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2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28화
세르나가 론의 손을 꼭 붙잡았다.
“진정 좀 해요. 자. 심호흡 해봐요. 나 따라서. 후우- 하아-”
그는 이성을 잃으리만치 분노한 상태였으나 후우- 하아- 하는 세르나의 말에는 잘 따르며 숨을 골랐다.
론이 앉아 있던 의자의-금속재질이었다-손잡이는 모조리 박살이 난 상태.
론의 집무실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다만 그 살기는 기묘하게 세르나의 주변만 피해서 퍼져 나간 상태였다.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아내한테만은 화를 낼 수 없는 병’에 걸린 론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세르나, 그대는 화가 나지 않는가?”
세르나의 눈에 론의 손등이 보였다.
평소보다 핏줄이 잔뜩 솟아나 있었다.
정말로 화가 나면 론의 손이 저렇게 되었는데, 세르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세르나는 론과 맞잡은 손에 꼭 힘을 주었다.
“화가 나요. 정말 너무 많이 화가 나요. 그들은 선을 넘었어요.”
“우리가 그간 지나치게 평화를 사랑해 왔던 것 같군, 세르나.”
“그러나 크리아스는 이미 죽었어요. 더 이상 화를 내야 할 대상이 없어요.”
“세르나, 그대는 이것이 크리아스의 단독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하나?”
세르나라고 화가 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론보다 더 화가 났다.
그렇기에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저도 단독 소행이라고 생각 안 해요. 분명 마법 연방의 입김이 작용했겠죠. 그렇지만 그들은 크리아스 개인의 일탈이라고 못 박았어요. 크리아스의 모든 재산을 사과의 의미로 우리에게 선물한다고도 했고요. 여기서 전쟁을 선포해 봐야 우스워지는 것은 우리예요. 명분이 부족할뿐더러, 결정적으로 백성들이 지나치게 두려워해요. 사실관계야 어찌 됐든 우리는 무섭고 야만적인 검귀들이고, 마법 연방은 온화하고 슬기로운 지혜의 족속들이잖아요.”
“어느 누가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대부분 그래요. 빌로티안은 500년간 정치라든가 언론 같은 건 신경 안 썼잖아요. 이미지 메이킹 같은 건 겁쟁이 소인배들이나 하는 거라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년을 버텨온 건, 빌로티안의 검술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만약 이것이 마법 연방의 뜻이었다면, 우리도 보다 치밀하고 교묘하게 알아봐야 해요.”
“…….”
“아니. 사실 그게 그들의 뜻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게 무슨 뜻인가?”
“사실관계와는 별개로 나는 절대로 그들을 그냥 둘 생각이 없어요.”
이사벨에게 뛰어난 마법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마법 연방의 심기를 계속 거스르게 할 것도 알고 있다.
꼭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사벨과 마법 연방은 사사건건 부딪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번 사건의 배후에 마법 연방이 있었다면 더욱 처절하게 복수할 것이기도 했고.
“나는 그들을 무릎 꿇리기로 마음먹었어요. 우리 딸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요. 행복과 기쁨으로만 가득 차도 짧은 시간이잖아요.”
“…….”
“나는 우리 딸에게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을 선물해 주고 싶어요. 나는 이사벨의 적들에게, 이사벨의 엄마가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에요.”
론은 세르나를 바라보았다.
세르나 안에서, 얼음보다 차가운 불길이 거칠게 타오르고 있었다.
화를 내는 방식이 론과 달랐으나 세르나는 분명 분노하고 있었다.
“나한테 맡겨줘요. 조금씩, 천천히, 그렇지만 완벽하게 준비할 테니까.”
세르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안 그래도 아이들에 대한 막대한 부채감이 가슴속에 쇳덩이처럼 남아 있는 엄마였다.
제국 일이 너무 바빠서.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거의 보내주지 못했다.
‘온화의 군주’라는 이명으로 불리며 제국민들의 훌륭한 어머니가 되어주었으나, 막상 아이들의 좋은 어머니는 되어주지 못했다.
그 죄책감이 세르나의 마음을 늘 짓눌러왔다.
그런데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이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더해져 그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세르나의 마음을 읽어낸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론이 세르나와 맞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세르나, 그대를 믿을게.”
“고마워요.”
“그리고 언젠가 때가 온다면, 그대의 명령으로 나를 사용해. 내가 그대의 가장 강력한 검이 되어줄 테니.”
세르나가 빙긋 웃었다.
과연 온화의 군주답게 따스한 미소였다.
“언젠가 그때가 온다면, 칼춤을 춰주세요.”
아빠의 칼춤을.
* * *
칼포아 마을 폭격은 주민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마법 연방은 연방 차원에서 대대적인 사과를 했으며, 크리아스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여 황가에 헌납하겠다고 했다.
또한 마법 연방이 적극적으로 나서 칼포아의 재해 복구에 힘쓰겠다 하였고 유족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지급했다.
