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19화
‘왜…….’
나는 한참 동안 우두커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나랑 똑같이 생겼어?’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았다.
이 세계에는 흔치 않은 검은색 눈동자. 그리고 동양적인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거울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사벨로 8년 넘게 살아온 지금, 이전의 내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속 아셀리아는 이전의 내 얼굴과 너무나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소설 속 아셀리아를 떠올려 보았다.
「찰랑이는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아룬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이름난 장인이 정성껏 세공한 에메랄드 같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룬은 저도 모르게 아- 하고 깊은 탄식을 내뱉곤 했다.」
다른 건 둘째치고, 아셀리아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은 ‘눈부신 에메랄드빛’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사진 속 아셀리아는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럴 리 없어. 나랑 닮아 보이는 건…… 그냥 우연의 일치겠지.’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해 보았다.
‘근데 왜 머리카락이 없는 거야?’
털실로 짠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햇빛을 못 받았는지 피부는 창백했고 얼굴빛은 약간 회백색에 가까웠다.
‘진짜 많이 아픈 사람의 얼굴인데…….’
사진 속 아셀리아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 너머에 숨겨진 아픔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이전의 나와 너무 똑같아서 가슴이 저릿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는 건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왜 원작 여주가 이 시점에 거의 죽어가는 거지?
“동생이 아프다고 했었죠?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건가요?”
“의원이나 신관들도 이유를 모른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에 가슴이 턱! 하고 막혀왔다.
내가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유를 모른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그게 아픈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너무 괴로웠다.
“머리카락은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지금으로서는 손쓸 도리가 없어서 진통제를 먹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지간한 진통제는 효과가 없고…… 이름은 잘 기억 안 나지만 그 진통제만 조금 효과가 있는데 그 부작용 때문이라고 합니다.”
“…….”
빙의하고 처음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이제 머리카락도 있네!’였다.
‘왜 저렇게까지 된 거지?’
저 정도로 아팠다면 소설 내에서 분명 언급이 있었을 텐데.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은 여주 아셀리아를 위한 소설이나 다름없었다.만약 아셀리아가 저렇게 아픈 것을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면 작품 내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을 것이다.
‘그토록 무섭고 두려운 병마를 극복해 냈다!’ 등의 내용으로 말이다.
문득 내 마음속에 한 줄기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나 때문에?’
얼굴도 나랑 비슷…… 아니. 아니야. 아닐 거야.
물론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금 불안했다.
이 세계에 가장 큰 변수는 나니까.
나는 지금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테이사벨 이동 관문도 그렇고 라면도 그렇고.
이사벨 정리라든가, 이사벨 체인이라든가.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행방불명되지 않았을 빌헬름도 행방불명 되었다.
하늘섬에서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을 로베나 언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아무튼, 나는 이 세계에 많은 변수를 불러왔다.
내가 세계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을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아셀리아에게 저런 불행이 생긴 거라면…….’
나는 차마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서 숨이 턱턱 막혔다.
‘모르는 체해야 하는데.’
그냥 모른 척 살고 싶다.
과거의 나와 조금 닮았을 뿐, 나랑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가슴이 콕콕 쑤셔 와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나와 저토록 닮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만 같았다.
“제가 동생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 * *
지르델 국왕 발키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라? 황녀가 지르델을 떠난다고?”
이렇게 연락도 없이?
아직 테이사벨 이동 관문과 관련된 세부 사항들을 조정하지도 않았는데?
확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잠시 칼포아라는 작은 마을에 들렀다가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게 떠나는 거지!”
발키오는 자리에 앉아 다리를 달달 떨었다.
“지금 이 시점에 뭐시기? 칼피아?”
“칼포아입니다.”
“그래, 칼푸아. 황녀가 거길 왜 가? 연고 있어? 친구 있어? 다이아몬드 나와?”
“…….”
“이유가 뭔데?”
“죄송합니다.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병에 걸린 어린아이를 만나러 간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수석보좌관 가브리쟁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무래도, 일종의 시위가 아닌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라고 해석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 모욕적인 선물을 먼저 보내신 건 전하입니다.”
