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0화
비아톤이 물었다.
“언제부터 그걸 갖고 계셨어요?”
“글쎄. 21년쯤 된 것 같군.”
‘나르비달의 낙인’은 죽음의 신이 내리는 저주.
그때부터 인간은 21년의 삶을 살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21년 후에는 죽는다.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말을 하면 뭐가 바뀌기라도 하느냐?”
두려웠다.
네가 슬퍼하지 않을 것이.
“그래도 저한테는 말씀을 하셨어야죠.”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철부지한테 무슨.”
비아톤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어머니한테 있어서 저는 도대체 뭡니까?”
“쓸데없는 신파극을 찍고 싶지 않구나.”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그래서 제일 두려운 아이지.
“왜 저는 오늘이 되어서야 그걸 알아야 합니까?”
“네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말하기가 두려웠다.
그런가 보다 하고 납득하고 말 것이 분명한 네 모습이 그려져서.
무색무취의 아이는 모든 것에 무색무취였었다.
“보다시피 시간이 많지 않다. 따라오너라.”
베크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재의 벽면을 밀자, 스릉- 하고 벽면이 돌았다.
벽면 안쪽에 비밀스러운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안에 내가 평생을 연구해 온 것들이 있다.”
“…….”
그곳에는 나면서부터 천재였고, 단 한 번도 대륙 제일의 마법사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던 베크사의 온갖 연구 기록이 존재했다.
“어떤 것들은 빼앗았고, 어떤 것들은 훔쳤다.”
젊은 날의 베크사는 자신을 향한 도전을 용서한 적이 없었다.
자신을 모욕한 가문을 철저하게 짓밟고 비전을 빼앗았다.
또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도 묵과하지 않았다.
부당하게 권세를 휘두르는 강자의 것을 빼앗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훔쳤다.
덕분에 이곳에는 수많은 마법서를 비롯하여 멸망한 마도 명가의 비전서들까지도 상당수 존재했다.
“……왜 이걸 저한테 보여주십니까?”
“어른에게는 힘도 필요한 법이니까.”
베크사가 보는 비아톤은 위험했다.
지나치게 강한 힘을 가지게 되면, 순수한 악이 될 수도 있었다.
착한 어린아이가 아무런 악의 없이 잠자리의 머리를 떼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삶에 대한 고찰이 별로 없는 자에게 강한 힘과 보물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그녀가 일평생 일궈왔던 것들을, 장성한 아들에게 넘겨줄 때가 되었다.
“잘 찾아보면 빌헬름이라는 놈의 가문과 놈들이 연구하던 금지된 마법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것도 있다. 그리고 이쪽은 내가 ‘나르비달의 낙인’에 대해 조사한 것들이지.”
“…….”
어느새 비아톤은 울고 있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수많은 자료는 미로텔 마법 연방과 마탑이 군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학술적 가치가 어마어마한 것들이었다.
평범한 사람조차도 대마법사로 탈바꿈시켜 줄 수 있을 정도의 수많은 신비가 이곳에 담겨 있었다.
‘나는 네가 기뻐할 줄 알았다.’
이러한 보물들을 넘겨받고서 기뻐할 아들의 모습이 두려웠었다.
그러나 아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비아톤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수많은 보물을 보며 비아톤은 한 가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외롭게 견뎌오신 겁니까?”
베크사는 비밀 공간 중앙에 깔아놓은 작은 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녀는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슬퍼하는 것이냐?”
슬퍼하느냐?
이걸 묻기까지 21년이 걸렸다.
슬퍼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을까 봐 너무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했다.
조금 더 빨리 용기를 내면 좋았을 것을.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울지 않을 것 같은 아들이 울고 있었다.
무색무취의 아이에게 향기가 생겼다.
“슬퍼하지 마라. 어차피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
베크사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마지막까지 바랐던 것을 결국 얻었다.
아들에게는 이제 삶의 의미가 생겼고, 어른이 되어, 어른답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나르비달의 저주를 없애기 위해서는 아마도 용의 심장이 필요할 것이다.”
“…….”
“잘 듣도록 하여라. 파헬로가(家) 최후의 가주가 남기는 말이다.”
그 말은 비아톤에게 파헬로 가문을 넘기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가문을 짊어져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를 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네가 어른이 된 이유를 잊지 말거라. 네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마음을 다하여 지키거라. 설령 지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 과정이 너의 삶을 향기롭게 할 것이다. 내 시신은…….”
내 시신은 불태워 바르칼트 호수에 뿌려다오.
그 말을 하려 했으나 비아톤이 말을 끊었다.
“어머니.”
비아톤의 눈에는 전에는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됩니까?”
자기가 안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안아달라는 것인지.
이왕이면 안아달라는 것이면 더 귀엽겠는데.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알이 떨어졌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아들아.’
베크사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고, 비아톤은 베크사의 대답을 끝내 듣지 못했다.
공간은 침묵으로 가득 찼고, 침묵 사이로 한 어른이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왔다.
