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2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29화
아셀리아는 조금 서운해했다.
“처음에는 나한테 안기고 그랬잖아.”
그러나 김벌꿀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김벌꿀이 입술을 말아 올리고 으르렁거렸다.
[손대지 마.]아셀리아가 혹시 머리에 손이라도 대면 콱! 물어버릴 기세였다.
로베나 대공 사건으로 인하여 사람을 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워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힝.”
이사벨이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머리카락색이랑 눈동자색이 낯설어서 그런가 봐.”
가발로 인해 머리카락 색깔이 바뀌었고, 기절하고 깨어나 보니 눈동자 색도 바뀌어 있었다.
소설 묘사대로 둘 다 에메랄드빛이었다.
더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다.
‘아픔 냄새가 안 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본신인 ‘용’이 어떻게 했겠거니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어쨌든 아셀리아는 곧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신기한 건 아셀리아의 외모였다.
‘분명 예전의 나랑 닮았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랬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바뀌어서 그런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
닮기는 닮았으되 닮았다고 인식이 잘 안 되었다.
처음 봤을 때와는 아예 다른 사람 같았다.
‘원작 여주는 저렇게나 예쁘구나.’
말 그대로 주변이 화사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사벨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는 다시 친해질 수 있을 거야. 벌꿀이는 착한 아이거든.”
김벌꿀이 고개를 휙! 돌렸다.
[틀렸어.] [김벌꿀은 이사벨한테만 착해.]이사벨의 품에 안긴 김벌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왜 처음 저 여자애를 만났을 때는 그렇게 반가운 느낌이었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사벨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벌꿀오소리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 *
며칠이 흘렀다.
칼포아의 일은 거의 마무리되었고 이사벨 일행은 다시 지르델 왕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며칠 사이 건강을 많이 회복한 아셀리아가 직접 걸어서 배웅을 해주었다.
“황녀님. 제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마워요. 요 며칠이 저한테는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진심으로 고마워요.”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워.”
아셀리아는 유리에게도 손을 건넸다.
“유리 언니. 나는 언니도 좋아. 이번에는 엄청 친해지지 못했지만 다음에는 친해지면 좋겠어.”
“…….”
유리는 조금 고민하다가 그 손을 맞잡았다.
약간 시샘이 나기도 했지만, 사실 유리도 아셀리아가 싫은 건 아니었다.
아셀리아는 아르미텔에게도 말했다.
“언니. 또 나 보러 와줘야 해. 나 여기서 기다릴 거야. 발 동동하고 있을 거야. 알겠지?”
그 모습에 이사벨은 침을 꼴깍 삼켰다.
저 햇살 여주를 부둥부둥해서 앞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었다.
왜 원작 속 주인공들이 아셀리아에게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귀여운 게 최고였다.
그런데 갑자기 비아톤 경이 이사벨의 귀에 속삭였다.
“황녀님이 더 귀엽습니다.”
“……네?”
“백만 배 정도요.”
이번 사건을 겪은 이후로 비아톤의 주접과 집착이 조금 더 심해졌다.
지금도 이사벨에게서 10㎝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이사벨도 비아톤의 그 절망적인 감정을 직접 느껴보았으니 떨어지라고 말도 못 하는 중이었다.
아셀리아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넨 대상은 김벌꿀이었다.
“벌꿀이도 다음에는 친해지자!”
캬악!
“아, 알았어. 안 건드릴게.”
김벌꿀에게는 햇살 여주의 사랑스러움이 통하지 않았다.
* * *
지르델 왕국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한참을 고민하던 아르미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길이 좋지 않은지, 꽤 덜컹거렸지만 아르미텔은 중심을 무척이나 잘 잡았다.
이사벨이 물었다.
“왜 그렇게 서 있어요?”
“그건…….”
아르미텔은 굉장히 불편한 모양새였다.
말하기 껄끄러운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편하게 말해봐요. 들어줄게요.”
“…….”
아르미텔은 조금 더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황녀님에게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 은혜를 갚을 무언가가 없습니다. 제가 황녀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르미텔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녀는 검날을 잡은 채 검의 손잡이를 이사벨 쪽으로 향하여, 이사벨에게 검을 바쳤다.
“제가 당신의 검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평생 기사 서약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군인 아르미텔.
훗날, 원작 속에서 황가를 배신할 조연이 이사벨에게 간절히 요청했다.
내가 당신의 검이 되겠노라고.
“그…… 저기 뭐냐…….”
“말씀하십시오. 황녀님의 어떤 말이든 겸허히 받들겠습니다.”
“사람은 유기화합물이고 검은 무기화합물인데…….”
아르미텔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저런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요즘 제가 화학을 공부하는 중이어가지고…… 헤헤.”
“……그렇습니까?”
이사벨은 멋쩍은 듯 활짝 웃었다.
