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0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09화
“오, 신나는 소식이군!!”
카만의 잘못된 생각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사람은 다름 아닌 미하엘이었다.
막사 밖에서 카만의 목소리를 들은 미하엘은, 마치 망아지 같은 기세로 날뛰며 막사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이긴다.”
미하엘은 다짜고짜 카만에게 덤벼들었다.
그냥 덤벼든 것이 아니라 온몸에 단단한 마력을 꽁꽁 두른 상태였다.
콰과광!
미하엘의 주먹과 땅이 부딪쳐 폭음이 일고 지진이 났다.
카만은 별다른 동요 없이 미하엘의 주먹을 피해내고 미하엘과 거리를 살짝 벌렸다.
미하엘이 씨익 웃었다.
“좋아, 흥미진진한데?”
키르엔이 말했다.
“다 좋은데 마력을 사용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황녀님의 거처가 엉망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왜 피했어? 이건 다 형 때문이야.”
“…….”
카만은 아무 말 없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미하엘은 언제나 그렇듯 자기 좋을 대로 해석했다.
“드디어 쫀 건가?”
“따라와라. 넓은 데서 싸우자.”
넓은 데서 싸우자는 말에 미하엘은 몹시 신이 났다.
“좋아, 바로 앞 공터에서 겨뤄보자고!”
서로 다른 형태의 기운이기는 했으나 둘의 몸에서 일종의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키르엔은 문득 이사벨이 걱정됐다.
일반인들은 무인이 내뿜는 살기에 노출되면 정신적으로 위태로워지니까.
‘응?’
그런데 이사벨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황녀님. 괜찮아요?”
“원래 사내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래요.”
바깥 공터에서는 굉음이 울리고 있었으나 이사벨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소설 속 기록에 따르면 둘은 성인이 될 때까지 약 7천 번 정도 싸우게 된다.
아직 200번도 채우지 않았으니 최소 6,800번은 더 싸워야 한다는 소리였다.
콰과광!
폭발음이 터졌다.
풍압 때문에 막사가 통째로 흔들릴 정도였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주 러프하게 계산하면 이제 겨우 28.5714%가 진행되었을 뿐인걸요.”
“……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이사벨의 머릿속에는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 수식이 떠오른 상태였다.
(200/7000)*100=28.57
겨우 30%도 진행이 안 됐는데, 이런 것에 일일이 놀라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었다.
밖에서 지진이 나든 굉음이 울리든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초코 파이 맛있다.”
키르엔은 입을 다물었다.
이사벨의 지나친 평온함이 기묘하게 다가왔다.
‘과연 황궁의 궁중 암투 속에서 성장했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아프기도 했다.
혹시 몰라 물어보았다.
“황녀님, 아까 카만 황자님의 말씀 말인데요.”
“네?”
“그, 실컷 상대해 준다는 그 말이요.”
오물오물.
이사벨은 유리가 만들어준 초코 파이를 먹으면서 키르엔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심장이 무척 아파서 할 말을 잃을 뻔했다.
“악의는 없었을 거예요.”
“알고 있어요.”
이사벨이 빙그레 웃었다.
하얀 치아 사이에 까만 코코아 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게 카만 오라버니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을 거예요.”
“…….”
어쩜 저렇게 속이 깊을까.
키르엔은 다시 한번 감탄했다.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너머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분명 너무나 대단한 일이었고, 그래서 많이 속상했다.
여덟 살의 이사벨은 너무 어른 아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이사벨은 키르엔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키르엔 언니도 초코 파이 많이 좋아하나 보다.’
* * *
비아톤은 오래간만에 본가를 찾았다.
그의 본가는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호수, 과거의 사람들은 바다로 착각했던 바르칼트 호수 중앙의 섬에 위치하고 있었다.
바르칼트 호수는 늘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있어서 일반인들은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고마워, 친구들.”
비아톤은 인어족의 도움을 받아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곧장 가문의 본관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그의 어머니 ‘베크사’는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네가 어쩐 일이냐?”
베크사는 아들이 찾아오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마법을 공부하고 꽃을 가꾸고 산책도 하고 명상도 하고 연애도 해야 했다.
베크사는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다.
“상의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너도 성인이지 않느냐?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거라.”
“에이, 또 그러신다.”
비아톤은 능글맞게 웃으며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제가 새로운 안마법을 배워왔는데요.”
“됐다. 뇌전을 내리꽂기 전에 떨어지거라.”
“그렇게 찌릿찌릿할 정도로 아들이 반가우셨군요! 저도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비아톤은 어머니가 혹시 진짜로 뇌전을 소환할까 싶어 조금 걱정했지만,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로 날 찾은 것이냐? 혹시 론과 관련된 일이냐? 또 사고 친 것이야?”
