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화
아빠가 내 방을 찾아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바마마?”
어제 아빠의 모습이 기억났다.
꽃반지를 끼워줄 때, 아빠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말 가까이서 아빠의 모습을 봤는데, 아빠의 속눈썹도 파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빠도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덕분에 아빠를 대하는 게 훨씬 편해졌다.
“오랜만이에여!”
“어제도 보지 않았느냐?”
분명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가끔이라도 찾아와줄 엄마, 아빠가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 나도 모르게 어린애처럼 굴게 된다.
“그렇지만 이사벨의 방에 잘 안 오셨는걸요.”
그래도 또 알 건 다 알아서 정직하게 얘기했다.
“이사벨은 결핍이 있다구여.”
정말로 목말랐다.
창피할 정도로,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했다.
“결핍?”
아빠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딸에게 결핍이 있다는데 왜 좋아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몹시 귀한 것을 아는 모양이군.”
“…….”
아빠는 약간 승자의 미소 비스무리한 그런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뭐라 딱 말하기는 어려운데, 아무튼 얄미운 표정이었다.
그 얄미운 표정마저도 황홀하리만치 잘생겨서 심통이 났다.
어린 육체는 또 내 통제권을 벗어나서 속마음을 토해버리고 말았다.
“치, 잘생겼으면 다예요?”
“다다.”
“……녜?”
“네 눈에도 내가 잘생겨 보인다는 건 확실히 알겠군.”
“…….”
“아니냐?”
“아닌 게 아닌 건 아니고 아니긴 한데여…….”
어질어질.
머리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다음부터는 그냥 멋지다 하면 될 것이다.”
그 잘난 체하는 모습까지도 진짜로 잘난 아빠는 무표정이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좀 헷갈렸다.
“그리고 나는 당분간 너를 만나줄 수 없다.”
“녜?”
와, 이 아빠. 말하는 스타일이 소설이랑 조금 바뀐 것 같은데.
만나준다니?
무슨, 내가 아빠 만나고 싶어서 안달 난 아가로 보이나 본데!
나는 눈을 크게 뜨고서 아빠를 바라봤다.
나름 도끼눈이었다.
사기적일 만큼 황홀한 그림체가 눈에 들어왔다.
‘사, 사랑해요. 만나줘서 고맙습니다.’
볼 때마다 새롭고.
볼 때마다 신선하고.
볼 때마다 청량한 것도 참 신비한 일이었다.
저 정도 얼굴이면 은혜였다.
“성은이 망국하옴니다.”
내 맥락 없는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 하고 물을 법도 한데 아빠는 달랐다.
과연 강했다.
“물론 그럴 테지.”
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근데 왜 못 만나여?”
“어른들의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럼 언제 오시눈데여?”
“네 생일이 지나기 전에는 돌아오마.”
나는 손가락을 접어가면서 숫자를 세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
“여덟 달 있으면 오는 거에여?”
“아마도 그럴 것 같군.”
“아바마마가 빨리 오면 조케따.”
“왜?”
“보고 시푸니까여.”
아빠의 입가가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왠지 지는 기분이었지만, 또 저 모습이 좋았다.
아빠는 분명 지금 기분이 좋다.
덕분에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몽실몽실해졌다.
“이사벨이 요기서 기다린대여.”
“그렇게까지나 나를 원한단 말이냐?”
“녜. 엄텅요.”
“그렇다면 빨리 와주도록 하지.”
“발 동동하고 있을 거예여.”
“…….”
아빠의 몸이 움찔했다.
뭔가,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나를 꽉 안아주려다 만 것 같았다.
‘쳇. 그냥 안아줘도 되는데.’
안아주면 성은이 더 망극할 텐데.
“약똑이에여.”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빠는 내 반응이 무척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특별히 약속해 주지.”
“약똑!”
아빠는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고서 내게 약속했다.
그러고서는 허리를 숙여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해 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말로 아빠를 만날 수 없었다.
아빠만 볼 수 없는 게 아니라 엄마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굉장히 속상했는데, 속상한 일이 또 있었다.
“황녀님. 저도 당분간 궁을 좀 떠나 있어야 할 것 같네요.”
“비아톤 경은 왜여? 오디가여?”
“누구 좀 죽여 버…… 크흠!”
“녜?”
“몹시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서요.”
“아라써여.”
친구처럼 지내주던 비아톤 경이 궁을 떠나 어딘가로 간다니 무척 아쉬웠다.
그런데 비아톤 경이 내 양어깨에 손을 얹었다.
커다란 눈망울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아니, 황녀님.”
“녜?”
“제가 황녀님이랑 시간도 훨씬 많이 보냈고! 훨씬 훨씬 더 사랑하고! 훨씬 훨씬 훨씬 더 귀여워하고! 훨씬 훨씬 훨씬 훨씬 더 애정 하는데!”
“이사벨도 비아톤 경 죠아해여.”
비아톤 경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겼다.
“하아.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산이고 요새고 방벽이란 말인가. 천륜의 벽은 높고도 험하구나.”
“녜?”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아톤 경은 다시 눈부시게 웃어주었다.
아, 정말이지, 빙의하길 잘했어.
“빨리 오겠습니다. 맘마도 많이 먹고 건강하셔야 합니다.”