“자, 장난이에요. 기쁘기는 한데, 조금 민망하기도 해서 농을 던져봤어요.”
“……그게 농이었군요.”
아르미텔은 약간의 충격을 받기는 했으나 어쨌든 이사벨과 기사 서약을 맺었다.
아르미텔은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동생도 굉장히 많이 호전되었다.
아셀리아를 진찰한 의원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의원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황녀님은 제게 기적이십니다.’
원수는 두 배로.
은혜는 백 배로.
그게 아르미텔의 신조였다.
‘기적을 선물받았으니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는 막막하지만.’
그건 차차 알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마차 속도가 왜 이렇게 느리지?’
이 정도면 사람이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아톤에게 물어보았으나 비아톤은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아르미텔은 마차를 잠시 멈춘 뒤 마부에게 다가갔다.
“왜 이리 천천히 가는 거지?”
“안전 속도를 준수했을 뿐입니다.”
어느샌가 마부가 바뀌어 있었다.
“조금 더 빨리 가주면 좋겠군.”
“싫습니다.”
“뭐?”
“저는 안전을 최고로 추구합니다.”
아르미텔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저렇게 뻣뻣한 마부는 처음 봐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약간 고민하고 있을 무렵, 이사벨이 마차에서 내렸다.
“아, 아, 아니, 마부 아저씨!”
이사벨은 활짝 웃었다.
‘아빠다!’
일단 론을 만난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큰일을 겪고 난 이후여서 더 그랬다.
아르미텔은 순간 넋을 잃고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이사벨이 밝게 웃자, 그녀의 주변이 화사해졌다.
예쁜 꽃이 잔뜩 핀 것 같았다.
“아는 사람입니까?”
“네! 제가 좋아하는 마부 아저씨예요. 언제 오셨어요?”
황녀가 마부를 대하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공손했다.
그러나 황녀를 대하는 마부도, 그 옆에 선 비아톤도 이 모든 게 자연스러운 듯했다.
심지어 이사벨 곁에서 10㎝ 이상 떨어지기를 거부하던 비아톤이 지금은 두 발자국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방금 왔습니다. 하필이면 이전 마부가 빈혈로 쓰러졌다고 연락이 와서요.”
비아톤이 이죽거렸다.
“빈혈로 쓰러뜨린 건 아니고?”
“제게 무슨 그런 힘이 있습니까?”
“엄청나게 바쁜 마부라 알고 있는데 요새 안 바쁜가 봐, 마부.”
“무엇이 중요한지 배웠을 뿐입니다, 비아톤 경.”
아르미텔은 혼란스러웠다.
일개 마부와 제국 수석보좌관이 나누는 대화치고는 지나치게 격이 없었다.
마부가 말했다.
“황녀님께서는 햇빛과 바람을 즐기시니 제 옆에 앉아 가면 되겠군요.”
“좋아요!”
안 그래도 아빠와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너무 큰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 너무 무서웠어요.
미주알고주알 떠들고 싶었다.
아르미텔이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서 안 됩니다.”
그런데 비아톤이 아르미텔의 옷깃을 슬쩍 잡아당겼다.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두라는 뜻이었다.
결국 마차 안으로 들어온 아르미텔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도대체 저 마부는 정체가 뭡니까?”
평범한 마부는 절대 아니었다.
마부에게서는 단련된 무인의 기도가 느껴졌다.
너무 깊어서 밑이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와 마주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저 마부는 황녀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마부입니다.”
“도대체…….”
“그냥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있습니다.”
검술 제국 황제가 마법으로 변장해서 마부를 자처한다?
제국민들 상식상 있을 수 없는,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비아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야근 확정이네.”
황제가 우선순위를 새로 세워버렸다.
그럼 누군가가 황제가 하던 일을 해야 한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수석보좌관 비아톤이고 말이다.
‘그렇지만 싫지는 않군.’
마침, 마차 바깥에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바빠질수록 황녀님이 행복해지니까.’
그거면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일손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보좌관을 한 명 더 뽑아달라고 하긴 해야 할 거 같은데.”
근데 그 더럽게 까다로운 황제 폐하가 과연 보좌관을 새로 뽑아줄지는 미지수였다.
황제는 보좌관으로 아무나 들이지 않는다.
비아톤이 이렇게 생고생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유능하면서 믿을만한 사람을 선별해야 했다.
“……잠깐?”
그의 눈에 아르미텔이 눈에 들어왔다.
“흐흐흐.”
“왜, 왜 그러십니까?”
“혹시 공무원 생각 없습니까?”
아르미텔은 괜스레 불길해졌다.
한편, 마부(?)와의 시간을 즐기던 이사벨이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마부 아저씨. 그런데 있잖아요. 비아톤 선생님이 아주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거는, 알고 계시는 거죠?”
마부의 몸이 움찔 떨렸다.
자신의 정체를 잊은 듯, 그가 반말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