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5화
김벌꿀은 의아했다.
스스로 마법진을 열고 공간을 도약했다는 자각이 없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잘은 모르겠지만 이사벨에게 위험이 닥친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냅다 말했다.
[용사님, 등장.]그러나 용사님치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김벌꿀은 늘 자신감이 넘쳤지만 그 자신감과는 별개로 수영 실력은 젬병이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일단 이사벨의 머리카락을 물었다.
수영은 못해도 물 밖으로 이사벨을 물고 열심히 헤엄쳐봤다.
팔다리를 허우적댔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숨 막힘.]숨이 막혀왔다.머리가 어질어질했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이사벨이 죽는 건 큰 문제였다.
[약속했다!]오래전, 이사벨과 약속했었다.
이사벨보다 더 늦게 죽기로.
그런데 이 꼴이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제발, 내 말을 좀 들어.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여러 번 대화를 나누었던 요상한 녀석이 틀림없었다.
-누구냐!
-너 수영 못하잖아. 그렇게는 이사벨 못 구해.
-벌꿀 오소리에게 불가능한 건 없어.
-고집부리지 마. 이사벨을 잃고 싶어?
그 말에 김벌꿀은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는 누구보다 용맹했고,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으나, 이사벨의 부재는 무서웠다.
-어떻게 하면 돼?
-나한테 맡겨.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네 자아를 떠올려, 너는 이곳에서 숨 쉴 수 있어. 용이니까. 떠올려. 너는 용이야. 이름은 아룬.
-아룬?
몇 번인가 듣기는 했지만 듣자마자 까먹은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억하려 애썼다.
‘아룬.’
계속해서 그 이름을 되뇌었다.
‘아룬?’
김벌꿀의 몸에서 황금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룬. 그래. 내 이름은 아룬이야.’
그걸 떠올리자 호흡이 편해졌다.
김벌꿀의 모습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이사벨.”
물 속이지만 말을 할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용언을 사용했다.
“숨.”
그러자 마력이 그의 말에 반응했다.
얇은 공기층이 밀려와 이사벨의 몸을 덮었다.
황급히 이사벨을 안아 들고서 수면 위로 헤엄쳤다.
그 와중에 걸리적거리는 미역 같은 것(세르몬)도 함께 주워 왔다.
그의 몸 주변에 마력이 몰려들었고, 그가 헤엄치는 앞길에 마법진 하나를 생성했다.
그 마법진을 통과하자 이사벨을 안은 그의 몸은 어느새 육지에 닿아 있었다.
“이사벨, 제발.”
아룬은 걸리적거리는 미역을 대충 던져두고서 이사벨을 바닥에 눕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백사장의 미려함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숨을 안 쉬어.’
안 된다.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
아룬은 이사벨의 입을 벌리고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후우- 하고 날숨을 불어넣었다.
‘제발. 늦지 않았어야 해.’
생명을 머금은 마력이 이사벨의 몸속에 깃들기 시작했다.
* * *
비아톤은 배 위에서 방심을 자책했다.
‘젠장.’
사실 비아톤을 방심하게 만드는 요소는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는 이사벨의 귀여움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귀여운 이사벨과 함께 하는 추억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이사벨이 행복하게 웃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 세 개가 같이 몰려와서 저도 모르게 방심해 버렸다.
‘해독해야 한다.’
그는 필사적으로 마력을 움직여 몸을 옥죄는 마비 독을 풀어내려 애썼다.
세르몬은 ‘6시간’이라 단언했다.
그러나 비아톤은 겨우 30분이 채 되지 않아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몸을 움직일 수 있어.’
필사적으로 해독에 집중했다.
해독이 거의 다 이루어졌을 때, 기이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람의 체향이 묻어 있는 바람이었다.
바람에는 불길한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비아톤은 이 기운에 대해 알고 있었다.
‘블라독 공작이다.’
전직 검귀였던 비아톤은 블라독 공작의 라이벌이었다.
그 인연은 아카데미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블라독 공작은 비아톤에게 밀려 만년 2인자였다.
(순수 검술만큼은 론이 압도적 1인자였으나 총합 점수는 비아톤이 늘 1위였다.)
‘그런데 평소랑 다른데.’
묘하게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것은 외눈박이 거인을 상대할 때, 랜서의 시신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냄새와 비슷했다.
실제 냄새는 아니고 마력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파장에서 나는, 마력을 익힌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묘한 특징이었다.
‘빌헬름의 냄새!’
만약 블라독 공작이 빌헬름과 결탁하였다면?
또다시 이사벨을 노린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빌헬름은 계속해서 이사벨을 노렸으니까.
‘1분. 1분이면 몸을 움직일 수 있어.’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꼴이 말이 아니군, 비아톤. 독에 취해 쓰러져 있는 꼴이라니.”
