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2화
이상한 일이었다.
비아톤 경의 눈이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저토록 화사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오늘따라 조금 속상했다.
나도 모르게 비아톤 경의 한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늘 따뜻하기만 했던 비아톤 경의 손이, 오늘은 무척 차가웠다.
“손이 차가워요.”
손을 잡으니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들었다.
아마도 비아톤 경이 가지고 있는 마력에 각인된 감정이 내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내 몸이 덜덜 떨려왔다.
“…….”
“……황녀님?”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비아톤 경의 마음속은 지금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저 마력에 묻어난 약간의 감정이 전해졌을 뿐인데, 나는 그 편린조차도 너무 힘겨웠다.
비아톤 경이 경험하고 있는 그 감정의 깊이나 크기는, 감히 나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너무 슬퍼져서.
세상의 모든 불행이 내 어깨 위에 올라온 것 같아서 너무 무거웠다.
비아톤 경에게서 전달된 감정의 편린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감정의 일부가 전달되었을 뿐인데.’
겨우 그럴 뿐인데.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지난 20년의 삶을 통해 단련된 멘탈이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부서질 것 같았다.
‘그럼 비아톤 경 본인이 느끼고 있는 건 어느 정도라는 거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아톤 경은 지금 정말로 위태로운 상태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황녀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언어로도, 비아톤 경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없었다.
그 마음과 슬픔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건 기만이니까.
내가 눈물을 보이자 비아톤 경이 한쪽 무릎을 꿇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황녀님.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었어요? 혹시 무서운 꿈이라도 꾼 건가요? 아니면 카만 황자님께서 모질게 굴었나요?”
“…….”
나는 그냥 비아톤 경에게 더 가까이 걸어갔다.
비아톤 경의 마력과 내 마력이 반응하며 기이한 환상이 보였다.
비아톤 경의 마력이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고, 그것을 내게 전달했다.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됩니까?
그럴 리 없는데, 늘 단단한 사람인데, 나한테는 이렇게 들렸다.
-한 번만 안아주세요.
그것은 내게 거부할 수 없는 환청이었다.
무언가가 내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는 팔을 크게 벌려 비아톤 경을 꼭 안아주었다.
움찔.
비아톤 경의 몸이 살짝 떨렸다.
비아톤 경의 몸은 내 몸보다 훨씬 컸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그 몸이 작게 느껴졌다.
나는 비아톤 경의 등을 토닥였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울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모두 허사였다.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비아톤 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지도 않았다.
목석처럼 굳어서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앉아 있기만 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입을 열었다.
“나는 선생님을 경애해요. 선생님은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에요.”
“…….”
“그렇지만 오늘은 조금 작아도 돼요. 황녀인 내가 허락해요.”
“…….”
“내가 안아줄게요.”
이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비아톤 경을 안아줘야만 했다.
안아달라는 환청을 무시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소망이 너무 절실했다.
뚝. 뚝.
내 목덜미에 뜨거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아주 큼지막한 눈물방울이었다.
‘응?’
나는 고개를 올려 비아톤 경을 바라보았다.
비아톤 경이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 * *
제 막사로 돌아온 카만은 한동안 자리에 앉지 못했다.
‘아까 그건 무엇이었나?’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너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비아톤에게 다가간 이사벨이, 난데없이 작아도 된다며 울었고, 그에 따라 비아톤도 함께 울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도 울컥했다는 사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나는 도대체 왜?’
왜 눈물이 날 뻔했는가.
‘왜 내 속이 쓰렸던 거지?’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보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동이 틀 즈음이 되어서,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일기를 썼었지.’
불태워 버렸던 그 일기.
존재조차 의식적으로 잊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내용들도 하나하나 기억나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잊고 있던 것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생각이 났다.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는 법. 마음을 나누는 법.’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면 만만하게 생각하고 기어오른다.
마음을 나누는 것만큼 쓸모없고 소모적인 시간은 없다.
단단하게 굳어진 그의 생각에 쩌적, 쩌적-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보았던 건…….’
그건 어쩌면 어린 시절의 카만이 그토록 바라왔던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카만도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 마음을 좀 알아달라고, 그래서 그렇게나 싫어하는 검을 열심히 휘둘렀다.