“끄응…….”
“전하, 말씀드리기 좀 죄송스럽습니다만…….”
“죄송스러운 얘기면 하지 마.”
“…….”
“그냥 해봐.”
“사실 저를 보내서 염탐하게 하신 것부터가 실수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만나본 황녀님이라면 제가 찾아온 이유를 금방 파악하였을 것입니다.”
발키오의 얼굴이 거무죽죽해졌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모욕적인 선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황녀님은 그 자리를 지키며 기다렸습니다.”
물론 이사벨은 별생각 없었다. 오히려 인형 놀이에 진심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수석보좌관인 저를 보내 은근슬쩍 떠보게 한 것은 국왕 전하이십니다.”
“그만 때려. 아파. 국왕은 거짓말로도 때리는 거 아냐. 나는 연약하단 말이다.”
발키오는 후우-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겠지만. 그는 불룩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슥슥- 문질렀다.
“어떡하면 좋겠나?”
“국왕 전하께서 직접 가셔야 합니다. 지금 출발하면 어찌어찌 따라잡을 수는 있을 겁니다.”
“곧 로스일드 공작가의 영애랑 2차 미팅 있잖아.”
“무엇이 중합니까?”
지금 황녀는 황족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마저 응답하지 않는다면, 이제 황녀와의 협력은 물 건너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쉬운 것은 이쪽이었다.
“부탁한다, 내 친우여.”
“이럴 때만 친우라고 하시더라.”
“아무튼, 나 이빨에 뭐 안 꼈지?”
“안 꼈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발키오는 부랴부랴 왕궁을 떠났다.
가브리쟁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은 이상한 개그와 드립을 안 날리시는 걸 보니 진짜 급하긴 하신가 보군.”
* * *
마차에 올라탄 아르미텔은 스스로가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저 제안을 냉큼 받아들이다니.’
사실 황녀가 동생을 만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행하겠다고 한 것은, 이렇게라도 핑계를 대어 동생에게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황녀를 수행하는 특별한 임무’라는 명분이었다.
‘나도 참 물러졌어.’
그런데 누군가가 아르미텔과 이사벨이 탄 마차를 가로막았다.
마부가 마차를 급히 세웠다.
“워워!”
마부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당신, 미쳤어?!”
그러고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리 없는데, 왠지 모르게 지르델의 국왕과 닮은 것 같았다.
마부는 눈을 비벼보았다.
그는 글을 읽을 줄 몰랐고 가끔 귀족 손님들이 버리고 간 소식지에서 몇 번 얼굴을 보았다.
다시 보니 저 새까만 흑마의 털에서는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명마가 틀림없었다.
“그, 미치진 않았네만, 미안하네. 실례를 무릅쓰고 황녀와 꼭 만나야 해서 말이야.”
마차 문이 열리고 이사벨과 아르미텔이 함께 내렸다.
발키오는 급히 흑마에서 내려 이사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황녀. 나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게.”
“……네?”
무례요? 무슨 무례?
아, 길을 막은 걸 말하는 건가.
위험하게 끼어든 것을 사과하는 모양이었다.
“네, 뭐. 무슨 사정이 있으셨겠죠.”
“생각보다 쉽게 용서해 주는구먼.”
발키오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레이나와의 약속을 깨고 달려오길 잘한 것 같았다.
이건 황녀의 시험이었고, 다행히 자신은 그 시험에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것 같았다.
“제가 뭐 용서랄 것이 있나요?”
“…….”
“어쩐 일이신가요?”
발키오의 몸이 움찔 떨렸다.
저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얼굴 뒤로 날카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황녀의 모습으로 이토록 단호한 행태를 보여주었으면서, 저렇게 순진한 모습을 보여주다니.
“말 그대로, 내 무례를 사과하고 싶어서 달려왔지. 내가 황녀를 너무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았는가?”
“음…….”
이사벨은 잠시 고민했다.
묘하게 핀트가 안 맞는 느낌이었다.
“그,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요.”
한 가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