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3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32화
나를 향한 순수한 호감.
이것은 어쩌면 호기심에 더 가까운 감정인 것 같기도 했다.
빌로티안 황가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여자 형제를 향한 신기한 감정.
[가만 안 둠.] [내려놔라.]벌꿀이는 겁을 먹을 법도 한데, 오늘도 겁이 없었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최대한 차분히 물었다.
“어째서 제 친구를 죽이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게 제일 효율적이잖아.”
“…….”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는 이미 마력을 통해 감정을 읽은 상태였다.
혹시 몰라 다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잠깐 손 좀 잡아도 돼요?”
“그렇게 해.”
세르몬은 다정하게 웃으며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맞잡았다.
세르몬의 손은 무척 따뜻했고, 감정은 평온 그 자체였다.
세르몬이 벌꿀이를 죽이겠다고 말한 건, 정말로 그냥 ‘효율적이어서’였다.
‘그래서 무서운 거야.’
이건 그저 협박이 아니었으니까.
세르몬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거였으니까.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들면 남의 생명이나 감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겨우 같이 꽃밭에 가지 않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자님. 저를 찌르는 건 괜찮습니다만.”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비아톤 경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웃고 있었다.
“김벌꿀은 찌르면 안 됩니다.”
“어째서?”
“그 녀석, 로베나 대공이 엄청 아끼거든요.”
로베나 언니가 벌꿀이를 아낀다고?
나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세르몬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훗날 로베나 대공께서 왜 자기 친구를 해쳤냐고 블라독 공작령으로 가서 깽판…… 아니, 작은 난동을 부리시면 상당히 불편해지실 텐데요.”
“…….”
“게다가 그분은 속이 밴댕이 소갈…… 아니, 사소한 것도 가슴속에 깊이 담아두시는 편이어서 제1그림자의 임무 수행을 방해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효율적이지 못하죠. 내 편을 만드는 것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건 그렇네.”
세르몬은 빙그레 웃으며 벌꿀이를 놔주었다.
아무래도 비아톤 경은 세르몬을 잘 다루는 느낌이었다.
나는 세르몬에게 다시 달려들려는 벌꿀이를 꼭 껴안아서 진정시켰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더니 이내 내 품에 안겨 머리를 비볐다.
하나에 빠지면 하나를 까먹는 성격이라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황자님.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말해봐요.”
묘하게 비아톤 경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내가 느낀 걸 세르몬이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기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제 목을 찌르는 건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만, 황녀님의 마음을 찌르는 건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
“혹여 황자님의 어떤 행동으로 인하여 황녀님이 슬퍼하게 된다면, 저는 수석보좌관 비아톤이 아니라 사람 비아톤으로 황자님을 대할 것입니다.”
“일종의 경고처럼 들리는데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 건가?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수석보좌관 비아톤은 제1그림자를 해할 수 없으나, 사람 비아톤은 세르몬을 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예리한 칼날로 이루어진 폭풍이 두 사람 사이에서 불고 있는 것 같았다.
괜스레 끼어들었다가는 저 칼날에 크게 베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게 무슨 이득이 있어서 나한테 그렇게 말을 하는 거지?”
세르몬은 별로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저 질문에 담긴 것은 순수한 궁금증인 것 같았다.
“이득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오직 이득만이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아니니까요.”
세르몬은 나를 바라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마 진심인 모양새로 물었다.
“그런데 이사벨. 너는 쟤가 죽으면 왜 슬픈 건데?”
그리고 비아톤에게도 물었다.
“슬픈 게 뭐지?”
“…….”
“그게 뭔지 모르겠어.”
세르몬은 어딘가 많이 비틀려 있었다.
* * *
유리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나르모르는 눈을 부라리며 불만을 토해냈다.
“야. 나도 얼마나 바빴는지 알아?”
그는 지르델 왕국에서 자신이 얼마나 바빴는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왕국 실무진들과 협상하고,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그를 구동하기 위한 마력공급원은 무엇으로 할지, 이사벨체인 기술의 도입 시기는 언제로 할지, 왕실 차원의 라면 공급 계약이라든지.
“으응, 그래, 많이 바쁘셨겠지.”
“황녀님을 위해 이 한 몸을 얼마나 불살랐는지, 네가 아냐고?”
“응, 많이 불살랐을 거야.”
유리는 오래간만에 승리감에 취했다.
“오빠는 여기서 아주 바빴고, 나는 저기서 아주 바빴어.”
유리는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 방향이 칼포아 마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황녀님이랑 같이 다녀왔거든.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레몬티도 타드렸고, 함께 친구도 만들었어.”
“…….”
“오빠가 여기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나는 황녀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왔다고.”
“…….”
“비밀 친구도 만들었다니까?”
“…….”
