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0화
아셀리아?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셀리아가 이사벨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그렇게 강한 마력을 한꺼번에 쏟아내면 어떡해? 아무리 빌로티안의 육체라고 해도 그걸 버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아셀리아가 이사벨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무언가를 알아보는 듯했다.
아셀리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악마의 재능이 신체를 갉아먹는 셈이구나.”
아셀리아가 보기에, 이사벨의 마법 재능은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인간의 몸이 버텨내기엔 이사벨이 일으킨 마력은 너무나 강대했다.
“너는 기적을 일으켰어. 그런데 그 기적에는 대가가 따라.”
기적?
이사벨은 의아했다.
무슨 기적을 일으켰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기적의 대가는…….”
아셀리아는 이사벨의 손목을 들어 올려 나르비달의 낙인을 살펴보았다.
“보통은 생명이거든.”
이사벨은 무어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너는 카린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대신, 네 생명 1년을 잃었어.”
“…….”
“네가 불어넣은 마력을 통해 카린의 마력 회로를 복구할 수 있을 거야. 음, 복구라고 해야 할지, 창조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
“아무튼, 알아두라고. 네 마지막 생일은 21번째가 아니라 20번째가 될 거야.”
세상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셀리아의 몸도 어둠과 함께 사라졌고, 이사벨이 눈을 번쩍 떴다.
‘응?’
사람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였지?’
방금 꿈을 꾼 건가 싶어서 아셀리아 쪽을 바라보았다.
아셀리아도 활짝 웃고 있었다.
테이슬론이 두 눈을 끔뻑거리며 중얼거렸다.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한바탕 마력 파동이 일어 황실 기사단이 긴급 출동을 하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력을 불어넣는 것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테이슬론이 이사벨의 손에 들린 작은 알약을 들어 올렸다.
“자, 완성이다. 카린. 얼른 먹어.”
“…….”
“얼른!”
테이슬론은 반쯤 강제로 카린의 입속에 알약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투박한 손놀림으로 물컵을 건네주었다.
‘아무튼 츤데레라니까.’
꿀꺽,
카린이 알약을 삼켰고 그와 동시에 카린의 몸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 * *
굳이 열심히 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린에게서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마력 회로가 회복됐어?’
한번 망가진 마력 회로는 다시는 복구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진짜네? 진짜진짜진짜네?”
그때, 이상한 기억이 떠올랐다.
‘네가 불어넣은 마력을 통해 카린의 마력 회로를 복구할 수 있을 거야. 음, 복구라고 해야 할지, 창조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한번 기억이 떠오르자 그 장면이 명확하게 떠올랐다.
이상한 우주 속에 빨려들어 간 것 같았고, 아까 아셀리아가 했던 말들을 모두 기억해 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 생명을 1년 소모해서 기적을 일으켰나 봐. 그나마 빌로티안의 육체를 지녀서 1년만 소모한 거고.’
나는 멍하니 서서 카린을 바라보았다.
카린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고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황녀님?”
“…….”
1년이 사라졌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1년이나 없어졌다.
나는 그 사실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황녀님께서 기적을 일으켜주신 덕분에, 마력 회로가 복구된 것 같습니다.”
“정말 잘된 일이에요.”
나는 애써 웃어보았다.
솔직히 기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그 기쁨보다, 기적의 대가로 1년이 사라졌다는 충격이 너무 컸다.
테이슬론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최고의 생일 선물이 될 줄 알았는데? 이사벨, 안 기쁘냐? 네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마력 회로가 복구됐는데?”
“기뻐요. 엄청 기뻐요.”
“흐음. 기쁘다니 다행이긴 하다만.”
기쁘게 웃고 싶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까.
사라진 1년을 되찾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냥 행복해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 터였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벌꿀이를 위해 5년을 내어주겠다고 생각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어렵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분명히 즐겁고 행복한 날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 걸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의 5년보다, 지금의 1년이 더 소중해서 그런가 봐.’
그때에도 당연히 내 삶은 소중했다.
아프지 않고, 맘껏 뛰어다닐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삶이 내게는 선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보다 더 삶이 소중해진 것 같았다.
오늘을 경험하니 더 그랬다.
