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5화
이사벨은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자애 같을 거야. 나쁘게 보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을 거고.’
거울에서 얼른 손을 뗐다. 프로는 침착해야 하니까.
어느 분야의 프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사벨은 프로답게 행동하기로 했다.
“오라버니? 언제 오셨어요?”
“방금.”
이사벨에게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건, 카만은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약 카만이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면 이사벨은 무척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 제가 얼굴에 뭐가 묻은 거 같아서요.”
“…….”
“이건요. 거울 얼룩인지 아닌지 만져보고 있었던 거예요.”
어쩐지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러나 카만은 이사벨의 복잡미묘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관해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그는 지금 무척이나 기쁜 상태였다.
“왜 내가 들어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지?”
“그야…….”
이사벨은 차마 ‘내 예쁨에 취해 있어서’라고 대답할 수 없어서 우물쭈물했다.
그렇지만 카만은 딱히 이사벨의 대답을 기다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대답을 듣지 않았으나 그는 무척 흡족한 상태였다.
‘비아톤 경. 그대의 말이 틀렸다.’
사실 비아톤에게 들었던 말들이 있다.
‘예, 황녀님은 눈치가 무척 빠르고 기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민합니다. 황제 폐하의 변장도 한 눈에 꿰뚫어 보고, 제 심리 상태를 단박에 알아차리실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보셨다시피 만 칼프 준장의 침입도 이미 눈치채고 계셨죠. 그렇다니까요? 황자님의 접근도 아마 한 10미터쯤부터 본능적으로 알아차리실걸요?’
이사벨은 엄청나게 예민한 기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자신이 접근하는걸 느꼈어야 정상이다.
그런 이사벨이 자신의 접근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로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나의 존재를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이것은 소리를 듣는 것에 비유할 수 있었다.
인간의 귀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낸다.
대신 특이한 소리라든가, 꼭 들어야만 하는 어떤 정보를 담은 소리에 집중하게 되어 있다.
기감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오는 것이 당연하기에. 나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하기에. 경계를 전혀 하고 있지 않기에.’
그렇기에 이사벨은 자신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왜 기분이 좋은 거지?’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만은 기분이 좋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랄까……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십오 세 병을 앓고 있는 카만의 삭막한 마음에 달콤하고 촉촉한 비를 내려주었다.
“여기선 언제 떠날 예정이지?”
“글쎄요. 일이 마무리되려면 며칠 더 걸릴 것 같아요.”
이사벨은 괜스레 카만의 눈치를 살폈다.
카만이 자신을 귀찮아하면 어떡하나, 그러면 좀 속상할 것 같은데, 그런 걱정이 들었다.
“큰 것들은 대충 정리됐고요. 실무자 협상이 남아 있기는 한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군.”
왕과 황녀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것들은 대략 정했으니 세세한 것들은 실무자끼리 협의할 것이었다.
카만은 말하고 싶었다.
‘네가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
처음으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족이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것을 이제야 이룬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사벨이 돌아가는 것이 조금 싫었다.
“내게 가르쳐 주어야 할 것들이 남았을 텐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뜻이었다.
그 말에 이사벨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카만은 분명히 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따뜻함을 배운 카만은,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겠지? 그럼 나는 오늘도 의미 있는 일을 한 거겠지?
정말 짠한 캐릭터인 카만을 늪에서 꺼내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자연스레 목소리가 더 상냥해졌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실 오라버니는 스스로 잘 알고 있어요.”
“…….”
카만은 말하고 싶었다.
그래, 맞아.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그냥 네가 여기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어.
“왜냐하면 오라버니는 다정한 사람이니까요.”
“…….”
나는 아직 네게 알려줘야 할 것들이 남아 있어. 내게 솔직해도 된다는 말을 아직 못했어.
그의 기억 속에 이사벨의 모습이 콱 박혀 있었다.
‘헥…… 헥!’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어요!’
‘제 처음의 순간에 함께해 줘서 진짜 진짜 고마워요.’
‘진짜 진짜 진심이에요.’
카만은 이사벨이 조금 더 솔직해지기를 바랐다.
어릴 적 카만과는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다.
‘말을 어떻게 해야 하지?’
해주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는데 막상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들어본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는 말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카만은 그 모든 말을 삼켰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못 한 카만은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 * *
김벌꿀은 몇 번이나 커다란 콧바람을 뿜어냈다. 그런데도 이사벨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지금 이사벨은 카만에게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김벌꿀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거나 이사벨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등의 노력을 해보았으나 헛수고였다.
[나한테도 관심 줘.]그러나 이사벨은 여전히 카만과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김벌꿀은 몹시 성이 났다.
그러던 중 그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다.
[인내심은 바닥났어.]김벌꿀이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누구보다 잽싸게 움직여 카만이 내민 종이를 낚아챘다.
“김벌꿀!”
이사벨이 소리쳤지만 김벌꿀은 벌처럼 날아 창문가에 앉았다.
꽤 높은 벽면에 위치한 창문이었다.
“어서 돌려줘.”
[김벌꿀은 화났어.]그런데 김벌꿀은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만둬, 김벌꿀. 이건 이사벨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이야.
김벌꿀은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 정확하게 느껴져서 더 그랬다.
-그래, 나는 너야.
처음 듣는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김벌꿀은 이 소년의 목소리를 여러 번 들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나를 기억해, 김벌꿀. 우리는 서로를 기억해야 해.
김벌꿀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목소리라서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이 기이한 말들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이상한 말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무엇에도 참지 않는 벌꿀오소리의 본능이 활활 타올랐다.
자신을 살벌하게 바라보는 카만과 눈을 마주쳤다.
“저 파렴치한 짐승을 내가 어찌해야겠느냐?”
“제가 잘 다독여볼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저것은 지르델 베이스캠프의 총책임자께서 보내신 초대장이다.”
이사벨은 낑낑대며 책상 위로 올라섰다.
“어서 돌려줘. 나 화낼 거야, 김벌꿀.”
[김벌꿀은 이미 화났어.] [김벌꿀은 매일 이사벨만 바라봤어.]지르델 베이스캠프에 들어온 이후로, 김벌꿀을 뒷전 취급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곳에 있던 며칠 동안 김벌꿀은 이사벨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사벨과 제대로 교감했던 시간은 잘 때뿐이었고, 김벌꿀은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이사벨이 까치발을 들어 팔을 뻗었다.
아슬아슬, 김벌꿀에게 닿을락 말락 했다.
“어어, 어어?”
기우뚱.
이사벨이 중심을 잃었다.
[이사벨!]김벌꿀이 황급히 뛰어내렸다.
순간이지만, 김벌꿀의 얼굴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자신의 성질머리 때문에 이사벨이 다치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쿵! 소리는 나지 않았다.
카만이 이사벨을 받아 들었기 때문이다.
“헤헤. 고마워요. 오라버니가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건 모두 이사벨의 계산이었다.
빨리 상황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김벌꿀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김벌꿀은 카만의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까.
김벌꿀에게 이름을 준 자신이 김벌꿀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고.
그래서 일부러 높이 올라가 일부러 넘어졌다.
이 방법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치지 않았느냐?”
“오라버니 덕분에요.”
이사벨은 모든 것을 계산한 것이었지만 막상 이사벨을 안아 든 카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실제로 카만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너는 아직 어리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는 운신술도, 보법도, 목표물을 잡아채는 손기술도 익히지 못했어.”
예전에는 그런 자들이 못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사벨을 만난 이후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자 잘하는 것이 다를 뿐.
누군가에게 모자란 것이 있으면 누군가가 채워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너는…….”
아무리 꺼내려고 해도 꺼내지지 않던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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