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8화
지르델 왕국의 수석보좌관 ‘가브리쟁’은 지르델 베이스캠프를 찾았다.
마침 오늘, 정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 중 한 명이 루카인 병장이었다.
“황녀님을 만나러 오셨다고요?”
“그렇다네.”
가브리쟁은 왕궁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결국 수석보좌관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
그렇기에 눈치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병사들이 전에 없이 나를 경계하고 있다.’
이미 업무차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이다. 그런데 그때와는 자신을 대하는 분위기나 눈빛이 사뭇 달랐다.
‘그 말은 곧 황녀가 그만큼 중요한 정치적 전략자산이기 때문이겠지.’
아주 중요한 인물이니 병사들도 덩달아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느낌이었다.
그는 황녀가 머물고 있다는 막사 안에 들어섰다.
막사 안에는 황녀 또래로 보이는 시녀 한 명이 있었다.
“황녀님은 아르미텔 중장님을 만나고 계세요.”
그 사실도 가브리쟁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단서였다.
‘시녀가 아르미텔 중장의 이름을 알아?’
아르미텔.
그 이름은 극비까지는 아니어도 대외비 정도는 되었다.
시녀에 불과한 아이가 그걸 알고 있고 그것을 또한 자연스레 말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어쩌면 의도된 것일 수도 있으므로, 분명히 예의 주시해야 할 포인트였다.
그만큼 황녀가 제국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단서였으니까.
게다가 황녀는 지금 아르미텔 중장과 만나고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둘이 만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일반적이지 않기에, 들여다봐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황녀가 편한 왕궁 내버려 두고 굳이 이 불편한 베이스캠프에서 머무는 이유가 다 있었군. 황실에서도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거야.’
그는 막사 안에서 잠자코 황녀를 기다렸다.
그는 더 이상 황녀를 어린아이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를 정확하게 규정해야 상대하는 법을 정확히 정할 수 있다.
황녀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노련한 정치인이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사벨이 막사로 돌아왔다.
“가브리쟁입니다, 편하게 쟁이라고 불러주십시오, 황녀님.”
“쟁 경, 오랜만에 뵙네요. 어쩐 일이세요?”
이사벨은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가브리쟁은 양옆으로 기다란 수염이 주욱- 자라나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메기 같았다.
정말 신기하게도 말을 끝낼 때마다 수염이 띠용! 하고 움직였다. 마치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야, 웃으면 안 돼.’
사람의 외모를 보고 웃는 건 아주 큰 실례다.
그런데 마침 작고 하얀 나비가 폴폴 날아와 저 기다란 수염에 앉는 것이 아닌가.
나비의 날갯짓에 수염이 마치 나뭇가지처럼 살살 흔들렸다.
이사벨의 귀에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띠용, 띠용.
여덟 살.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깔깔 웃음이 새어 나올 나이였다.
결국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마주한 가브리쟁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결코 귀엽지 않다!’
저 외모와 분위기에 속으면 절대로 안 된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인자하게 웃으며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수염을 매만지며 점잖게 말하려 했다.
그런데 수염에 뭔가가 있었다.
눈동자를 또르르 굴려 수염 쪽을 바라보니 하얀 날개가 보였다.
“으, 으악, 씨X! 까, 깐딱이야!”
가브리쟁은 벌레를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는 편이었고, 제 수염에 붙은 나비를 보자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고 말았다.
게다가 태생부터 혀가 조금 짧았던 그는 너무 깜짝 나머지 발음에 신경 쓰지 못했다.
그에, 가브리쟁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어떻게 보면 상당한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사벨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가브리쟁은 저 모습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사소한 잘못이나 과오는 굳이 짚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듯했다.
물론 이사벨은 아무 생각 없는 것이었지만 가브리쟁은 홀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임무는 국왕의 선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것이 아닌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마침 저쪽 테이블 위에 인형이 올려져 있었는데 꼴이 꽤 처참했다.
‘머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군.’
뭔가 고급옷을 걸치기는 했는데 왠지 모르게 넝마 같은 느낌이 났다.
인형에 화풀이를 한 것처럼 상당히 좋지 않은 모양새였다.
‘큰일이다.’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 그걸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그 상대가 VVIP다?
‘내 노선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
그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황녀님을 모욕하려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국왕 전하께서도 무척이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띠용!
이사벨은 저 수염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네? 죄송스러운 마음이요?”
이사벨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브리쟁의 복잡미묘한 생각과는 별개로, 이사벨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저 길게 자라난 수염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녀의 모른 척(?)에 가브리쟁의 심장이 재빨리 뛰기 시작했다.
‘저 처참한 몰골의 인형을 전시해 두고서 일부러 모른 척을 한다는 건, 즉, 나를 시험하겠다는 소리겠지.’
“인형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띠용!
