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7화
“부탁이요?”
이 시점에서 아르미텔이 나한테 부탁할 게 뭐가 있지?
괜스레 조금 불안해졌다.
“황녀님은 막사에서의 생활이 어떻습니까?”
“즐거워요.”
“…….”
내 대답이 긍정적일 거란 생각은 못했는지 아르미텔의 몸이 움찔했다.
“그렇다면 편합니까?”
“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무엇이 가장 불편합니까?”
“샤워 시설이 엄청 열악한 것 같아요.”
그나마 나는 정령사인 유리와 물의 정령 방울이가 있어서 별문제는 없다지만 샤워 시설은 정말 열악했다.
아니, 이 마도 문명 시대에 바가지로 물 떠서 샤워하는 게 말이 되냐고!
심지어 따뜻한 물도 없어!
“잘 때 춥지는 않습니까?”
“저는 벌꿀이를 껴안고 자서 춥지 않았어요.”
옆 의자에 강아지처럼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벌꿀이가 고개를 휙! 쳐들었다.
조느라 무슨 말인지 못 들은 것이 틀림없지만 자기 이름이 나오자 자랑스러운 듯했다.
갑자기 우쭐대는 표정을 지은 벌꿀이는 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니, 졸리면 그냥 엎드려서 자면 되지 왜 저렇게 조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귀여운 건 사실이어서 나는 오른손을 뻗어 벌꿀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벌꿀이는 기분 좋은 듯 븅븅- 소리를 냈다.
“그렇군요. 그리고 아마 황녀님이 추위를 덜 타는 건, 황녀님이 빌로티안의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도 맞아요.”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이 육체는 아주 튼튼하고 건강해서 더위나 추위에도 강했다.
매일매일 감사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일반 병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네?”
나는 잠자코 아르미텔 중장의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병사들의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이거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아르미텔 중장은 평민 출신이고, 낮은 위치의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려면 황궁에 직접 건의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지르델 베이스캠프의 예산안은 검림 학사원에서 관리합니다.”
안 해본 게 아니었다고 했다.
여러 차례 처우 개선을 요구했으나 검림 학사원 차원에서 묵살되었다고 했다.
여러 정치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다.
“저는 1년 뒤면 다른 부대로 발령 날 것입니다.”
그나마 이곳의 리더인 아르미텔이 여러모로 노력했기에 이곳의 사정이 그나마 나아진 거라나 뭐라나.
1년 뒤, 다른 자가 이곳의 지휘관으로 부임하게 되면 병사들의 대우는 더 나빠질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아르미텔 중장님은 병사들을 무척 아끼시는 것 같아요.”
“그들이 제국을 지탱하는 방패이기 때문입니다.”
“제국도 무척 사랑하시고요.”
“……제국민이라면 당연한 것입니다.”
제국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결국 제국을 배신하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쳤던 것일까.
“어째서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건가요? 저는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아이인걸요.”
“알페아 왕국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에어컨이라 불리는 신기한 것을 선물하셨다고요. 덕분에 일의 능률이 무척 올라갔다고 하더군요. 뿐만 아니라 마도 공학을 활용한 도르래를 제공해 주셨다고도 들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많던데요.”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본 게 아니면 잘 안 믿는다. 심지어 눈으로 보여줘도 안 믿는 경우가 많다.
믿든 말든 나한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그곳 근처에 제 고향이 있습니다. 거기 제 동생이 아직 살고 있어요.”
“도, 동생이요?”
“네. 제 동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설마 그 여주 아셀리아?
“동생이 있었어요?”
“네. 저한테는 아주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하는 아르미텔 중장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생각만 해도 엄청 애틋한 모양이었다.
“아주 어린 동생이라면……?”
“아, 황녀님과 동갑이겠네요. 지금 여덟 살입니다.”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아셀리아예요.”
“예, 예쁜 이름이네요!”
“네. 얼굴도 참 예뻐요.”
아르미텔 중장의 얼굴에 미세한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아르미텔 중장님은 동생을 엄청 좋아하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얼굴에 다 티 나요.”
아르미텔은 동생 바보 캐릭터답게 동생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깜찍하고 귀엽다든가. 언니가 너무 바빠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든가.
아무튼 그런 얘기들이었는데, 표정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이다.
“그렇지만 동생은 저를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네?”
“매일 약속도 못 지키고, 같이 있어 주지도 못하거든요. 저보고 매일 나쁜 언니라고, 거짓말쟁이라고 화를 냅니다. 저보고 매일 밉다고 해요.”
아주 잠깐이지만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평민 출신으로 저 자리까지 오른 위대한 군인이지만, 정말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에요. 아셀리아도 잘 알 거예요.”
“네?”
