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6)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6화
세르몬에 의하여 호수에 내던져졌을 때.
숨이 가빠오고 어지러워서, ‘아, 나의 스물한 번째가 벌써 오고야 말았구나’ 하고 마지막을 느꼈을 때.
이제는 정말로 끝이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때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정말로 살고 싶었다.
나는 살고 싶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비록 거짓된 희망 한 조각일지라도.
손을 내밀어 잡으면 산산이 부서지는 가짜 꿈일지라도.
그 거짓과 가짜를 꿈꾸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비아톤 경의 애처로운 눈을 보며 그것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비아톤 경에게 사랑한다 말했던 것은 그저 어린아이의 말장난이 아니었다.
내게 있어서 비아톤 경은 정말 너무너무 소중했고, 아주 많은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또 내게 과분하리만치 많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래서 말 못 해.’
지금 내 마음 조금 더 편하자고.
지금 조금 더 투정부려 보자고.
비아톤 경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지고 있는 이 무거운 짐을 덜어도 가벼워지지 않으니까.
엄마와 아빠에게 말한 뒤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다는 부끄러움은 사실 핑계였고, 엄마 아빠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어.’
엄마는 엄마니까.
아빠는 아빠니까.
나를 낳아주신 분들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부담스러운 어리광이나 투정을 부려도, 조금은 이해받을 구석이 있었다.
그렇지만 비아톤 경은 아니었다.
‘선을 지켜야 해.’
비아톤 경이 다시금 나를 불렀다.
“황녀님?”
목소리가 메말라 있었다.
봄비 한 방울을 갈망하는 목소리였다.
“마음은 너무 고마워요.”
나는 웃어 보였다.
하나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정말 행복해요.”
“…….”
“오늘은 내 남은 인생 중, 첫 번째 날이니까요.”
물인지 눈물인지. 비아톤 경의 턱을 타고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첫날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비아톤 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늘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비아톤 경인데, 말을 안 하고 있으니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화났어요?”
“예, 화났습니다.”
화 안 났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비아톤 경은 늘 웃어주는 사람이었는데, 살짝 놀랐다.
“그렇지만 저는 ‘황녀님에게 화를 낼 수 없는 병’에 걸리고 말아서요.”
“그, 그런 병이 있어요?”
“예. 그리고 ‘황녀님과 관련하여 벌어진 모든 잘못된 일은 내 탓으로 치부하는 병’에도 걸렸거든요.”
“벼, 병명들이 되게 기네요.”
“그래서 저는 화를 내지 않기로 했어요.”
비아톤 경이 다시 웃었다.
“그러니까 약속해 주세요. 언젠가 저와 황녀님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다면, 황녀님이 더 솔직해 주면 좋겠어요. 제가 노력할게요.”
비아톤 경은 내 손을 살짝 잡아서 비아톤 경의 뺨 위에 가져다 대었다.
내 손의 온기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정말로 살아 있구나.
그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괜스레 민망해져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정신이 또렷해지며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근데 있잖아요.”
뭔가가 이상했다.
‘세르몬이 쓰러져 있고…….’
세르몬이 호수로 뛰어드는 것까지는 봤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없었다.
‘벌꿀이가 왜?’
내 발밑에 벌꿀이가 쓰러져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김벌꿀!”
벌꿀이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 * *
비아톤 경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나에게 뭔가를 감추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모든 기적에는 대가가 따라요. 제가 생각하기에 김벌꿀은 기적을 일으킨 것 같아요.”
나는 소리도 쳐보고 벌꿀이를 흔들어도 보았다.
“김벌꿀!”
아무리 불러봐도 내 목소리는 벌꿀이에게 닿지 않았다.
외눈박이 거인과 눈을 마주쳤을 때보다도 훨씬 거대한 공포감이 내 몸을 짓눌렀다.
“아니야. 이거 아니지?”
벌꿀이는 눈을 뜨지 않았다.
심장박동을 확인해 봤지만 심장도 멈춰 있었다.
“이거 아니잖아!”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비아톤 경이 날 끌어안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유리 호수에 다시 몸을 내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홉 살의 몸은 무척이나 충동적이었고, 지금의 내 정신은 육체의 충동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으니까.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나는 영혼을 잃어버린 인형처럼, 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아 멍하니- 벌꿀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일어날 거야. 아니, 일어나야 해.’
이렇게 지켜보고 있으면 언제든지 일어나서 ‘김벌꿀, 등장!’ 하고 우쭐댈 것만 같았다.
비아톤 경은 그저 내 옆을 지켜주었다.
