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3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37화
비아톤은 예전 로베나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스승이 말을 하면 좀 한 번에 들어라.’
‘먹으면 500딜런 줄 겁니까?’
‘500딜런은 개뿔.’
‘딜런’은 500년 전 제국의 화폐단위.
그런데 로베나 대공은 마치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처럼 자연스레 대꾸했었다.
카린이 의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용을 안다고요?”
“뭐. 일단은 카린 경의 마력 회로를 복구하는 것에 힘써보죠. 지금 상태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비아톤과 카린은 베크사의 연구자료의 도움을 받아 작은 알약 하나를 만들어냈다.
파괴된 마력 회로를 복구시키는 신비의 알약이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네요.”
“……그러게요.”
베크사조차도 이론상으로만 완성했던 알약이었다.
이게 이론으로만 가능했던 이유가 있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꽁꽁 얼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강대한 얼음 속성 계열 마력. 단 이 마력은 중첩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면서 파괴력은 현저히 낮아야 하며, 약간의 불순물이 섞여야 한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중첩되지 않아야 한다는 건 결국 혼자서 마력을 구동시켜야 한다는 소리였다.
일단 그 정도로 강력한 마력을 혼자서 뿜어낼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다.
있다면 아주 뛰어난 마법사일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강한 마법사라면 당연히 순수한 속성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불순물이 섞일 수 없다.
혹여 불순물이 섞였다 하더라도, 그런 힘을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의 마법은 당연히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한다.
모순투성이였다.
카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이건 불가능해요.”
“아니요. 가능합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긴 합니다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비아톤이 말했다.
“황녀님이 일으킨 기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죠. 이해합니다.”
“기적이요?”
“예. 북극빙수라고, 아시나 모르겠네요.”
카린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북극빙수’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혹여 저런 기이한 이름의 마법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째서 비아톤 경이 우쭐대는 것입니까?”
“제가 우쭐댔습니까? 전혀요, 저는 우쭐댐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
“황녀님이 기적을 일으키던 모습을 저만 직관했다는 것이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심지어 그때 기절하셔서 얼마나 놀랐다고요. 물론 제가 다치지 않게 정확한 타이밍에 딱 안아드렸지만 말입니다. 후후.”
“지금 그 모습이 우쭐대지 않는 거라고요?”
“겸손하지 않나요?”
“제발 겸손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봐도 기고만장해 있었다.
* * *
비아톤은 하늘섬을 찾았다.
하늘섬 중앙에는 거대한 저택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로베나 대공저였다.
“어쩐 일로 집에 계십니까?”
“사람이 집에 있지 그럼 어디에 있겠냐? 너야말로 여긴 웬일이지?”
“사랑스러운 제자가 찾아왔으면 반겨주셔야 정상 아닙니까?”
“존경하는 스승을 봤으면 냅다 고개부터 박아야 정상 아니고?”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꼰대 같은 말씀을 하십니까?”
“꼰대?”
로베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처음 듣는 말이었으나 모른다고 말하기는 싫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비아톤은 예나 지금이나 눈치가 빨랐다.
“꼰대, 모르세요?”
“안다.”
“뭔데요?”
“…….”
“괜찮습니다. 신조어 모르는 거 이해합니다.”
비아톤은 한동안 의미심장하게 웃다가 본론을 꺼내들었다.
“예전부터 의심은 했는데요. 어머니의 유품에서 이런 걸 찾았지 말입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초상화였다.
500년 전, 초대 대공의 초상화.
“어쩐지 스승님이랑 너무 닮지 않았습니까?”
“내 선조니까 당연히 나랑 닮았겠지.”
“500년이나 지났는데요?”
비아톤의 눈이 가늘어졌다.
“스승님, 솔직히 말해요.”
“뭘?”
“용이죠?”
“용? 그게 뭔데?”
“임기응변은 좀 떨어지는 설정으로 변하셨나 봐요.”
“…….”
용을 모른다는 게 더 이상했다.
전설 속 존재로 치부되기도 하고, 혹자는 용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용 자체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
“…….”
로베나와 비아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비아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용용 죽겠지?”
“……그냥 죽일까.”
“이러면 용들 화낸다던데, 진짜 화내네요?”
“…….”
“혹시 정체를 아는 사람들을 몰살시킨다거나……?”
“그런 율법은 없어.”
로베나는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유희 중 정체를 들키면 안 된다는 법은 없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눈치챘으면서 굳이 지금 나한테 이렇게 들이대는 이유가 뭘까? 사랑스러운 제자님.”
“용의 심장이 필요한데. 좀 줄 수 있나요?”
파지지직!
뇌전이 떨어졌다.
비아톤은 황급히 몸을 던져 뇌전을 피해냈다.
어머니인 베크사에게 단련되어 있어서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저택을 파괴하실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죽이는 게 마음 편하겠어서.”
“아니, 쪼잔하게 심장도 못 주나요? 용은 심장 한 100개쯤 되는 거 아닙니까?”
“뭔 소리야?”
로베나는 여러 차례 뇌전을 쏟아냈다.