“저희가 무슨 아직도 어린애들인 줄 아세요?”
사실 베크사의 눈으로 본 비아톤은 아직도 애였다.
론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잊으셨나 본데 론은 제국의 황제가 됐어요. 사고를 쳐도 제힘으로 감당할 수 있어요.”
“아, 맞다. 그랬지.”
베크사의 시선이 비아톤으로 향했다.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비아톤은 무슨 말인지 대번에 이해했다.
론은 무려 황제가 됐는데 너는 그 나이 먹고 뭘 하고 있느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건 폐하가 황족이어서 그런 거고요. 저도 나름 출세해서 제국의 수석 보좌관이라고요?”
“론보다 낮지 않느냐?”
“폐하보다 높으려면 반역을 일으켜야 하는데요?”
“그것도 딱히 나쁜 생각은 아니구나.”
“……정 그러면 그냥 어머니가 폐하 하시고 황족에 등극하시지 그래요?”
“황제의 자리를 빼앗기에는 론이 너무 귀엽지 않으냐?”
“귀엽다고요? 도대체 어디에 기억이 머물러 있는 건가요? 폐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죠?”
20년쯤 된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몰라서 그렇지, 지금은 하나도 안 귀여워요.”
“어릴 때 귀여운 애들이 커서도 귀엽다.”
“저도 꽤 귀여운 편이었는데요.”
콰직!
비아톤의 발밑에 뇌전이 내리꽂혔다.
더 이상 농을 걸었다가는 이 짜릿한 뇌전이 정말로 척추를 관통할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고요, 제가 진짜 꼭 상의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나는 아주 바쁘다.”
“10분만요.”
비아톤은 재빨리 이사벨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태생영창부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렇게나 대단한 마력량과 뛰어난 기감이라면 대마법사의 자질을 갖고 있는 거겠구나.”
“맞아요. 어머니처럼요.”
“그럼 보다 적극적으로 마법을 가르치면 될 일이 아니냐? 정말 네 말대로라면, 빌로티안은 역사상 최강의 제국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어머니 같은 대마법사가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 대략 30년? 정말 빠르면 25년쯤?”
그 정도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40대가 되기도 전에 대마법사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빌로티안에 대단한 행운이 스며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분의 삶이 이제 13년 남았거든요.”
비아톤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베크사는 아들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이사벨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베크사는 만감이 교차했다.
‘표정이 많이 풍부해졌구나.’
비아톤은 언제나 가면을 썼다. 심지어는 어머니인 자신 앞에서도.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했지만, 일정 이상의 곁을 내준 적이 없었다.
지나치게 다가가면 밀어내는 아이였다.
그래서 베크사는 일부러 아들을 매몰차게 대했다.
그래야 아들이 더 멀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빌헬름이라는 개자식이 자꾸 수작을 부리고 있어요. 그래서 랜서라는 아주 유능한 검술가가 그 뒤를 추적하고는 있는…… 어머니. 제 말 듣고 계세요?”
베크사는 무척 기뻤다.
‘네게도 삶에 의미가 생긴 것 같구나.’
베크사가 보는 비아톤은 삶에 별로 의욕이 없는 아이였다.
죽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삶에 미련도 없는 아이.
사무치게 소중한 것도 없고 지나치게 미운 것도 없었다.
늘 그렇듯 무색무취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진짜 표정’이 생겼고, 삶에 ‘의미’가 생겼다.
이것은 어머니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변화였다.
“네가 삶의 의미를 찾은 것 같아서 기쁘구나.”
“……네?”
“그토록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는 건, 네가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지.”
베크사는 자신이 어른이 되었던 순간을 잘 알고 있었다.
30년도 더 전, 비아톤이 태어났을 때였다.
그때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날 어른이 되었다.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베크사는 희미하게 웃었고, 비아톤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머니의 반응이 평소와 많이 달랐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약간 불안했다.
“묘하게 쎄한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인가요?”
“네가 이제야 어른이 되었으니 말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
“왜 그렇게 무게를 잡으세요? 방심하게 했다가 뇌전을 꽂으려는 새로운 전술인가요?”
“겨우 너를 상대로 그런 거창한 전술이 필요할 것 같으냐?”
“그건 그렇지만요.”
“잘 보아라.”
베크사가 팔목을 걷어 올렸다.
그녀의 오른 손목에, 모래시계 문양의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나르비달의 낙인’이었다.
“……어머니?”
“그러게, 내가 아주 바쁘다고 하지 않았느냐?”
모래시계의 아랫부분에 이미 모래가 가득 차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