이사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아하니 가브리쟁은 무척이나 섬세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걸 읽어냈단 말이에요?”
정말 속상했다.
진짜 열심히 매만질수록 인형이 저 꼴이 되어가는 것이 무척 슬펐다.
하필이면 또 옆에 있는 사람이 유리여서 더욱 그랬다.
유리가 만지면 다시 어여쁜 인형으로 돌아왔으니까.
‘둘 다 팔이 두 개고 손가락 열 개인데. 왜 나는 이래? 왜 나만 왕똥손이냐고!’
그녀의 진심이 표정 위로 드러났다.
예민한 가브리쟁은 그 표정을 순식간에 읽어내고 분위기 파악을 했다.
“예,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쟁 경이 사죄할 문제는 아니에요.”
그 말에 가브리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국왕 전하가 직접 와서 사죄하라는 건가?’
가브리쟁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저 전략자산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 무슨 진의를 내포하고 있는가.
왜 자신의 탓이라고 하는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속을 알 수 없는 상대야말로 가장 두려운 적이다.
그는 이사벨과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별다른 소득은 올리지 못했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와 즉각 보고를 올렸다.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황녀는 분명 황실의 정치적 전략자산입니다.”
“눈으로 보니 더 그렇게 느꼈다는 것인가?”
“예. 병사들이 저를 대하는 은근한 태도에서부터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그곳에서 아르미텔 중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을 겁니다. 황녀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데…… 그런 황녀가 분명한 모욕감을 느꼈으니, 저희는 이를 중차대한 사항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
“전하께서 그 인형을 직접 보셨어야 합니다. 은은한 분노와 실망감을 표출하는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왜 애들한테나 주는 그런 유치한 선물을 주신 겁니까?”
“잔소리는 나중에 듣지. 해결책부터 찾아야 하니까.”
발키오를 비롯하여 왕궁 수뇌부들이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제국의 전략자산, 이사벨 황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회의를.
* * *
이사벨은 김벌꿀을 가슴팍에 껴안고서 아르미텔이 머무는 막사로 향했다.
이사벨이 느낀 아르미텔은 분명 좋은 사람이었기에 좋은 사람과의 시간을 조금 더 공고히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르미텔이 물었다.
“왕국 수석보좌관과 만남을 가졌습니까?”
“네에.”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냥 친절하고 섬세한 분 같아요. 제 마음을 잘 알아 주시더라구요. 속상했던 것들을 말했고, 쟁 경은 잘 들어주셨어요.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아서 좋았어요. 자꾸 띠용거려서 너무 웃기긴 했지만요.”
“띠용이라니요?”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있어요. 헤헤.”
아르미텔은 가브리쟁만큼 복잡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내 황녀에게 집중했다.
사실 아르미텔에게 있어서도 황녀는 무척이나 신기한 아이였다.
황녀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조잘조잘 떠드는 아기 참새 같아서 무척 귀여웠다.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운 사람은 자신의 동생인 아셀리아를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는 건지, 아르미텔은 궁금했다.
“황녀님은 어떻게 그렇게 밝을 수 있습니까?”
“제가 그렇게 밝아요?”
“네. 황녀님 같은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나르비달의 낙인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아르미텔 중장님의 동생도 밝고 따뜻한 아이 아닌가요?”
“…….”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아셀리아다.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누구보다 아름답고, 누구보다 밝은.
존재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아셀리아였다.
“제 동생은…… 조금, 아니 많이 아파서요.”
이사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프다고?’
그럴 리 없었다.
이사벨은 알고 있었다.
아셀리아의 진짜 정체가 용이라는 사실을.
‘아니, 아니지.’
용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아플 수 있다. 정말로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괜스레 옆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벌꿀이에게 눈이 갔다.
‘그럴 리는 없지만 용이 벌꿀이로 변한 거라면, 그 벌꿀이는 완벽하게 벌꿀오소리로서 살아가.’
다른 벌꿀오소리들이 먹는 걸 먹고. 다른 벌꿀오소리들이 사는 만큼 살고.
다른 벌꿀오소리들의 특성을 그대로 가진다.
마침 벌꿀이는 나른한 듯 크게 하품을 했는데, 자기는 그게 용맹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생각보다 하찮아서 귀여웠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면 아셀리아가 병약할 수도 있는 거지? 어?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많이 아팠다는 얘기가 있었던 것 같아.’
남주 아룬과의 대화에서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던 얘기가 있기는 했다.
중요 설정도 아니었고 스토리에 딱히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어서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다.
“어떻게 아픈데요?”
“그건…….”
이사벨은 아르미텔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아르미텔의 목걸이에 담긴 작은 사진 하나를 보게 되었다.
그 사진 속에는 아르미텔과 아셀아셀리아로 짐작되는 아이가 담겨 있었다.
‘어?’
그런데 이상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