그렇게 살다 보니 옛것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는 서랍 속에서 작은 노트를 하나 꺼냈다.
어린 카만이 그랬던 것처럼 일기를 써 내려갔다.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그러나 어린 카만처럼 솔직하지는 못했다.
모든 감정을 써내지 못했고, 더 이상 깃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무언가를 쓰고 싶었던 카만은 깃펜을 내려놓았다.
‘네가 며칠 더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이사벨이 잃어버린 옛 마음을 찾아준다.
이사벨이 옆에 있으면, 잊고 있던 ‘나’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사벨이 비아톤을 안아주던 그 모습에 눈물이 났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일기를 완성했다.
[그 녀석은 제법 쓸모가 있는 녀석이다.]아직 갈 길이 멀었다.
* * *
이사벨은 비아톤, 나르모르, 유리와 함께 지르델 왕궁을 찾았다.
비아톤의 역할은 보조였으니 뒤쪽에 빠져 있었고, 이사벨을 필두로 나르모르와 유리가 각각 왼쪽과 오른쪽 뒤에 시립했다.
‘딱 보면 인상 좋은 할아버지 같다더니 그 표현이 딱이네.’
지르델의 국왕 발키오.
그는 기본적으로 7왕 중에서도 온화한 편에 속하며 대체적으로 ‘선인(善人)’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제법 풍만한 몸집에 인자한 인상을 가진 남자.
‘상당히 상식적인 사람이고 비교적 착하긴 한데, 지나치게 아재 개그를 사랑하고 ‘라떼는’을 남발하는 설정이었지?’
발키오가 말했다.
“일정이 늦어져서 미안하구나. 이동 관문이 고장 나고 또 마차까지 고장 나는 바람에. 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것을 다시 한번 사과한다.”
“아니에요. 덕분에 저도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었어요.”
“카만 황자랑 말이냐?”
“네.”
“마음 씀씀이가 정말로 곱구나.”
저렇게 또 거짓말을 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 노력하다니.
참으로 훌륭한 인성을 가진 아이였다.
발키오는 인자하게 웃었다.
“그 고운 마음에 나도 응당 보답을 해야겠지.”
양옆으로 나열한 신하들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이사벨에게 그러한 기척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제발!’
‘아닙니다!’
‘그거 아닙니다!’
간절한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왕이 궁에 들어오기 싫은 걸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
하아.
저거 아닌데.
신하들은 반쯤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었다.
이사벨이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아.
이거 본 거 같은데.
“모르겠지? 알려줄까?”
“잠깐만요. 맞출 수 있어요.”
이사벨은 진지해졌다.
모르겠지라는 말은 어린아이의 뇌와 자존심을 몹시 자극했다.
아, 이거 알 거 같은데.
알 듯 말 듯 생각나지 않았다.
“아, 모르겠어요.”
“알려주랴?”
“……네.”
“궁시렁궁시렁.”
신하들의 몸이 바짝 굳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발키오를 좋아하는 편이었으나 저런 개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딱 한 명은 반응이 달랐다.
활짝 웃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이사벨이었다.
“재미있지?”
“네!”
여덟 살은 원래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즐거울 나이였다.
사실 이사벨 스스로도 조금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저런 개그가 이렇게 웃기다니.
그 모습을 보며 발키오는 크게 흡족해했다.
‘거봐라, 이 녀석들아. 황녀가 이렇게 좋아하지 않느냐?’
신하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체면을 생각해 참았다.
“전하. 저도 재미있는 문제를 내볼까요?”
“허허. 기대하지.”
“직장인이 제일 좋아하는 말은?”
“…….”
발키오는 열심히 생각했으나 결국 답을 맞추지 못했다.
“정답이 무엇이냐?”
“주말.”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대표되는 왕국.
말하자면 직장인들을 갈아 넣어 부유해진 왕국이다.
신하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밝아졌다.
정말 야망 있는 몇 명을 제외하면, 그들 또한 주말을 반납하고 강제로 왕궁에 출근하는 공무원들이었으니까.
어쨌든 발키오는 이사벨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허허허! 아주 신기하고 재밌는 얘기구나!”
“또 있어요!”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실질적 주인인 이사벨이, 지략가 나르모르와 함께 준비한 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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