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2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22화
거의 평생을 병원에서 살아왔다.
정말 많이 아픈 사람들에게서는 특유의 묘한 냄새가 났다.
실제로 무슨 향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이걸 ‘아픔 냄새’라고 표현했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해 봤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은 이걸 못 맡는 것 같았다.
지금도 여기에는 아픔 냄새가 가득했다.
침대 앞으로 다가간 나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나랑 너무 비슷하게 생겼어.’
잊고 싶었던 내 얼굴.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픈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뒤따라 들어온 아르미텔 중장이 나를 소개했다.
“황녀님이셔, 아셀리아.”
내가 황급히 말했다.
“일어나지 마요.”
모르겠다.
진짜 다 모르겠다.
왜 저 얼굴을 하고 있는 건지, 왜 원작 여주가 이렇게 아픈 건지.
모르겠는 것투성이였다.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저 아이가, 정말로 나랑 비슷한 거라면, 내가 느꼈던 고통들을 경험하고 있는 거라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저 아이에게는 시련일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치인들 올 때 진짜 너무 싫었는데.’
정치인들이 찾아올 때면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야 했다.
오늘 처음 봤고, 앞으로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나랑 사진을 찍었다.
물론 사진을 찍고 나면 그 눈물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옆에 비서 같은 사람들이 손수건을 받아갔다.
사진기에 눈물이 멈추는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줄.
“명령이에요. 일어나지 말고, 그냥 누워 있어요.”
“…….”
명령이라는 말에 아셀리아의 몸이 움찔했다.
갑작스러운 황녀의 등장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은 이사벨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황녀님. 아셀리아예요.”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아셀리아는 지금 말할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몸은 분명히 그런데,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나…… 알 거 같아.’
저 아이가 과거의 나와 너무 똑같이 생겨서 그런가.
나는 저 아이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저 아이는 지금 아픈 가운데서도 작은 설렘을 느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도 그랬었지.’
잊고 있었던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나는 유명 정치인들이 찾아오는 것을 제일 싫어했고, 내 또래 친구들이 찾아오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그 친구들은 나한테 사진 찍자고도 안 했고 나랑 순수하게 얘기를 나눠주었다.
가끔 에너지가 넘쳐서 날 힘들게 했던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나를 꽤 조심스레 대해주었고, 내가 궁금해했던 학교 생활이라든가, 친구들끼리 있었던 일이라든가, 내가 흥미로워하는 얘기들을 많이 해주곤 했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아르미텔 중장님께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아르미텔 중장님이 아셀리아를 엄청엄청 사랑하더라구요.”
“저희 언니가요?”
아픈 가운데서도 눈이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아르미텔이 아셀리아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아셀리아도 아르미텔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네. 아셀리아 자랑을 어찌나 많이 하던지. 무뚝뚝하고 무서운 분인 줄 알았는데 아셀리아 얘기만 나오면 팔불출이 따로 없더라구요.”
아르미텔 중장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황녀님. 제가 언…….”
나는 아르미텔 중장의 말을 끊어버렸다.
“중장님. 또래 친구끼리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겠어요?”
“…….”
“괜찮아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호출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상점에 가서 음료수 같은 거라도 사 오겠습니다.”
“아뇨. 그보다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리랑 같이 장을 봐주세요. 중장님이 함께 있으면 든든할 거예요.”
어디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의 디저트라고 할지라도, 유리가 직접 만들어준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아는 한 유리는 최고의 요리사이자 파티시에이자 바리스타이자 다도 명인이었다.
아르미텔 중장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누워 있던 아셀리아를 바라보았다.
아셀리아가 한마디 톡! 쏘아붙였다.
“어차피 언니는 원래도 내 옆에 없었잖아. 걱정 말고 갔다 와.”
* * *
아셀리아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요? 벌꿀 오소리가 말을 한단 말이에요?”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프지 않았다.
“응. 지금 잠깐 어디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고 있는 거 같은데, 금방 돌아올 거야. 그럼 소개해 줄게. 털이 엄청 보드랍고 몸이 엄청 따뜻해.”
“달콤한 벌꿀 냄새가 나고요?”
“응!”
“신기해!”
아셀리아와 이사벨은 제법 빨리 친해졌다.
“저도 황녀님이 개발하셨다던 라면을 먹어보고 싶어요.”
