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4화
내 몸이 허공에 둥둥 떴다.
“잠깐만입니다.”
비아톤 경이 조심스레 나를 내려주었다.
“읏, 차가워.”
“차갑죠?”
다시 나를 들어 올릴 것 같아서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직요! 아직! 1분만요.”
“1분입니다.”
다리를 휘저어 봤다.
참방! 참방!
물보라를 일어났다.
호수가 흔들리는 건지 하늘이 흔들리는 건지.
나는 나도 모르게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늘도 행복으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너무 좋다.’
너무 좋아서 그런지 배가 고파졌다.
마침 비아톤 경이 ‘1분 다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배고파져서 바로 대답한 건 아니다.
진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일단 좀 먹어봐야겠다.
바구니에서 샌드위치를 꺼냈다. 나도 모르게 코가 벌렁거렸다.
“샌드위치가 엄청 먹음직스럽게 생겼어요.”
덥석.
나는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먹었다.
유리의 손맛에 익숙해져 있다지만, 이 샌드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어디선가 경치가 안주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게 그런 건가 보다.
샌드위치가 엄청 맛있게 느껴졌다.
“우와, 이 포도 주스는 뭐예요? 엄청 맛있어요.”
포도 주스는 유리가 만들어준 것에 비견될 정도로 맛있었다.
비아톤 경도 포도 주스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제가 여태껏 맛보았던 그 어떤 포도 주스보다 맛있군요.”
“직접 만든 포도 주스야. 괜찮지?”
그런데 비아톤 경의 몸이 움찔했다.
“직접 만들었다 하셨습니까?”
비아톤 경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응. 무슨 문제라도?”
“어째서.”
비아톤 경은 거기서 말을 끊었다.
조금 이상했다.
몸이 갑자기 굳어버린 모양새였다.
“왜 그래요, 비아…….”
그런데 이상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아톤 경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안 움직여?’
온몸이 마비돼서 혀도 움직이지 않았다.
돌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세르몬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아톤 경, 많이 방심했나 봐.”
“…….”
“아무리 비아톤 경이라고는 해도 해독되는 데 6시간은 걸릴 거야. 괜히 힘쓰면 해독이 더 오래 걸릴 테니까 차분히 기다리는 게 좋을 거야.”
세르몬의 손이 내 볼에 닿았다.
그 손은 여전히 따뜻했으나 감각은 아까와 많이 달랐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뭐, 뭐야?’
너무 순수하고 투명한 살의가 느껴졌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호감과 함께.
* * *
며칠 전, 세르몬은 블라독 공작을 찾아갔다.
블라독 공작은 황자의 주 양육자였고,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무엇이지?”
세르몬이 먼저 찾아와 질문한다는 건, 블라독 공작에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그림자에게 자아가 생겼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블라독 공작은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세르몬과 대화를 나눠본 블라독 공작은 약간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뭐가 세르몬의 정신을 이렇게 흔들어 놓았지?’
암살자들에게 있어서 감정은 사치다.
그림자는 그림자답게 자라야 한다.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블라독 공작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차분히 대화를 이끌어냈다.
슬픔이란 감정이 궁금해졌다고 했느냐?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공유해 보고 싶다고?”
“예.”
그림자에게 그런 건 사치였다.
감정을 공유하고 경험을 나누는 것.
그림자가 아닌 인간들이나 누리는 것이다.
“내가 지금 네 주변의 모든 사람을 죽이라고 명한다면, 가장 마지막에 죽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지?”
“이사벨인 것 같네요.”
만약 ‘네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지?’라고 물었다면 세르몬은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중하다의 개념이 모호했으니까.
그렇지만 ‘가장 늦게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는 질문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이사벨을 한번 죽여보는 게 어떨까?”
“…….”
“왜 그러느냐?”
“비아톤 경이 항상 함께하고 있을 텐데요. 암살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을 잘 만들어야겠지. 비아톤을 무력화시키고 황녀를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을.”
“…….”
“황녀를 잃어봐. 그러면 슬픔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싶군.”
블라독 공작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혈술(血術)을 이용한 세뇌였다.
십수 년간, 블라독 공작은 자신의 피를 세르몬의 몸에 투입하여 혈술이 작용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세르몬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몬이 나간 뒤, 블라독 공작이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허공에서 마력으로 만들어진 해골 모양의 형상이 피어올랐다.
블라독 공작은 그것과 대화를 나누었다.
“예, 틀림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평소보다 저항이 강하기는 했습니다만, 세뇌는 확실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고를 끝마친 블라독 공작은 상의를 벗었다.
그의 등에 해골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허공에 떠 있던 해골 문양이, 블라독 공작의 문신에 스며들었다.
블라독 공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예, 일이 마무리되면 저도 복귀하겠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는 상의를 다시 입었다.
공작저는 오늘도 조용했다.
* * *
세르몬이 말했다.
“나는 여전히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모호하고 어렵다.
