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3화
세르몬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배운 건 이런 거밖에 없는데?”
“일단 내려와요. 내려와서 말해요.”
내 말이 세르몬은 순순히 땅으로 내려왔다.
나는 일련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를 암습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티가 나긴 했지만.’
일부러 자신을 전시하듯 나뭇가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을 과시하듯 말이다.
이건 아마도 환영 인사일 것이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왜 놀랐는지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지만 놀랐다고 하니까 사과할게.”
세르몬은 다정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와, 따뜻해.’
세르몬의 손길에는 비아톤 선생님에 버금가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는 그보다 더한 호감이 가득했다.
정말로 순수하고 맑은 호감이 전해졌다.
“이리 와서 앉아봐요.”
세르몬이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세르몬의 몸에 붙어 있는 나뭇잎들을 떼주었다.
“칠칠치 못하게 이런 거 붙이고 다니면 어떡해요?”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나를 혼내기만 하는구나.”
“오라버니가 혼날 짓만 하잖아요.”
비아톤 경이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르몬 황자님이 마중을 나오실 줄은 몰랐군요.”
“가족이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다른 황자님들이 여기 방문할 때도 마중 나오셨습니까?”
세르몬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약간은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서 비아톤 경에게 손짓하여 가까이 오게 만든 뒤 작게 귓속말했다.
“걔네는 여동생이 아니잖아.”
귓속말이긴 했는데 어차피 다 들렸다.
걔네는 여동생이 아니라니.
저런 건 말도 안 되는 핑계가 틀림없……
“그건 그렇죠.”
“비아톤 경도 이해하지?”
“대단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참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도 쉽게 납득하는구나.
아마 진짜 납득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겠지.
“공작저까지 그리 멀지 않으니 그냥 이 상태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천장이 없어진 상태이긴 하지만, 불편하지는 않으시지요?”
“그럼요.”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풀이 워낙 우거져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끔 한 번씩 보이는 하늘은 무척이나 파란색이었다.
폐 깊숙이 스며드는 나무 냄새와 흙냄새, 뻥 뚫린 천장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참 좋았다.
‘이래서 오픈카를 타나 봐!’
TV에서 부자들이 오픈카 타는 거 많이 봤다.
멋진 부자 언니 오빠들이 오픈카 타고 멋있게 달렸다.
……는 개뿔.
좋은 건 아주 잠깐이었다.
바람이 워낙 세차게 들이쳐서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다.
숏컷을 하고 나서 1년 동안 자란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오픈카 감성은 드라마로 볼 때만 좋은 거였다.
세르몬이 내게 물었다.
“어디 아파? 표정이 왜 그래?”
“머리카락으로 따귀 맞는 기분이에요.”
“잘라줄까?”
여전히 문제 해결을 극단적으로 하는 세르몬이었다.
* * *
숲속에 위치한 비밀 가문 블라독 공작가.
공작저의 사용인들조차도 숙련된 암살자들이라고 했다.
‘사람이 사는 곳이 맞기는 해?’
블라독 공작성을 바라보았다. 높다란 담장 전체가 거대한 넝쿨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주 오래된 고성 같은 느낌이었다.
끼익- 하고 문이 저절로 열렸다.
‘지키는 사람도 없어?’
공작저가 아니라 버려진 성 같은데.
인기척도 전혀 없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하나도 안 났다.
잘못 찾아온 건가 싶을 정도였다.
‘괜히 불길한 곳이네.’
내 마음을 읽은 건지, 비아톤 경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아마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인들과 만나지 못할 겁니다. 그들은 극도로 은밀히 움직이거든요.”
이를테면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 식사가 대령되어 있다거나.
화장실을 찾으면 갑자기 허공에서 화살표가 튀어나온다거나 하는 식이란다.
뭔가가 필요하면 허공에 말하면 된다나 뭐라나.
어디선가 유령들이 내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고 했다.
그거 어쩐지 약간 무서운데.
세르몬이 말했다.
“오늘 바로 유리 호수를 보러 갈래?”
“좋아요.”
블라독 공작가는 왠지 으스스하고 무서워서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사람 냄새가 하나도 안 났다.
생기가 전혀 없는 곳이어서 얼른 도망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 여기서 마차로 한 시간 정도만 가면 돼. 유리 호수 한가운데에 배를 띄워놓고 브런치를 즐기자.”
언제 준비해 왔는지 세르몬이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벌꿀이가 코를 킁킁대고 있는 걸로 봐서 맛있는 게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오빠가 직접 준비했어요?”
“응. 네 시녀의 요리 실력에 비하면 보잘것없겠지만.”
“아니에요. 오빠가 날 위해서 준비해 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요. 기대되는데요?”
“그렇게 말하니 부담스러운데.”
참. 이렇게 보면 너무나 다정하고 착한 사람인데.
악의 한 톨 없이 벌꿀이를 죽이려 들던 게 생각나서 조금 무서워졌다.
어쨌든 우리는 유리 호수에 도착했다.
유리 호수는 커다란 산 분화구에 수천 년 동안 물이 고여 생겨난 호수라고 했다.
“와……!”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성을 내뱉었다.
