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2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비아톤의 대답은 늘 ‘NO’였다.
그는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고 늘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이 너무 치열하여 그것을 다시 반복할 자신이 없었다.
‘다시는 못하지. 때려 죽어도 못해.’
그러나 그것은 그의 오만이었고 착각이었다.
치열했던 과거보다 더 열심히, 더욱 뜨겁게 살아가고 있다.
첫째로 로베나 대공과의 재회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강해져야만 했다.
둘째로 베크사의 유산 때문이었다.
베크사가 남긴 것들을 공부하고 익히느라 몸이 두 개라도 부족했다.
최근에는 카린과 함께 나르비달의 낙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이사벨의 신체에 대해서도 탐구하는 중이었다.
이사벨은 어째서 황가의 혈육들에 비하여 성장이 느린가.
미하엘처럼 ‘아무 생각이 없는 타입’의 경우, 성장이 무척 느리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 기록을 처음 접한 카린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황가의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더군요. 아무 근심도 걱정도 생각도 없으면 육체도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기록을 더러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척 신비로운 현상입니다.”
실제로 역사에 기록된 몇몇 황자는 죽을 때까지 어린아이의 모습을 유지했다고 했다.
“그러나 황녀님은 다릅니다. 오히려 생각이 많다면 너무 많은 분입니다. 비아톤 경의 생각도 그렇지 않습니까?”
500년이 넘는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이사벨 같은 경우는 없었다.
카린과 비아톤은 그 나름대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누구보다 괜찮다고 말하고,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분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처럼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이 어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황녀님의 행복은 진짜입니다, 카린 경.”
“진짜이기에 더 무섭지 않겠습니까?”
이사벨이 느끼는 행복도 진짜고,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하기에 두렵다.
“본능적으로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장이 조금 느린 것일지도요.”
“…….”
“괜찮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아톤과 카린은 결론을 내렸다.
이사벨이 느끼는 행복과는 별개로, 이사벨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보다 자신을 알아주어야 할 자신이, 스스로를 알아주지 않으면, 인정해 주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생겨요.”
* * *
블라독 공작저로 가는 마차 안, 비아톤이 말했다.
“최근 학자들이 세운 가설인데요. 황족들의 성장이 빠른 이유는, 그들이 빌로티안 검술을 익히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네?”
“검술을 익히려면 육체가 빨리 성장해야 하니까요. 빌로티안 황가는 마음이 육체를 일정 부분 컨트롤할 수 있는 특수한 신체를 타고나는 것 같습니다. 미하엘 황자님은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그냥 자연스레 크는 것이고요. 사실 뭐, 모습이야 아이의 모습이지만 완력은 네 황자님 중 거의 최고니까 육체의 성장에 대해 별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
묘하게 설득되는 말이어서 이사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지 않은걸요.”
“가설일 뿐입니다. 황녀님의 경우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비아톤은 카린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누구보다 자신을 알아주어야 할 자신이, 스스로를 알아주지 않으면, 인정해 주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생겨요.’
그러나 그 말을 해줄 수는 없었다.
아직 가설일 뿐이다.
이사벨은 정말로 괜찮을지도 모른다.
괜찮은 사람에게, 괜히 돌을 던져 마음의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빌로티안의 육체는 영혼에 따라 좌지우지된다고 말씀드렸죠?”
“네에.”
“아마 황녀님의 영혼은 우주에서 제일 귀여울 겁니다.”
“……네?”
“그 귀여움을 감당하지 못한 육체가, 영혼의 귀여움을 따라가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후후후.”
“…….”
이사벨은 할 말을 잃고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머리로는 비아톤이 참 주접을 부린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저 주접이 싫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이사벨이 물었다.
“근데요, 제가 귀여워요?”
“물음표를 마침표로 치환하여 문장을 재구성해 보십시오.”
이사벨은 머릿속으로 생각해 봤다.
‘물음표를 빼라고?’
근데요, 제가 귀여워요?
→ 근데요, 제가 귀여워요.
“아니, 물음표 대신 느낌표 세 개가 더 적절하겠군요.”
근데요, 제가 귀여워요?
→ 근데요, 제가 귀여워요!!!
이사벨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비아톤이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전담교사로서 시의적절한 언어학 교육을 할 수 있어서 무척 다행입니다.”
“……이게 시의적절한 교육이란 말이에요?”
그것도 언어학이요?
“황녀님은 좀 배우셔야 합니다. 황녀님 스스로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말입니다.”
“…….”
이사벨은 또 할 말을 잃었다.
이사벨의 발밑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김벌꿀이 한마디를 보탰다.
[주접 킹.]* * *
블라독 공작저는 알페아 왕국보다 남서쪽으로 한참을 더 이동해야 했다.
대륙 끝에 위치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서 이동 관문을 여러 번 타야 했고, 그에 따라 마차도 여러 번 바뀌었다.
