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5화
이사벨의 생일 당일.
그날도 황제와 황후는 황궁에 없었다.
황궁에 복귀한다는 소식도 없었다.
이사벨은 조금 서글펐지만 이내 담담히 웃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두 분은 바쁘신걸.”
루루카는 속이 무척 쓰렸다.
조금은 더 투정 부려도 될 텐데. 조금은 더 속상해해도 될 텐데.
루루카가 말했다.
“제가 축하해 드릴게요.”
“고마워. 그래도 나는 정말 축복받은 아이야.”
“그럼요! 오늘은 저랑 마지막 남은 생일을 즐기시고 내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거처를 옮기시면 될 것 같아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다. 그렇지? 나는 몸만 가면 돼?”
“네. 맞아요. 준비는 모두 끝내놓았답니다.”
“거기 가면 오라버니들도 만날 수 있겠다, 그렇지?”
다섯 살 생일 전까지는 별관이라 할 수 있는 레피언 궁에서 지낸다.
다섯 살 생일이 지나면 황가의 자제들이 기거하는 아레나 궁으로 옮기게 된다.
“오라버니들, 엄청 잘생겼던데.”
선택식 때를 잊을 수 없었다.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은혜롭던 그 모습들은 눈 호강을 넘어서 눈 영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재미있겠다. 넷째 오빠밖에 없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현재 아레나 궁에서 실질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4황자인 미하엘밖에 없었다.
다른 오빠들은 각자의 임무와 후계자 수업 때문에 궁을 비운 상태.
‘뭐, 넷째 오빠부터 친해지면 되겠지.’
보통 아레나 궁으로의 입성은 정치의 시작이라고도 말한다.
그렇지만 이사벨은 궁중 암투를 벌일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이제 겨우 16년 남았는데 굳이 그래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나는 그냥 햇살 여주처럼 살다 갈래.”
“햇살 여주요?”
“그런 게 있어.”
이사벨은 루루카와 함께 소소한 파티를 즐겼다.
밤 11시 55분.
이제 생일은 겨우 5분 남았다.
“이제 케이크에 초를 꽂을까요?”
“응, 알겠어.”
여전히 황제와 황후의 복귀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두 분은 너무 바쁘시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케이크, 맛있겠다.”
많이 늦은 시간이지만 그제야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이사벨은 손을 모으고 소리 내어 기도했다.
“다음에는 엄마랑 아빠랑 같이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루루카는 안쓰러운 얼굴로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현재 시각은 11시 59분.
이사벨이 손가락을 튕겼다.
화륵!
초에 불꽃이 일었다.
오색빛깔의 불꽃이 넘실거렸다.
여느 때처럼, 그녀의 생일은 이렇게 끝이 나는 것 같았다.
“이제 초를 부셔야 할 것 같아요.”
“아직 30초 남았는걸.”
아직 30초의 생일이 남았다.
이사벨은 조금 더 기다려 보았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술도 익히지 못하는 못난이 주제에, 소원이 거창하기 그지없구나.”
문이 열렸다.
론이었다.
“아바마마?”
이사벨의 몸이 그 자리에 굳었다.
론의 몸에 피가 가득했다.
“아바마마!”
이사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론의 몸에 가득한 피를 보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감히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발칙한 소원을 비는 것이냐?”
그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신다.”
세르나의 목소리였다.
이사벨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마마마. 아바마마의 몸에 피, 피가……!”
“그러니까, 좀 씻고 오라고 말했잖아요, 놀란다니까요.”
“이 정도로 놀란다면 빌로티안 황족으로서의 자격이 없지 않은가.”
세르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딸 생일 늦을 것 같아서, 너무 급하게 오느라 못 씻었다고 말하면 안 될까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자꾸 그런 식으로 구시면 나중에 이사벨에게 미움받을지도 몰라요.”
세르나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이사벨을 안아주었다.
“우리 딸, 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한단다. 엄마가 너무 늦어서 미안해.”
이사벨은 엉겁결에 세르나를 안았다.
이제, 그녀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이번 엄마는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엄마가 꼭 안아주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 지금의 이사벨에게는 기적이었다.
“후이이이이잉!”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다.
5살이 되면서 더 이상 어린애처럼 굴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틀린 생각이었다.
“미워요.”
아무리 5살이 되었어도. 조금 더 원래의 정신에 가까워졌어도. 그래도 엄마 앞에서는 어린애가 되고 만다.
“아이그, 우리 딸, 울 줄 아는 아이였네.”
그 말에 이사벨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씩씩하게 눈물을 닦았다.
몸은 어린애처럼 굴고 싶었지만 정신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를 가져본 적 없던 그녀는, 지나치게 칭얼거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밉지만 안 미워요.”
“발음이 많이 정확해졌구나.”
