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0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05화
키르엔은 이사벨을 보며 사랑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아, 너무 귀엽다.’
저 커다란 참마도를 들고 낑낑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처음에는 제대로 들지도 못해 중심도 못 잡고 쓰러졌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이렇게 휘두르는 게 맞죠?”
후웅!
이사벨이 참마도를 휘둘렀다.
오늘 처음 쥐어보는 검이어서 모양새는 영 어색했으나 검에 대한 적응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맞아요!”
키르엔이 짝짝! 박수를 쳤다.
속으로는 무척 크게 놀랐다. 빌로티안 검식을 익힐 수 없어서 그렇지, 신체 자체는 타고난 것 같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사벨의 몸 속에 내재되어 있는 ‘마력량’이 상상을 초월했다.
‘마력의 효율은 지극히 낮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효율이라는 건, 없는 걸 쥐어 짜낼 때나 필요한 것이었다.
키르엔이 느끼기에 이사벨이 가지고 있는 마력은 무한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렇게 퍼내든 저렇게 퍼내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저렇게 마력을 마구잡이로 뽑아대면서 검을 휘두르는 데도 지친 기색이 없어.’
키르엔 입장에서는 문화 충격이었다.
3시간쯤 지나자 이사벨의 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
머리카락과 땀이 엉겨 붙어 황금색 미역 같기도 했다.
“헥…… 헥!”
이사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행복해했다.
이럴 때면 정말로 살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거칠게 숨을 쉬어도, 이렇게 땀을 흘려도 괜찮은 몸이라니.
이사벨은 팔뚝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낸 다음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온몸으로 권태로움을 주장하고 있는 카만에게 다가가 말했다.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어요!”
“…….”
이사벨은 확신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카만도 행복한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고 있을 거라고.
지금은 잊어버린 예쁜 기억들을 마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보다 엄청 몸치는 아니죠?”
“…….”
“네?”
“…….”
“그럭저럭.”
칭찬을 바라는 듯한 이사벨의 눈동자가 부담스러워 카만은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카만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또한 처음 검을 배울 때 저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관심받고 싶고 예쁨 받고 싶었다.
‘아버지. 제가 해냈어요!’
‘정말 즐거워요, 아버지!’
잊고 있었던 자신의 옛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콕콕 쑤셔왔다.
그러나 사실 그는 검술이 즐거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검술이 즐겁다고 거짓말했었다. 그것이 아버지와 유대감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내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카만은 이사벨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꿈꾸는 거냐, 이사벨.’
너와 나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건 빌로티안의 피밖에 없는데.
왜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내게 이렇게 살갑게 구는 것이냐.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의 카만도 그랬다.
아버지와 공유할 수 있는 건 빌로티안의 피밖에 없는데,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었다.
‘너는 도대체 왜…….’
이사벨은 십오 세 카만의 감수성을 크게 뒤흔들었다.
“정말로 재미있나?”
“네. 정말로요. 숨이 이렇게 헥헥 차고 땀이 뻘뻘 나잖아요.”
거짓말.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뭐가 그리 즐겁다는 거지?
카만은 이를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스레 비장해졌다.
‘왜 그리 필사적이냔 말이다!’
물론 착각이었다.
이사벨은 정말로 즐거웠다.
몸을 이렇게 격하게 움직이는 것 자체가 이사벨의 갈망이었고 행복이었으니까.
“제 처음의 순간에 함께해 줘서 진짜진짜 고마워요.”
처음.
함께.
그게 대체 뭐길래.
“진짜진짜 진심이에요.”
그렇게 타들어 가는 속마음을 저 미소로 숨기면서 가짜를 진짜라고 말한단 말인가.
왜 즐겁지 않은 것을 즐겁다 말하며 거짓으로 웃고 있는가…….
나 또한 그러했는가.
십오 세의 마음속에 커다란 지진이 일었다.
“……밤이 늦었으니 돌아가라.”
보내야 한다, 내 어린 날의 자화상을.
그렇지 않으면 애써 외면했던 과거가 비집고 새어 나와 나를 좀먹을 것이다.
……라는 십오 세의 깊고 진한 감수성이 내면에 꿈틀거렸다.
“내일 또 함께해 주실 거죠?”
“내일 오후까지는 일정이 있다.”
“그럼 오후까지 기다릴게요.”
“…….”
오후 이후에 검을 가르쳐주겠다는 말은 안 했는데.
하지만 그 말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귀찮군.”
카만은 몸을 돌려 멀어졌다.
* * *
막사로 돌아온 이사벨은 깜짝 놀랐다.
‘샤워 시설이 이렇게 열악하단 말이야?’
지하수를 퍼 올려서 샤워를 해야 하는데, 물이 무척이나 차가웠다.
게다가 바가지를 사용해서 씻어야 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제가 씻겨드릴게요.”
“응, 부탁해.”
그렇지만, 이사벨은 물의 정령을 다룰 수 있는 유리 덕택에 손쉽게 씻을 수 있었다.
“방울이 안녀엉.”
요정 모양의 방울이가 허리를 숙인 뒤 이사벨을 향해 안겨들었다.
