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26)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26화
“저한테는 또래 친구가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한 명이 생겼어요. 이름은 유리고요. 저랑은 제일 친한 친구예요. 너무너무 소중해요.”
이사벨 뒤에 서 있던 유리는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마침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그녀를 비추어서 몸과 마음이 따뜻해졌다.
‘저도요. 저도 황녀님이 소중해요.’
소리는 내지 않고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이사벨에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편, 이사벨과 아셀리아 사이에서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갔다.
“제가 어떻게 그런 귀한 것을 받을 수 있겠어요?”
“귀한 거니까 귀한 사람한테 주고 싶어.”
결국 이사벨이 말했다.
“황녀로서 명령이야. 받아.”
“……명 받들게요.”
“내가 무슨 독약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표정이 우울한 거야?”
“그게…….”
“죄송해서지?”
“죄송해서요.”
이사벨은 아셀리아와 똑같은 타이밍에 말했다.
아셀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어떻게…….”
그것마저도 똑같았다.
아셀리아는 눈을 끔뻑거렸다.
아무래도 이사벨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럴 땐 죄송합니다가 아니고 고맙습니다 하는 거야.”
“……고맙습니다.”
“그래. 얼른 써봐. 잘 어울리면 좋겠다.”
결국 아셀리아는 머뭇거리다가 떨리는 손으로 가발을 써보았다.
미적인 감각이 별로 없는 아르미텔이 만들어주었던 것보다 훨씬 고퀄리티의 가발이었다.
직접 가발을 만든 유리도 괜스레 손에 땀을 쥐었다.
아셀리아에게 느끼는 일종의 질투와는 별개로, 유리 또한 저 가발이 아셀리아에게 잘 어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셀리아가 가발을 쓴 걸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잘 어울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상한데?’
마법사가 아닌 유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왜 머리카락이……?’
뿌리부터 색깔이 변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사벨의 머리카락과 아셀리아의 머리카락이 섞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물감처럼 말이다.
뿌리 끝이 검은색으로 물드나 싶더니 형형색색의 오묘한 빛무리가 생성되었다.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다가 이내 머리카락 색깔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이사벨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예쁘다.”
가발을 씌워줬는데 진짜 머리카락이 생겼다.
이 기이한 현상을 논리적으로 해석할 겨를도 없었다.
갑자기 생겨난 저 에메랄드빛 색깔이 참 고왔다.
「아룬은 저도 모르게 아- 하고 깊은 탄식을 내뱉곤 했다.」
이사벨도 그랬다.
저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머리카락 색깔이 바뀌었을 뿐인데 아셀리아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눈동자는 여전히 검은색이기는 했지만 머리카락 만큼은 소설 속에 서술되어 있던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이 분명했다.
이사벨은 큰 충격을 받았다.
‘분명 나랑 비슷하게 생겼었는데…….’
달라진 건 머리카락뿐이었다.
‘근데도 너무 예뻐.’
여전히 피부는 푸석했고 혈색은 나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예쁘게 느껴졌다.
‘내 옛날의 얼굴과 너무 닮았는데도.’
어쩌면 내가 내 얼굴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결국 이사벨은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 스스로 사랑하지 못했을 뿐, 나도 참 예뻤었구나, 라고.
한편, 아셀리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더듬더듬 만져보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아르미텔도 깜짝 놀랐다.
“황녀님, 도대체 이 현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법 술식을 카피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난 것 같기는 한데…….”
어쩌면 사소한 실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그걸 파악할 수 없었다.
그나마 원인을 찾아볼 수 있는 단서인 ‘리벨’에게 새겨져 있던 기존 술식도 모두 파괴되어 버렸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예뻐요. 머리카락 색깔이 바뀐 것이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리아가 마음에 들면 좋겠는데, 어때?”
아셀리아는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이사벨보다 키가 훨씬 작았고 야위었다.
아셀리아는 이사벨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사벨을 와락 끌어안았다.
“어떻게 마음에 안 들 수 있겠어요?”
“으, 응?”
마치 김벌꿀처럼 아셀리아가 이사벨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해도 될까요?”
“…….”
“아니, 사랑할래요. 사랑하게 해주세요. 고마워요, 황녀님. 세상을 선물 받은 기분이에요.”
진심을 담아 또박또박 말하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머리카락 색깔이 달라져서 그런지, 내 옛 모습과는 또 다르게 느껴졌다.
귀여운 여동생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사벨은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맞아. 아셀리아는 원작 여주었었지.’