물이 너무 투명해서 바닥의 자갈이 다 보일 정도였다.
“인어가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인어는 여기 없어.”
“네?”
“다 죽였거든.”
“…….”
그 말에 비아톤 경이 크흠, 헛기침을 했다.
“황자님. 그건 유머가 아닙니다.”
그 말에 세르몬이 약간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뭐? 이 말이 안 웃기다고?’라며 황당해하는 것만 같았다.
“……그게 유머였어요?”
“재미있지 않았어?”
“……원하신다면 재미있는 포인트를 공부해 볼게요.”
“아냐, 됐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튼 세르몬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비아톤 경이 사실을 말해주었다.
“유리 호수의 물은 너무 맑아서 아무것도 살지 못해요. 물고기 한 마리도 살지 못하는 환경이랍니다. 유리 호수에는 아주 신기한 현상이 있는데 전격 계열 마법이 통하지 않는대요.”
“물인데 전기가 안 통한다구요?”
“예. 저희 어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불가사의하지만 진실입니다.”
오, 아주 흥미롭군.
“자연적 초순수(超純水)라는 거네요?”
“예?”
“유기물이나 전기 전도도 따위를 최소화해서 불순물이 거의 없는 순수한 물이요. 고도로 여과된 탈이온수!”
비아톤 경은 뭐가 재미있는 건지 하하! 웃었다.
“인어공주가 살지 못하는 곳이어서 슬퍼하실 줄 알았는데요.”
“하지만 초순수를 발견했으니까 기뻐요.”
현대과학에서는 반도체 공정에 필수로 쓰인다.
아마 테이슬론 할아버지와 카린 선생님이랑 같이 이곳에 대해 연구하면 어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게…… 기쁜 거군요.”
“네, 기쁘죠. 비아톤 선생님은 안 기뻐요?”
“뭐가 어찌 됐든 황녀님이 기쁘면 기쁩니다. 하하!”
비아톤 경은 뭔가 미련이 남은 듯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인어처럼 신비로운 생명체가 없어도 별로 슬프지는 않으신 거지요?”
뭐랄까 내게서 동심을 바라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조금 슬퍼해 주면 비아톤 경이 좋아하려나?
“정말로 아무 생명체도 없나요?”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어봤다.
솔직히 조금은 아쉽기도 했고.
“네, 아쉽게도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환경입니다.”
“어떤 생명체도요?”
“네, 어떤 생명체도요.”
“그럼, 용도 못 사나요?”
“음.”
비아톤 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용은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용암 속에서도 산다고 들었으니까요.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진짜예요!”
소설로 봤다.
작품 내 비중은 없지만 용암 속에 사는 화룡이 있다는 구절이 있기는 했다.
“정말 그렇게 믿으세요?”
“네!”
“그러시구나, 믿으시는구나.”
“왜요?”
“아닙니다.”
어쩐지 비아톤 경이 좋아하는 모양새다.
헤벌쭉- 웃고 있는데 왜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은 몰라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기분은 좋아졌다.
‘그나저나, 초순수를 발견하다니. 뜻밖의 행운이네.’
좋은 예감이 들었다.
분명 마도 공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 * *
우리는 배에 올라탔다.
세 명이 간신히 올라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배였다.
“노는 제가 젓겠습니다.”
“아냐. 내가 직접 저을게.”
“황자님이요?”
“어. 오늘을 위해 연습했거든.”
“알겠습니다.”
연습했다더니, 세르몬은 노를 젓는 것이 아주 익숙했다.
“정말 빠르네요?”
“꽤 능숙하지?”
“네. 엄청 잘해요. 카누 시합에 나가도 되겠어요.”
배는 신기하리만치 쑥쑥 나아갔다.
잔잔하고 하얀 물결을 만들어내며 물 위를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배 바깥쪽으로 머리를 내밀어 물 아래를 보았다.
“발 담가도 돼요?”
비아톤 경이 고개를 저었다.
“얕아 보여도 수심이 500미터가 넘습니다.”
“진짜요? 500미터가 넘는다고요? 말도 안 돼요!”
눈으로 보기에는 내 허리 정도 올 것 같았다.
물이 너무너무 맑아서 생기는 착시현상이란다.
“세계에서 열 번째로 깊은 호수인걸요.”
“그러면 발 담그면 안 돼요?”
유리 거울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
조금 떨어져서 보면 하늘 풍광을 그대로 머금은 것 같았다.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 어떤 호수보다 아름다웠다.
“위험할 것 같으면 선생님이 잡아주면 되잖아요.”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사실상 비아톤 경 같은 초능력자(?)에게 이런 물 같은 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아톤 경이 옆에 있으면, 500미터가 아니라 500미터 할아버지가 와도 무섭지 않아요.”
“제 손 꼭 잡으세요. 생각보다 물이 굉장히 차니까 잠깐만 담그는 겁니다.”
“알겠어요.”
나는 배 난간에 걸터앉았다.
배가 작기는 했는데 내 다리가 너무 짧아서 물에 안 닿았다.
나 왜 숏다리요!
내가 울상을 짓자 비아톤 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내 양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어 나를 안아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