그러나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인간으로서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상실하고 살아가는 듯한 공허한 느낌.
원래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이사벨을 만나고 나서 느껴졌다.
마치 약에 취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매일이 몽롱했고 마음이 어려웠다.
그래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너를 잃고 나면 나는 슬플 수 있을까?”
세르몬은 이사벨의 볼에서 손을 뗐다.
“상상이 잘 안 돼.”
한 발자국 멀어졌다. 그리고 툭, 이사벨을 밀었다.
첨벙!
이사벨의 몸이 유리 호수 안으로 떨어졌다.
이사벨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뭐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설마 나 죽는 거야?’
이런 엔딩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수면 위로 세르몬의 얼굴이 보였다.
물살이 흔들리고 있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몸이, 안 움직여.’
숨이 점점 가빠왔다.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아찔해졌고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나, 아직 스무 살 안 됐는데.’
그래도 스무 살까지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허락받아서 기뻤는데.
‘왜?’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죽어야 해?’
몸이 점점 깊이 가라앉았다.
얼마나 깊이 가라앉은 건지 모르겠지만 귀가 먹먹하고 아파왔다.
그런데 그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숨을…… 못 쉬…….’
* * *
세르몬은 잠자코 가라앉는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그는 포도 주스를 마시지 않았으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물이 워낙 맑아, 아무리 깊이 가라앉아도 이사벨의 모습이 다 보였다.
‘기포가 안 보이네.’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이제 곧 죽겠지.
찌릿.
가슴이 아파왔다.
피가 빨리 도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또 이 느낌이네.’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항상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후 마음이 평온해지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세르몬이 알지 못했을 뿐, 그것은 블라독 공작의 혈술의 영향이었다.
‘오늘도 똑같은가 봐.’
오늘은 뭐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별로 안 달랐다.
시간이 꽤 흘렀다.
문득, 이사벨이 물장구를 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게 뭐가 그리 재미있다고 그렇게 행복하게 웃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배 난관 위에 올라섰다.
저만치 아래, 아주 깊은 곳에 이사벨이 잠겨 있었다.
“너는 아래 있고, 나는 높이 있어.”
사실 나무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건 이걸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벌어질 일에 대한 예고.
‘높은 곳에서 장난치면 못 써요! 그리고 마차를 습격하면 어떡해요? 그러다 탑승객들이 다치면요? 큰 사고가 벌어지면요? 무섭게 혼나고 싶어요? 나 진짜 화내요! 너 진짜 가만 안 둔다!’
이사벨이 허리에 손을 얹고 잔뜩 성을 내던 모습도 떠올랐다.
이사벨은 이렇게도 말했었다.
‘오라버니! 위험해요! 내려와요!’
내려와서 이사벨의 옆에 앉았을 때, 내 기분이 어땠더라.
그 기분이 꽤 괜찮았었는데.
‘슬픔이 뭐야?’
그런데 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위험한 짓 하면, 또 혼내줄래?”
여기서 뛰어내리면 이사벨이 또 혼내줄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슬픔이 뭔데?’
여전히 머리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임무에 성공했는데.’
여태까지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다.
‘왜 하나도 안 기쁘지?’
평소 임무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과 기쁨은 하나도 없었다.
세르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이 들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흘리는 눈물이었다.
‘이게 운다는 거구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너무 많은 감정이 폭발하여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의 감정을 억누르고 조종해 왔던 혈술과 그의 솔직한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고 부딪치며 싸웠다.
심장 속에서 무엇인가가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쾅! 쾅! 쾅!
그리고 어느 순간,
‘이사벨?’
이사벨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야.’
피가 몸속에서 팽팽! 도는 것 같았다.
어떤 외부의 억제력이 자신의 몸을 강하게 구속하려는 것 같았다.
‘이사벨!’
더 이상 머리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을 관뒀다.
자꾸 뭔가를 생각하면,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몸속에 기생충이 있어서 몸과 감정을 제멋대로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머리로 생각하면 안 돼.’
이성을 닫고, 그저 본능에 몸을 맡겼다.
그의 몸이 절로 움직였다.
첨벙!
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숨이 막히며 몸이 굳어버렸다.
혈술을 거부한 대가였다.
십수 년간 그의 몸에 투입되었던 블라독 공작의 피가 세르몬의 몸과 정신을 갉아먹으며, 몸을 마비시켰다.
그의 몸이 돌처럼 딱딱해져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저만치 아래, 이사벨이 보였다.
‘이사벨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
누군가의 죽음이 이토록 두려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이는 건 자신 있었는데, 살리는 건 자신이 없었다.
‘무서워.’
다가올 미래가 너무 무서웠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슬퍼.’
이제 알았다.
이게 슬픔이었다.
그의 시야가 흐릿해지며 정신을 잃어갔다.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이사벨의 발밑에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세르몬은 정신을 잃었다.
호수 바닥에서 김벌꿀이 튀어나왔다.
[용사님, 등장.]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