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3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39화
론은 인상을 찡그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좋은 아빠가 되어주는 법을 잘 모른다.
그나마 감이 오는 것이, 많이 피곤해 주고 적어도 생일에는 함께해 주는 것이었다.
“중요한 문제여야 할 것이다.”
비아톤은 불만이었다.
“폐하, 저는 왜 나와야 하죠? 설마, 폐하가 불행하니까 저도 불행해야 한다는 그런 심술은 아니시겠죠?”
“…….”
“맞네, 맞아. 하아. 근데 이봐, 데일사 시종장이 함께 들어야 할 얘기라는 게 도대체 뭐야?”
비아톤은 투덜대면서도 론의 비서 역할을 착실히 수행했다.
검은 고래 소속 기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랜서 경의…….”
데일사 시종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고입니다.”
비아톤의 몸이 굳었다.
랜서는 비아톤을 대신하여 빌헬름을 추적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변을 당했다.
론도 입을 쉬이 열지 못했다.
데일사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
“…….”
“오늘은 황녀님의 생일이다.”
벌써 9번째 생일이다.
이제 열두 번 남았다.
“오늘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일상으로 복귀하여 네 일을 하라.”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기사는 돌아갔다.
데일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몸을 돌려 황제를 보았다.
“별것도 아닌 일이군요.”
“…….”
“아무런 득도 없이 돌아왔으면 제가 처리하려 했습니다. 변을 당했다면, 그만큼 켕기는 것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빌헬름을 추적해야 할 확실한 이유가 생긴 셈입니다. 떠날 때는 공로를 세우고 떠났군요.”
“데일사.”
“저는 괜찮습니다.”
론은 잠시 고민했다.
남편을 잃은 여인치고 지나치게 담담하고 무덤덤했다.
그런데 또 저게 진짜 같아서 헷갈렸다.
비아톤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폐하. 여긴 제가 정리할 테니까 폐하 먼저 들어가시겠습니까?”
“…….”
“귀여운 황녀님과의 시간을 1초 더 내어드리는 겁니다. 저라고 이러고 싶은 줄 아세요?”
론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단둘이 남게 된 비아톤이 말했다.
“감상적인 위로는 건네지 않을게. 그대도 검은 고래를 지휘하던 명예로운 기사였으니까. 내게도 약간의 책임소재가 있지만 사과하지 않을 거야. 그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던 랜서 경에 대한 모독이 될 테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그대는 그대의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 펑펑 울든, 숨죽여 울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든, 다 포기한 듯 잠을 자든, 랜서 경의 사진을 껴안고 슬퍼하든, 그건 마음대로 해.”
비아톤은 소중한 사람을 잃어 보았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황녀님만을 위하는 척은 하지 마.”
“……척이라고 했나?”
“좋으나 싫으나, 언젠가 황녀님 귀에도 들어가. 그럼 분명 오늘을 곱씹으시겠지. 그분을 아직도 몰라?”
“…….”
“그분의 유일한 소망은, 좋은 사람으로 세상에 기억되는 거야. 그런데 오늘의 상황을 알게 되면?”
“…….”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 아내가, 황녀님 자신의 생일을 축하한답시고 거짓으로 즐거운 척하고 있는 걸 알게 되면? 슬픔에 잠길 틈도 없이 황녀님 자신을 위해 억지로 웃었다면? 그걸 알게 된 황녀님은 어떨 것 같아? 황녀님을 자책하게 만들지 마.”
“…….”
“그러니까 돌아가서 쉬자.”
데일사는 비아톤의 전우였고, 친구였다.
사적인 친분이 아주 깊지는 않았으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자체는 진짜였다.
데일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비아톤의 말은 오로지 황녀인 이사벨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비아톤은 데일사가 혼자 방으로 돌아가 슬퍼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이었다.
“고맙군.”
“재수 없다고 할 줄 알았는데.”
“…….”
데일사는 대답하지 않고 걸었고, 비아톤이 그 뒤를 따랐다.
“왜 나를 따라오는 거지?”
“별로 달갑지는 않겠지만 내가 옆에 있어 줄게.”
“필요 없다.”
“최근에 나도 어머니를 잃었거든.”
“…….”
“별로 안 슬플 줄 알았는데 엄청 슬프더라.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 완전히 무너져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옆에 딱 한 사람이 있어주니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어. 그걸 배웠으니까 나도 베풀어야지.”
“그 한 사람이, 황녀님인가?”
비아톤이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혼자 있지 마. 그거 되게 힘들어.”
* * *
카만은 말수가 적었다.
이사벨의 방 한쪽 구석에 서서 그저 바라보았다.
약간은 허수아비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풍족했다.
‘매일 이사벨의 생일이었으면 좋겠구나.’
그가 어렸을 적 꿈꾸던 가족의 모습이 이러했다.
사소한 것에 함께 웃고, 작은 기념일을 함께 기억하며 축하하는 모습.
꿈만 꾸다 포기했던 그 그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딱딱했으나 그의 마음은 말랑말랑한 상태였다.
그건 세르몬도 마찬가지였다.
세르몬이 카만 옆에 서서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죽여야 할 사람이 한 명도 떠오르지 않아.”
