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2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21화 [S공금]
하루 전.
유리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시기를 딱 짚을 수는 없지만 이사벨이 아셀리아와 만나겠다고 결정한 즈음부터였다.
그날 밤.
그녀는 잠들지 못하고 한참이나 뒤척였다.
‘나 왜 이래?’
정말 못된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황녀님에게 또 새로운 친구가 생기면 정말 좋은 거잖아.’
아르미텔과 이사벨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쩐 이유인지, 이사벨은 꼭 아셀리아와 만나고 싶다고 하였고 아르미텔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이사벨은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근데 왜 싫은 거야? 왜? 난 뭐가 속상한 건데?’
유리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이사벨의 시중을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마음인지를 알아야 했다.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하고서 내린 답은 하나였다.
‘내가 황녀님의 유일한 친구였는데, 그래서 서운한가 봐.’
사실 이것도 정확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구체화할 수는 없었다.
수학이면 차라리 정답이 나오고, 화학이면 반응식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서운한 것도 이해 안 되는데.’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게 서운한 내 스스로가 너무 싫어.’
그녀는 늘 이사벨의 행복을 바랐다.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고, 엄마를 간호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도와주었으며, 유리가 유리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이니까.
그래서 이사벨에게 친구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사벨이 또래의, 그것도 동갑의 다른 아이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고 말을 하니 몹시 섭섭했다.
속상할 문제가 아닌데도 그랬다.
이사벨을 빼앗기는 것 같은 오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나쁜 아이일까?’
겉으로만 착한 아이일까.
이래서는 좋은 시녀라고 말할 수 없잖아.
이 감정은 거의 자괴감에 가까웠다.
“하아…….”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오랜만에 잠을 설쳤다.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이사벨의 또래 친구는 유리가 유일했지만, 반대로 유리의 또래 친구도 이사벨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리는 아직 아홉 살이었다.
* * *
“아무래도 유리를 아주 무섭게 혼내줘야겠어.”
그 말에 유리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크게 당황했다.
“……응? 유리? 왜 그래?”
이걸 어쩌나.
일단 나는 유리에게 다가가 유리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무언가 일이 있겠거니 하고 짐작만 했을 뿐, 이렇게 울 정도의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토닥토닥.”
유리의 등을 톡톡 두드려주었다.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유리는 꽤 서럽게 울고 있었다.
‘울지 말라고는 안 해야지.’
전생에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울지 말라는 얘기였다.
나는 아팠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 같은 건 배운 적이 없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우는 것밖에 없었는데 사람들이 나보고 울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서러웠었다.
‘유리는 아홉 살이니까…….’
아홉 살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내가 펑펑 울고 있을 때,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었을까.
“엄청 많이 속상한 일이 있었어?”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거창한 위로나 훌륭한 해결책을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냥 나는 왜 그렇게 우냐고, 누군가 물어봐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그냥 관심을 주기를 바랐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한 번 더 유리를 꼭 끌어안았다.
“엄청 속상했나 보다.”
많이 아프구나.
많이 힘들겠구나.
나는 그냥 그런 말이 좋았다.
내게 필요했던 건 그냥 공감 한조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배우고 겪어왔던 것들을 그냥 유리에게 해주었다.
유리는 한참이나 서럽게 울었다.
나는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말을 안 해주면 나는 잘 몰라.”
차라리 유리에게 마력이라도 있으면 금방 알아챌 수 있을 텐데.
사람의 마력에는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녹아들어 있으니까.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유리가 멈칫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물었다.
“황녀님은…… 왜 울고 계세요?”
“속상해서.”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내 소중한 친구가 서럽게 울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났을 뿐이었다.
“저 같은 것 때문에 울지 마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황녀님이 울어주실 만큼,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유리는 좋은 사람이야.”
“아니에요. 저는 나빠요.”
“왜 그렇게 생각해?”
유리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죄송해요. 말씀드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럼 나 좀 서운할 거 같은데.”
“명령을 내리시면 얘기할 수 있어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아.”
유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오늘따라 유리의 손이 무척 차가웠다. 그리고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이 두려운 것 같았다.
“명령 같은 건 안 해. 우리는 친구니까.”
그리고 더 이상은 묻지 않기로 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꼭 감추고 싶은 것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꺼내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꺼내게 만들 권리가 내게는 없었다.
아무리 우리가 친구라고 해도 말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얘기를 해줄 거라 믿어. 지금 유리가 내게 말을 해주지 않는 게 속상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한 가지는 믿어줘. 나는 유리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네게 실망하지 않을 거야. 나는 너를 결코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
누구에게나 힘들고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에 필요한 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옆에 있어주고, 단단한 믿음을 보여주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힘듦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어느 순간에는 이름 모를 후원자 언니 오빠였고, 또 어느 때에는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었다.
오늘은 내가 유리의 후원자 언니 오빠이자,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되어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한 가지는 약속해 줘. 네 스스로를 나쁘게 말하지 마. 그건 유리의 제일 친한 친구로서 참을 수 없어. 유리가 어떤 사람이어도 나는 괜찮아. 유리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어.”
“…….”
“우리는 아직 어린아이인걸.”
우리는 어른이 아니다.
어른도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아이는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시간이 있다.
“마을에 도착하면 유리가 타준 레몬티를 마시고 싶어. 해줄 수 있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유리가 고개를 들었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할게요.”
“진짜지?”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레몬티를 타드릴게요.”
“응, 쪼아.”
내가 먼저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유리가 그 손을 맞잡고 일어섰다.
잘은 모르겠지만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다시 마차에 올라탔고, 아르미텔 중장이 왠지 모르게 흐뭇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 * *
이사벨 일행은 칼포아 마을에 도착했다.
마부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황녀님을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고 감동이었습니다.”
조금 더 하면 머리가 바닥에 닿을 기세였다.
‘저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이사벨은 마부가 왜 저렇게까지 극도의 예를 표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엄청나게 감동받았다고 하는데 왜 감동받았는지도 까먹었다.
평민 출신의 아르미텔은 그런 이사벨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마부가 왜 감동했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새잖아?’
아르미텔은 알고 있었다.
발키오에게 미쳤냐고 소리쳤던 마부를, 이사벨이 구해주었다.
그런데 이사벨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그것이 이사벨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이사벨이 마부를 배려해 준 것은 사건이 아니라 일상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셀리아도 황녀님을 만나면 분명 좋아하겠지.’
그런데 어쩐 일인지 황녀가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칼포아 마을은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었고, 마차가 돌아다닐 수 있는 대로도 별로 없었다.
“누추하지만 저쪽 골목 끝에 위치한 집이 저희 집입니다.”
이사벨은 조금 의아했다.
아르미텔 중장 정도면 꽤 성공한 인생인데, 무척 낙후된 곳에 살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아르미텔 중장의 집에 대해서 묘사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동생의 약값 때문에 그런가?’
어쨌든 이사벨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한 냄새야. 병원 냄새.’
이곳은 현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병원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온 그녀이기에 이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
이사벨은 저도 모르게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황녀님?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냄새를 맡으니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이사벨은 짐짓 밝게 웃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이사벨은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이사벨은 저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아픈 사람의 목소리.
너무 아파서 큰 소리를 낼 기력조차 없는 목소리.
그녀 스스로가 매일같이 냈던 목소리였다.
‘저기…… 여주 아셀리아가 있어.’
이사벨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소리가 난 방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