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2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25화
나는 숙소를 잡는 대신, 아르미텔 중장님이 안내해 준 방에 자리를 잡았다.
중장님은 ‘황녀님을 이런 누추한 곳에 모실 수 없습니다!’라면서 나를 한참 동안 곤란하게 했고, 자기 침대를 나한테 양보하려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아셀리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달려가야 하잖아요? 중장님이 리아랑 가장 가까운 방에서 쉬어야죠.”
“그래도…… 그 방은…….”
평소에는 창고로 쓰는 다락방이었다.
약간 너저분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먼지도 별로 없고 깨끗했다.
넓지는 않아도 아늑하고 좋았다.
“제일 좋은 건 천창이 있다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았다.
“이렇게나 작은 천창 사이로 32개의 별이 반짝거리고 있어요.”
“……예? 삼십…… 이 개요?”
“아, 그게…….”
약간 실수인 것 같았다.
그래, 32개일 리 없지.
“일단 제 시력으로 보이는 건 그 정도예요.”
사람의 눈에는 가시광선 영역의 빛만 보인다.
가시광선은 눈으로 지각되는 파장 범위를 가진 빛이고 그 파장의 스펙트럼은…… 어쩌고 하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이건 지구과학 영역 같은데, 이쪽에는 별로 자신이 없어서 괜히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
괜한 실수를 할 필요는 없는 법이었다.
“아마 특별히 제작한 망원경으로 본 우주에는 훨씬 더 많은 별이 있겠죠. 헤헤.”
“그, 그렇군요.”
아르미텔 중장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나랑 유리가 여기서 자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밤 10시가 넘었을 때, 누워 있던 유리가 벌떡 일어섰다.
“뭐라……!”
“쉿. 작게 말해. 다 들리겠어.”
내 말에 유리가 목소리를 낮췄다.
“저는 납득할 수 없어요. 황녀님의 머리카락이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내 머리카락을 잘라서 아셀리아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는 말을 들은 유리는 결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제가, 제가 어떻게 황녀님의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겠어요?”
유리의 반응은 이미 예상했다.
사실 이 세계에서 영애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게 미의 기준이니까 유리가 이렇게 펄쩍 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리. 내가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 가까이 와봐.”
내가 손짓하자 유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쪼그려 앉아 귀를 가까이 대었다.
“비밀인데 있잖아.”
“…….”
“나 숏컷 좋아한다?”
“숏컷이요?”
아, 이 세계에는 숏컷이라는 말이 없었지.
“응, 아르미텔 중장님 같은 머리. 엄청 예쁘고 멋있지 않아?”
“아르미텔 중장님은 군인인걸요. 하지만 황녀님은…….”
“유리. 부탁이야. 유리는 솜씨가 좋으니까 아주 예쁘게 잘라줄 수 있을 거야. 내가 망쳐놓은 리벨도 유리가 만져주면 금세 예쁜이가 되잖아.”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떻게 황녀님의 머리카락을…….”
사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명령이야, 내 머리카락을 잘라’라고 말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랑 유리는 친구니까.
친구에게는 친구에게 걸맞은 대화방식이 있는 거니까.
내 세상에 처음 생긴 친구를 소중히 대하고 싶었다.
“유리는 왜 내가 머리카락 자르는 게 싫어?”
“그, 그야 당연히…….”
유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확한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긴 머리가 왜 당연한 거야? 나는 숏컷이 해보고 싶은걸.”
“…….”
“나한테는 내가 바라는 걸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 그 자유가 남한테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안 그래?”
“그,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잔뜩 해보고 싶어. 유리도 알잖아. 나한테는 시간이 많지…….”
“그, 그만! 그만요!”
유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고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큰 소리 내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너, 너무 깜짝 놀라서…….”
“아냐. 괜찮아.”
공식 석상이었다면 문제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여긴 사석이었다.
나는 유리를 탓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 같아도 내 소중한 친구에게 ‘나한테는 시간이 많지 않아’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을 테니까.
“해드릴게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숏컷으로 만들어드릴게요. 그러니까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마세요. 제발요.”
“헤헤.”
“웃지 마세요.”
“왜? 헤헤헤.”
“화내고 싶은데 화 못 내겠어요.”
“그러면 화 안 내면 되징! 응? 응? 화내지 말어라, 웅? 웅?”
나는 열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유리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유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내가 시한부라는 것을 일종의 무기로 삼은 게 미안해져서, 조금 더 논리를 보태주었다.
