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4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48화
봉긋 솟아 있던 흙무더기가 완전히 없어져 있었다.
“황녀님?”
“유리, 땅땅이를 불러줘.”
유리는 물의 정령 방울이 외에도 흙의 정령 땅땅이와도 계약한 상태다.
두더지 형상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를 조심스레 파내달라고 해줘.”
“알겠어요.”
땅땅이가 주변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확실해졌다.
‘벌꿀이가 없어졌어?’
누군가 시신을 훔쳐갔나?
왜?
그럴 이유가 없는데.
황궁에 그런 좀도둑이 있을 수도 없고.
“땅속에는 아무것도 묻혀 있지 않다고 해요.”
“……응.”
“황녀님, 괜찮아요?”
유리가 내 어깨를 살짝 감싸서 부축해 주었다.
“괜찮아. 조금 놀라서 그래.”
“궁으로 돌아가요. 율무차 타드릴게요.”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냐, 아빠한테 가자.”
나는 유리와 함께 아빠에게 향했다.
사실 엄마한테 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아빠보다 훨씬 바빴다.
실질적으로 제국의 수장으로서 하는 일들은 대부분 엄마에게 몰려 있었으니까.
아빠는 아마도 연무장에 있을 거다.
물론 빌로티안 황제의 역할 자체가 제국에 커다란 위기가 닥쳤을 때 제국의 가장 강한 검으로서의 역할이기는 하지만, 평시에는 엄마보다 여유로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김벌꿀이 사라졌다고?”
“네에.”
아빠는 검은 고래 기사들과 함께 수련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연무장에 도착하자 훈련을 중지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기사님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이기는 했는데, 이건 아빠와 저들 사이의 문제이니 그냥 모른 체하기로 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지난 1년간, 무척이나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아빠는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면 무척이나 뚝딱거리는 성향의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황궁에 도둑이 들 리는 없겠죠?”
“그렇지. 도둑이 있다고 해도 그런 걸 훔쳐갈 리는 더욱 없고. 혹여 짐승이 파헤쳤다면 흔적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아빠가 유리 쪽을 바라보았다.
유리는 또 찔끔 놀랐다.
저렇게 안 놀라도 되는데, 유리는 아빠와 있으면 항상 저렇게 얼어붙는다.
“흙의 정령을 다룬다지?”
“예, 폐하.”
“짐승의 흔적을 발견했느냐?”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라고 한 적 없다.”
내가 티 나지 않게 아빠의 허벅지를 톡 찔렀다.
나는 아빠가 생각보다 훨씬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같은 안녕을 말해도 아빠가 말하면 위협적이다.
그래서 적어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더 다정하게 말해달라고 부탁해 놓은 상태다.
“네가 죄송할 일이 아니다. 사과하지 않아도 좋다.”
“가, 감사합니다.”
둘의 대화는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웠지만 나는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둘이 친해지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정말 도둑이 든 건 아니겠죠?”
“만약 그런 거라면 비아톤을 문책해야겠지.”
“서, 선생님을요? 왜요?”
“왜? 비아톤이 혼나는 게 싫으냐?”
“비아톤 경은 경비를 담당하지 않잖아요.”
“상관없다. 그냥 문책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그래도 돼요?”
“비아톤은 그래도 된다.”
비아톤 경이랑 아빠랑 친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윽고 아빠가 다시 말했다.
“물론 황궁에 도둑이 들었던 적이 있다. 비밀 창고에 침입하여 금괴를 훔쳤다.”
“……아!”
기억났다.
예전에 벌꿀이가 황궁 비밀 창고에서 금을 훔쳐서 나한테 선물했었던 적이 있었다.
“어쩌면 또 도둑이 들어왔을지도 모르지.”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약간 이상한 말을 했다.
“난 도둑이 아주 싫다. 극도로 혐오한다. 여러 의미로. 눈앞에 띄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 *
약 1년 전.
휴화산이었던 ‘마그롯’ 산이 크게 폭발하면서 인근 마을의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었다.
500년간 잠자고 있던 화산이 폭발한 것이었다.
화산이 폭발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쩌고 흑염룡이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만해, 또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갈 참이야?”
“안 될 건 또 뭐야?”
“정신 차려. 아룬이 죽은 게 아니라 김벌꿀이 죽은 거야.”
본래 용이 어떤 생명체로 변하여 죽음을 맞이하면, 용의 본체도 죽는다.
어른 용들은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며칠 후면 깨어날 거야.”
아룡들은 보호받아야 하며, 성룡이 될 때까지 수많은 용의 보호를 받는다.
혹여 변한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영혼은 깨지지 않고 특별한 공간으로 돌아와 육체를 재구성한다.
아룡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카델리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블라독인지 뭔지를 쓸어버려야겠어.”
“안 그래도 이미 쓸려나갔어.”
