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3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34화
일반 군인들은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황제가 번쩍번쩍 사라졌다 나타나는 기현상이 보일 뿐이었다.
“이봐, 루카인, 내 눈에 보이는 게 정상이냐? 뭐가 자꾸 번쩍번쩍하는데? 잔상이 막 벅벅하는데?”
“벅벅하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도 잘 모르겠다.”
“그치? 그냥 퍽퍽, 윽윽, 번쩍, 스윽, 쾅! 이지?”
퍽윽번슥쾅!
표현이 괴상했다.
그렇지만 군인들은 이 말 외에 현 상황을 묘사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론이 쓰러진 세르몬을 향해 말했다.
“패배를 인정하는가?”
“아닙니다.”
세르몬이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또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패배를 인정하는가?”
“아닙…… 니다.”
같은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패배를 인정하는가?”
“아닙…….”
풀썩!
세르몬이 쓰러졌다.
더 이상 결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결투를 중재하던 아르미텔이 몸을 던져 세르몬을 보호했다.
“결투는 끝입니다. 승자는 황제 폐하십니다.”
“아니. 승자는 이사벨이다.”
“……맞습니다. 흑기사로 결투에 임하셨으니 승리는 이사벨 황녀님입니다.”
과연 이것이 결투라고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무튼 결투가 끝이 났다.
론은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세르몬에게 말했다.
“패자는 승자에게 예를 다하도록.”
세르몬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알겠습니다’라고 겨우 대답했다.
그 대답은 확인한 론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렸다.
* * *
이사벨은 세르나를 꼭 안았다.
“벌써 가신다니 아쉬워요.”
황제와 황후는 결투가 끝나자마자 돌아가야 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했다.
“죄송해요, 제가 괜히 투정부려서 바쁘신데 여기까지 오시게 했어요.”
세르나가 빙그레 웃었다.
“조금 더 투정 부려주지 않겠니?”
“…….”
“진심이란다.”
“……진짜요?”
세르나는 진심이었다.
사실 이사벨을 제외한 다른 황자들은 세르나에게 투정을 부린 적이 없었다.
이사벨처럼 세르나 자신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황자들은 스스로의 검술을 갈고닦는 데에 훨씬 매진했으니까.
‘다른 아이들은 이렇게 보챈 적이 없었지.’
세르나는 늘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 먼저 다가가기가 미안했다.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서 아이들을 만나주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아이들도 엄마를 딱히 필요로 하지 않았고, 엄마는 아이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다.
아무리 합리화해도,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었다.
여태까지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사벨 덕분에 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이사벨은 조금 달랐다.
늘 엄마를 보고 싶어 했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를 통해 세르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필요해.’
다른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요구할 줄 몰랐던 것이다.
세르나는 이사벨 덕분에 그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나는 비록 자격 없는 엄마이지만, 여태까지는 그래왔지만, 정말 나쁜 엄마였지만, 앞으로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좋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작은 희망을 보았다.
“그러다가 맨날 엄마 보고 싶다고 칭얼대면 어쩌려고 그래요?”
“맨날 만나러 오면 되지.”
“치, 거짓말.”
머릿속으로 세르나의 취침 시간과 업무 시간 등의 구체적인 일과표. 그리고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이용한 이동시간 등이 떠올랐다.
세르나의 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면 아빠를 대신 보낼게.”
“아빠를요?”
“아빠는 검 휘두르는 거 말고는 사실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리고 아빠가 회의에 참석하면 사람들이 잔뜩 겁먹어서 자기 의견도 못 내. 그래서 국정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단다.”
황제 앞에서 황제의 흉을 봤다.
황후 세르나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괜스레 민망해진 이사벨이 말을 돌렸다.
“하, 하지만 아빠는 검술 연습을 하느라 바쁘시잖아요.”
사실 그게 빌로티안 제국 황제의 주 업무였다.
세르나가 빙그레 웃었다.
“네 아빠는 검술 연습 안 해도 세상에서 제일 강한 분이란다.”
그 말에 론의 귀가 아주 조금 빨개졌다.
론은 ‘아내의 칭찬에만 반응하지만, 그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는 병’에 걸려 있었고, 이사벨은 세르나와 론을 번갈아 보면서 다시 한번 체감했다.
‘엄마가 실세야.’
론과 세르나가 떠나기 전, 이사벨이 말했다.
“세르몬 오라버니에게도 들려주세요.”
* * *
다음 날.
이사벨은 세르몬의 막사를 찾았다.
“오라버니. 몸은 좀 괜찮아요?”
“급소는 피해 때리셨더구나.”
얼굴을 포함해서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다.
마치 미라 같은 모양새였는데 한쪽 눈만 겨우 보였다.
신관의 치료를 받아도 족히 며칠은 요양해야 할 수준이었다.
이사벨이 세르몬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슬프다는 건 그런 거예요.”
“무슨 뜻이니?”
세르몬은 대놓고 차별받았다.
딸의 서신 한 통에 만사 제쳐놓고 달려와 아들을 훈육했다.
그것도 수백 명 이상의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게다가 결투 후에도 세르몬의 막사가 아닌 이사벨의 막사로 먼저 찾아와 이사벨의 마음만 보듬어주었다.