“나는 제국의 황녀고, 사람들이 편협한 사고를 하고 있으면 깨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적어도 남들 눈치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게 남한테 피해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
“……그, 그래도 많이들 쑥덕거릴 거예요. 세상은 조금 특이한 것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헤헤 웃었다.
“나 황녀야.”
“그, 그건 그렇죠.”
가끔이지만, 권력이란 건 좋은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미용실 놀이를 시작했다.
“예쁘게 부탁드려요, 선생님. 기장은 요 정도로요. 참고 모델은 아까 봤죠? 아르미텔 중장님 같은 머리 하고 싶어요.”
싹둑-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거울로 본 나는 여전히 예뻤다.
‘뭔데?’
사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자르고 보니, 확실히 이 외모는 사기적이었다.
‘헤완얼이네…….’
모든 것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 * *
아침이 밝았다.
아랫배가 따뜻해서 보니, 어느새 벌꿀이가 내 배 위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고 있었다.
유리가 만들어준 가발을 이불 삼아서 말이다.
나는 슬쩍 몸을 일으켰다.
‘엉?’
우당탕탕!
어떻게 자고 있던 건지 벌꿀이는 옆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건 잠에서 안 깬다는 것이다.
‘그…… 저기 뭐냐, 잘 자면 됐지 뭐.’
나는 조심스레 가발을 집어 들었다.
솔직히 조금은 오지랖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셀리아에게 가발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셀리아가 정말 과거의 나와 똑같다면.
내가 했던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아마 이 가발을 좋아할 것 같았다.
아셀리아는 좋아할 거 같은데 아르미텔 중장님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황녀님!”
“쉿, 아셀리아 깨겠어요.”
“황녀님. 그게 도, 도대체…….”
“예쁘죠?”
“…….”
“안 예뻐요? 이상하다. 안 예쁠 리가 없는데.”
“…….”
나는 손가락으로 아르미텔 중장님을 콕 찔렀다.
“예뿌잖아요.”
“……예쁩니다. 엄청.”
“잘 어울리죠?”
“잘 어울리긴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아르미텔 중장님 보고 반했거든요. 저는 이 헤어스타일을 일컬어 숏컷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나중에 비아톤 경한테 얘기해서 사전에도 등록할 거예요.”
나는 등 뒤에 숨기고 있던 가발을 꺼냈다.
“유리가 만든 거라서 품질이 엄청 좋아요. 그리고 미숙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복원 마법도 걸어놨어요.”
그 과정에서 리벨이 조금 험한 꼴을 당했다.
리벨에게 새겨진 복원 마법을 공부하느라고 이래저래 만져보았는데 그 과정에 복원 마법 술식이 깨져버렸다.
그건 내게 무척 슬픈 일이었다.
다시 복원 마법을 걸어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리벨의 물리적 내구도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걸 리아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데 싫어할까요?”
“…….”
중장님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잘 안 들려요.”
“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모습이 왠지 화가 났나 싶었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왜 저희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십니까?”
“저는 숏컷이 해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겸사겸사 남은 머리카락으로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본 것뿐이고요.”
“저희가 뭐라고,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가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엄청나게 큰 충격인 것 같았다.
이 시대 상식으로는 좀 파격적인 게 맞긴 한가 보다.
“꼭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예?”
“모든 일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해할 수도 없고요.”
“그래도 이유가…….”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었다.
훗날 배신자가 될지도 모를 아르미텔을 우리 편으로 회유하고 싶다는 것도 사실이었고,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아셀리아에게 마음이 많이 쓰인다는 것도 진짜였다.
그리고 숏컷이 끌렸다는 것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새로운 인생을 얻었을 때, 이왕 이렇게 된 거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떠나자는 다짐을 했었다.
이것도 그 일환이었다.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서요.”
“…….”
“저한테는 또래 친구가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한 명이 생겼어요. 이름은 유리고요. 저랑은 제일 친한 친구예요. 너무너무 소중해요.”
“…….”
전생에서도 정말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또래 친구들이 우정을 쌓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없다가 생겨보니까 너무너무 좋더라구요.”
이건 진심이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친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저만 그렇게 큰 행복을 경험할 수 없잖아요. 저는 황녀니까. 사람들한테 내가 느꼈던 좋은 것들을 공유하고 가르쳐 주고 싶어요.”
어쩌면 예전의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던 아이에게.
“중장님은 리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묻는 거예요. 리아가 이 선물을 좋아할까요?”
“그건…….”
그리고 그날, 작은 마을 칼포아에서 기적이 벌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