“녜! 비아톤 경도 다치지 마여. 다치면 혼나여!”
그랬더니 비아톤 경의 표정에 활력이 돌고 생기가 가득해졌다.
“다치면 혼내주시나요?”
……네?
나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거 같은데.
* * *
비아톤은 떠나기 전, 마지막 보고를 위하여 황제를 찾았다.
“……제가 졌습니다, 폐하.”
“검술이라면, 너는 단 한 번도 날 이긴 적이 없을 텐데.”
“아니, 검술 말고요.”
사실 검술로 패배하는 건 별로 자존심 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건 자존심이 상했다.
“어제 자랑하셨잖아요.”
론은 어제 이사벨과 있었던 일에 대하여 비아톤에게 말해주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즐기지 않는 론이건만, 어제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빨리 오면 좋겠다, 보고 싶다, 요기서 기다리고 있겠다, 발 동동하고 있을 거다.”
“…….”
“저한테는 조심히 잘 갔다 오라고 하시네요.”
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게 끝이었느냐?”
“저한테도 좋아한다고 해주기는 했는데, 폐하와는 사뭇 달랐어요. 이 짙은 패배감을 어쩌면 좋죠?”
“나는 너를 경쟁상대로 본 적도 없다.”
“그게 더 자존심 상합니다!”
“검술로 패배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그거랑 이거랑 같습니까!”
론이 차분히 대답했다.
“너무 분해하지 말아라.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니.”
“그렇게 차분하게 잘난 체하는 것도 재능입니까?”
비아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분이 울적해서 안 되겠습니다.”
그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빌헬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증거 찾는 대로 개작살 내고 오겠습니다.”
“간만에 바람직한 생각을 하였구나.”
이미 황궁 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론도 다 알고 있는 상태.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황녀의 마법 재능을 알아보고 납치하려 했었다.
론이 품격있게 말했다.
“어깨 위의 그것을 가져오면 더욱 좋고.”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보고를 끝내고 황궁을 나서며, 비아톤은 황녀의 거처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다치면 혼낼 거라던 귀여운 얼굴이 떠올랐다.
홀로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은 다쳐서 돌아올까 봐요.”
* * *
아빠의 생일 이후로 벌써 여덟 달이 흘렀다.
‘와, 나 벌써 5살이네.’
21년 중 5년이 흘렀다.
‘성장도 빠르고 시간도 빠르고.’
빌로티안의 육체인지라 성장이 상당히 빨랐다.
지구 기준으로는 거의 9살이나 10살쯤 되어 보였다.
이제는 발음도 거의 명확해졌다.
생각한 바를 거의 그대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몸을 쓰는 것도 훨씬 익숙해졌다.
살날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모든 것이 좋았다.
루루카가 말했다.
“내일은 알사탕을 드릴게요.”
“정말?”
루루카는 알사탕 주의보를 내린 상태였다.
그녀가 본 이사벨은 이상하리만치 식탐이 강한 편이었다.
특히 사탕이나 젤리, 초콜릿과 같이 몸에 별로 좋지 않은 자극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섯 개 줘.”
“다섯 개나요?”
“응. 다섯 살 생일이잖아.”
루루카는 잠시 고민했다.
알사탕을 다섯 개나 줘도 되는지.
다섯 개를 준다면 분명 15분 안에 다 먹을 텐데.
‘그래도 생신이시니.’
루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다섯 개 드릴게요.”
“사랑해, 유모!”
이사벨이 루루카를 와락 끌어안았다.
“저를 사랑해 주시는 건가요, 알사탕을 사랑하시는 건가요?”
“알사탕 주는 유모를 사랑하지.”
루루카가 모르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아무리 전생의 이사벨이 먹을 것에 많은 한이 맺혀 있었다고는 해도, 알사탕에까지 그렇게 미쳐 있는 편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알사탕은 그냥 핑계였다.
사랑한다고 자연스레 말할 수 있는 핑계 같은 거.
나이를 먹어가면서-그래봤자 5살이기는 하지만-그녀의 이성이 점차 강해졌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전생의 정신에 더 가까워졌고, 마냥 애처럼 굴지는 않게 되었다.
“근데 유모. 이번에도 어마마마랑 아바마마는 너무 바쁘실까?”
“저는 두 하늘의 행사를 잘 몰라서요, 죄송해요, 황녀님.”
“유모는 죄송할 일이 아닌데도 죄송하다고 하더라. 그게 난 조금 슬퍼.”
이사벨에게 있어서 루루카는 반쯤 엄마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이 지나치게 격을 차리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둘이 있을 때에는 조금 더 편하게 대해 줘. 그게 나를 사랑해 주는 거야.”
“그, 그게…….”
“응?”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헤헤, 신난다.”
이사벨의 티 없이 맑은 웃음과 마주한 루루카는 엉겁결에 웃고 말았다.
폭신폭신한 뭉게구름이 마음속에 꽉 찬 느낌이었다.
“아무튼, 아바마마는 내일까지 오기로 약속하셨으니까 오실 거야. 그렇지? 얼른 그렇다고 말해줘.”
“네. 꼭 그러실 거예요.”
하루가 지났다.
오늘은 이사벨의 생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