이사벨은 세르몬이 당연히 슬프리라 생각했다.
옳은 방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슬픔을 배우지 못한 오라버니에게 그 감정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나는 기분이 무척 좋단다.”
“……기분이 좋다구요?”
“그래.”
세르몬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는 마력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지?”
세르몬이 팔을 들어 올려 이사벨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상이 심한지 팔이 덜덜 떨렸다.
“잡아보렴.”
“…….”
이사벨은 세르몬의 손끝을 잡아보았다.
마력을 통해 감정이 전달되었다.
“지, 진짜네요?”
애초에 이 사람에게 슬픔이란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사벨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왜 이렇게 기뻐해요?”
“아바마마께서 나를 훈육하셨거든. 무자비하게.”
“……그건 저도 봤어요.”
그건 결투가 아니라 매타작이었다.
그래서 지금 세르몬이 이 모양 이 꼴인 거고.
“사실 나는 아버지와 제대로 검을 겨루어본 적이 없어. 내가 진심으로 살의를 품고 아버지를 공격해도, 아버지는 늘 슬렁슬렁 받아주셨거든.”
이사벨은 잠자코 세르몬의 말을 들었다.
세르몬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여전히 기쁨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아껴 주셨어.”
어린 날의 이야기였다.
세르나가 블라독 공작가를 방문하여 세르몬을 만났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시종과 시녀들을 괴롭혔거든. 유난히 이상한 짓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 그게 점점 잔혹해졌지.”
“왜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 그냥 그러고 싶었어.”
이사벨은 알 것 같았다.
세르몬이 왜 기이한 짓들을 벌였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어려울 만큼 잔인한 짓들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의 관심을 한 번이라도 더 받고 싶었겠지.’
태어나자마자 블라독 공작가로 보내져서 자랐다.
세르몬은 태어나서 아들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는 아들이 아니라 미래의 ‘제1그림자’였을 뿐이었다.
‘황자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고 그저 후계경쟁만 시키는 빌로티안 황가라…….’
소설로 봤을 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이 안에서 살아보니, 황자들에게는 참 잔인한 곳이다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단 한 번도 혼내지 않으셨어.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
그러나 시간이 흘러 동생들이 태어났다.
특히 미하엘은 여러모로 사고뭉치였다.
“미하엘이 한 기사의 정강이를 차는 걸 본 어머니는 미하엘은 크게 야단치셨거든.”
“…….”
“그게 몹시 부러웠어.”
세르몬이 빙그레 웃으며 이사벨에게 물었다.
“왜 어머니는 나는 혼내지 않고 미하엘만 혼냈다고 생각해?”
“세르몬 오라버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랑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어머니는 무척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아. 내가 블라독 공작가에 보내지는 걸 유일하게 반대한 사람이기도 하고.”
“…….”
“어머니는 나한테 미안해서 그랬던 거야.”
세르나는 아이들에게 큰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자식을 꼽는다면 카만과 세르몬이었다.
카만이 어릴 때 세르나가 제일 바쁜 시기였고, 세르몬은 애초에 같이 시간을 보내주질 못했으니까.
“너무 미안하니까, 내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르고, 내가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그냥 날 안아주셨어. 아버지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긴 했지만.”
“오라버니는, 그게 싫었나요?”
“그랬던 것 같아.”
세르몬은 어머니가 미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나를 볼 때면 무척 마음이 불편해졌던 것 같아. 어쩌면 그게 네가 말하는 슬픔인지도 모르겠어.”
불편하다는 건 알겠는데 슬프다는 감정 자체는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근데 나는 그 모습이 싫었어.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어머니가 오라버니 때문에 괴로워하는 게 싫었던 거예요.”
세르몬은 한참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나 봐.”
“그게 슬픔이에요.”
“…….”
여전히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사벨과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이, 문득 따뜻하다고 느꼈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이 아이와 하고 있지?’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누군가와 얘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이사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오라버니는 혼이 나고 싶었나 봐요. 그게 엄마가 미안해하지 않는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나 봐요.”
그리고 어쩌면 아바마마는 그 마음을 읽고 더 호되게 혼낸 것일 수도 있어요.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르게 말했다.
“나 속상해.”
결핍은 수많은 형태로 나타난다는 걸 이해하고 있는 이사벨이었다.
이사벨 자신도 그렇고, 카만도 그렇고, 세르몬도 마찬가지였다.
세르몬이 보이는 이상한 행동들은 그 결핍의 증거인 것 같았다.
“뭐가?”
“혼났는데 이렇게 기뻐하는 사람 이 어디 있어?”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그저 부모에게 혼이 나는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사벨은 세르몬과 맞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럼 앞으로는 나한테 맡겨요.”
“뭘?”
“내가 오라버니 따끔하게 혼내줄게.”
이사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리에 양손을 짚고 짐짓 눈에 힘을 줬다.
“오라버니가 또 이상한 짓 하면, 아주 무섭게 혼내줄래요.”
“뭐?”
세르몬이 쿡쿡대고 웃었다.
“왜 웃어요? 나 지금 진지한데. 진짜 엄청 무섭게 혼낼 거야. 나중에 무섭다고 엉엉 울지도 몰라요. 진짜 딱 경고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