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3화
이사벨은 황녀 이사벨과, 사람 이사벨을 철저히 구분할 줄 알았다.
지금은 황녀 이사벨이었다.
그리고 황녀 이사벨은 작은(?) 소망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내게 선물을 준 이 세상에, 나도 선물을 남기자.
비록 빨리 떠나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중이었다.
“직장인에게 가장 쓸모없는 이론은?”
“흐음…….”
턱을 매만져 보았지만 답은 알 수 없었다.
“내가 알기론!”
‘내가 알기론’은 지르델 국왕 발키오가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었다.
신하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허허허!”
자기를 저격한 것인 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발키오는 아예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그 직장인은 성공하기는 글러먹었구나. 내가 알기론 그런 마음으로 성공한 녀석은 한 명도 없다. 자고로 나 때는 말이야. 힘들다는 투정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말이 약 10분간 이어졌다.
내가 젊은 적에는 지금 세대보다 훨씬 더 일을 열심히 했고, 요즘 힘들다고 투덜대는 녀석들은 배가 불러서 그렇다느니, 요즘 애들은 정신력이 나약하다느니, 전쟁도 안 겪은 등 따수운 세대라느니.
밝아졌던 신하들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어쨌든 네 유머 감각이 탁월하구나.”
“유머 아니었어요.”
신하들의 표정을 통해 이 왕국의 실정을 한 번 더 체감했다.
저 표정들이 여론을 말해주었다.
“저는 지르델 왕국에 선물을 주려고 온 거예요.”
이사벨은 단순히 농담 따먹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신하들의 반응을 통해 저들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였다.
참고로 이 방법은 지금 뒤에 서 있는 나르모르와 함께 상의하여 찾아낸 방법이었다.
“선물?”
발키오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예쁜 인형을 선물로 준비했다.
안 그래도 이걸 주면 어린 이사벨이 무척 행복해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어린 이사벨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주말이 있는 삶이요.”
신하들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테이사벨 이동 관문은 단순히 값싼 비용의 이동 관문이 아니에요. 시간을 사는 기술이죠.”
“시간을 산다?”
이사벨이 방긋 웃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귀하겠지만 저한테는 정말로 귀하거든요.”
“……아.”
발키오는 무어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저 아이가 너무 밝고 따뜻해서 잊고 있었다.
저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비용이 저렴해졌다는 것은, 그 혜택이 골고루 전해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현재의 이동 관문은 부자만 이용할 수 있다.
비용 자체가 너무 비싸니까.
그러나 테이사벨 이동 관문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지르델 왕국은 물류 도시잖아요.”
알페아 왕국보다 훨씬 더 무역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제국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따로 관리할 정도로 말이다.
“물류가 빨라질 거예요. 빨라진 만큼,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만큼, 모두의 시간이 늘어날 거고요. 주말이 생길 거예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 늘어날 수 있어요.”
“허허허!”
발키오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신하들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왕이 저렇게 자신만만해할 때면 꼭 ‘내가 알기론’ 혹은 ‘나 때는 말이야’가 튀어나오니까.
“물류가 빨라진다는 건 그만큼 같은 시간에 많은 물자를 옮길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네. 그렇죠?”
“그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이사벨은 방긋 웃었다.
발키오라면 분명히 저렇게 얘기할 줄 알았다.
‘저러니까 직장인들이 일을 빨리 안 하려고 하지.’
일을 빨리 마무리해 봐야 빨리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빨리 마무리하면 새로운 일이 또 주어져서, 결국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뿐이었다.
“단순히 그렇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전하.”
“그게 무슨 소리냐?”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왕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해요.”
이곳은 알페아 왕국보다 훨씬 더 마법 연방 미로텔에 가까운 곳이었다.
당연히 미로텔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수많은 사람이 ‘테이사벨 이동 관문’과 관련된 루머를 믿고 있었다.
최근 마법 연방은 ‘테이사벨 이동 관문이 치명적이다’라는 프레임 대신, ‘테이사벨 이동 관문은 알게 모르게 부작용을 유발시킨다’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다.
이를테면 탈모가 온다거나, 비만이 된다거나 하는 등의 프레임이었다.
“불안을 자극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선동 수단이잖아요.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테이사벨 이동 관문 기술을 강제로 쓰게 할 수는 없어요. 잠깐은 가능해도 결국 큰 반발이 생길 거예요.”
신하들의 반응을 통해 그것도 다 확인했다.
신하들은 왕 앞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표정을 드러냈다.
완벽하게 수직 관계인 왕국의 신하들은 왕 앞에서 표정조차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히 자유로운 분위기라 할 수 있었다.
그건 지르델 왕국이 왕정 국가치고 상당히 민주적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해요. 그러려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해요.”
“…….”
나르모르가 한마디를 보탰다.
