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7화
그날은 유독 날씨가 맑았다.
나는 김벌꿀을 조심스레 안았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확인해 봤지만 여전히 심장은 뛰고 있지 않았다.
“햇볕이 잘 드는 좋은 곳에 묻어주고 싶어요. 선생님, 저 좀 도와줄래요?”
“그럼요.”
유리 호수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초순수라는 발견도 내게는 의미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비아톤 경이 내민 보드라운 헝겊으로 벌꿀이의 몸을 덮고서 꼭 안아 들었다.
“황궁으로 돌아가요.”
“알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되었고 비아톤 선생님이 알아서 다 해주었다.
마차에 오르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비아톤 선생님이 얼른 내 손을 잡아주었다.
“읏차, 조심하세요.”
“고마워요.”
몸에 힘이 없었다.
세르몬은 나와 대각선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내 눈치를 살폈다.
조금 불쌍한 모양새였지만 아직은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다.
다시 며칠이 흘렀다.
나는 황궁으로 돌아와 벌꿀이와 함께 화관을 만들던 꽃밭을 찾았다.
“여기에 묻어주고 싶어요.”
다행히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았다.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날이었다.
“네. 구덩이를 좀 파드릴까요?”
“아니요. 제가 직접 할게요.”
나는 무릎을 꿇고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여기서 흙놀이도 하고, 벌꿀이랑 숨바꼭질도 했었다.
저번에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또 났다.
“벌꿀이는 몸집도 작고 몸놀림이 잽싸서 숨바꼭질을 잘했어요.”
“…….”
땅을 파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바깥은 이렇게나 따뜻한데, 구덩이 안은 조금 차가운 느낌이었다.
“선생님. 나 눈물 좀 닦아줘요.”
“네.”
비아톤 경이 깨끗한 손수건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어서 눈물을 참았다.
오늘은 벌꿀이를 보내주는 마지막 날이니까, 벌꿀이가 하늘로 떠날 때, 좋은 모습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러니까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일부러 웃으며 말했다.
“벌꿀아, 고마워.”
정말 열심히 웃으려고 했는데 결국 또 눈물이 흘렀다.
여주인공의 눈물이 몸에 닿아, 남주인공이 깨어나는 동화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벌꿀이를 꼭 안고서 작게 속삭여주었다.
“너랑 함께했던 모든 날이 내게는 선물이었어.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 절대로 잊지 못할 거야.”
어쩌면 대답해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대답은 없었다.
벌꿀이는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김벌꿀은 용감했고, 용맹했고, 멋있었고, 똑똑했고, 낭만이 있는 벌꿀오소리였어. 내게는 너무너무 소중한 친구였고 가족이었어. 아무것도 아닌 나를 좋아해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나도 벌꿀이 너를 너무너무 좋아했어.”
오늘따라 벌꿀이가 너무 가벼웠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나는 벌꿀이를 땅에 눕히고, 벌꿀이의 몸에 흙을 덮기 시작했다.
흙에 가려져서 벌꿀이의 몸이 차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 스무 번째 생일 선물로 나타나 줄래?”
원래는 스물한 번이었는데, 이제는 스무 번째가 되었다.
시한부라는 것이 너무 두려웠었는데, 어쩌면 시한부여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더 빨리 벌꿀이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나도 조금 더 멋진 친구가 되어 있을게. 그날 다시 만나자. 약속이야. 내 스무 번째 생일. 헷갈리면 안 돼. 스무 번째야, 스무 번째.”
흙을 한 번만 더 덮으면 되는데 덮을 수 없었다.
손이 차마 움직이지 않았다.
“나 진짜 너무너무 행복했어. 너랑 있어서 정말 좋았어. 고마워. 고맙고, 정말 고맙고, 고맙고 사랑해.”
나는 차마 마지막 흙을 덮지 못했고 비아톤 경이 대신 흙을 덮어주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울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울었느냐?”
나를 안고 있는 사람은 비아톤 경이 아니었다.
* * *
론은 검술 수련이 아닌 다른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검술 외의 다른 것들을 연마하는 것은 시간 낭비였으니까.
그랬던 론이 최근 학자들을 초빙하여 공부를 했다.
세간에서는 그 공부가 어떤 공부인지 무척 궁금해하며, 최근 빌로티안 제국의 행보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좋은 아빠가 되는 공부’였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었다.
특히 이사벨에게 더욱 그랬다.
안 그래도 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해주었다.
‘차별은 좋지 않습니다, 폐하.’
그러나 마음이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열 손가락 중에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론은 아픈 손가락이 단 하나였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랬다.
그리고 그 아픈 손가락이 품 안에 안겨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최근에는 많이 우는구나.’