대외적으로는 ‘크리아스의 오해와 섣부른 정의감에 의한 실수’라고 발표되었다.
습격 사건이 있고 이틀이 지나서야 이사벨은 정신을 차렸다.
“황녀님?”
누군가 이사벨을 와락 끌어안았다.
몸집은 이사벨보다 훨씬 컸으나, 지금 이 순간은 이사벨보다 작았다.
“또 잃는 줄 알았습니다.”
“그…….”
이사벨은 자신을 껴안은 비아톤을 밀어냈다.
“잠깐만요, 선생님. 제발 떨어져 주세요.”
“…….”
비아톤은 세상을 모두 잃은 듯한 표정으로 이사벨과 멀어졌다.
“제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그렇게 많이 납니까?”
소식을 듣자마자 이곳을 향해 뛰어왔다.
깨끗하고 씻는다거나 향료를 바를 겨를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요. 선생님의 마음이 전해져서 너무 힘들어요.”
비아톤은 ‘또’라고 말했다.
소중한 사람을 두 번 잃을지도 모른다는 그 어마어마한 절망감이 이사벨의 마음에 전달되었고, 그건 막 깨어난 이사벨이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제 몸에서 냄새나서 그런 건 아니죠?”
“아니에요. 절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비아톤에게서는 늘 청량한 향기가 났다.
굉장한 주접이기는 하지만 등에 코 박고 냄새를 맡고 싶을 정도였다.
‘진짜 그러면 싫어하겠지?’
그건 참기로 했다.
비아톤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금 기다리겠습니다.”
비아톤도 어느새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아르미텔과 이사벨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러니까,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크리아스가 쓰러져 있었다는 거지요?”
“네. 제가 확인했을 때에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제대로 된 증거를 수집할 수 없었다.
제국에서 급히 파견된 수사관이 크리아스의 몸에 손을 대자, 크리아스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숨을 거둔 것은 확실히 확인했습니까?”
“제가 봤을 때는 그랬습니다. 다만 상대가 창성 마법사이니 다른 수작을 부려놓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빌헬름과 마찬가지로 크리아스 또한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
비아톤은 현장에서 또 다른 단서가 있을 만한 것이 있나 찾아보았다.
별 쓸모없는 증언도 있었다.
[이사벨은 내가 지켰어.]“그래. 네가 지킨 걸로 하자, 김약골.”
[약골 아님.] [왕진짜임.] [내가 무찔렀음.]“아르미텔 중장의 말에 따르면 너는 크리아스가 나타나자마자 기절했다던데?”
크리아스의 기세를 느낀 벌꿀 오소리는 털을 바짝 세우고 이빨을 드러냈지만 창성 마법사가 내뿜는 살기에 짓눌려 기절하고 말았다.
이번 전투에서 김벌꿀의 존재감은 매우 미비했다.
“아니면 네 이름, 김기절 어때? 너 바로 기절했다니까?”
[거짓부렁!] [김벌꿀은 기절 안함!]캬악!
김벌꿀은 비아톤을 향해 입술을 말아 올리고 으르렁거렸다.
겉으로는 그랬으나 속으로는 김벌꿀도 마음이 복잡했다.
자꾸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너도 봤지? 그 무서운 녀석을?
김벌꿀은 속으로 대답했다.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김벌꿀은 보다 고차원적인 사고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벌꿀오소리는 겁먹지 않아.
-그 용은 종족의 율법을 어겼어. 그 힘은 분명 용의 힘이었고, 인간의 모습일 때 사용하면 안 되는 힘이었어.
-김벌꿀은 이해하지 못했음. 무슨 말을 하는 거임?
-기억해 내. 저 용이 어떻게 유희 중에 본신의 힘을 끌어내서 사용했는지. 저 용이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거야.
김벌꿀은 눈을 감고 자는 체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이사벨을 잊게 될 거야. 언젠가 이사벨에게서 떠나야 한다고.
김벌꿀이 벌떡 일어섰다.
[싫어.]김벌꿀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이사벨과의 이별이라니, 그건 너무 끔찍했다.
김벌꿀은 침대에 누워 있는 아셀리아에게 달려가 그녀의 배 위로 폴짝 뛰었다.
[가르쳐 줘.]깜짝 놀란 이사벨이 황급히 달려와 김벌꿀을 들어 올렸다.
“김벌꿀! 리아는 환자야. 조심히 굴어야지.”
[가르쳐 줘!]김벌꿀의 눈동자에 미묘하게 초점이 사라져 있었으나 이사벨은 그걸 발견하지 못했다.
그 미묘한 차이를 발견한 사람은 비아톤이 유일했다.
그러나 비아톤은 침묵하며 김벌꿀을 바라보기만 했고, 이사벨이 다시 물었다.
“뭘 가르쳐 달라는 거야?”
[나쁜 짓 하는 법!]거기까지 말한 김벌꿀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김벌꿀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