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0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07화
키르엔이 황급히 움직였다.
이사벨을 보호하기 위해 보법을 밟았으나 이미 늦었다.
그림자처럼 변한 만 칼프가 이사벨을 덮치기 직전.
이사벨의 발밑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마법진에서는 강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와 강한 풍압을 일으켰고, 마력으로 이루어진 빛이 비산했다.
이사벨의 노란색 머리카락이 마력풍에 휘날렸다.
참으로 거대한 마력의 향연이었다.
마법진 안에서 커다란 검이 하나 쑥- 튀어 올랐다.
그 검은 키르엔이 선물해 주었던 ‘참마도’였다.
“큭!”
만 칼프는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하마터면 참마도에 꿰뚫릴 뻔했다.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비아톤이 검은 연기처럼 변한 만 칼프의 발목 부근을 베어 넘어뜨렸다.
연기가 흩어졌을 뿐 피가 나지는 않았다.
딱히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모양새였다.
비아톤이 웃으며 말했다.
“키르엔 경. 황녀님을 막사 안으로 모셔요.”
커다란 마법을 사용한 후유증 때문인지 이사벨은 기절했고 키르엔이 이사벨을 안아 들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
키르엔조차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비아톤이 저렇게 화가 난 건 처음 봐.’
키르엔이 이사벨을 안아 막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화는 끝났고.”
이사벨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비아톤의 기도가 달라졌다.
“이제부터는 어른들의 시간이다.”
* * *
만 칼프 준장은 결박되어 황궁으로 보내졌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만 칼프 준장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소문의 내용이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여서 다들 쉬쉬했다.
그래서 어젯밤의 일은 암묵적인 비밀처럼 되어버렸다.
병사들도, 기사들도, 모두 그날 밤에 대해 함구했다.
모두 그것을 말하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모두들 비아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추, 충성!”
“나는 직속 상관이 아니니 그렇게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됩니다.”
“아, 아닙니닷!”
어쩐 일인지 병사들이 비아톤을 대하는 태도가 한층 더 어려워졌다.
무슨 일인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용맹한 병사들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 서려 있었다.
“사람들이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제가 황제 폐하의 부관이라서 그렇지요. 권력이 이렇게 무섭답니다.”
“권력 때문에 그런 게 맞죠?”
“아참! 저는 잠시 본가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쩐지 비아톤이 재빨리 화제를 돌리는 느낌이었지만 이사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본가에요?”
“네, 어머니 좀 뵙고 상의드릴 것이 있어서요.”
이사벨은 저도 모르게 비아톤의 옷깃을 살짝 잡았다.
비아톤이 보기에는 가지 말라고 매달리는 아기 고양이 같았다.
순간, 비아톤은 심장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마법을 사용해서 글자를 띄우고 효과음을 냈다.
[심쿵!]김벌꿀은 항의했다.
[그건 내 단어.] [저작권료 요구.]비아톤은 김벌꿀의 항의를 깔끔히 무시했다.
“물론 저도 황녀님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 것이 불편하지만 여기에는 키르엔 경이 있으니까요. 키르엔 경을 믿고 맡기려 합니다.”
어제 일로 인하여 베이스 캠프 내의 경계가 철저하게 강화된 상황.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는 어제 보았던 이사벨의 마법을 떠올렸다.
상급 전투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상급 마법, ‘무구 소환’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어머니와 반드시 상의해야 했다.
비아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이사벨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했다.
“지르델 국왕을 만나기 전까지는 꼭 돌아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 *
이사벨은 키르엔과 아침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키르엔은 수프를 떠먹다 말고 입을 열었다.
“어제는 많이 놀랐죠?”
“아니요?”
“솔직히 말해도 괜찮아요.”
놀랐을 것이 분명한데 저 어린아이는 놀라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담담히 말을 하고 있었다.
저 어린아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 황족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황망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거겠지.’
내 앞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내 앞에서는 솔직해도 되는데.
키르엔은 조금 속상했다.
그런데 이상한 말이 이어졌다.
“저는 만 칼프 준장이 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언제부터요?”
“언니가 나 안 깨우려고 조심스레 일어날 때부터요.”
이사벨은 빙그레 웃었다.
“사실 어제도 역할극인 줄 알았어요.”
어제도? 언제 역할극을 한 적이 있었나?
키르엔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네?”
“그렇게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대면서 걸어왔잖아요. 암살자치고 너무 대놓고 와서요. 그냥 역할극인 줄 알았지 뭐예요? 저랑 놀아주는 줄 알았어요.”
“엄청난 존재감을 뿜으면서 걸어왔다고요?”
절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숙련된 암살자만큼 은밀한 기도는 아니었으나 만 칼프 준장은 그 나름대로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다가갔었다.
‘기감’을 제대로 수련하지 않은 이사벨이 느낄 수 있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이사벨은 너무나 명확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네!”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제 만 칼프 준장의 기척을 완전히 다 읽으셨다는 거죠?”
“네. 생각해 보니 아빠보다는 대충 숨긴 것 같기도 하고…….”
이사벨은 론이 변장한 것마저도 순식간에 읽어냈다.
