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1화
카만이 말했다.
“기준이 무엇이냐?”
“기준이요?”
“그래. 기준.”
이사벨은 카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한참 동안 고민해야 했다.
굳게 앙다문 입술을 보아하니 순순히 말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슨 기준이요?”
“…….”
카만은 한 번 더 침묵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미하엘의 호칭과 내 호칭이 다른 것이지?”
“네?”
이사벨은 고개를 갸웃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호칭을 달리했던 것 같기는 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고 그냥 자연스레 말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물론, 그런 사소한 호칭 같은 건 아무래도 전혀 상관은 없다.”
“…….”
“내게는 아주 조금의 영향도 끼치지 않는 자질구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
“그러나 네게 굳이 묻는 이유는 그저 그 호칭에 어떠한 기준이 정립되어 있는지 학술적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일 뿐이다.”
“지금 저랑 대화하면서 제일 길게 말한 거 알아요?”
이사벨이 활짝 웃었다.
이렇게 길게 말을 하는 걸 보니 마음의 문을 조금은 연 것 같았다.
카만은 별다른 동요 없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기준이 무엇이냐?”
나는 그저 그 기준이 궁금할 뿐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기준은 딱히 없어요. 자연스럽게 말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미하엘 오라버니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거슬린 건가요?”
빌로티안 황가에는 500년간 여아가 태어나지 않았고, 남매간의 호칭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는 않았다.
소설 속 이사벨이 모두 ‘오라버니’라고 호칭했으니 아마도 오라버니가 정식 호칭인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혹시 예의에 어긋났다면, 그래서 오라버니가 불쾌해졌다면 그렇게 부르지 않을게요.”
“…….”
카만은 어딘지 모르게 핀트가 살짝 어긋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속이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그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호칭이 저리 거슬리는지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게 딱히 거슬린 건 아니다.”
“그러면요?”
이사벨은 생각했다.
‘설마 자기를 오빠라고 안 불러줘서 불편한 건 아닐 테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예의 문제였다.
황가의 예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카만은 또다시 침묵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모른다.”
“네?”
“…….”
카만은 남과 소통하는 능력이 조금 부족했다.
다행히 이사벨은 그렇게 사회성이 부족한 카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카만이 왜 저렇게 됐는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사벨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무엇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건지 정확히 말해줘요. 그래야 알죠.”
“네가 말했던 그것.”
이사벨은 문득 갑자기 재미있어졌다.
‘스무고개?’
스무고개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지만 친구가 없어서 못 했었다.
그녀를 상대해 주는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은 다 너무 바빴고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친구도 없었으니까.
“잠깐만요. 딱 기다려 봐요.”
골똘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한 번도 못 해봤던 놀이라고 생각하자 흥미진진했다.
대화를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봤다.
“정답! 우리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
그런데 이건 이미 아까 ‘모른다’라고 대답을 했었다.
“정답! 디저트와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방법?”
“…….”
근데 이건 나랑 방금 했잖아?
이사벨은 자문자답하고 다음 정답을 말했다.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이사벨은 멈칫했다.
스무 번은커녕 세 번 만에 정답을 맞추게 생겼다.
이사벨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정답.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나누는 방법을 모른다.”
“…….”
카만은 또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가르쳐 줘.”
* * *
지르델의 국왕 발키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놈의 이동 관문. 맨날 말썽이지.”
마법 연방에 아주 비싼 값을 치러가면서 유지 중인 이동 관문.
꼭 필요할 때면 이렇게 고장이 나더라.
“마차 바퀴는 또 왜 고장이 났느냐?”
“얼른 수리하겠습니다!”
왕성에서 만날 사람이 한 가득이다.
그중에는 황녀도 있었다.
“황녀한테는 더 늦는다고 서신 보냈겠지?”
“예, 보냈습니다. 마침 답장도 왔습니다.”
황녀의 서신을 받아 든 발키오는 허허- 웃었다.
“황녀가 지금 나이가 몇이지?”
“여덟입니다.”
“글을 어찌 이렇게 예쁘게 잘 쓸꼬?”
발키오는 문무에 조예가 깊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황녀의 편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존재하지 않는 손녀에 대한 애정마저 샘솟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무척 신경 써서 작성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와도 괜찮다는군. 자기 오라버니와 처음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좋다고 말이야. 여기서 오라버니는 카만 황자겠지?”
“예, 그렇습니다.”
“카만 그 얼음장 같은 녀석과 어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단 말이냐? 그놈은 찔러도 얼음이 튀어나올 놈이라고.”