발음이 정확해지는 그 긴 시간 동안, 딸과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사벨이 세르나를 더 꼭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뭐가?”
“같이 있어줘서요.”
“…….”
“엄마가 안아줘서 너무너무 좋아요.”
이사벨은 세르나의 온기가 무척 좋았다.
세르나가 이사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슥- 슥-
전생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포근함이 밀려왔다.
그러자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5살에게 자정은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스르르-
이사벨은 세르나의 품에 안겨 잠에 빠져들었다.
론은 한 발자국 뒤에서 둘을 바라보았다.
* * *
아침이 밝아 왔다.
늘 그렇듯 새소리가 들려왔고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왔다.
오늘도 유모가 아침 일찍 창문을 열어 놓았으…… 응?
“아빠?”
너무 당황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아빠라고 부르고 말았다.
창가에 앉아 독서를 하고 있는 사람은 유모가 아니라 아빠였다.
언제 씻은 건지 굉장히 깔끔했다.
아침에도 굴욕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아빠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체통 없이 나를 무어라 부르는 것이냐?”
그런데 아빠의 입꼬리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책에서 봤다.
론은 기분이 좋으면 입꼬리가 움찔거린다.
나는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죄송해요, 아바마마.”
“하나 체통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겠지.”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 왜 턱선은 저렇게 날렵한 거냐고요.
아침의 싱그러운 분위기 속에서 독서하는 아빠는 어느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사석에서는 아빠라고 불러도 돼요?”
“그렇게까지나 간절히 원한다면 허락하지.”
또, 또 저 승리자의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5살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간절히 원한다고는 얘기 안 했어요, 아바마마.”
“왜 간절하지 않지?”
꿈틀거리던 입꼬리가 멈췄다.
“저는 체통과 품격을 중시하는 황녀니까요.”
“체통과 품격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 저도 벌써 다섯 살인걸요. 품격과 체통을 지켜야 할 나이가 되었답니다.”
아빠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다섯 살은 아직 애다. 어제도 그리 펑펑 울어놓고서는.”
왠지, 아빠는 조금 서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
‘응?’
아빠는 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읽는 척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아빠마마는 아침부터 구침(기침)하시어 고셔(고서)로써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고양행이(교양행위)를 통해 황제로서의 품격과 권이(권위)를 보여주고 계시눈군여.”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골라 쓰다 보니 혀가 좀 꼬일 뻔했지만 괜찮았다.
‘좋아. 완벽한 발음이었어.’
나는 완벽하게 발음해 냈다.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물론이다.”
어라, 왜 기분이 또 좋아지신 거 같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견문을 넓히는 것이다. 그러니 독서를 게을리하지 말고 정진하며 책을 늘 가까이하거라.”
“책을 늘 가까이하는 아빠를 가까이하는 건요?”
“……뭐?”
아빠의 몸이 움찔했다.
여태껏 책에만 시선을 두었던 아빠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빠의 눈에 담긴 것은 분명한 사랑이었다.
조금 슬픈 얘기인데, 나는 저러한 눈빛과 감정에 굉장히 예민했다.
전에는 받아본 적 없던 거라서 그런 것 같았다.
아빠의 입꼬리가 아까보다 더 격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아빠. 그거 아세요?”
“무엇을?”
“아빠가 옆에 있어 줘서 행복해요.”
“쓸데없는 소리.”
아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지난밤 내내 여기 계속 계셨어요?”
“몸이 몹시 피곤하여 여기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을 뿐이다.”
“피곤하셨다구요?”
제국 최강의 검술가가요?
몸속에 품은 마나가 우주와도 같다는 서술이 있던데요.
책 속에서는 이 주일 동안 잠을 자지도 않고 전쟁을 치렀다고 하던데요.
“피곤하시면 제 방에 계셔주시는 건가요?”
나는 아빠에게 핑계를 주기로 했다.
마치 내게 있어 알사탕 같은 거였다.
“그럼 아빠가 맨날맨날 피곤하면 좋겠어요.”
“…….”
“그러면 오늘처럼 날을 함께 보낼 수 있겠죠?”
“……심성이 고약한 불효녀로군.”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 욕심을 위해 만성피로를 기원하는 건 좀 못된 것 같았다.
“생일 만요.”
“…….”
“1년에 딱 하루만, 아빠가 피곤해해 주시면 안 돼요?”
“…….”
“열여섯 번 남았는걸요.”
“…….”
“열일곱부터는 귀찮게 안 할 거예요. 그래서 열일곱 다음부터는 힘이 잔뜩 난대요.”
아빠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기분이 조금 나빠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투정 부린 걸까?’
괜스레 불안해졌다.
“화나셨어요?”
아빠는 나를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조금 더 불안해졌다.
“혹시 열여섯 번이 너무 많은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