“아셀리아라고, 엄청 예뻐.”
“어쩔?”
아셀리아인지, 바셀리아인지 그런 건 사실 상관없었다.
그걸 알아차린 유리는 전략을 좀 바꿨다.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됐어. 시냇물에 발도 담갔고 진솔한 대화도 나눴어. 황녀님이랑 좋은 추억을 많이 공유했다는 뜻이야.”
전략은 아주 유효했다.
나르모르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게 네 승리는 아냐. 결과는 지나 봐야 아는 거지.”
“응.”
유리는 전에 없이 밝게 웃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르모르는 약이 바짝 올랐다.
아무래도 약간 지는 느낌이었다.
“또 실무회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나르모르 코퍼레이션 대표님?”
“……어, 있지. 아, 귀찮아 죽겠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이사벨에게 인사라도 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2황자 세르몬이 먼저 와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이놈의 일이 뭔지, 이사벨과 만나지도 못하고 움직여야 한다니.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아 참, 그거 알아요?”
“왜 불길하게 존댓말이지?”
“황녀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셨어. 황녀님은 그걸 숏컷이라고 부르셔.”
“엥?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셨다고?”
나르모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그 반응은? 황녀님이 머리카락을 자른 게 잘못이라도 된다는 거야?”
“아니?”
나르모르가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왕실 실무진과 회의를 나눌 때보다 훨씬 더 진지했다.
세상에, 숏컷 황녀님이라니. 한 번도 못 본 모습이었다.
“엄청 귀여우실 것 같아.”
아무래도 실무회의를 빨리 끝내고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머리카락이 0.1㎜라도 더 자라기 전에.
* * *
나르모르를 웃는 낯으로 배웅(?)해 준 유리는 이사벨의 막사 쪽으로 걸어가다가 루카인 병장과 마주쳤다.
“황녀님은 저쪽으로 가시던데?”
“고맙습니다.”
“어. 아 그리고 유리. 부탁이 하나 있는데.”
“네, 뭔데요?”
“우리가 지금 군가의 문제점을 깨달아서 말이야. 이번에는 확실히 황녀님의 이름을 넣어서 이사벨 찬가를 만들고 있거든? 완성되면 네가 먼저 평가해 줄래?”
이사벨 찬가라니.
유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좋은 제목이네요. 좋아요. 아레나궁에서 기다릴게요.”
유리는 루카인 병장과 헤어진 뒤 루카인 병장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걸었다.
‘꽤 멀리까지 나오셨네?’
저만치 멀리,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핀 공터가 보였다.
‘어! 저기 계신다!’
유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꽃밭에서 뛰노는 황녀님이라니, 저기서 함께 또 추억을 쌓을 생각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먼발치에서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황녀님이 평소보다 조금 어두운데?’
저 다정하게 웃고 있는 남자는 2황자 세르몬이 틀림없었다.
머리에 투박한 화관을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마저 무척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의 미모는 유리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셀리아의 아름다움이 나르모르에게 쓰잘데기없던 것처럼.
‘황녀님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여.’
이사벨은 평소와 똑같이 웃고 있었으나 저게 진짜 웃음 같지는 않았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유리가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내가 도와드릴 거야.’
친구로서.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로서, 이사벨을 무조건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어떤 어려움이 되었든.
“아, 화관 만드는 방법은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유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화관을 만들었다.
이사벨이 만든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예뻤다.
같은 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사벨의 시녀가 다방면에서 무척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소문이 정말인 것 같네. 이렇게 아름다운 화관은 처음 봐.”
“과찬이십니다.”
유리는 이사벨의 눈치를 살폈다.
화관 만드는 걸 도와줬는데도 이사벨에게서는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기운이 느껴졌다.
“맛있는 크레페 케이크를 만들어놓았는데, 드시겠어요?”
“좋지. 나도 크레페 케이크 좋아해.”
대답한 사람은 이사벨이 아니라 세르몬이었다.
얼떨결에 세르몬도 디저트 타임에 함께하게 되었다.
거기까진 별문제 없었다.
모두가 크레페 케이크를 맛있게 먹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사벨. 나는 네 시녀가 마음에 들었어.”
“……네?”
“나한테 줘. 값은 충분히 줄 테니.”
마치 저 모습은 아까 ‘같이 밖에 나가자’라고 말을 할 때와 같았다.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김벌꿀을 해치겠다고 말하던 아까의 그 모습.
“만약 제가 싫다고 하면요?”
“내일부터 네 시녀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납치를 하겠다는 건지 어쩌겠다는 건지.
사실 정확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세르몬이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좋게 제안할 때 받아들이면 서로에게 효율적이지 않겠니?”
이사벨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사벨은 몹시 화가 났다.
들고 있던 포크를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저기요, 오라버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