비아톤의 옷 여기저기가 찢어졌고 얼굴에 그을음이 조금 생기기는 했으나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용도 심장은 하나야.”
“그럼 심장 주면 죽나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럼 스승님을 죽여도 됩니까?”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로베나가 씨익 웃었다.
비아톤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일단은 포기하죠. 제가 먼저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아쉽네. 전력으로 덤벼들길 기대했는데.”
로베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어.’
원래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르면 성장 속도가 더뎌지게 마련이다.
로베나가 보기에 비아톤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완성형 인재였다.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인 모양이었다.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또 높이 성장하는 것이 인간이었고, 비아톤에게는 그런 계기가 주어진 것 같았다.
‘역시 이래서 내가 인간을 좋아하지.’
여기가 한계다 싶으면 그걸 뛰어넘고, 또 다음 한계가 여기다 싶으면 다시 극복해 낸다.
어떤 인간들에게는 한계가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나르비달의 낙인 때문이라면 포기해.”
비아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로베나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건 용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신의 저주니까.”
* * *
빌로티안 황궁, 세르나의 침실.
세르나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블라독 공작과 협의를 봐야겠어.’
지난 500년간 이어져 오던 전통.
이번 세르몬과의 만남을 계기로, 세르나는 그 전통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혼란했던 과거의 빌로티안과 다르게, 지금은 황제 론을 중심으로 막강한 집권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강대했던 빌로티안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제1그림자’가 필요할까?
검림학사원에서는 여전히 제1그림자가 필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말로 그럴까?
‘시대가 달라졌어.’
그녀는 세르몬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세르몬은, 론에게 혼나던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혼이 나고 싶었던 아이처럼 말이다.
‘폐하도 그걸 알고 있겠지.’
과묵한 사람이지만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과하게 손을 쓴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달려져도 되지 않을까?’
그녀 또한 빌로티안 제국의 번영이 우선순위였다.
그것이 사랑하는 남편, 론의 제1순위였었으니까.
더 젊은 날, 그것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빠르게 달려오고 뒤를 돌아보니, 피붙이들과 너무 멀어져 있었다.
얼마 후, 론이 방에 들어왔다.
세르나는 여전히 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였어요.”
“…….”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론은 그저 가만히 다가와 세르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하지만 마음뿐이었어요.”
“…….”
“그게 과연 사랑이었을까요?”
그녀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것들을, 만인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포기하고 외면해야 했던 것들을 남편 앞에서 꺼내놓기 시작했다.
“카만이 저를 그토록 바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모를 수 없었다.
엄마라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너무 바빴죠.”
나는 전쟁을 막아야 했고, 빌로티안 제국의 번영을 가져와야 했어요. 수많은 이권이 복잡하게 얽힌 무역분쟁을 중재해야 했어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핑계였으므로.
“결국 사랑을 한 조각도 못 줬어요.”
“…….”
“요즘 자꾸, 행동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대는 최선을 다했어.”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확실히. 내가 보증하지.”
“저도 그렇게 믿으면서 현실을 외면했었는데, 아닌 것 같아요. 우리 딸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줘요.”
이사벨을 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해왔던 것들이 어쩌면 최선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딸이 엄마보다 훨씬 나아요.”
이사벨은 친구인 벌꿀오소리를 위해 5년의 생명을 내걸었고, 황녀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외눈박이 거인과 싸웠다.
에르베 산맥의 병사들을 위해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만들고 배고프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라면을 개발했다.
카린에게는 봄을 선물했고 비아톤에게서 사람의 향기가 나게 했다.
알페아의 왕국민들은 이사벨을 일컬어 햇살이라 부른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어, 세르나.”
“그렇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려 노력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르나는 잠자코 침묵하다 다시 말했다.
“지금 시대에 제1그림자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면서도, 그 제도를 철폐하려 애쓰지 않았어요. 기존 체제에 순응했던 거예요. 황가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합리화하면서요. 어쩌면 검림학사원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요.”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아이를 가슴 아파했을 뿐, 무언가를 해주지는 못했었다.
그저 혼내지 않는 것으로, 다정하게 대하는 것으로 자기 위로를 했을 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거예요. 만인의 어머니가 되어주었지만, 내 아이들의 어머니는 되어주지 못했던 거예요.”
세르나는 론의 품에 안긴 채 한참을 울었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게 가능할까요? 너무 가증스럽지는 않을까요?”
“나는 그대가 마음먹어서 이루지 못한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론은 세르나를 안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론의 속이 많이 쓰려 왔다.
‘그대는 거인이었다.’
그 거인이 제 품에 안겨 괴로워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작아진 모습으로.
그 모습이 론을 괴롭고 아프게 했다.
‘나를 호되게 혼내는 것 같구나.’
세르나는 스스로를 일컬어 자격 없는 엄마라고 말했다.
그렇다는 건 론 자신 또한 자격 없는 아빠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론은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좋은 부모?
빌로티안 황가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모르겠군.’
누군가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그에게도 어머니나 아버지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사벨의 아홉 번째 생일이 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