“옆에서 보기만 해도 이렇게나 생생하게 느껴지는걸요? 이 정도면 아셀리아도 중장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네! 저도 카만 오라버니를 통해서 많이 느꼈거든요. 겉으로는 무척 무뚝뚝하고 뚝딱거리지만 그래도 저를 향한 마음만큼은 따뜻하다는 게 느껴져요. 아셀리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
잘 듣다가 갑자기 신뢰를 잃어버린 듯한 표정을 짓는 건 왜죠?
“이야기가 잠깐 샛길로 샜군요.”
왜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한 모양새죠?
아니…… 진짠데? 카만 오빠도 날 엄청 좋아해 주고 아껴주는데?
모양새를 보아하니 ‘카만 황자가 그럴 리 없다. 그러므로 이사벨 황녀가 착각하고 있다’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좀 억울했지만 이제 와서 따지는 것도 좀 애매해져 버렸다.
아니, 진짠데, 왜 다들 안 믿지? 억울쓰다, 억울쓰.
“어쨌든 제가 황녀님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비단 알페아 왕국에서의 활약상 때문만은 아닙니다.”
* * *
나는 조금 민망해졌다.
‘음…… 라면은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든 건데.’
저번 토론회에서 나르모르가 주장한 것이 나름대로 꽤 파급력이 컸던 모양이었다.
이사벨이 사실은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라면이라는 것을 개발했고, 그것을 거의 무상에 가깝게 제공하고 있다나 뭐라나.
실제로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내 의도가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되어 버려서 민망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분께서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통해 에르베 산맥의 초소를 지키는 병사들까지 도우셨죠.”
일련의 일을 모두 지켜본 아르미텔 중장은 내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어째, 내가 한 것에 비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기는 한데…….’
뭐,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고, 빨리 떠나는 대신 사람들이 나를 더 많이 기억해 주면 좋겠으니까.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내게는 분명 좋은 일이었다.
“중장님이 병사들을 무척 아끼시는 마음은 잘 알겠어요. 저도 돕고 싶어요. 그렇지만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요?”
“저랑 약속을 하나 해주셔야 해요.”
‘약속’이라는 말에 아르미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아르미텔이 왜 저렇게 어두운 표정을 짓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르미텔은 ‘약속’의 무게를 누구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섣불리 ‘네! 약속하겠습니다!’처럼, 입에 발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아르미텔은 황가를 배신하며 정말로 괴로워했었다.
지금은 우리 엄마인 황후 세르나를 찾아 흐느끼던 장면이 떠올랐다.
「“병사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국민들이 노래하는 세상을 만들겠다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20년 동안 말입니다.”」
이건 소설 속 악녀였던 이사벨 때문이기도 했다.
황후 세르나는 이사벨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마음의 병을 얻었고, 이전 같은 총기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래서 검림 학사원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고, 검림 학사원은 부정부패를 일삼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죽어나는 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었다.
아르미텔의 입장에서는 말단 병사들이었고.
“어떤 약속 말입니까?”
“황가를 배신하지 마세요.”
그 말에 아르미텔은 화들짝 놀랐다.
배신이라는 단어 같은 건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르미텔의 눈에 은은한 노기가 서렸다. 자신의 충정심을 의심받아 화가 난 것 같았다.
다행이다. 아직은 배신의 ‘ㅂ’자도 생각하지 않고 있구나.
“황가에게 잘못이 있다면, 빌로티안이 그릇된 길로 걸어간다면, 지금처럼 화를 내주세요.”
“……예?”
“그렇게 화가 난 눈으로 노려보며, 왜 그러냐고 따져주세요.”
“…….”
아르미텔은 20년 동안 자신의 화를 꾹꾹 눌러 참는다.
믿고 믿으며 또 기다린다.
그러다가 결국 한 방에 크게 터뜨리며 황가를 배신한다.
사람 사이에서도 그게 제일 나쁘다. 참고 참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거.
맞는 사람 입장에서도 황당하고, 화를 뿜어내는 사람 입장에서도 끔찍한 경험이다.
“오늘처럼 솔직히 말해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써볼게요.”
“…….”
“잘못한 건 잘못했다 말해줘요.”
내 말이 무척 의외였는지 아르미텔은 한동안 침묵했다.
“나한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요.”
나 없이 남게 될 우리 가족을 위해서, 아르미텔이라는 명검의 날 끝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을 향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이것만 약속해 준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요. 검림 학사원을 통한 예산집행은 시간도 아주 오래 걸리고 힘들어요. 순순히 협조해 줄 가능성도 낮고요. 대신 저랑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이 함께 움직인다면 즉각적으로 병사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을 거예요. 발키오 국왕 전하와 함께 협력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고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