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1화
아, 이게 이불킥이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내 배꼽 아래 하반신은 별개의 의지가 있는 것 같았다.
비둘기 날개처럼 푸득거렸다.
“아…… 망했어.”
하반신만 의지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입도 그랬다.
망했다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했다.
“맨날 다 괜찮다,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 행복하다 그랬는데.”
어제는 도대체 무슨 정신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 아빠한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생일이니까, 어리광 좀 받아주세요.’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아빠 품에 안겨서 울고 있었고 아빠는 목석처럼 굳어 있었다.
‘살고 싶다고 해도 돼요? 화 안 낼 거예요?’
아빠가 해준 말도 기억이 났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괜찮아요, 괜찮은데 안 괜찮아요, 안 괜찮은데 괜찮아요.’
그리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 안 났다.
내가 불행하느냐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나는 정말 행복했고, 이 건강함이 즐거웠다.
만 21세, 아니, 만 20세가 되면 다가올 죽음을 그렇게 공포스럽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이 삶은 그냥 내게 주어진 선물 같은 거였으니까.
그런데 어제는 뭐가 그렇게 무섭고 두려웠을까.
아빠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난 것 같았다.
‘거짓말하는 아이처럼 보였을지도 몰라.’
적어도 어제의 나는 ‘선물받은 삶을 사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어제 일 때문에 나는 거짓말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아빠는 거짓말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아빠가 뭐라고 말을 하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잘은 기억 안 났다.
어제는 그냥 투정부리기 바빴던 것 같다.
아빠는 내 방에서 나갔고, 엄마는 그날 해가 뜰 때까지 내 곁에 있어주었다. 아침도 함께 먹었다.
오전에 아주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했었는데 그걸 미뤘다나 뭐라나.
나는 그게 못내 미안했지만, 또 그렇게 싫지는 않은 묘한 기분이었다.
‘검림학사원에서 오전 회의를 일방적으로 불참한 엄마한테 엄청난 항의를 하고 있다지?’
여러모로 이번 생일은 마음이 복잡했다.
카린이 힘을 되찾은 것은 아주 기쁜 일이기는 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소설 속 최종 흑막으로 설정된 최종 보스가 힘을 되찾았다는 것이기도 했다.
평소처럼 거의 무표정에 가까웠었는데 사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잠이 안 와.”
새벽 1시가 넘었건만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뜻한 율무차라도 마시고 다시 잠을 청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창문틀에 무언가가 보였다.
‘편지?’
편지지가 놓여 있었다.
모양새로 보아하니 아마 밖에서 안쪽으로 쑤셔 넣은 것 같았다.
곰돌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묘하게 촌스러운 편지지였다.
나는 그 묘한 촌스러움을 통해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빠다!’
아빠는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모든 것을 다 커버하기는 했지만 사실 미적 센스는 별로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하기야, 저렇게 타고난 사람에게 미적 센스가 뭐가 중요하겠느냐 말이다.
내가 작년에 숏컷 해봤을 때 느꼈다.
패션이든 헤어든 센스든, 뭐가 됐든 완성은 얼굴이다.
엉망진창으로 하고 다녀도 아빠가 하고 다니면 거기가 곧 패션쇼였다.
아빠가 이 편지지를 들고 다니면, 이 촌스러운 편지지도 빈티지한 느낌의 감각적인 편지지로 변하는 마법이 벌어지겠지, 뭐.
‘근데 아빠가 편지를 쓰는 성격은 아닌데…….’
[시한부 악녀가 죽고나면> 속에서도 아빠의 제대로 된 편지를 받은 사람은 엄마뿐이었다.나는 편지를 뜯어 내용을 살펴보았다.
[네가 살고 싶다고 말한 것이 처음이었다.]세상에.
글자 하나하나에서 왜 이렇게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강한 마력을 쏟아부었으면 이렇게 글자에도 짙은 마력향이 나는 걸까.
‘진짜 엄청 고심하면서 썼나 봐.’
편지 같은 건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처럼.
아주 불편하고 갑갑한 마음이 가득 느껴졌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불편한 마음속에 단단한 사랑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 처음이 고마웠다.]중간중간 너무 많은 말이 생략되어 있어서 문맥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뭐랄까.
음, 그래. 이건 말을 더듬는 것에 가까웠다.
편지로 말을 더듬는 사람은 처음 봤다.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느냐?]글자를 읽다 보니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많이 힘들었지?
네 마음 다 알아.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실 평소에 힘들다고 생각은 별로 안 했었는데, 이상하게도 저 글을 보니 눈물이 났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어리광을 들어주는 것밖에는 없구나.그러나 훗날에는 다를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너를 아끼는 많은 이가 나르비달의 낙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그러므로 부디 포기하지 말아다오.
