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0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08화
이사벨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니 키르엔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잊고 있었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500년이나 전통을 이어온 최강의 검술 가문, 빌로티안 황가.
그곳에서 빌로티안 검식을 수련할 수 없는 아이가 태어났다.
최소한 자기 몫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이 아이는 지난 8년간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가.
어떻게 삶을 살아냈는가.
‘저 티 없이 맑은 미소 이면에는…… 철저하게 살아남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이 담겨 있구나.’
오늘 분명히 보았다.
이사벨의 상황 판단과 행동은 결코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분명 노련한 지략가의 모습이었다.
이사벨이 지난 8년간, 황궁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황녀님.”
“네?”
키르엔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이사벨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렇게 앉아보니 새삼스레 다시 느껴졌다.
‘무척 작구나.’
키르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사벨은 작았다.
키르엔은 이사벨을 꼬옥 껴안았다.
“응?”
칭찬을 기대하고 있던 이사벨은 고개를 갸웃했다.
칭찬치고 뭔가 감정선이 격렬한 것 같은데.
“이거 칭찬이에요?”
“네. 엄청 칭찬이에요.”
키르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작은 몸으로, 얼마나 높은 파도를 견뎌왔을까.’
얼마나 세찬 파도를 견뎌왔던 걸까.
아이는 아이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어떻게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하나의 역할을 감당할지, 그런 복잡한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있다.
눈앞의 맛있는 것을 즐기고, 낙엽이 굴러가는 걸 보며 까르르 웃고, 작은 것에도 칭찬받고, 기쁜 일이 있으면 맘껏 웃고, 슬픈 일이 있으면 엉엉 울어도 된다.
그게 키르엔이 생각하는 아이의 삶이었다.
그런데 키르엔이 본 이사벨은 아이의 삶을 살지 못했다.
“엄청, 엄청, 엄청, 큰 칭찬이에요.”
“헤헤.”
소설로 볼 때부터 덕질을 해왔던 캐릭터에 안긴 이사벨은 진심으로 우러난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몸은 저도 모르게 진심을 토해냈다.
“행복하다.”
“…….”
그 행복하다는 말이 키르엔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황궁에서는 이 아이를 이렇게 안아준 사람이 없었겠지.’
그래서 누군가 안아준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이건 행복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이사벨도 손을 뻗어 키르엔을 꼭 끌어안았다.
이건 현실 덕질이었다.
“진짜 좋아요.”
키르엔은 묻고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어요?
겨우 안아주는 게 그렇게나 특별한 일인가요?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결국 이사벨은 키르엔이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언니? 왜, 왜 울어요?”
이사벨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울 이유가 없는데 왜 울지?
그래도 일단 다독여 주기는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키르엔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우는 이유를 모르니 제대로 된 위로를 할 수 없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요.”
키르엔은 한 번 더 울음을 삼켜야 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저 말은 어쩌면, 이사벨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눈물에는 묘한 전염력이 있어서 이사벨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키르엔이 조심스레 물었다.
“황녀님은 정말로 행복한가요?”
행복하지 않다면, 황족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아이를 도와줘야겠다.
키르엔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요. 저는 엄청엄청 행복해요.”
전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맞이하는 햇살부터 아프지 않고 잠드는 잠자리까지.
모든 것이 이사벨에게는 축복이고 감사였다.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어요?”
“그야…….”
전생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비관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사벨의 세상은 온통 비관투성이인데, 어떻게 저렇게 햇살처럼 자랄 수 있는가.
“음…….”
전생에 대해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신성 기사단이 들이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 SNS에서 돌아다니던 유명한 말 하나가 떠올랐다.
프랑스의 무슨 철학자가 남긴 말이라나 뭐라나.
“비관은 기분이지만 낙관은 의지래요.”
“…….”
키르엔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저 말이 키르엔을 더욱 속상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비관이라는 기분을, 낙관이라는 의지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얼마나 치열하게 의지를 내어 삶을 살아내고 있단 말인가.
