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화
카린은 이사벨에게 엄격해졌다.
말투도 점점 딱딱해졌다.
“오늘도 열심히 하셨군요.”
“나 잘 해써여?”
“그럭저럭했습니다.”
“헤헤, 칭찬 받아따.”
“칭찬까지는 안 했습니다.”
“구럼 다음에는 칭찬해 죠요.”
카린은 차갑게 몸을 돌렸다.
맑게 웃는 황녀의 얼굴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저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자꾸 녹아내려 흐물텅해지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너무 뛰어난 재능은 사람을 갉아먹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티 없이 맑고 깨끗한 황녀가 자신의 악마 같은 재능에 잡아 먹혀서 나쁜 길로 빠지게 될까 봐 두려웠다.
‘비아톤 경은 이미 미쳐 있으니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아닌 게 아니라 비아톤은 정말로 미쳐 있는 듯했다.
아마도 황녀가 중죄를 저질러도 ‘괜찮아요, 황녀님은 귀여우니까’로 넘어갈 사람이다.
그렇기에 자신만큼은 더 엄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슬프게도, 그녀는 이런 방법밖에 몰랐다.
그녀는 사랑에 기반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녀는 그녀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다.
“마법사가 되면 하늘을 날 수 이써여?”
“날 수 있습니다.”
“높이 높이?”
“그러나 선호되는 방법은 아닙니다. 떨어지면 죽거든요.”
“무, 무셔워!”
이사벨은 그 단호한 말에 깜짝 놀랐는지 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을 가리면 무서운 것이 안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으나, 그럴수록 카린은 더 냉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마법 수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녜. 열심히 할게여.”
카린이 방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이사벨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와. 쫀 거 들킬 뻔했어.’
‘떨어지면 죽거든요’라고 말하는 카린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카린이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소설 속에서도 카린은 저런 말로 사냥감들에게 경고하곤 했었다.
‘눈 가리길 잘했다.’
한편, 카린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냉담한 표정의 그녀는 방문을 걸어 잠갔다.
“사일런스.”
마법을 펼쳐 소음을 차단했다.
“블라인드.”
바깥으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빛을 막았다.
그녀의 방이 많이 어두워졌다.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침대까지 걸어가 폴짝 뛰었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 안에 사람 형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사람 형상의 그것은 인형이었다.
그녀는 인형을 꽉 끌어안고, 아까 겨우 참아냈던 감정들을 토해냈다.
그녀의 주먹이 인형을 강타했다.
“납치해도 되나?”
억지로 참아내어 더욱 격해진 감정 때문에 그녀는 마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콰직- 콰지지직-!
인형의 몸 여기저기가 터져서 솜이 삐져나왔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는 거지?”
이내 인형은 반쯤 폭발하고 말았다.
카린은 은밀한 곳에서 욕구를 모두 폭발시키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오늘도 그녀는 황녀에게 냉정해지기로 다짐했다.
* * *
여태껏 372개의 인형을 박살 낸 카린은 황제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마법 수련에 들어갈 참입니다.”
“그렇군.”
“제법 뛰어난 마법사가 될 겁니다.”
“빌로티안의 피를 이었으니 새로울 일도 아니겠지.”
카린은 황제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건 동류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미묘한 감각이었다.
‘뿌듯해하고 계시다?’
사실 황제는 이사벨의 방을 거의 찾지 않는다.
대외적으로 황제는 이사벨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 있는 상태였다.
빌로티안 제국의 검술을 제대로 익힐 수 없으니 당연한 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니야.’
오늘, 학부모 상담을 하게 된 교사 카린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나와 동류다.’
사실은 황제도 이사벨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을 필사적으로 숨기는 타입.’
카린은 최종 흑막다운 뛰어난 관찰력과 직감으로 황제를 파악했다.
“마법 수련에 일정 부분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소한 것들은 비아톤과 상의하여 재량껏 하도록 하라.”
비아톤은 황녀에게 미쳐 있다.
황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말은 곧, 예산 같은 건 얼마든지 펑펑 써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기억은 없는데.”
카린은 또 다른 사실을 파악했다.
자신과 동류이기는 하나, 황제는 아직 자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
혹은 아직 부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전문 용어로 입덕부정기를 겪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묻지 않으십니까?”
“무엇을?”
“황녀에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마법적 재능이 있는지 말입니다.”
마법은 무엇보다도 재능이 중요하다.
재능이 없는 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카린은 이사벨에게 어마어마한 마법 재능이 내재하여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황제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게 중요한가?”