샤라락- 하고 샤워가 금방 끝났다.
‘샤워 끝! 이제 누워야겠다.’
침상에는 키르엔이 먼저 누워 있었다.
키가 무척 커서 발끝이 빼꼼 나와 있었다.
“황녀님. 어서 오세요. 언니가 자장가 불러줄게요.”
“진짜요? 좋아요!”
이사벨은 침상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계곡을 향해 다이빙하는 것만 같았다.
‘으아아, 현실 덕질이다아아!’
역시 빙의하길 잘했어.
이사벨은 키르엔의 품에 파고들었다.
이미 조카 바보(?)가 되어버린 키르엔은 풍만한 충족감을 누렸다.
‘심장이 아프다.’
어찌 아이가 이렇게 순수하고 맑단 말인가.
정녕 이 아이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게 맞단 말인가.
이사벨과 키르엔은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정말요? 그런 못된 놈을 그냥 뒀단 말이에요?”
“그냥 뒀겠어요? 거시……를 아니, 팔을 부러뜨렸지.”
“네?”
방금 분명 거시 뭐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사벨은 뭔가 끔찍한 기분이 들어 그만 궁금해하기로 했다.
이사벨이 조심스레 말했다.
“근데 저는 검술에 재능이 없는 걸까요?”
“네? 아니요? 엄청 재능이 있어 보이던데요.”
“정말요?”
“당연하죠. 과연 빌로티안 황가의 핏줄답다고 느꼈어요.”
“헤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역시 언니는 다정해요.”
“다정하다는 말 처음 들어봐요.”
우악스럽고 강인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다정하다는 말은 이사벨에게서 처음 듣는 것이었다.
이사벨은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키르엔 언니는 착해.’
겉으로는 누구보다 강인한 전사지만 속은 역시 착하고 다정했다.
‘못해도 잘한다고 해주네.’
이사벨이 느끼기에 이사벨 본인은 검술에 재능이 별로 없었다.
마법을 사용할 때만큼 머릿속이 번쩍번쩍 빛나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 내 적성은 마법인가 봐.’
마법 재능이 지나치게 뛰어난 나머지, 검술 재능이 뒤떨어지는 것처럼 느낀 탓이었다.
한편, 키르엔은 속으로 생각했다.
‘빌로티안 검식을 익힐 수 없을 뿐, 검술적인 재능만 보자면 가히 천재 수준이야. 그런데도 교만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어.’
저 정도면 스스로도 검술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꼈을 텐데?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겸손할 수 있는 거지?
이사벨과 키르엔은 서로 다른 생각을 했지만 같은 모습으로 활짝 웃었다.
“잘 자요, 황녀님.”
“키르엔 언니도 잘…….”
오늘 하루가 고되었는지 이사벨은 금세 새근새근 잠들었다.
키르엔은 한참이나 이사벨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 *
지르델 베이스캠프의 부지휘관 ‘만 칼프’ 준장은 무척 언짢은 상태였다.
“여기가 무슨 옆 동네 개집도 아니고. 개나 소나 드나드는군.”
외부인이라 할 수 있는 황자와 황녀.
거기에 비아톤과 키르엔까지 베이스캠프에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었고, [멋있는 황녀님>처럼 황녀에 복종하는 개처럼 노래를 불러대는 병사들의 행태도 별로였다.
그리고 아까 연무장에서 우연히 봤던 황녀의 모습은 우습다 못해 가소로울 지경이었다.
‘한 살부터 검을 쥐었을 테니 적어도 8년은 수련했을 터.’
만 칼프 준장은 병사로 시작하여 지휘관을 자리까지 오른 뛰어난 인물이었다.
평민으로 시작하여 준귀족에 오른, 능력만큼은 확실히 빼어난 군인. 최근 검림 학사원의 눈에 들어 베이스캠프의 부지휘관으로 발령받은 상태였다.
‘내가 3년여를 수련한 것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했다.’
황녀와 만 칼프는 시작부터가 달랐다.
물론 대외적으로 황녀는 검술을 익히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만 칼프는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빌로티안 검식을 익히지 않았을 뿐, 황녀는 어릴 적부터 온갖 지원을 받아 치열하게 검술을 수련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나 앞선 출발을 했는데도 겨우 그 정도란 말이지?’
이사벨의 실력은 보통 기재라 불리는 아이들이 대여섯 살 정도면 이룰 수 있는 성취였다.
여덟 살에 저 정도 실력이면 결코 천재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고, 황실에서 ‘이사벨은 검술을 익히지 않는다’라고 발표할 만했다.
‘검술로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전투에 관한 실전경험은 전무하며, 심지어 검술 실력까지 그토록 미천한 어린아이에게 무궁화 훈장이 어울린단 말인가?’
주먹을 꽉 쥐었다.
평민 출신으로 온갖 개고생을 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만 칼프는 어이가 없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다.
책상을 쾅! 내려쳤다.
‘검술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반쪽짜리 황족에게! 무궁화 훈장이 어찌 어울리냔 말이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너는 준장의 자리에 올랐으나 훈장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