늘 한 명은 생각나게 마련인데.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 덕분인지, 오늘따라 마음이 굉장히 편안했다.
“우하하하하!”
미하엘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비아톤 선생님이 이 파티를 주관해서 계획했다는데, 막상 본인은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정말 큰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빠는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우, 웃었어!’
내게는 참 좋은 선물이었다.
약간 웃어줬을 뿐이었는데 한 줄기 불안감마저 사르르 녹아버렸다.
테이슬론 할아버지가 할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엣헴, 다음은 선물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아이 참. 선물이라니.
그런 거 안 줘도 되는데.
거창하게 선물 수여식 같은 거 안 해도 되는데.
미하엘이 내 어깨를 콕 찔렀다.
“야, 너 표정 되게 이상해.”
“뭐가요?”
“웃음 억지로 참느라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괴물 멍텅구리 같아.”
미하엘은 자기 입에 손가락을 대더니 빠르게 떨며 진동시켰다.
아무튼, 거창하기는 한데 선물 수여식이 있었다.
이래저래 참 좋은 시간이었는데 한 사람이 쭈뼛대며 내게 다가왔다.
“황녀님. 이것은 비아톤 경의 선물입니다.”
그러자 테이슬론이 크게 헛기침했다.
“예끼! 비아톤과 카린, 둘의 선물이지! 왜? 생일에 선물 주는 것도 부끄러운가?”
“…….”
카린은 원망스러운 듯 테이슬론 할아버지를 힐끗 봤다가 이내 다시 말했다.
“예. 저와 비아톤 경이 함께 준비한 선물입니다…… 마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카린은 이게 진짜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마력이 필요하다나 뭐라나.
“나한테 선물을 주는데, 내가 마력을 불어넣어야 완성이 된다고요? 그게 선물이에요?”
“그, 그건…….”
카린의 귀가 조금 붉어졌다.
각성한 흑막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아무튼 저 모습 자체는 꽤 귀여운 편이었다.
“농담이에요. 뭘 어떻게 하면 돼요?”
사실 마음이 뺏기긴 했다.
건전지 넣으면 돌아가는 장난감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홉 살의 마음은 갈대 같아서 무척 쉽게 홀렸다.
“그게…….”
카린은 계속 쭈뼛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어색한 것 같았다.
테이슬론 할아버지가 ‘에잉! 답답한 것!’ 하고 소리치고는 내 앞에 섰다.
“아까, 구름 양탄자를 기억하느냐?”
황실 학자가 황녀에게 하는 말치고는 좀 시건방진 모양새였지만 상관없었다.
저게 테이슬론 할아버지가 귀화하는 조건이었으니까.
다들 그걸 알고 있었고.
아, 아르미텔 중장님은 모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좀 나빠 보였는데 나중에 테이슬론 할아버지를 조용히 찾아갈 생각인 것 같아서 그냥 모른 체하기로 했다.
“네에. 너무 무서웠지만요.”
비아톤 경은 내가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했을까?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구름 너머 저 끝까지. 우리가 보여주고자 했던, 우리의 시야로 담을 수 있던 가장 넓은 세상이었지?”
“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그걸 떠올려봐. 하늘 너머 저 끝까지 뻗어 나가는 강대한 마력. 냉속성 마력이고 일종의 불순물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뭐 가능한지는 나도 모르겠다마는, 아무튼 해볼 수 있겠어?”
“냉속성 마력은 알겠는데 일종의 불순물은 뭐예요?”
“그 뭐라더라, 카린, 뭐였지?”
카린 선생님이 작게 말했다.
“북극빙수입니다.”
“…….”
“북극빙수의 영창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때 내가 했던 영창은 사실 마법 영창이라고 보기에 상당한 무리수가 있었다.
‘팥빙수, 팥빙수, 맛있는 팥빙수, 토핑은 인절미, 연유는 국룰이야. 북극곰 친구랑 같이 먹는 북극 팥빙수.’
그때는 어찌어찌 영창을 외우긴 했는데 이걸 공개할 수는 없었다.
절대! 네버! 차라리 에르베 산맥에서 눈썰매를 타는 게 낫겠어!
모두의 비웃음을 사고 말 거야.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데 테이슬론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영창 외우면 카린의 마력 회로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린이 끼어들었다.
“역시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건 저를 위한 것이지, 황녀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어쩐지, 여기서 도망치고 싶은 모양새였다.
그래서 마법 영창을 공개했다.
“팥빙수, 팥빙수, 맛있는 팥빙수, 토핑은 인절미, 연유는 국룰이야. 북극곰 친구랑 같이 먹는 북극 팥빙수.”
몹시 부끄러워진 나는 냅다 조각을 뺏어 들고서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미지의 구체적인 형상화.
나는 북극빙수를 직접 만들어도 봤고, 마침 하늘도 경험했다.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가는 얼음 세계를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창을 외우는 것 같았다.
‘내가 뭐라고 하는 거야?’
어지러웠다.
의식이 멀어지는 것 같기도 했고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주변이 화악- 밝아지는가 싶더니 하얀 우주 속에 들어와 버렸다.
“정말이지. 못 말리겠다니까.”
그 하얀 우주 속에서, 에메랄드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맨발의 예쁜 소녀가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