, 잠깐만요!’
무언가 크게 잘못될 것만 같은 예감이 밀려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