자기가 아주 쉽게 읽어내니 다른 사람도 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키르엔은 또 찔끔 놀랐다.
“아빠라면…… 폐하요? 폐하가 기척을 숨긴다고요? 언제요?”
그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사벨은 화들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앗, 실수. 헤헤.”
하마터면 ‘아빠 버스’ 세계관을 파괴할 뻔했지 뭐야.
키르엔이 받은 충격을 전혀 모른 채, 이사벨은 활짝 웃었다.
아침 식사가 거의 끝났다.
식사 내내 키르엔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황녀님. 무서운 건 무섭다고 말해도 돼요. 놀란 건 놀랐다고 해도 돼요.”
그게 아이다운 거다.
모든 걸 숨기고 살아갈 필요 없다.
“적어도 제 앞에서는요. 저는 황녀님의 언니가 되어주기로 했잖아요.”
이사벨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정말로 안 무서웠는걸요.”
“저 조금 서운하려고 해요.”
“역할극인 줄 알았지만 역할극이 아니었고, 만 칼프 준장쯤 되는 사람이 베이스 캠프 내에서 그렇게 무식한 짓을 벌였다는 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소리잖아요?”
너무나 논리적인 이야기였다.
게다가 외눈박이 거인 때 느꼈던 그 기묘함을 직접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아마 세뇌 마법 등에 걸렸으리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계산해 낼 수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고, 제가 나가면 저를 공격하리라는 것쯤은 세 살 어린아이도 계산할 수 있고요.”
세 살 어린아이가 그걸 계산한다고요?
키르엔은 정말로 묻고 싶었다.
“제 옆에는 비아톤 선생님과 키르엔 언니가 있으니까, 제가 할 일은 그냥 1초의 짧은 시간을 벌기만 하면 되는 거였구, 저는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무구 소환’ 마법을 본능적으로 놀라서 쓴 게 아니에요?”
“그런 마법을 어떻게 본능적으로 쓰겠어요?”
키르엔은 어젯밤, 비아톤과 단둘이 얘기를 나눴다.
‘그래. 그건 분명 본능적인 마법이었어. 보통 상급 마법사들의 ‘무구 소환’은 복잡한 계산과 술식. 그리고 소환하려는 무구에 마법 각인까지 새겨서 사용하거든. 그래야 겨우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란 말이야. 그런데 황녀님은 그냥 마력을 때려 부어서 사용했어. 불가사의할 정도로 많은 마력량이야. 이런 사례는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키르엔은 흐음 하고 침음성을 삼켰다.
“……그러니까 철저한 계산을 통해 마법을 발현하셨다는 거죠?”
“네, 물론이죠!”
여기서 간극이 발생했다.
비아톤이 보기에는 본능적으로,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넣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사벨 입장에서는 달랐다.
‘그러니까, 이건 황녀님의 기준이구나.’
단순무식하게 마력을 쏟아부은 게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지 몰라도 이사벨은 자신이 감당 가능한 마력을 뽑아냈을 뿐이었다.
이사벨에게는 지나치게 복잡한 수식과 효율 추구가 필요 없었고, 범인(凡人)이 보기에 충격적인 방식이었을 뿐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일부러 나오신 이유가 뭔가요?”
“만 칼프 준장이 잡아떼면 불리해지는 것은 언니니까요. 언니는 만 칼프 준장보다 계급도 낮고 화려한 전적도 있잖아요.”
만 칼프 준장은 이곳의 2인자다.
그에 반해 키르엔은 과거 상관을 폭행하여 좌천된 문제 인물이다.
대외적으로는 그랬다.
키르엔에게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불리해지는 것은 언니니까요.’
그 말이 키르엔의 가슴을 크게 울렸다. 그녀는 그 울림을 감추고서 다시 물었다.
“혹시 벌꿀이랑 같이 나온 건……?”
“벌꿀이랑 같이 있으면 마법이 증폭되는 것 같아요.”
그 또한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럼 기절은 왜 하신 거죠?”
“저 기절 안 했는데요?”
“네?”
“제가 정말로 기절한 것처럼 보였나요?”
이사벨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키르엔 언니마저 속일 만큼 완벽하게 기절 연기에 성공해서 그런 것 같았다.
다음에 아빠 버스 세계관에서 좀 더 역할극에 충실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네. 얼마나 놀랐다고요. 기절한 게 아니었어요? 도대체 왜 기절한 척하신 거예요?”
“거기서 기절을 해줘야 비아톤 선생님에게 확실한 명분이 실려서?”
역할극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한 순간.
신성한 역할극이 모욕당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이사벨은 지극히 ‘이(과)사벨’가 되었다.
‘아주 평범하게’ 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생각했다.
“저는 제국의 수석 보좌관이 수석 보좌관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을 뿐인걸요.”
“…….”
이사벨의 눈이 반짝거렸다.
“저 기절 연기 엄청 잘한 거죠? 그쵸? 진짜로 언니도 몰랐죠?”
다른 게 아니라 그 칭찬을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기준으로 다른 계산들은 너무 평범했으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