블라독 공작의 붉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제국 2인자의 목숨을 거둬가면 더욱 좋겠지.”
“…….”
어느새 블라독 공작이 비아톤 앞에 서서 비아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인님께서도 무척 좋아하실 것이다. 너를 매우 거슬려 하시거든.”
“…….”
블라독 공작이 비아톤의 뺨 위에 발을 얹었다.
처음으로 비아톤을 제 발밑에 놓았다.
제발, 움직여라. 몸아.
비아톤은 호흡에 집중했다.
“아카데미에서 함께 배웠던 게 기억나나?”
블라독 공작이 비아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날이 시퍼런 단도가 들려 있었다.
“사람에게 가장 큰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눈앞에서 천천히 찌르는 거라고. 원수를 제거할 때에는 이렇게 하라고 배웠었지.”
“…….”
“나는 배움을 실천하려 한다.”
그가 단도를 들어 올렸다.
“잘 가라.”
그가 비아톤의 죽음을 확신했을 때.
그때가 블라독 공작의 가장 큰 빈틈이었고, 비아톤의 기회였다.
밑에서 무수히 많은 단도가 솟구쳐 올랐다.
마검사, 비아톤의 무구 소환 마법이었다.
“어, 어떻게……!”
비아톤은, 블라독 공작이 파악하고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이건 예상치를 지나치게 초과했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1인자를 극복하지 못했다.
풍덩!
기울어지던 그의 몸이 유리 호수에 빠져버렸고, 비아톤은 그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이사벨이었으니까.
* * *
비아톤은 황급히 노를 저었다.
‘흔적이 옅어지고 있어.’
어디지.
그는 절박한 마음으로 노를 저었다.
아까 이해할 수 없는 마력 파동이 있었다.
그것은 공간을 도약하는 마력의 파동이 틀림없었다.
그 파동이 이사벨을 어딘가로 옮겨 놓았다.
그것을 역추적하여 뭍 근처에 이르렀을 때, 비아톤은 물로 뛰어들었다.
뭍을 향해 헤엄쳤다.
“아……!”
그의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비아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황녀님.”
이사벨이 보였다.
이사벨이 숨을 쉬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비아톤은 더 이상 걷지 못하고, 이사벨에게로 기어갔다.
“다행입니다.”
비아톤이 이사벨을 꽉 끌어안았다.
기절했을 뿐, 호흡은 완전히 정상이었다.
마력도 안정화되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사벨의 몸에는 물이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비아톤의 머리카락 끝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린 물방울이 이사벨의 볼에 톡톡 떨어졌다.
“으음.”
이사벨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밝은 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아톤이 울고 있는 게 보였다.
“선생님?”
“…….”
이사벨이 정신을 차렸으나 비아톤은 이사벨을 놓아주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꽉 안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 이사벨을 놓아버리면, 영영 놓쳐버릴 것 같았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습니다.”
“…….”
비아톤의 마력을 통해 그 진심이 이사벨에게 전달되었다.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이사벨의 정신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마음이 먹먹해졌고, 약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졌다.
비아톤이 느끼는 감정이 지나치게 깊고 거대해서, 안 그래도 약해진 이사벨의 정신을 뒤흔든 것이었다.
‘어지러워.’
이사벨은 약간 몽롱해졌다.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짐과 동시에, 론과 세르나에게 했던 질문을 또 했다.
“그러면요, 제가요, 있잖아요, 살고 싶다고 말해도 돼요?”
“…….”
“거짓말했다고 미워하면 어떡해?”
비아톤의 몸이 움찔 떨렸다.
이사벨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사벨의 상태를 깨달은 그는 이사벨을 조심스레 바닥에 눕혀주었다.
이사벨의 눈에 초점이 없는 것 발견했다.
“누군가 황녀님을 미워했나요?”
“네. 많이 미워했어요. 거짓말쟁이라고 손가락질했어요.”
비아톤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가 그랬나요?”
“많은 사람이 다 그랬어요. 저는 거짓말쟁이래요.”
비아톤은 당장에라도 이사벨을 다시 껴안고서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참았다.
자신에게서 뿜어지는 감정의 폭포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니까.
“아니에요. 황녀님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에요.”
“…….”
“혹여,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그래도 황녀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가득 있어요.”
이사벨의 눈에는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그렇지만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사랑해 주고 싶은 사람이 되게 많아요.”
“…….”
“비아톤 경도 사랑해요. 사실은 오래오래 사랑해 주고 싶어요.”
비아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이사벨의 뺨에 손을 대지 못하고 주변의 모래만 움켜쥐었다.
“제발 살고 싶다고 말해요. 살려달라고 해요. 그게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거짓말이 이토록 간절한 것은 처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