예전에는 담담한 것이 싫었다.
늘 기계처럼 웃고 있는 것이 가슴 아팠다.
그렇지만 이렇게 울고 있는 건 더 속이 상했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론은 이사벨을 품에 안은 채 그저 기다려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맘껏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그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아빠?”
“그래.”
그제야 론이 자신을 안아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사벨은 다시 한번 론을 와락 끌어안았다.
론은 단단한 품으로 이사벨을 다독였다.
많은 것을 묻지 않았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얘기는 모두 들었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 네가 얼마나 아픈지 안다. 맘껏 아파하고, 양껏 슬퍼하여라.”
블라독 공작가와 관련된 모든 것은 씨를 말려 버렸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말했다.
“벌꿀이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겠니?”
벌꿀이가 어땠는지.
어떤 좋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지.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며 이사벨이 자신의 마음을 모두 터놓을 수 있을 만큼 계속 들어주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떴다.
론이 이사벨을 안아 들었다.
“방에 데려다주마.”
“제 얘기 많이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같은 말도 여러 번 반복한 것 같은데.”
“고맙기는.”
론은 이사벨을 침대에 눕혀 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방 온도를 직접 확인하고 창문도 닫아주었다.
그리고 전에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일 아침은 엄마랑 아빠랑 밥을 같이 먹겠니?”
이사벨은 이불 속에 누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래. 8시에 깨워주마.”
“7시 아니에요?”
“학자들이 8시를 추천하더군.”
정확히 말하면 8시를 추천하지는 않았다.
그냥 미인은 잠이 많다는 어떤 지방의 속담 같은 것을 가르쳐 줬을 뿐이다.
그 말을 듣고 아침 식사를 한 시간 뒤로 미뤘다.
론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이사벨의 머리맡에 두고 앉았다.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지금의 너를 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느냐? 재워주마.”
“정말요?”
“싫으면 가고.”
“안 싫어요!”
론은 이사벨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마치 심장박동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르나도 급히 아레나 궁을 찾았다.
“쉿. 잠들었소.”
세르나는 제1마탑을 방문한 상태에서, 이사벨 얘기를 들었다.
곧바로 귀국하니 이 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었다.
이사벨은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슬며시 눈을 떴다.
‘아빠?’
론이 눈을 부릅뜨고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양새로 보아하니, 한숨도 안 자고 저렇게 눈을 뜨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
세르나가 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론은 세르나가 불편할까 봐 한 손으로 받침을 만들어 세르나의 머리를 받쳐주고 있었다.
덕분에 론은 지난밤 내내 아주 바빴다.
눈으로는 이사벨을 주시해야 했고, 또 한 손으로는 세르나의 머리를 받쳐주어야 했으니까.
그 모습을 본 이사벨의 마음 한구석이 조금 따뜻해졌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된 느낌이 참 좋았다.
“안 피곤해요?”
“전혀.”
세르나도 눈을 떴다.
세르나는 일어나자마자 이사벨을 안아주었다.
“우리 딸, 많이 힘들지?”
“네에.”
이사벨은 솔직하게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는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엄청 많이 힘들어요.”
“그래. 그럴 거야. 엄청 힘들 거야.”
세르나가 이사벨을 토닥여주었다.
이사벨이 다시 말했다.
“그렇지만 이겨낼 수 있어요. 벌꿀이도 그걸 바랄 거예요.”
“맞아. 벌꿀이도 그걸 바랄 거야. 그러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렴. 굳세게 일어나서 나중에 벌꿀이랑 신나게 놀아야지.”
“네에. 맞아요.”
“그럼 우리, 씩씩하게 아침 식사를 하러 가볼까?”
“알았어요.”
이사벨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사벨의 오른손은 론이 잡아주었고, 왼손은 세르나가 잡아주었다.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의 에스코트를 동시에 받은 사람은 제가 처음일 거예요.”
어찌나 황송한 일인지 궁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용인이 질겁하며 벽에 바짝 붙었다.
허리를 숙이고 이쪽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새삼스레 황제와 황후가 어떤 사람들인지 체감되었다.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를 끝낸 뒤, 이사벨은 론에게 검술 지도를 부탁했다.
론은 흔쾌히 그 부탁을 받아들였고 이사벨은 열심히 목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렸다.
이사벨은 이사벨 나름대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1년이 흘러 김벌꿀이 떠난 날이 되돌아왔다.
열 살이 된 이사벨은 시녀인 유리만 대동하고서, 김벌꿀을 묻은 꽃밭을 다시 찾았다.
“벌꿀아. 나왔어. 오랜만이지?”
그런데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무덤이 어디 갔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