어느 날, 마부가 말했다.
“저기는 못 들어갑니다.”
울창한 숲이 보였다.
사람들은 저곳을 ‘마경(魔境)’이라 불렀다.
“예, 그렇게 값을 쳐주시면 마차와 말을 팔 수 있습니다만…… 왜 저 마경에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저곳에 들어가서 살아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결국 마부는 우리에게 말과 마차를 팔았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비아톤 경, 진짜예요?”
“네?”
“저기 들어가서 살아 나온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왜 없겠습니까?”
“누, 누가 있는데요?”
“저도 있고요.”
“또 있어요?”
“황제 폐하도 있고요. 히르켈 블라독 공작도 있고요.”
“……좀 평범한 사람 중에 없어요?”
“비교적 평범한 사람 중에 세르몬 황자님도 있고요.”
“그게 평범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저곳에 들어가서 살아나온 사람이 거의 없는 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저곳은 블라독 공작가에서 직접 관리하는 정원이거든요.”
“네? 정원이요?”
정원치고 지나치게 거대했다. 정원이 아니라 산맥이었다.
“블라독 공작가의 허락을 받은 자만이 지나칠 수 있는 일종의 미로입니다. 중간중간 수많은 환상 결계와 위험한 트랩들, 그리고 무시무시한 마수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죠. 그래도 걱정 마세요. 길은 확실히 외우고 있으니까요. 아 참, 이걸 먼저 꿀꺽하세요.”
비아톤 경이 내게 알약을 하나 내밀었다.
“마경에서 새어 나오는 독기를 막아줄 겁니다.”
나는 알약을 삼켰다.
비아톤 경은 내가 알약을 삼키는 것도 기특한지, 아빠의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 진짜.
겨우 이런 걸로 저렇게 흐뭇해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
“알약이 커서 한 번에 삼키기 힘들었을 텐데요. 황녀님은 정말 다재다능하군요.”
마침 비아톤 경이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화사하게 웃었다.
허락하고말고.
“알약 백 개도 먹을 수 있어요.”
“정말요?”
비아톤이 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무표정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내 앞에서는 표정 변화가 참 다채로웠다.
“무지무지 대단한 능력인데요?”
“그렇죠? 헤헤.”
아.
나도 이제 벌써 만 9세인데.
이런 작위적인 상황과 칭찬이 재밌다니.
최근 새롭게 깨달았는데 나는 칭찬에 굉장히 약한 타입이었다.
전생에 칭찬을 별로 못 받아봐서 그런 것 같다.
칭찬보다는 동정에 너무 익숙했었으니까.
그래도 좀 다행인 건(?) 소꿉놀이나 역할 놀이는 슬슬 흥미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마차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희한하리만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네요.”
“원래는 무슨 일이 벌어져요?”
“아무리 생로(生路)로 움직이고 있다지만 마수의 습격 같은 건 몇 차례 있게 마련이거든요. 이렇게까지 없다는 건, 누가 마수들을 미리 살…… 아니, 길을 깨끗하게 닦아놓았다는 뜻이 되겠네요.”
비아톤 경이 단도를 꺼내 들었다.
“다, 단도는 왜요?”
“마수 대신 누가 습격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현상들이 발생했다.
비아톤 경이 허공에 단도를 휙휙 저었고, 그와 동시에 투두두둑! 하고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바늘같이 생긴 것이었다.
바닥에서 치익- 하고 김이 새어 나왔다.
독침이 분명했다.
저게 발에 닿았으면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을 것 같았다..
어느샌가 창문은 제거되어 있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 마차 천장이 사라졌어요!”
“환영 인사가 격하군요, 세르몬 황자님. 우리가 깊고 친밀한 대화와 깊은 교류를 나누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이나, 황녀님이 다칠 수 있으니 이쯤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비아톤 경이 아주 커다란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저만치 위.
나뭇가지 위에 세르몬 오라버니가 서 있었다.
나뭇가지가 휘청거렸고, 오라버니는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오라버니! 위험해요! 내려와요!”
소리치기는 했는데 문득 부끄러워졌다.
세르몬에게 저 정도 높이가 위험할 리 없으니까.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판타지 세계에 덜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높은 곳에서 장난치면 못 써요! 그리고 마차를 습격하면 어떡해요?”
“하지만 내가 배운 것은 이런 것들뿐인걸.”
“그러다 탑승객들이 다치면요? 큰 사고가 벌어지면요?”
“그건 그냥 운이 나쁜 거 아닐까? 갑자기 비가 와서 비를 맞았다고 구름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빼액 소리쳤다.
“무섭게 혼나고 싶어요? 나 진짜 화내요!”
“…….”
“너 진짜 가만 안 둔다!”
표정이 다채로운 비아톤 경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