비아톤은 대답 없는 베크사를 안고서 한참을 울었다.
정말로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아톤은 몸을 일으켰다.
“정말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어머니다우시군요.”
베크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당장에라도 눈을 떠서 ‘뇌전을 꽂아주랴?’ 하고 호통을 칠 것만 같았다.
비아톤은 올곧은 시신 앞에 절을 올렸다.
“경애하였습니다, 어머니.”
* * *
나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나.”
미하엘의 눈이 푸르죽죽했다.
빨간색인지 보라색인지, 아무튼 요란한 색깔의 눈두덩이가 되어 아주 크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바늘로 콕 찌르면 터질 것 같았다.
미하엘은 씩씩대며 의자에 앉았다.
“분하다. 또 지다니.”
“여기 앉아봐요. 유리. 약을 가져다줘.”
마침 상주하는 신관님이 출장을 나갔다고 해서 임시방편으로 약을 좀 발라주었다.
미하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실망하지 마. 다음에는 내가 이길 거니까.”
근데 방금 빠직! 소리가 났는데.
어깨에서 난 것 같은데.
방금 어깨 빠진 거 아니야?
그렇지만 미하엘은 별로 고통을 못 느끼는 듯했다.
“일단 좀 자요.”
“실망 안 했지?”
“전 그런 걸로 실망 안 해요.”
“다행이다. 헤헤.”
“근데 어깨 안 아파요?”
“어깨가 왜 아파?”
미하엘은 순진한 표정으로 어깨를 돌리려다가 으악! 소리를 냈다.
비명을 질렀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갑자기 흐아아암! 하고 큰 소리를 냈다.
“하품한 거야.”
“……네. 나중에 신관님한테 치료를 부탁할게요. 일단 좀 잠이라도 자요.”
“알겠어. 네가 그렇게까지 부탁한다면 특별히 자주지.”
미하엘은 휘적휘적 걸어가서 내 침상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
저 흙투성이의 몰골로 내 침상에 눕다니.
하아.
깊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완전히 곤죽이 되어서 온 것이 조금 짠하기도 했고.
‘카만 오빠는 괜찮으려나?’
완전히 곯아떨어진 미하엘을 뒤로한 채, 나는 카만 오빠의 막사 쪽으로 가보았다.
한 번 가봐서 그런지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오라버니, 안에 계세요?”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안쪽에 기척은 있었다.
“들어갈게요.”
막사 안으로 들어간 나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카만의 몸 상태는 지나치리만큼 깔끔했다. 마치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고 돌아온 것 같았다.
아직 실력 차가 많이 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냐?”
“그냥요.”
“그냥?”
“네. 그냥 보고 싶어서 왔어요.”
카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그 나름대로 호의를 베풀었다.
“몹시 사납게 상대해 주길 바라는 모양이지?”
“아니요!”
답답하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했다.
저런 식으로밖에 호감을 표현할 줄 모르는 거니까.
“그런 거 말고, 우리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친해질 수 있는 방법?”
카만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른다.”
약간은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동생이란 존재는 일단 만나면 ‘한 판 뜨자!’ 하고 달려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앉아봐요. 제가 디저트를 가져왔어요. 디저트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거창한 건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냥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기분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니?
그런 대화면 충분했다.
“이렇게 마주 앉아서 대화해 본 적 있어요?”
“…….”
카만은 약간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살짝 인상을 찡그렸는데 기억을 열심히 더듬는 모양이었다.
“모른다. 없었던 것 같군.”
“같이 디저트를 먹은 경험은요?”
“없어.”
카만은 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무척 혼란스러운 듯했다.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나눈 적은요?”
“왜 그런 걸 해야 하지?”
나는 카만의 혼란스러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로는 ‘이런 건 일절 필요 없는 행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런 걸 갈망하고 있겠지.
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진짜 너무 짠하네.
막 챙겨주고 싶게.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
“해본 적 없어도 괜찮아요. 이제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면 돼요.”
나는 늘 그렇듯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예쁜 미소를 짓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저 잘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헤벌쭉 새어 나왔으니까.
“저는요, 오라버니들이 싸워서 조금 당황했지만요, 그래도 그건 오라버니들의 일이니까 간섭하지는 않기로 했어요. 그런데 미하엘 오빠가 심하게 다쳐서 조금 놀랐고 속상했어요.”
“…….”
“그래서 걱정돼서 여기도 와봤어요. 카만 오라버니도 크게 다쳤을까 봐요. 미하엘 오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라버니라도 크게 안 다쳐서 마음이 놓여요. 헤헤.”
카만이 다친 곳은 거의 없었다.
단 한 곳.
팔꿈치 부근에 작은 찰과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나는 품속을 뒤적거려 약을 꺼냈다.
카만의 팔꿈치에 약을 발라주었는데, 생각 외로 카만은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저는요, 미하엘 오빠랑 카만 오라버니랑, 저랑 다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어요.”
“이봐.”
내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리라는 기대는 안 했기에 ‘이봐’라는 호칭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진 말이 나를 무척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