야영을 위한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지펴주었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따뜻한 모포를 내 몸에 덮어주었다.
그 외에는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기다려주었다.
그때쯤, 세르몬이 일어났다.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일어나든지 말든지.’
물론 비아톤 경에게 설명은 들었다.
아마도 블라독 공작의 혈술이 세르몬에게 작용했다는 것 같았다.
아까의 세르몬은 조종당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고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용서가 되질 않았다.
언젠가 용서한다 할지라도,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
세르몬은 겁먹은 강아지처럼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내게 은근슬쩍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배고…… 픈데.”
목소리가 굉장히 작았다.
세르몬이 내 옆에 쪼그리고 앉곤 내 팔꿈치 부근을 손으로 살짝 잡았다.
탁!
나는 그 손을 신경질적으로 치워냈다.
“제발 저리 가, 날 좀 내버려 둬요.”
세르몬은 화들짝 놀라서 자신의 무릎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발발 떨었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이상했다.
혼잣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사벨이 내게 화가 난 거야. 이사벨이 나한테 화가 난 거야. 이사벨이 화가 났어.”
“맞아요. 화났어요.”
“이사벨이 화내면 무서워. 이사벨 무서워. 무서운 거 싫어.”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로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발음도 약간 이상했다.
‘왜 저러는 거야 도대체?’
장난칠 기분이 아닌 나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세르몬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내 옆에 무릎을 꿇고서 말했다.
“나 미워하지 마.”
애처로운 목소리였다.
나는 실눈을 뜨고서 세르몬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어?’
세르몬은 어린애처럼 서럽게 울고 있었다.
“반성할게. 내가 나빴어. 내가 잘못했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세르몬은 엉엉 울면서 무릎을 꿇고 나를 향해 싹싹 빌고 있었다.
“……제발요. 나 장난칠 기분 아니야.”
“잘못했어, 용서해줘, 잘못했어, 용서해줘, 미워하지 마, 제발.”
너무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세르몬이 아니었다.
“사죄할게.”
“장난치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은 사과받고 싶은 기분도 아니에요.”
싹싹 빌던 세르몬의 눈에 잠깐이지만 살기가 깃들었다.
“너 같은 애는 살 가치도 없어.”
어느새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단도가 들려 있었다.
‘너’라 말했지만 그건 나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세르몬이 세르몬 자신을 일컬어 ‘너’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목을 향해 단도를 휘둘렀다.
순간, 어느새 다가왔는지 비아톤 경이 갑자기 나타나 세르몬의 손목을 탁! 쳐냈다.
휙-!
무엇인가가 핑글핑글 돌아서 날아가 옆 나무에 박혔다.
“무슨 짓입니까, 황자님?”
“왜 방해하지?”
“황자가 자살하는 걸 방조하는 수석보좌관도 있습니까?”
세르몬은 나를 바라볼 때와는 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목소리도 달라졌다.
“넌 누구냐?”
“제국 수석보좌관 비아톤입니다.”
“그게 무엇이지?”
“황제를 보위하는 첫 번째 보좌관입니다.”
“황제가 무엇이지?”
“……당신의 아버지십니다.”
세르몬은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아버지가 뭔데?”
“…….”
“내 앞에 알짱거리지 마. 죽이고 싶으니까. 꺼져.”
내 쪽을 바라보며 다시 착한 아이처럼 말했다.
“안 죽였어.”
목소리가 또 바뀌었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아이 같았다.
“이사벨이 죽이라고 할 때만 죽일게.”
* * *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김벌꿀은 기적을 일으켰고 그 대가로 생명을 잃었다.
세르몬은 모든 기억을 잃고 이상해져 버렸다.
지금 세르몬의 세상에는 이사벨이 전부였다.
이사벨에게는 순종적인 백치였으나, 타인에게는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맹견 같았다.
이중인격자처럼 변해버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사벨, 비아톤, 세르몬은 유리 호수와 맞닿은 숲의 모래사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사벨이 슬픔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꼬박 이틀이 지났을 때, 이사벨은 결국 몸을 일으켜 비아톤이 끓여준 수프를 입에 대었다.
그 모습에 비아톤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벨은 이틀간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 정신적으로 매우 예민하고 힘들어진 상태의 이사벨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선생님.”
이렇게 온전히 슬픔에 빠져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비아톤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요?”
“제가 노력한다고 했잖아요.”
“…….”
“황녀님은 그냥 숨만 쉬고 있으면 돼요. 거리는 선생님인 제가 좁혀갈게요. 언젠가 아주 먼 훗날, 은혜는 솔직해지는 것으로 갚아주세요.”
그리고 3일이 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