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3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31화
나는 일단 미하엘을 진정시켰다.
“오빠. 그렇게 달려오면 말들이 놀라요.”
미하엘은 왠지 모르게 약간 억울한 모양새였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말들에게 사과는 했다.
“미안해, 친구들.”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말들이 미하엘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푸르륵대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게 또 되네…….’
그러고 보니 벌꿀이랑 처음 교감(?)한 사람도 미하엘이기는 했었다.
미하엘이 내게 투덜거렸다.
“왜 나 빼고 놀러 갔어?”
“놀러 간 거 아니에요.”
“그러면?”
“중요한 사람을 만나고 왔어요.”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
나랑 얼굴이 똑같았고,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의 여주였으니까 아주아주 중요한 사람이겠지?
“엄청 많이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그래?”
내 변명 아닌 변명에 미하엘은 활짝 웃었다.
“알겠어.”
미하엘은 서운했었다는 사실이 민망해질 만큼 빠르게 활력을 되찾았다.
아니, 활력은 이미 충만했었나, 흠흠.
아무튼 아주 잠깐 섭섭함을 느꼈던 미하엘은 오늘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왔느냐?”
“카만 오라버니가 마중을 나와 줄은 몰랐어요.”
“…….”
카만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말을 제외하면 안 하는 설정이어서 그런가, 어쩐지 요 며칠 사이 더 과묵해진 것 같았다.
미하엘이 풉! 하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검지로 들어 자신을 가리킨 다음,
“나는 오빠.”
그다음은 카만을 가리켰다.
“형은 오라버니.”
다시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오빠.”
다시 카만을 가리켰다.
“형은 오라버니.”
“…….”
하는 짓을 보면 아주 애가 따로 없었다.
언제 철이 들지 모르겠다.
“이제 나도 인사해도 될까?”
나는 깜짝 놀랐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억!’
생각해 보니, 아까 휘몰아치던 모래폭풍 사이로 두 명의 남자가 보였던 게 기억이 났다.
한 명은 카만이었고 다른 한 명이 더 있었…… 있었나?
‘뭐지?’
그때, 미하엘의 그림자 속에서 쑤욱! 하고 검은 것이 튀어 올랐다.
마치 유령 같았다.
“으아악!”
깜짝 놀라 나자빠질 뻔했는데 비아톤 선생님이 나를 받쳐주었다.
“2황자님. 그렇게 등장하시면 황녀님이 깜짝 놀랍니다. 다음부터는 등장을 조심해 주십시오.”
미하엘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2황자 세르몬이었다.
선택식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선택식 때 미하엘과 세르몬이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형님아, 제가 더 귀엽지 않아요?”
‘귀여움을 시기하면 못 써.’
‘그렇지만 내가 더 귀여운걸요.’
‘아니. 이사벨이 더 귀여워. 확실해.’
그걸 떠올려 보니 세르몬은 나를 꽤 귀엽게 봐주는 것 같기도 하고?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 나는 비아톤 경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고 자리에 바로 섰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휙!
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방금 뭐가 지나갔어?’
아주 예리하고 날카로운 뭔가가 지나간 느낌이었다.
챙!
날붙이와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비아톤 경이 말했다.
“그사이 더 날카로워지셨군요.”
비아톤 경의 뺨에 가느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선생님! 뺨에 피나요.”
“2황자님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뜻이죠.”
비아톤 경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회복 마법을 사용하여 뺨을 치료했다.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겠는데 미하엘 옆에는 세르몬이 서 있었다.
세르몬이 무척이나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군. 목을 찌를 뻔했는데.”
“아직 멀었습니다, 황자님.”
“다음에는 목을 찌르도록 하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런 살벌한 대화를 저렇게 따뜻한 표정으로 하니까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기대하죠.”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두 눈을 끔뻑거렸다.
여기서 이해 못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 들이야?’
* * *
한바탕 소동을 치른 뒤, 지르델 베이스캠프의 막사로 이사벨은 침상에 대자로 누워 버렸다.
비아톤은 이사벨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많이 피곤하셨나 보군요.”
“네, 엄청요. 도대체 세르몬 오라버니는 어떤 분이에요? 황궁에서 세르몬 오라버니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쩐지 다들 쉬쉬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몇 번인가 사람들에게 세르몬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애기는 어떻게 생겨요?’ 하고 질문했을 때와 같은 반응들이었다.
‘소설 속에서도 세르몬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었어.’
오죽하면 첫 등장 신이 죽음 신이었을 정도였다.
빌로티안 황가가 멸망하는 날, 세르몬이 남주 아룬을 급습하는 장면이었다.
「아룬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네가 그 소문의 2황자로군. 정말 뛰어난 암살 실력을 가졌구나.”」
남주 아룬조차도 세르몬의 암습에 작지 않은 부상을 입었을 정도였다.
「“살려두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하다.”
“2황자를 키워낸 곳이 블라독 공작가라고 했던가.”」
세르몬은 첫 등장과 동시에 최후를 맞이했다.
비아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황녀님.”
“가끔은 써도 삼켜야 하는 약이 있잖아요.”
이사벨이 황궁 내에서 마주치지 못했던 혈육들에게 비교적 무관심했던 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녀 앞에, 그녀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온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언젠가 마주치겠지.
