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3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35화
세르몬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우습구나.”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저기. 거울을 보아라. 네가 얼마나 하찮은지.”
“하찮다고요?”
이사벨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건 오라버니가 절 몰라서 그렇죠.”
“널 모른다?”
“제가 이래 봬도 엄청 무섭거든요.”
세르몬은 한참이나 끅끅대며 웃다가 붕대에 칭칭 감긴 팔을 들어 이사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웃은 건 아니다.”
“이제 와서?”
“나는 무서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못하도록 교육받았어.”
이사벨은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교육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 나는 제1그림자로 훈련받고 있으니까. 그림자가 두려움을 느끼면 안 되잖니? 그래서 불필요한 감정들을 제거하는 교육을 받아.”
“그런 걸 교육이라고 한다니.”
하기야, 이 세상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영창으로 불기둥을 뿜어내는 사람도 있고.
하다못해 나도 마법으로 북극빙수를 소환하기도 했다.
이런 세상이니 저런 교육이 마냥 허무맹랑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무서울걸요?”
“무서워 보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니?”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이사벨은 펜을 집어 들고서 노트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AB=BA=E]“자, 여기서 행렬 A와 곱해서 항등행렬 E가 나오는 행렬을, A의 역행렬이라고 정의할 거거든요. 그러니까 B는 A^-1이 돼요.”
[B=A^-1]이사벨은 자신만만했다.
이거라면 안 무서울 수 없겠지.
“선형방정식의 형태로 나타내면.”
[a11x1+a12x2+……+a1nxn=b1] [a21x1+a22x2+……+a2nxn=b2].
.
“해서, 3D 공간에서…… det(A)를……. 하면 시그마(Σ)…… 로 표현되는데…… 여기까지가 아주 기본적인 개념인데. 그렇다면 이를 이용하여 아주 손쉬운 3×3 행렬의 역행렬을 구할 수 있겠어요?”
이사벨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세르몬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안 무서울 리 없다.
‘11살 때 이걸 보고 내가 진짜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건 아득한 공포였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기본 개념’이 있다?
남들은 모두 이걸 쉽게 공부한다? 내가 수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이사벨에게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선사했다.
이사벨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세르몬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근데, 이사벨.”
“네, 말해봐요.”
어서 무섭다고 말해.
“뭘 무서워해야 하는 거니?”
“…….”
“저건 날 못 죽이잖아.”
세르몬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작은 바늘 수십 개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종이를 갈가리 찢어버린 뒤 테이블에 꽂혔다.
세르몬은 호의만 가득 담아, 진심으로 물어보았다.
“이런 게 무서운 거 아니야?”
바늘과 닿은 부분들이 거무죽죽하게 변해 썩어버린 뒤였다.
* * *
나와 세르몬 오라버니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어떤 간극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도 세르몬은 속이 무척 투명한 사람이어서, 종이 다르다는 사실만 인지하면 대화는 잘 통했다.
“다음에 놀러 와. 블라독 공작령의 유리 호수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소문날 곳이거든.”
“블라독 공작령 자체가 비밀에 가려진 곳인데 어떻게 제일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요?”
“그래서 소문날 곳이라고 했잖니?”
“…….”
아무튼 나는 언젠가 꼭 유리 호수에 놀러 가보기로 했다.
유리 호수는 엄청 깊은데 속이 유리구슬처럼 훤히 다 보이는 신비로운 곳이라고 했다.
밤에는 하늘의 별을 담아 호수가 별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알았어요. 나중에 초대해 주세요.”
“그래. 약속할게.”
나는 세르몬에게 두툼한 공책 한 권을 건넸다.
“제가 내준 숙제는 꼭 하는 거예요. 나중에 검사할 거예요. 첫 장에 숙제 목록 써놨어요.”
나는 세르몬에게 숙제를 내줬다.
1) 블라독 공작가의 사소한 명령들을 거부해 보기.
얘기를 들어보니 세르몬은 블라독 공작가의 양육지침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고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대로 따라가면 ‘제1그림자’로서의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소한 것들은 거부해 보라는 숙제를 내줬다.
그게 자아를 찾는 첫 시작이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심리나 정신 공부도 해볼 걸 그랬다.
2) 우는 사람을 만나면 달래보기.
세르몬은 어딘지 모르게 고장이 나 있었다.
우는 사람들을 달래다 보면 그 슬픔이나 괴로움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내주었다.
“울음을 멈추게 하면 되는 거야?”
“네.”
“아주 쉽네.”
죽이면 되잖아.
그 말이 들릴 것 같아서 나는 두 귀를 막아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그런 말을 싫어한다는 걸 ‘머리로’ 이해한 오라버니는 끔찍한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말로만요. 위협적이거나 폭력적인 그 어떤 행위도 안 돼요. 그 사람이 왜 우는지 가슴으로 이해해 봐요.”
3) 일기를 써보기.
매일매일 자신을 기록하다 보면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약간의 희망을 품어보기로 했다.
세르몬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내가 내민 노트를 일단 받아 들었다.