그러니 이사벨의 말은 틀림없이 거짓이었다.
“여덟 살에 불과한 아이가 어찌 이렇게 속이 깊단 말이냐?”
라헬라가 ‘제국의 미래를 결정할 키’라고 엄청나게 강조했다.
정말로 그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황녀를 꼭 만나보고 싶기는 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귀엽다지?”
“알페아 왕국에서는 햇살이라고 불린답니다. 혹은 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그래. 황녀 선물 준비는 잘 됐겠지?”
“물론입니다.”
황녀를 위하여 왕국 최고의 재봉사를 초빙하여 공주님 인형을 만들었다.
거기에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인형 옷 몇 벌과 인형을 위한 보석들도 함께였다.
요즘 어린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선물이었다.
“엄청나게 좋아하겠군. 흐흐.”
* * *
지르델 국왕 발키오가 마차 고장 때문에 좀 더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은 나는 오히려 더 좋았다.
“네. 이사벨. 이렇게 불러보세요.”
“이. 사. 벨.”
카만에게 있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건 마치 브로콜리를 먹는 것과도 같은 행위인가 보다.
나는 그 초록 똥을 먹는 게 진짜 너무너무 힘들고 싫거든.
그렇게 생각하면 카만의 힘듦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3일 동안 많이 나아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제 눈을 보세요.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눈을 마주쳐야 해요.”
“그러면 싸우자는 뜻 아니냐?”
“아니에요!”
나는 내 전매특허인 무- 해한 표정을 짓고서 카만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카만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제대로 못 했는데 이제는 시간이 제법 늘었다.
“거봐요. 할 수 있잖아요.”
“낯 간지러운 짓이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제 이름도 불러주고, 저랑 3초나 눈을 마주쳤고요.”
첫날 우리는 눈 마주치기 연습부터 시작했다.
다정하고 따뜻한 대화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가여운 카만을 위한 내 속성 강의(?)였다.
“조금 더 부드럽게 불러보세요.”
“…….”
“자, 따라 해보세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나한테 맨날 ‘자, 입 벌려보세요’라고 나를 어르고 달랬던 게 기억이 났다.
힘겹게 입을 벌리면 나한테 초록 똥을 먹였었지.
나는 휘익휘익 고개를 저어 그때의 기억을 떨쳐내고 다시금 말했다.
“이, 사, 벨.”
그러자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벨.”
싱그럽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마치 봄날의 기분 좋은 바람 같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휙 돌렸다.
“황녀님. 복귀하였습니다.”
“선생님!”
비아톤 경이었다.
“본가에 다녀오신다고 했잖아요. 금방 오셨네요?”
“네. 황녀님이 보고 싶어서 금방 왔지요.”
“정말요?”
그냥 해주는 말인 걸 알지만 여덟 살의 육체는 늘 그렇듯 솔직하게 반응했다.
나는 활짝 웃었다.
“그럼요. 정말이지요.”
누군가 나를 이렇게 좋아해 준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었다.
마음이 꽉 찬 느낌이 들어서 무척 좋았다.
“기뻐요.”
“황녀님이 기뻐하시니까 저도 기쁘네요.”
비아톤 경은 늘 그렇듯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힐끗 옆을 보니, 카만이 비아톤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지.
비아톤 경을 보고 배우면 돼요.
방금처럼 이름을 불러주고, 지금처럼 눈을 마주치…… 응?
‘뭔가 이상한데.’
비아톤 경은 늘 하얀색 계통의 밝고 화려한 옷을 입는 편이었다.
그의 외모가 아니라면 소화하기 어려운 옷들도 즐겨 입었는데, 그것이 또 무척 잘 어울리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평소 비아톤 경답지 않게 온통 검은색투성이였다.
“왜 그러세요?”
“…….”
작품 내에서 비아톤 경이 이렇게 검은 옷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작중에 그것이 묘사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남주 아룬에 의하여 내 아버지 론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감옥에 갇히게 된 비아톤이 이렇게 말했다.
「“내게 검은 옷을 다오.”」
비록 적이었지만 비아톤의 신의를 높게 산 아룬은 비아톤에게 그 정도 아량은 베풀어주었다.
비아톤은 결국 검은 옷을 입고서 친우을 오랫동안 추모했다.
모든 음식을 거부한 비아톤은 감옥 안에서 굶어 죽는다.
가부좌를 튼 상태 그대로 말이다.
“우리 황녀님이 왜 그러실까?”
비아톤 경은 눈이 시릴 만큼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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