그것도 그 유명한 햇살 여주.
그 햇살 여주가 이사벨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마치 햄스터 같았다.
‘아…… 나, 햇살 여주 좋아했네.’
김벌꿀이 팔짱을 끼고 콧김을 내뿜었다.
[약간, 위협적.] [정정함.] [다분히, 위협적.]* * *
최근 마법 연방은 빌로티안 검술제국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살피고 있다.
마법 연방은 본래 다섯이었던 ‘창성 마법사’의 숫자를 무려 열둘까지 늘리면서 그 세를 키워나가는 중이었다.(그중 한 명인 빌헬름은 현재 행방불명이어서 실질적으로는 열 한 명이었다.)
창성 마법사 중에서도 원로에 속하는 크리아스는 반가운 보고를 받았다.
“지금 황녀 곁에 비아톤이 없단 말이지.”
크리아스는 지난 하늘 섬 공개토론회에서 마법 연방 측 VIP이자 중재자로 참석했던 창성 마법사였다.
당시 크리아스는 비아톤을 떠보며 빌로티안의 검은 속내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썼었다.
다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별로 수확은 없었다.
‘여전히 밉상이군, 비아톤.’
‘여전히 늙으셨네요, 크리아스 경.’
‘로베나 대공 밑에서 마법을 수학한 그대의 혀가 잘리지 않은 것이 용하다.’
‘제 혀가 좀 튼튼해서요.’
거의 이런 대화였으니까.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사용하는 것은 빌로티안의 뜻이냐, 대공의 뜻이냐?’
그렇게 물었더니 황녀의 뜻이라는 어이없는 대답만 들려왔을 뿐이었다.
딱히 수확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빌로티안 황실은 황녀를 이용해 무언가 시꺼먼 계책을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여론전에는 관심 없던 그들이 여론전에 참여하고, 황녀의 이미지를 햇살로 쌓아 올리고 있다.
정치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던 이들이 정치에까지 힘을 쏟고, 라면과 테이사벨 이동 관문으로 수많은 사람의 생활에 침투하고 있다.
마법 연방 입장에서는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일이었다.
“확실한가? 비아톤이 곁에 없어?”
“예, 그렇습니다.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그놈은 어디 갔는데?”
“최근 바르칼트 호수로 자주 향하고 있습니다.”
“그 먼 곳을?”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양입니다.”
“혹시 베크사가 세상에 직접 관여할 확률은?”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자신이 가진 힘이 너무 거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은거를 택하신 분이니까요.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지 않겠다고 공언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원칙을 깨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아톤의 어머니인 베크사.
그녀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불세출의 천재였다.
창성 마법사들 위에 군림하는 창성 마법사라 불리던 베크사가 비아톤을 돕는다면 무척 피곤해진다.
아니,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위험해진다.
“걱정 마십시오. 베크사 경은 십수 년간 비아톤과 거의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남남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제 와서 빌로티안에 힘을 실어줄 리는 없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사벨은 토론회에서 마법 연방과 요리 협회에 큰 굴욕을 선사했다.
그것은 곧 마법 연방을 이끄는 창성 마법사 전부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칼포아라 했나? 호위는?”
“대외비로 관리되는 중장급 인물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평민 출신이고 이름은 아르미텔입니다. 지르델 베이스캠프의 총책임자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상관없겠군. 칼포아에 아주 흉악한 살인마들이 있고, 그들을 숨기는 못된 주민들이 있다지? 우리가 파악한 위치는 대략 어디 보자…… 대략, 이쯤이 될 거고.”
그가 지도의 한 부분을 짚었다.
아르미텔 중장의 집이 있는 위치였다.
“…….”
물론 흉악한 살인마나 그들을 숨겨주는 주민들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없으면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지하 감옥에서 몇몇 추려서 보내. 그리고 3급 버스터를 발령한다.”
“지, 진심이십니까?”
‘버스터’는 무차별 폭격을 뜻한다.
광범위한 지역에 광범위한 마법 폭격을 쏟아붓는 것.
그것이 버스터다.
총 5단계로 구분되는데, 3급 버스터는 작은 전쟁에서 사용할 수준이었다.
선전포고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 강도의 버스터기도 했다.
죄 없는 사람들이 많이 희생될 것이었다.
“3, 3급 버스터가 맞습니까?”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께름칙한 증거가 안 남지. 빨리 움직여라. 비아톤이 복귀하기 전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