“약속했으니까 지킬 거죠?”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
투명한 만큼 착실했다.
약속한 건 꼭 지킬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이 세르몬이 자기를 찾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자기 자신을 찾는 데 그다지 열정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내주는 숙제들은 사실 핑계였다.
“숙제 안 하면 무섭게 혼나요.”
“그래.”
혼나면 좋아하는(?) 세르몬을 위한 내 작은 선물이었다.
세르몬은 또 하찮은 상대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씨익 웃고서 말했다.
“미하엘이 갑자기 나한테 결투를 신청한 이유를 알 것 같아.”
“미하엘 오빠가요?”
“응. 카만한테는 자주 덤볐지만 나한테 그런 일은 별로 없었거든.”
“……왜요?”
“진짜 죽을 수도 있어서?”
괘, 괜히 물어본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중간에 잘 못 멈춰.”
얘기를 들어보니 미하엘이 블라독 공작령으로 찾아가 다짜고짜 싸움을 걸었단다.
나를 꼭 만나보라고 했다나 뭐라나.
“카만이 너를 만난 다음에 뭔가가 변했다나 봐. 그래서 나도 꼭 너를 만나야 한다고 윽박지르더라고. 내가 싫다고 하니 검을 들이밀었어.”
“……그래서요?”
“죽일 뻔했단다. 운 좋게 살았지만.”
“혹시 다쳤어요?”
“나는 안 다쳤고, 미하엘은 중상을 입었어.”
“주, 중상이요?”
“못해도 8주는 요양해야 할걸. 나보다 더 많이 다쳤을 거야. 아바마마는 목검이었지만 나는 진검이었으니까.”
나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 나를 마중 나온 날을 제외하고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아빠와 세르몬 오라버니가 결투 아닌 결투를 했을 때도 보이지 않았다.
또 어디선가 사고를 치고 있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라 요양 중이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럼 내 마중은 어떻게 나온 거야?’
그때 분명 모래폭풍이 일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 멀쩡했었는데.
나랑 대화할 때도 그냥 신난 벌꿀이 같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던 거람.
‘반가움에 아픔을 잠시 잊었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그렇게까지 뇌가 맑을 수는 없겠지?
그래도 사람인데.
그래, 그건 아닐 거야.
……아니겠지, 아마.
* * *
지르델 국왕 발키오가 말했다.
“협상은 체결되었네. 나르모르, 아니, 나르모르 대표, 앞으로 잘 부탁하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지르델과 빌로티안 간, 테이사벨 이동 관문 협약이 체결되었다.
알페아에 이어 두 번째 공식 협약이었다.
나르모르가 돌아간 뒤 발키오는 알페아의 라헬라와 비밀 회담을 가졌다.
라헬라가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협약이 끝났네요? 세부 일정 조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줄 알았는데.”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황후께서 직접 움직이셨어.”
“뭐라고요? 온화의 군주께서요?”
“그래. 지르델 베이스캠프에서 황자를 두들겨 패면서 큰 소란을 피운 것도 사실은 연막이었던 것 같더군.”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상식적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제 론의 기행이 납득되지 않았으니까.
“황후께서 직접 말씀하셨어.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전 세계에 보급할 예정인 것 같아. 보다 적극적으로 말이야, 이히이이잉!”
“…….”
“이히이잉? 안 웃기나? 내 수석보좌관 가브리쟁은 웃기다고 폭소하던데.”
“거짓말하지 마세요.”
“쳇.”
라헬라는 발키오에게 휘둘리지 않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여태까지는 이사벨만을 전면에 내세우셨잖아요? 갑자기 어째서 이리 적극적으로 움직이실까요? 본래 그런 분이 아니신데.”
“그만큼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겠지. 그분은 결정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만, 결정이 끝나면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시는 분 아닌가. 마음 먹은 건 꼭 해내는 분이시기도 하고.”
“황후께서 직접 움직이셨다는 건, 당분간 우리만 알도록 해요.”
“그래야지. 일부러 황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몰래 찾아오셨으니까 말이야, 이히이이잉!”
“…….”
“이래도 안 웃나? 이히이이잉? 이, 이봐, 라헬라! 대답 좀! ”
라헬라는 대답하지 않고 나와 복도를 걸었다.
그녀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500년간 웅크리고 있던 사자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어.’
빌로티안 제국이 변하고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말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지금까지 유지되던 세계의 균형은 깨질 것이 분명했다.
‘그 변혁의 중심에, 이사벨 황녀가 있어.’
이사벨이라는 줄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어떻게든 끈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놓아야 했다.
‘이사벨과 친구 하기로 한 아이 이름이 아셀리아였던가?’
마침 알페아 왕국령 칼포아 마을의 아이라고 했다.
‘그 아이와도 친분을 다져놔야겠어.’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겨울이 오고 해가 바뀌었다. 봄이 오고 얼었던 땅이 녹았다.
이사벨은 달력을 살펴보았다.
‘시간 참 빠르다!’
아홉 번째 생일이 이제 한 달 남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