내 곁에서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런 시간이 내게서 또다시 달아나버린다는 것이 두려웠다.
‘기뻐해야 하는데.’
즐거워야 하는데.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웃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치는 파하겠다.”
아빠의 목소리였다.
“……아바마마?”
아빠가 가까이 다가와 내 앞에 섰다.
미지의 모든 것으로부터 날 지켜주려는 것처럼.
* * *
방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 방 안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만 남게 되었다.
“이리 오렴.”
침대에 앉은 엄마가 손짓해서 나를 불렀다.
나는 마법에 홀린 것처럼 나풀나풀 걸어가 엄마 옆에 앉았다.
나도 모르게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엄마는 따뜻한 손바닥으로 내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나는 잠시 고민했다.
1년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런데 그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1년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엄마가 엄청 속상해할 것 같았다.
아까는 엄청 충격이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괜찮아졌다.
“말해보렴.”
“아무 일도 없었어요.”
엄마는 더 이상 나를 보채지 않고 계속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한참 후에 내가 입을 열었다.
“괜…….”
“앞으로 엄마 앞에서 괜찮다는 말은 금지야. 알겠니?”
“…….”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도 금지.”
“정말이에요.”
언젠가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지금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문득 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이 무척이나 다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로요.”
그저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빠의 표정도 그랬다.
다정하고 또 다정해서, 그 다정함에 취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변명했다.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싶어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때, 아빠가 입을 열었다.
“네게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
“네?”
“태어났을 때의 일을 기억한다지.”
“……네.”
“그때의 나를 후회한다.”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었다.
쓸모없는 것이 태어났다고.
어쩌다 보니 각도가 그때와 비슷했다.
그렇지만 말을 하고 있는 아빠의 표정은 많이 달랐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직도 못했다. 미안했다. 그때의 나는 아비가 아니었다.”
“…….”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물었다.
“그럼 저 쓸모없지 않아요?”
나를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이 잠시 멈추었다.
엄마가 내게 말해주었다.
“이사벨은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딸인걸.”
나는 아빠 쪽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아빠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저 쓸모없지 않아요?”
“…….”
내가 다시 한번 물었다.
“저 쓸모없는 아이예요?”
“쓸모없지 않다.”
“다정하게 말해주세요.”
“너는…….”
아빠는 입을 떼기 어려운 듯 한참을 고민했다.
“사랑스러운 아이다.”
“저는 빌로티안 검술도 익히지 못하는걸요.”
“그러나 너는 이사벨이지. 검술을 익히지 못해도, 강해지지 못해도, 그러나 너는 이사벨이다.”
“…….”
투박한 말이었지만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 안 들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말해주었다.
“엄마와 아빠가 많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아. 미안해.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게 조금 가증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아니에요!”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가증스럽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건데, 가증스러울 리가.
“그렇다면 엄마 아빠에게 솔직히 얘기해 줘.”
나도 모르게 말할 뻔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1년 줄어들었다고.
“엄마. 저 좀 안아주세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아기 때에도 느꼈지만 나는 엄마 품이 참 좋았다.
아빠가 말없이 다가와 커다란 팔을 벌려 엄마랑 나를 한 번에 안아주었다.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있잖아요.”
너무너무 안전한 곳이 틀림없는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있잖아요, 엄마, 있잖아요, 아빠.”
엄마 아빠는 그냥 천천히 내 말을 기다려주었다.
나를 꼭 안은 채로.
내 마음속 깊이 꼭꼭 숨겨두었던 말이, 자꾸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애쓰고 있었다.
‘안 돼. 말하지 마.’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소중한 시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이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그냥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안 돼. 말하지 마.’
결국 입을 열었다.
“너무 무서워요.”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고서 여러 겹 자물쇠를 채워놓았던 마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입이 움직였다.
“저, 사실은 죽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
한번 자물쇠가 풀어지자 걷잡을 수 없었다.
매일 괜찮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해왔다.
내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오늘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늘이 너무 소중하다는 사실을.
내게 주어진 행복들이 너무 반짝반짝 빛나서, 꼭 움켜쥐고 싶었다.
“안 괜찮은 것 같아요.”
어차피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면 엄마 아빠의 마음이 무너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떡해요? 저는, 어떡하면 좋아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