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3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38화
이사벨의 아홉 번째 생일 새벽.
시종장 데일사가 손에 들고 있는 케이크를 본 유리는 찔끔 놀랐다.
“세상에…….”
“왜 그러지?”
“베이킹하신 건 처음 봐요. 직접 만드신 건가요?”
“…….”
데일사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모습으로 유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유리는 괜스레 뜨끔해서 고개를 숙였다.
‘화, 화나셨나?’
유리를 구해준 사람은 비아톤이었다.
“데일사 시종장,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지금 딱 봐도 부끄러운데?”
“새벽부터 실없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데일사가 몸을 돌려 멀어졌다.
비아톤이 킥킥대며 웃었으나 유리는 여전히 조금 걱정이었다.
“화, 화가 나신 건 아닐까요?”
“걱정 마, 유리. 데일사 시종장은 지금 엄청 부끄러워하는 거니까. 데일사가 처음부터 시종장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어요. 황실 검대, 검은 고래를 지휘하셨던 뛰어난 기사님이이었잖아요.”
“처음부터 시종장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게 아니라서, 조금 못 하는 것도 있어. 그거 알아?”
비아톤이 허리를 숙이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처음 베이킹 배울 때, 베이킹 기구들을 모조리 부숴버렸어.”
“데, 데일사 시종장님이요?”
“어. 베이킹만큼은 절대로,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단 말이야.”
그래서 베이킹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근데 저 만들어놓은 거 보니까 꽤 연습했겠네.”
“시종장님께서 연습을 하셨다고요? 그, 그런 모습 못 봤어요.”
“모두가 잠든 새벽에 연습했겠지. 너도 알다시피 데일사는 지독한 완벽주의자거든. 아마 자기가 못하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거야.”
“…….”
“근데 너한테 케이크를 들켰으니 얼마나 부끄럽겠어? 지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걸? 안 그래, 유리모르 제과 유리 대표님?”
새벽부터 비아톤은 꽤 바빴다.
작은 잔치였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이사벨이 기뻐할 수 있도록.
검림학사원에서는 상당히 강도 높게 비아톤의 행동을 비난했다.
제국 수석보좌관이 쓸데없는 데 신경이 팔려서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주장이었다.
“응, 어쩔.”
비아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김벌꿀에게 약간 동화되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지, 김벌꿀?”
[틀림.]“그럼 어떻게 하는 건데?”
[어쩔티비.]“어쩔티비? 그거 괜찮네.”
아주 생소한 단어였다.
처음 들어봤지만 어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늘 티격태격하는 김벌꿀과 비아톤이지만 오늘은 죽이 척척 맞았다.
“근데 너 털 속에 뭘 감춘 거야?”
[비밀.]비아톤이 눈을 가늘게 떴다.
털 속에 뭔가가 숨겨져 있는데, 저기서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역시 평범한 벌꿀오소리가 아냐.’
지금 해석 마법이 걸린 상태가 아닌데도 저렇게 자유로이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황궁의 보물창고도 몰래 털었다지.
‘네 정체가 과연 무엇일까?’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이사벨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동료였으니까.
* * *
약간 늦잠 잔 것 같은데.
“유리?”
이 시간이면 유리가 와서 창문을 열어주고 내 침구를 정리해 준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리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갔지?”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가 아니라 데일사 시종장님이었다.
“시종장님?”
“오늘은 제가 유리를 대신하여 시중을 들겠습니다.”
“왜요? 혹시 유리가 아프기라도 한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유리모르 제과점에 무척 큰일이 있다 하여 3일 휴가를 냈습니다.”
데일사 시종장님은 내 침구를 정리해 주었고 유리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시종장님은 늘 그렇듯 과묵했다.
“앉으십시오.”
나는 의자에 앉았다.
데일사 시종장님은 커다란 빗을 들고 내 뒤에 섰다. 빗질을 해주려는 것 같았다.
“저 숏컷인데요?”
“그래도 빗질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다.
뭐든지 완벽해 보였던 데일사 시종장님의 빗질은, 유리에 비하면 조금 엉성했다.
물론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비교 대상이 유리여서 그런 거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시종장님은 모든 일에 능숙했다.
“그, 저기 뭐냐, 시종장님.”
“브로콜리는 안 빼 드립니다. 브로콜리는 초록 똥이 아닙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며칠이에요?”
그럴 리 없지만 혹시 내가 날짜를 착각하고 있나 확인해 보려 했다.
“오늘은 제국력 522년 4월 27일입니다.”
“그럼 오늘이 무슨 날이게요?”
“대대로 4월 27일은 5월에 있을 중간 결산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아니, 그거 말구요.”
“온도는 평년보다 조금 낮습니다. 날씨는 좋군요.”
흥, 그걸 누가 모르나.
“끝났습니다. 알리아브 오일을 발라놓았으니 10분 정도는 큰 행동을 삼가셔야 합니다.”