그때가 되면 최선을 다해야지.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을 살았다.
그녀에게 주어진 ‘오늘’은 남들보다 현저히 적으니까.
그리고 오늘 2황자를 만났다.
이제는 2황자에 온정성을 쏟아야 할 때였다.
“저는 약을 삼킬 준비가 되어 있어요.”
비아톤은 입술을 달싹이며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내 굳게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세르몬 황자님은 블라독 공작가에서 자랐습니다.”
“아레나궁을 거치지 않고요?”
“예. 태어나자마자 블라독 공작가에서 양육되었습니다.”
제국 2대 공작가 중 하나인 블라독 공작가의 이름이 등장했다.
블라독 공작가는 베일에 가려진 가문이었다.
서쪽 끝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왜요?”
“세르몬 황자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결정되었거든요.”
“어떤 운명이 결정되었는데요?”
“그림자로 양성될 운명이요.”
블라독 공작가.
그들은 대대로 제국의 어두운 면을 담당해 왔다.
언젠가 황실에 커다란 위협이 닥쳤을 때, 혹은 제거해야만 하는 적이 있을 때, 황실의 치부를 가려야 할 때 은밀히 움직이는 자들이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들을 통솔하는 통솔권자가 바로 ‘제1그림자’였다.
세르몬이 바로 그 ‘제1그림자’로서 선택되어 훈련받는 중이었고.
황위를 계승받는 대신, 황가를 수호하는 주체로서 키워지는 것이었다.
“황실은 대대로 당대의 혈육 중 한 명 이상을 블라독 공작가에서 양육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런 걸 용납했을 리 없어요.”
“황후께서 용납하고 용납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황실을 지탱해 온 하나의 율법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2황자님은 황실에 어떤 변고가 생겼을 때 움직이는 최후의 보루로서 키워진 것입니다.”
이사벨은 아까 세르몬과 악수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이사벨은 깜짝 놀라 손을 뗄 뻔했다.
세르몬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비아톤을 향한 깨끗한 살의(殺意)였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그 살의에는 그 어떠한 악의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아무런 악의 없이 벌레의 몸통을 잡아 뜯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딘가 결여되었다? 어딘가 비틀려 있다?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도대체 어떻게 양육하면 그렇게 돼?’
어쩌면 감정을 배우지 못한 인형 같기도 했다.
“그건…… 옳지 않잖아요.”
“빌로티안 황실을 열두 번이나 구원한 것도 사실이지요.”
빌로티안의 500년 역사상 ‘제1그림자’들은 약 12번 정도 활약하며 황실을 위험에서 구해냈다.
기감이 무척 예민하여 론의 변장조차 순식간에 알아차리는 이사벨이, 세르몬의 접근과 은신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만이 ‘그림자’의 능력이었다.
“아 참, 제가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또한 그림자들에게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누군가를 죽여도 벌을 받지 않지요. 상대가 제국 수석보좌관이라고 할지라도요.”
“그러다 비아톤 경이 크게 다치면요?”
“그건 제 역량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그리고 제1그림자의 실전을 돕는 것도 수석보좌관의 의무 중 하나입니다.”
“……저는 아까 너무 무서웠단 말이에요.”
비아톤은 이사벨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손길로 이사벨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공감했다.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나요?”
“너무 순수한 살의였어요.”
비아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황녀님이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야.’
2황자의 존재는 암묵적인 비밀이었고, 그 누구도 먼저 언급하지는 않는다.
황가 입장에서도 ‘제1그림자’는 늘 아픈 손가락일 수밖에 없었다.
“황녀님. 일단 먼 길을 달려왔으니 조금 쉴까요? 토닥여드릴게요.”
이사벨은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고 비아톤은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 * *
언제 잠들었지.
새벽 내내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내 옆에는 앉아서 졸고 있는 비아톤 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악!”
선한 인상의 미남자가 보였다.
세르몬 오라버니였다.
착하고 다정한 모양새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에 그건 뭐예요? 화관 같은데…….”
“화관 맞아.”
저렇게 커다란 남자 사람이 머리 위에 화관을 쓰고 있는 모양새가 이상할 법도 한데,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기묘할 지경이었다.
“어째서 화관을 쓰고 계세요?”
“네가 벌꿀 오소리와 함께 이걸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만들어 보았어. 어때?”
“잘 어울려요. 엄청.”
“그래? 다행이다.”
노란색 꽃으로 얼기설기 엮은 화관은 모양새가 좀 투박했다.
그렇지만 세르몬의 미모와 함께 어우러지니 세상 그렇게 아름다운 화관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만드는 게 좀 어렵더라. 같이 만들러 갈래? 근처에 꽃밭이 있거든.”
“지금은 조금 피곤한데, 조금만 있다가 만들면 안 될까요?”
“그러면 네 친구를 죽일 거야.”
세르몬이 따뜻한 표정으로 웃었다.
“벌꿀아!”
세르몬의 왼손에 벌꿀이가 들려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세르몬의 왼손을 붙잡았다.
마력을 통해 세르몬의 감정이 전달 되었다.
세르몬에게서는 그 어떠한 악의나 적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나를 향한 호감만이 가득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