키르엔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이 안쓰러운 아이를 꽉 안아줄 뿐이었다.
* * *
3황자 카만은 걸음을 옮겼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말하자면 이건 아침 산책이었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딘가에 도착했다.
‘여기는…….’
정신을 차려보니 이사벨이 머물고 있는 막사였다.
지난밤, 이곳에서 큰일이 있었다지.
‘나는 여기에 왜 온 거지?’
생각해 보니 딱히 이유가 없었다.
그냥 아주 우연히 이곳에 도착했을 뿐이었다.
‘돌아가야겠군.’
그냥 돌아가려다가 카만은 마력을 끌어내어 막사 안쪽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이건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베이스 캠프 내에 주둔하고 있는 황자로서, 손님이 잘 있는지 확인해야겠다는 책임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정신이 아니었고, 제가 나가면 저를 공격하리라는 것쯤은 세 살 어린아이도 계산할 수 있고요.”
솔직히 조금 놀랐다.
그 상황에서 모든 걸 계산해서 행동했다니.
카만은 잠자코 그 말들에 귀를 기울였다.
놀라움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의외의 말까지 들려왔다.
“비관은 기분이지만 낙관은 의지래요.”
그 짧은 한마디가 카만을 강하게 때렸다.
사실 그는 혈육에 대한 관심을 모조리 끊은 상태였다.
가족을 갈구했었던 만큼, 철저하게 가족을 외면했다.
이 세상에 가족같이 하찮은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사벨에게 관심도 없었다.
이제야 이사벨이 처한 환경과 상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내가 더 힘들었는가, 저 아이가 더 힘들었는가.
내가 더 비관적인가, 저 아이가 더 비관적인가.
카만은 그 물음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 아니, 카만 경. 뭐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카만은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기 고양이처럼 순수하고 맑은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빌로티안의 황족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이사벨은 무척 힘겨운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사벨은 최연소 올림피아드 수석을 차지하며 빌로티안 황가의 위상을 드높였다.’
검술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기에 사실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보인다.
‘라헬라 왕국의 자원 봉사자로 파견되어 많은 업적을 일구었다지.’
그래서 라헬라 왕국 백성들은 이사벨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했고, 그것은 곧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상용화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테이사벨 이동 관문의 효율을 힘입어 라헬라 왕국은 많은 부와 힘을 축적했다.
따지고 보면 이사벨이 지르델 왕국에 온 것도 그와 관련된 일 때문 아니었는가.
‘생각해 보니 ‘무궁화 훈장’을 충분히 받을 만했군.’
검술의 영역이 아니라 다른 영역이었다.
이사벨은 이사벨의 방식으로 무궁화 훈장을 수여받았고 ‘황족’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응? 오라버니?”
“…….”
카만은 깜짝 놀랐다.
‘나는 분명히 뒤로 돌아서 걸었는데?’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사벨의 막사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아무래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통에 육체가 제멋대로 방향 감각을 상실한 모양이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너.”
“……네?”
카만은 저도 모르게 이사벨에게 마음을 조금 열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비관을 의지로서 낙관으로 바꾸는 저 아이의 모습이, 카만이 숨겨놓은 마음들을 콕콕 찔렀다.
“검을 들어라.”
“……네?”
카만이 검을 뽑아 들었다.
딱히 살기는 없었던지라 키르엔도 잠자코 카만을 지켜보았다.
이사벨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검을 들라구요? 저 참마도요?”
“그래.”
카만은 이사벨에게 조금은 호의를 보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사벨과 조금은 친해지고 싶어졌다.
가족으로서.
잊고 있던 그 가치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또한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이사벨이 지금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검을 들어라. 실컷 상대해 주지.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가 제대로 경험한 동생은 미하엘밖에 없었다.
동생인 미하엘은 이렇게 말하면 무척 좋아하며 전의를 불태웠었다.
‘이렇게 말하면 이사벨도 무척 좋아하겠지.’
……라고 확신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