라비나는 한숨을 내쉬고서 인간세계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제국 2대 공작가 중 하나였던 블라독 공작가가 반역을 시도했고, 결국 황제 론이 직접 블라독 공작가를 멸문시켰다는 것이다.
“블라독 공작가 주변의 숲들이 아직도 불타고 있어.”
“그 정도로는 성에 안 차. 블라독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버려야 돼.”
“그렇게 또 날뛰면? 고룡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카델리나는 헹! 하고 코웃음 쳤다.
“내가 싸움 더 잘하는데 어쩔티비.”
“어쩔티비는 또 뭐야?”
“뭔지는 몰라. 아룬이 가르쳐 줬어.”
“어감이 되게 별로네.”
“그럼 나 이제 날뛰러 간다? 다 쓸어버려도 되지? 내가 졸라 짱 세다는 걸 보여줘도 되지?”
“안 그래도 그러고 있으니까 제발. 론 하나를 제어하는 것도 힘들어.”
“론? 그 황제?”
“그래.”
“걔를 왜 언니가 제어하는데? 그냥 날뛰게 내버려 둬.”
“세계 멸망은 막아야지.”
“걔가 날뛰면 세계가 멸망해?”
“거의 네 본체 수준이야.”
카델리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거짓말하지 마. 인간이 그렇게 강할 리 없잖아.”
“인간은 매번 상식을 뛰어넘는 생명체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카델리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라비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로베나 대공과 비교하면 어떤데?”
“예전에는 그래도 어찌어찌 마법과 검을 사용하면 비벼볼 만했거든?”
“근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지나치게 강해져 있더라. 지상 최강의 흑염룡만큼.”
카델리나의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라비나는 카델리나를 다루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카델리나는 어느새 론에게 큰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걔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 * *
마그롯 산의 폭발이 멈추었다.
하늘 끝까지 화산재를 피워올리던 화산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고,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분화구에서 카델리나는 아들과 산책했다.
“몸은 좀 괜찮아?”
“괜찮아요. 머리가 좀 띵하고 아프긴 한데.”
“며칠 더 쉬면 괜찮아질 거야. 벌꿀오소리로서 아주 행복한 삶을 살았던 모양이야.”
“그런가 봐요.”
“기억은?”
“하나도 안 나요. 아주 소중한 것을 경험한 느낌이기는 한데…….”
거짓말이었다.
아룬은 지금 당장에라도 레어를 뛰쳐나가 빌로티안 제국의 황성으로 가고 싶었다.
혹시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릴까 봐.
그러기 전에 이사벨과 만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티 내지는 않았다.
어린 용들은 다른 생명체로서의 기억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니까.
며칠이 더 흘렀다.
“저 이번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볼까 봐요.”
“좋은 생각이야. 인간처럼 다채로운 생각과 경험을 하는 종족은 흔치 않으니까.”
“설정은 어떻게 하고 싶니?”
“북부 대공의 숨겨진 아들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지혜의 용께서 허락하실지 모르겠지만요.”
“아마 나쁜 생각이라 하겠지. 그렇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해.”
아룬과 카델리나는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의견 충돌이 되는 부분들도 있었다.
“굳이 왜 아룬의 이름을 쓰고 싶다는 거니? 보통은 바꾸는 게 일반적인데.”
“그야 엄마가 준 자랑스러운 이름이니까요.”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이름을 쓰는 건 탁월한 선택이구나.”
“세부적인 설정은 제가 생각해서 해도 되죠?”
카델리나는 약간 서운했다.
아들이 제 품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독립적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겠거니 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 언니한테는 내가 말해놓을게.”
“고맙습니다.”
아룬은 카델리나를 한 번 안아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카델리나는 흐흐- 웃으며 마음속의 모든 경계를 풀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래 보였다.
‘네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다 보인단다.’
벌꿀오소리로서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굳이 로베나 대공의 아들이 되겠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신분은 되어야 이사벨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겠지.’
아주 앙큼한 아들이었다.
‘어째 나 어릴 때랑 하는 짓이 똑같냐?’
티는 안 내려 노력하지만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여서 또 조금 서운했다.
이사벨에 미쳐 있는 것이 훤히 다 보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룬이 레어를 떠났다.
얼마 후, 로베나가 통신구를 사용하여 곧바로 연락을 취해왔다.
왜 나한테 숨겨진 아들이 있어야 하냐며 화를 냈지만 카델리나는 그런 사소한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투로 대답했다.
“내가 욕먹을 짓을 했다는 건 알겠어. 그렇지만 욕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물론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은 ‘세상’이었다.
어쩌고 흑염룡은 아직도 15세 카만과 같은 병을 앓고 있었다.
* * *
결국 카델리나에게 패배(?)한 로베나는 아룬과 함께 황성을 찾았다.
“숨겨진 아들입니다, 폐하. 늦게 소개해 드리는데, 어때요? 잘생겼죠?”
그런데 론의 반응이 평소와 많이 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