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4화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어. 짜증 나!”
“짜증…… 난다고요?”
유리는 깜짝 놀랐다. 이사벨의 입에서 ‘짜증 난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죽음이 예정된 저 삶조차도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씀하시는 분인데……!’
도대체 무엇이 저 햇살 같은 황녀님을 짜증 나게 한단 말인가.
유리는 그 악(惡)을 멸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 악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저 햇살의 바래게 하는 것이라면, 유리는 그것과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엇이 황녀님을 불편하게 했나요?”
이사벨은 속상한 듯 유리에게 뭔가를 건넸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인형이었다.
‘인형?’
자세히 보아하니 머리가 엉망이었다.
“머릿결이 안 돌아와. 샴푸도 잘해 줬고 린스도 잘해 줬는데.”
“…….”
이사벨은 인형 놀이에 진심이었다.
“머리도 열심히 땋아줬는데 엉망진창이야.”
“…….”
유리가 보기에도 그랬다.
머리를 땋았다는 것보다는 볶았다고 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였다. 혹은 강력한 마력 폭탄을 얻어맞은 것 같기도 했다.
‘저거…… 약간의 마법이 걸려 있어서 머릿결도 유지되고 알아서 예쁜 형태를 갖추는 인형이잖아.’
국왕이 고심하여 직접 선물한 것이니 그 정도 마법적 장치는 당연했다.
누가 만져도 일류 헤어 디자이너가 만진 것처럼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설명서만 잘 따른다면 말이다.
‘저게…… 되네?’
하지만 이사벨의 인형의 꼴은 신기하리만치 엉망진창이었다.
분명 열심히 꾸몄는데, 안 꾸미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저절로 새어 나오는 마력이 너무 지나쳐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드레스와 보석의 조합도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주황색 볶은 머리와 은색 티아라도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모양새였다.
“제가 만져볼게요.”
유리가 몇 번 만지자 인형은 다시 예뻐졌다.
확실히 장인들이 만든 것이라 복구 능력도 매우 뛰어났다.
“난 왜 그렇게 안 돼?”
입술을 삐죽 내미는 이사벨을 보며 유리는 가볍게 웃고 말았다.
황녀님도 못 하는 게 있구나.
“조금씩 연습하면 될 거예요. 저야, 데일사 시종장님에게 열심히 훈련받았으니까 이렇게 되는 거고요.”
“나도 열심히 하면 유리처럼 할 수 있어?”
“당연하죠!”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사벨에게는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멋을 부리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멋이 달아나는 재능이었다.
인형은 이사벨이 만질수록 이게 된다고? 싶을 정도로 망가졌다.
“짜증 나!”
진심이었던 만큼 더 속상했다.
그날 밤, 이사벨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미하엘 오빠랑 같은 핏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기이해진 형상의 인형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면서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되네?”
“……조, 조금만 더 연습하시면 될 거예요.”
“연습할수록 더 이상해지는걸?”
“…….”
유리조차 더 이상 위로나 응원을 건네기 애매해져 버렸다.
확실히 이사벨에게는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
손만 대도 아름다워지도록 설정된 저 마법 인형을 저렇게 만들다니…….
저 어려운 것을 해냈다.
‘그런데…….’
유리는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어딘지 모르게 성장이 더뎌지신 것 같네?’
빌로티안의 육체는 성장이 무척 빠르다. 그런데 이사벨은 10살쯤의 발달 정도에서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하엘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뭐 아무렴 상관없지. 귀엽잖아.’
더욱 깊은 밤이 되었다.
“황녀님. 이제 주무실 시간이에요.”
“……응.”
유리는 이사벨의 이불을 덮어주고 가슴을 토닥여 주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오늘은 잠이 안 오세요?”
“응, 분해.”
인형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 스스로도 인형 놀이에 이렇게 빠질 줄 몰랐다.
그렇게 진심이었던 만큼, 그것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슬퍼졌다.
“비아톤 선생님이 나한테 거짓말했어.”
“비아톤 경이 거짓말을 했다고요?”
“나한테 손재주가 정말 뛰어나다고 했단 말이야.”
오래전, 론의 그림을 그렸을 때. 그때 분명 비아톤은 이사벨의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추켜세웠었다.
그 이후로도 비아톤은 늘 그렇게 말해줬고, 그래서 이사벨은 자신이 손재주가 뛰어난 줄 착각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다양한 걸 경험해 봐야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는 법이었다.
“요리 실력이 형편없을 때부터 약간 눈치채고는 있었는데…… 그래도 외면했단 말이야? 근데 오늘 확실히 깨달았어.”
인정하기 엄청 싫지만 그래도 인정은 했다.
“나눈 왕똥손이야.”
이불을 쭉 들어 올려 얼굴을 폭 덮었다.
* * *
“아니, 국왕 전하! 이렇게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소리를 치는 건 로스일드 공작가의 외동딸 레이나였다.
지르델 국왕 발키오는 놀란 척 움찔했다.
“어휴, 깜짝이야. 고래고래, 고래인 줄.”
“이제 와서 거래를 무르겠다니요?”
“그래서 배액 배상을 하지 않았나? 나도 손해가 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본래 지르델과 로스일드 공작가는 다이아몬드와 관련된 계약을 체결했다.