괜찮지 않을 때는 언제든 네 부모의 방을 찾거라. 딸에게 부모의 방은 늘 열려 있으니.]
그리고 마지막 말이 조금 이상했다.
[너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네 아버지가.]글씨체가 달라져 있었고, 묘하게 억지로 쓴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글씨에 담긴 마력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건 엄마 솜씨네?’
엄마가 강요(?)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도 아니면, 아빠가 엄마한테 편지를 검사받았거나.
‘아. 일단 편지를 다 쓰고 난 다음에 검사받았나 보다.’
애초에 처음부터 엄마가 관여했으면 편지지가 훨씬 세련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중간중간 말 더듬는 것처럼 생략된 내용도 별로 없었겠지.
엄마는 글을 유려하게 잘 쓰니까.
나는 편지지를 꼭 안아 들었다.
편지 안에 담긴 마력이 흩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 * *
데일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폐하께서 어찌 직접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내가 오면 안 될 곳을 왔는가?”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것이 제 일입니다. 다음부터 하명만 하시면 제가 가겠습니다.”
데일사는 평소에도 검은색 옷을 즐겨 입었는데,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뿐이었다.
“휴가를 좀 다녀오라 했는데.”
“지금 이 모습으로 휴가를 떠나면 어떤 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랜서 경의 죽음은 대외적으로 비밀이지 않습니까? 이곳에서 휴가를 즐기는 중입니다.”
“…….”
랜서는 빌헬름을 추적하다 사망했다.
빌헬름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거고, 랜서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알리기에는 정치적으로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괜찮은가?”
“괜찮지 않을 것도 없습니다. 죽음이야 늘상 익숙했던 것이니까요.”
데일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론과 대화를 나누었다.
데일사가 걱정되어 찾아온 론이 무색할 정도로, 데일사는 멀쩡해 보였다.
론과 데일사 모두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어서 종종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둘 다 그런 침묵이 익숙한 편이어서 서로 어색하지는 않았다.
론이 다시 말했다.
“성격이 많이 죽었군. 옛날 같았으면 검을 뽑아 즉시 추적에 들어갔을 텐데.”
“그러기엔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해졌습니다.”
손목과 발목의 힘줄을 크게 다쳤다.
일상생활에는 지장 없지만, 검술을 다룰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훗날, 빌헬름을 벨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제게 그 기회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론은 데일사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황제와 시종이기 이전에, 전우였다.
데일사는 잔잔한 강물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하나, 수심 깊은 곳에서는 강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약속하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만 일어나겠다.”
“살펴 가십시오.”
남들이 보기에는 침묵이 대부분이고, 대화가 일부인 오묘한 대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나름대로 꽉 찬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론이 일어서서 방 밖으로 나가기 직전, 데일사가 한마디를 더했다.
“제 실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그녀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 검을 들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어떻게든 빌헬름을 찾아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 황궁에 제가 지켜야 할 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손에 달고나 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이사벨이 어제 직접 만들어서 준, 약간 타서 까무잡잡한 달고나였다.
“아주 달콤한 봄입니다.”
“…….”
“랜서가 그 봄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소꿉친구였거든요.”
* * *
어찌어찌 며칠이 흘렀다.
나는 함께 유리 호수를 방문하겠다는 세르몬 오라버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블라독 공작령으로 떠나는 중이다.
아빠의 편지를 받고 감동한 건 맞지만 민망한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그래서 약간은 약속을 핑계 삼아 도망치는 느낌도 있었다.
솔직히 유리 호수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마차 건너편에는 늘 그렇듯 비아톤 경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선생님, 있잖아요.”
“네?”
그냥 내가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또 저렇게 화사한 웃음을 보여준다.
비아톤 경이랑 있으면 늘 마음이 따뜻해진다.
“저는 왜 이렇게 꼬꼬마일까요?”
“황녀님이요? 꼬꼬마요?”
“그냥, 어리광도 엄청 부리고…….”
나는 마차 유리창의 내 얼굴을 쳐다봤다.
최근 만 9세 생일이 지났다.
빌로티안 황가의 혈육은 성장이 무척 빠르다.
아홉 번째 생일이 지났으면, 한국으로 치면 거의 십 대 중후반 정도의 모습이 보통이다.
“아홉 번째 생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애 같잖아요.”
“그건 미하엘 황자님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왜 미하엘과 나는 이렇게 성장이 더딘 건지.
“미하엘 오빠는 왜 성장하지 않는 건데요?”
“그건 말입니다.”
비아톤 경이 안경을 고쳐 쓰며 잠시 뜸을 들였다.
비아톤 경은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흥미롭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네?”
“최근 학자들이 밝혀낸 것인데요.”
비아톤 경이 놀라운(?)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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