“네에.”
“그럼 편히 쉬십시오.”
데일사 시종장님이 문을 열고 나갔다.
평소랑 너무 똑같았다.
아레나 궁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치.”
괜히 조금 서글퍼졌다.
저번에는 00시에 맞춰서 아빠가 축하해 줬었는데.
“아빠도 황궁에 없고…….”
엄마랑 아빠는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새벽에 마차를 타고 황성을 떠났다나 뭐라나.
김벌꿀은 어딜 놀러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비아톤 경은 요즘 카린 경이랑 연애라도 하는 건지 자꾸 어딘가로 사라진다.
“맨날 피곤할 거라고 약속해 줬으면서.”
괜스레 서글퍼졌다.
침대로 돌아갔다.
어차피 오늘 일정도 없고, 그냥 낮잠이나 실컷 자야지!
근데 알리아브 오일 발라놨잖아?
10분이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는 헤어 오일이었는데, 사라지기 전까지 주변에 커다란 오염을 초래하는 특성을 가졌다.
그냥 누우면 이불을 세탁하기 어려워진다.
“흥!”
이건 복수였다.
다들 내 생일을 까먹어버린 복수.
괜스레 심통이 난 나는 그냥 침대에 눕는 사고를 쳐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알리아브 오일이 침대에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응?’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일종의 마력 반응이 벌어진 것 같았다.
“어어? 어어어? 어어?”
갑자기 침대가 두둥실 떠올랐다.
“자, 잠깐만! 침대야!”
창문이 열리고 침대가 갑자기 날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침대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이불을 꼭 말아쥐었다.
아무래도 심통을 부려서 벌을 받은 모양이었다.
“자, 잘못했, 잘못했도다!”
침대가 어찌나 높이 날았는지 구름을 뚫었다.
‘어어?’
그리고 침대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 나만 두고?’
나도 땅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비행 마법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행 마법을 펼쳐야 했다.
‘응?’
마법을 펼친 것도 아니었는데, 더 이상 떨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무서움이 싹 가셨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누군가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있었다.
이 하늘 위에서 말이다.
“……아빠?”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구름 양탄자, 환영.]벌꿀이가 구름 위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벌꿀이는 구름 위가 하나도 무섭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에르베 산맥에서 느꼈듯, 나는 높은 곳이 무섭다.
“아빠. 놓지 마요. 놓으면 나 울 거야. 진짜 절대 놓지 마요.”
내가 꽉 끌어안자 왠지 모르게 아빠는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나는 지금 진지한데 여기서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가 너무 무서워하는데, 어떻게 된 건가, 대공?”
“그래도 폐하는 지금 좋잖아요?”
“……딱히 그런 건 아니다.”
“20년 만에 살의 없는 미소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
들어보니 이 구름 양탄자는 로베나 언니와 테이슬론 할아버지. 그리고 비아톤 경과 카린 경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서프라이즈 선물이라고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벨이 무서워하니까 일단은 내려가요.”
엄마의 중재 덕분에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려주랴?”
“싫어요. 안아줘요.”
이대로 내려갔다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 같았다.
빌로티안의 황녀로서 그렇게 연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왜인지, 아빠는 계속 좋아하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아빠의 품에 안긴 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벌꿀이, 비아톤 경, 데일사 시종장님, 테이슬론 할아버지, 나르모르, 세르몬 오라버니, 카만 오라버니, 미하엘 오빠, 로베나 대공언니, 아르미텔 중장님에…… 라헬라 성왕님과 발키오 국왕님까지?’
비아톤 경이 앞으로 나섰다.
“황녀님께서 원하시는 바에 따라 조촐한 인원으로 구성해 봤습니다.”
“……조촐하다고요?”
“예. 보통 참석 인원 100명 이하는 소규모의 조촐한 연회니까요. 아주 소박하지요.”
그렇다고 보기에 참석한 면면들이 너무 대단하기는 했다.
비아톤 경이 말을 이었다.
“아, 아직 끝이 아닙니다. 황녀님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은 사람이 더 있거든요.”
방문이 열렸다.
케이크를 든 소녀가 한 명 보였다.
에메랄드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아주 예쁜 소녀였다.
“리아!”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반가움을 나눴다.
출장을 갔다던 유리가 그 뒤에 서 있었다.
“저도 안아도 될까요?”
“물론이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가득했다.
전생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풍만한 만족감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문득,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아주 못된 신이 있어서 가장 행복해서 높이 날 때 날개를 꺾어 추락시킨다고 했다.
그때였다.
내가 모르는 기사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폐하!”
“급한 일이 아니면 보고를 미루라 명령했을 텐데.”
기사 가슴팍의 문양을 보니 검은 고래 소속의 기사였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급히 보고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낭보인가, 비보인가?”
기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비보입니다.”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수석보좌관님과 데일사 시종장께서도 함께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