이미 가계약금을 걸어놓은 상태.
물밑에서 모든 것이 다 완료되어 있었고, 오늘은 그저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끝이었다.
그토록 쉬운 일이었으니, 로스일드 공작가에서도 일부러 레이나를 보낸 것이었다.
경험도 쌓게 해주고 그럴듯한 공로도 세울 수 있도록 말이다.
“글쎄, 더 좋은 거래처가 생겼다니까? 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나? 단, 확연히 더 좋은 품질의 다이아몬드를 구할 수 있는 경우, 이 계약은 파기될 수 있음을 명시한다고.”
“…….”
레이나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이 다이아몬드는 유르미엘 가문에서 만들어 낸 최상품이라고요!”
“귀 안 먹었으니 작게 말해도 된다, 고래 아가씨.”
“분명 후회하실 거예요.”
발키오는 이를 바드득 갈고 있는 레이나를 향해 허허- 웃었다.
‘로스일드의 외동딸이 참 버릇이 없다는 소문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저 발칙한 모습에 화가 난다기보다는 조금 불쌍했다.
어제 왔던 이사벨과 너무 비교되었다.
‘누구는 와서 실익과 명분을 동시에 던져주는데, 누구는 와서 고래 쇼를 펼치는군. 이래서야, 싸움이 되지도 않겠어.’
“내 용건은 끝났어. 돌아가게. 바다는 저쪽이야.”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고래는 바다에 사니까.”
발키오 옆의 수석보좌관 ‘가브리쟁’이 크흠, 헛기침했다.
자신이 섬기는 국왕의 저 마이너한 센스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좀 부끄러웠다.
가브리쟁이 발키오의 말을 해석해 주었다.
“문은 저쪽입니다, 레이나 영애.”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레이나는 씩씩대며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발키오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사벨은 황가의 정치적 전략자산이야. 이 정도면 로스일드에게 일부러 엿을 먹인 거겠지?”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륙에 아주 큰바람이 불겠어, 후후.”
한참 웃던 발키오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참, 황녀는 내가 준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나? 좀 걱정이 돼서 말이야.”
“제가 그 선물……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나는 걔가 그렇게 어른 아이일 줄은 몰랐지.”
“분명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사벨은 정치적 전략자산.
겉으로 보기에만 어린아이.
그러나 속으로는 능구렁이를 삼백 마리쯤 삼키고 있는 노련한 정치가였다.
그런 아이에게 어린애에게나 줄 법한 인형을 주었다는 건 아주 큰 실수였다.
“자네가 한 번 다녀와. 혹시 기분 나빠하면 마음 좀 풀어주고.”
* * *
나는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인형 놀이에 진심이었기에 더 우울해진 것이다.
“유리, 내 패션 센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
“나한테 센스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 그럼요.”
항상 내게 무척 다정하게 말해주는 유리 언니조차도 말을 더듬고 있었다.
거봐, 나는 왕똥손이라고.
“왜 내가 손을 대면 다 똥이 되는 거야?”
“또, 똥이라뇨. 충분히 예…… 쁘고, 안목이 출중하세요.”
“응, 안목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입힌 옷들의 조화가 똥이라는 건 잘 알겠어.”
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은 없는 것 같았다.
예쁜 걸 알아보는 눈은 있지만 이상하게 예쁜 걸 만들려고 하면 똥이 된다.
“다행이야……. 유리처럼 유능한 시녀가 있어서.”
“늘 노력할게요.”
나는 거울 앞에 섰다.
요 풍성한 금빛 머리카락과 저 보석 같은 호박색 눈동자를 보자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내 하얀 피부는 은은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드레스와 찰떡이었다.
나 쿨톤인가 봐.
‘예쁘다.’
단순히 생김의 예쁨이 아니었다.
예쁨 너머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건강함에서 오는 어떤 아름다움인 것 같았다.
‘정말 예뻐.’
남들이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얼굴과 몸이 정말 예쁜 것 같았다.
건강하게 윤기 나는 저 볼은 내 이전 생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때는 정말 창백하고 볼품없었는데, 지금은 복숭앗빛이었다.
그만큼 심장이 건강한 피를 온몸 구석구석 힘차게 보내주고 있다는 뜻이겠지.
‘입술도 붉고.’
나는 나도 모르게 거울을 향해 손을 뻗어 입술을 만져보았다.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이 붉고 예쁜 입술이 내 입술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내 입술이 이렇게 혈색이 좋을 리 없는데. 내 입술은 회백색에 가까운데…….
‘진짜 너무 예뻐서 감사해.’
계속 강조해서 좀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튼 진짜 예뻤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민망하고 과한 표현이지만, 내게는 이 예쁨이 찬란했다.
나는 아마도…… 두 다리로 건강하게 서서 거울을 보고, 내 지금의 모습에 감사하는 이 순간 자체가 아름답고 예쁜 것 같았다.
문득 찾아온 감사함에 못 이겨 거울 속 내 모습을 만져보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거지?”
내 혈육, 친오빠가 등장했다.
깜짝 놀라 휙! 뒤를 돌아보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카만 오빠가 서 있었다.
이 몸을 가지게 된 이후, 처음으로 죽고 싶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