아셀리아의 입에 침이 고였다. 그러고서 침을 꼴깍 삼켰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몰래 하나 먹을까?”
“의원님이 절대 안 된다고…….”
“의원들은 맨날 그래. 의원들이 살라는 대로 살면 우리는 초록 똥만 먹어야 된다구.”
“초록 똥이요?”
“응, 브로콜리.”
“황녀님도 브로콜리 싫어해요?”
“완전 싫어. 엄청 싫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싫어.”
아셀리아는 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첫 번째는요?”
“오이.”
나는 오이가 싫다.
오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냄새도 싫고 식감도 싫다. 그냥 오이는 다 싫다.
미안해, 오이야.
이사벨은 보이지 않는 오이들에게 사과했다.
“어? 저도요! 저도 오이 싫어해요.”
“먹는 것도 싫고 붙이는 것도 싫어.”
“붙여요? 오이를 붙여요? 어디에요?”
“얼굴에 붙이면 피부가 좋아진대.”
“세상에나……!”
아셀리아는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오이를 얼굴에 붙이다니?
“먹는 걸로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응. 그래서 안 붙일 거야.”
이사벨은 대단한 선포라도 하듯 아주 진지하게 말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매콤한 라면은 먹기 어려울 거야. 대신 우유 크림으로 맛을 낸 크림 라면을 해달라고 하자. 나랑 같이 온 유리는 아주 뛰어난 요리사거든.”
“정말 그래도 돼요?”
“나는 나를 못 믿어도, 유리는 믿어. 유리가 해주면 자극적이지 않고 괜찮을 거야.”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주제는 시시각각 바뀌었고, 사회적으로 봤을 때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라든가, 앞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든가, 내 안의 나를 발견하여 자기를 계발하는 방식이라든가.
그런 얘기는 없었고 떡볶이라든가, 라면이라든가, 아이스 초코 우유라든가, 프렌치토스트라든가, 거의 그런 얘기에 벌꿀 오소리가 첨부되었다.
“……얘기하다 보니 왠지 다 먹는 얘기뿐인 거 같네?”
“황녀님이 말한 거 다 먹고 싶어요. 저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죠?”
“그럼! 당연하지!”
이사벨은 괜스레 속이 쓰려 왔다.
매일 먹어본 사람들은 모른다.
저게 얼마나 절실한 감정인지.
‘왜 저런 모습으로 유희를 즐기는 거야?’
아무래도 아셀리아의 본신인 용은 변태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아셀리아는 완전한 ‘인간’ 아셀리아다.
용으로서의 자각은 전혀 없고 진짜 아셀리아로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지금 느끼는 고통과 괴로움은 모두 진짜였다.
[김벌꿀, 등장.]“뭐 하다가 왔어?”
[김벌꿀은 사나이.] [골목을 제패했어.]뭘 어떻게 제패했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김벌꿀은 꽤 자랑스러운 모양새였다.
김벌꿀의 등장에 아셀리아는 고통도 잊고 몸을 일으켰다.
이사벨을 제외한 타인에게는 상당히 적대적인 김벌꿀이지만 아셀리아에게는 달랐다.
[너, 내 친구가 돼라.]김벌꿀이 먼저 아셀리아의 품에 쏙 안겨들었다.
기분이 좋은지 아셀리아의 가슴팍에 머리를 슥슥 비볐다.
[협상 완료.] [이제부터 친구.]아셀리아는 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김벌꿀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한층 더 훈훈해졌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아셀리아가 입을 열었다.
“네. 정말이에요. 괜찮아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사벨은 알고 있었다.
아셀리아가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이사벨이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었다.
‘네, 괜찮아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건 늘 후원받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후원자들에게 항상 감사와 성의를 표시해야 했었다.
후원자들 앞에서 그녀는 늘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척을 해야 했다.
그것이 그들을 향한 도리였다.
그래서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야 했다.
가끔은 고맙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고맙다고 해야 했다.
한 번은 사진 찍기를 거절했다가 어떤 사람에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애라고.
어린 시절 그녀는 정말로 자기가 잘못한 줄 알고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었다.
그녀는 후원받는 아이였고, 후원받는 아이에게 용납된 감정은 감사뿐이었었다.
이사벨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삐그덕- 소리가 났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떡볶이와 라면 얘기가 아닌, 조금 다른 얘기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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