“주말이 있는 삶.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삶. 테이사벨 이동 관문이 그것을 이루어 드릴 수 있습니다, 전하.”
사실 신하들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나르모르가 이사벨 쪽을 바라보자 이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는 지략가 나르모르의 시간이었다.
“또한 저희는 이 정도 품질의 다이아몬드를 꾸준히 공급할 수 있습니다. 최근 지르델 왕국 내에 다이아몬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협력해 주신다면, 저희는 이 정도 품질의 다이아몬드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로 체결하겠습니다.”
“우리한테만 너무 좋은 조건을 들이미는 것 아닌가? 수상한데, 하하!”
발키오는 인자하게 웃으면서 나르모르와 황실의 속셈을 읽어내려 애썼다.
나르모르도 순순히 인정했다.
“지금은 사업 초기니까요. 결국 규모의 경제를 완성하여야 합니다. 초기에는 약간의 출혈을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에게 다이아몬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어찌 알았지? 대외적으로 알린 사실이 아닌데 말이야.”
“로스일드 공작가의 레이나 영애와 만났습니다. 이곳에 이렇다 할 사교 파티도 예정되어 있지 않았고, 그분의 친구가 있는 곳도 아닙니다. 무언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오셨을 텐데…… 그분이 혼자 움직였을 리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누군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왔고, 레이나 영애는 겸사겸사 함께 놀러 온 것이겠지요. 게다가 제가 일부러 떨어뜨린 다이아몬드를 아주 유심히 살펴보셨습니다. 마치 최대 관심사가 다이아몬드인 것처럼 말이죠.”
이사벨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응? 그때 다이아몬드를 일부러 떨어뜨린 거였어?
레이나의 반응을 살펴보려고?
‘와…….’
이사벨도 나르모르가 조금 무서워지는 한편, 저 주식 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이사벨 일행이 궁에서 빠져나간 뒤, 발키오는 신하들과 긴급 회의를 가졌다.
발키오는 턱을 매만지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너희들, 오늘따라 뜻이 통한다? 너네 원래 사이 안 좋잖아?”
지르델 왕국의 신하들은 두 갈래 파로 나뉘어 있다.
대신 브릴리오를 주축으로 한 브릴리오파.
또 다른 대신 엘리앙을 주축으로 한 엘리앙파.
무슨 일이든 반대편에 서서 서로를 물고 뜯었는데 오늘만큼은 뜻이 같았다.
“……그러니까,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고?”
“명분과 실익을 모두 잡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전하.”
“그렇습니다. 국익을 위한 것이기에 저도 브릴리오 대신과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오래간만에 모든 신하의 뜻이 통했다.
“나 왠지 속는 기분인데.”
“아닙니다, 전하. 저희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지르델뿐입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전하. 오로지 지르델의 안녕과 국익을 생각하는 저희들의 충정을 생각하여 주십시오.”
신하들과의 회의를 끝낸 발키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방에는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알페아 국왕 라헬라로부터 온 서신이었다.
[어때요? 제국에서 마음먹고 육성 중인 정치 전략 자산을 만난 소감이?]내색은 안 했지만 발키오는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신하들의 말대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가져왔다.
말을 하는 모양새로 봤을 때, 결코 여덟 살짜리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는 짧게 답신을 보내기로 했다.
[믿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정말인 것 같군. 그 아이는 전략 자산이 틀림없구나.]이사벨을 보좌하는 나르모르라는 청년-청년치고는 조금 어려 보이긴 했지만-을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황실에서 작정하고 키워 이사벨 옆에 붙인 것이 틀림없었다.
이사벨은 제국이 작심하고 키워내고 있는 정치적 전략 무기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조금 후회되기도 했다.
“그런 애한테 인형 선물을 준 건 실수였으려나?”
사실 신하들이 눈빛으로 말리기는 했다.
발키오는 원래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알고 있어도 알아주지 않았을 뿐, 신하들의 눈빛과 표정을 누구보다 잘 포착하고 있었다.
‘보다 고상하고 우아한 선물을 줬어야 했나?’
이를테면 인문학적 소양을 위한 고찰이 담긴 책이라든가, 복잡한 국제 정세를 꿰뚫는 통찰이 담긴 정치 교과서라든가, 뭐 그런 것들.
한편, 이사벨은 왕궁에서 머무는 것을 거부하고 제국군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다.
지르델 왕국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니 이곳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막사에서 쿠키를 굽고 기다리고 있던 유리가 뛰어나와 이사벨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맛좋은 버터 쿠키를 구워놨어요.”
“유리.”
“네?”
이사벨의 표정이 상당히 진지했다.
무언가를 깊이 고뇌하는 표정이었다.
버터 쿠키를 구워놨다는데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건 아주 심각한 일이 분명했다.
유리는 자세를 바로 하고서 이사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거지?’
결국 이사벨이 입을 열었다.
유리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