“보통은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걸 제일 먼저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이곳이 어디인지를 잊었는가?”
이곳은 검술 제국이다.
뛰어난 마법 성취보다, 약간의 검술성취가 더 중요시되는 곳.
카린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말했다.
“그것을 잠시 잊었군요.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잠깐.”
론이 물었다.
“그 애가 즐거워는 하는가?”
“…….”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카린은 잠시 침묵했다.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눈을 가리던 황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카린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그렇군.”
그거면 되었다.
그 말이 들리는 듯했다.
카린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을 묻는 어버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재능이 있나요?
잘할 수 있나요?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을까요?
모두가 그걸 물었다.
그 누구도, 어린아이가 즐거워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마법을 수련한 나도 즐겁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어린 시절 그녀는 늘 칭찬을 갈구했다.
인정받아야만 했다.
카린에게 마법은 인정과 성취의 도구였을 뿐이다.
“폐하께서 황녀를 미워한다는 소문은 잘못되었군요.”
“그런 소문이 돈단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이후, 황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곧 강력한 부정이었다.
“오해를 바로잡지 않으십니까?”
“그런 사소한 오해 따위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것은 모양새가 우습지 않느냐?”
그 모습은 마치 나는 그런 소문 같은 건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만 같았다.
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군요.”
황제의 손가락이 의자를 깊이 파고들었으나 카린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의자의 팔걸이는 단단한 금속이었다.
* * *
여름이 되었다.
빌로티안 제국의 수도 ‘서엘’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태양이 떠오르는 날.
즉, 제국 황제의 생일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미로텔 마법 연방을 비롯하여 각국, 각 세력의 사절단이 황궁을 찾았다.
성대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막상 주인공인 론은 1년마다 찾아오는 이 행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세르나가 황제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었다.
“폐하. 귀찮은 티는 조금만 내셔야 합니다. 어쨌든 이 또한 중요한 외교행사니까요.”
“알겠소.”
“약속하세요.”
세르나의 말만큼은 거역하지 못하는(?) 론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황제로서 해야 할 책무를 다했다.
사절단들과 교류했고,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 연회장을 빛냈다.
‘지루하군.’
이 시간에 차라리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연회가 일주일이나 이어진다는 사실이 끔찍할 정도였다.
그는 지나치게 뛰어난 청력을 가지고 있었고, 귀부인들이 자신의 외모를 두고 쑥덕거리는 것을 모두 들어야만 했다.
“폐하의 얼굴에서는 정말로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어쩜 저렇게 생길 수가 있죠? 초상화를 그려 가보로 저장하고 싶어요.”
사회자가 말했다.
“선물 증정식에 앞서 천재 피아니스트 룬타 경의 축하공연이 있겠습니다.”
곧 선물 증정식이 이어진다.
값비싼 보석과 귀한 향신료. 희귀한 옷감으로 만든 옷과 명인들이 만든 명품 등.
사절단은 자신들이 챙겨온 보물들을 점검했다.
같은 시각, 이사벨은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는 역시 뛰어놀아야 제맛이지.’
빙의한 후 제일 좋은 것은 역시 몸이 안 아프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병원에 누워 있었던 그녀는 틈만 나면 열심히 뛰어다녔다.
어린아이의 몸은 뛰는 것이 즐거웠고, 아프지 않다는 것이 행복했다.
‘재밌다!’
덕분에 그녀는 황녀답지 않게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루루카는 헥헥대면서 이사벨의 뒤를 쫓았다.
이사벨이 쪼그리고 앉고 나서야 루루카는 이사벨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헥, 헥, 뭐 하고 계세요?”
“유모, 예쁘지?”
그녀의 손에는 노란 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손도 흙투성이였다.
황녀의 기품과 체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디서 묻은 건지 얼굴에는 검댕도 묻어 있었다.
그리고 티 없이 맑게 웃었다.
“여기서 빛도 나게 할 수 이써.”
이사벨은 며칠 전 배운 마법을 사용해서 마나를 일으켰다.
꽃이 반짝반짝 빛났다.
“유모 줄게. 션물.”
“고맙습니다! 가보로 간…….”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유모?”
루루카가 사라졌다.
루루카가 사라진 그 자리엔 노란 꽃만 떨어져 있었다.
갑자기 어디론가 증발이라도 한 것 같았다.
“이야, 설마 여기서 이런 보물을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남자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불길했다.
남자의 시선이 이사벨을 향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