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5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51화 [S공금]
모두가 똑같이 움직이며 자리에 딱 멈춰 섰다.
우와. 무슨 기계인 줄.
절도가 넘쳐 흘렀다.
“좌로 정렬.”
그들은 왼쪽으로 딱 붙어 섰다.
그리고 한 명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마 저들 중 서열이 가장 높은 기사인 것 같았다.
“검은 고래 소속, 제1지도관 조헨입니다.”
“반가워요.”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먼저 지나가십시오, 황녀님. 에스코트하겠습니다.”
“불편은요.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우리가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인걸요.”
나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의전을 받으며 길을 걸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유리가 말했다.
“혹시 보셨어요?”
“봤냐구? 뭘?”
나는 찔끔 놀랐다.
유리는 내 오랜 친구고, 순식간에 내 기색을 알아차렸다.
“아, 보셨구나!”
“뭐, 뭘 말하는 거야?”
“보셨잖아요. 마지막 줄에 있던 견습 기사님이요. 최근 황궁에서 제일 유명한 견습 기사님이에요. 제 또래의 시녀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답니다.”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잘생김이 평균인 이곳에서도, 저 정도로 잘생기면 눈에 띄는구나 싶었다.
나는 아빠와 비아톤 경과 오빠들 때문에 눈이 비상식적으로 높아져 버린 상태다.
그런 내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데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소년이었다.
“근데 진짜 놀라운 사실이 뭔지 아세요?”
“뭔데?”
“북부 대공의 외동아들이래요! 그런 고귀한 신분이지만 밑바닥인 견습 기사부터 시작하신다나 봐요. 멋있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로베나 언니한테 아들이 있었어?’
소설 속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유리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저도 언젠가 아룬 공자님과 대화를 나눠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 모습이 풋풋한 짝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 같아서 귀여웠, 아니, 잠깐만.
“이름이 뭐라고?”
“아룬이요, 아룬. 어쩜, 이름도 예쁘죠? 어느 지방에서는 흑요석을 뜻한대요. 정말 흑요석 같은 눈동자를 지니셨는데 혹시 보셨나요?”
소설 속에 등장하지 않던 대공의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이 하필이면 아룬이라고 했다.
‘아룬이 왜 여기서 나와?’
소설 속 설정에 따르면 아룬은 빌로티안 황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제국을 세운다.
그게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커다란 줄거리였다.
‘소설 내용이 많이 바뀌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야 해.’
황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사람이니까.
‘차라리 잘됐어.’
아룬이라는 존재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게 제일이었겠지만 일단 등장했다면 차라리 주변에 두고 지켜보는 것이 나았다.
블라독 공작의 경우만 봐도 그랬다.
황실의 입김이 닿지 않는 외진 곳에 있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치면 정말 많이 얼얼하다.
게다가 최고의 기사단 중 하나인 검은 고래 소속이라면 더욱 믿을 수 있겠지.
‘작품이 본래 줄거리의 방향으로 가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더 조심해야 해.’
나는 그것을 늘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 흑막 설정인 카린 경 같은 경우는, 빌헬름의 마수에서는 벗어났지만 그에 준하는 수준의 시련이 몰려들었다.
결국에는 그녀의 전부나 다름없던 마력 회로가 폐쇄되는 고통까지 겪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마력 회로가 복구되는 현상’까지 겪었다.
그 현상에는 작품의 변수인 내가 관여했다.
마치 네가 내용을 바꾸었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누군가가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의 고통을 겪은 최종 흑막이 각성한다’라는 큰 맥락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황녀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
“황녀님?”
“어, 어? 불렀어?”
“네. 일곱 번 넘게 불렀어요.”
“미안해, 다른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
“혹시…… 황녀님도 혹시 사랑에 빠진 건가요?”
“사랑?”
“저는 황녀님과 경쟁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저는 황녀님이 우선이고, 황녀님이 제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황녀님이 아룬 공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저한테 꼭 말씀해 주세요. 저는 아룬 공자보다 황녀님이 백배 천배 더 좋아요.”
그게 아니고.
아룬 공자가 황실에 어떤 위험요소와 변수를 만들지 생각 중이었는데.
그 말을 하면 유리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 같아서 그냥 하지 않기로 했다.
“잘생기기는 했더라.”
“그렇죠?”
육체가 성장함에 따라 나도 사춘기에 접어든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잠깐 아룬 공자와 눈이 마주치기는 했다.
그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첫눈에 반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또래 이성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괜스레 부끄럽고 콩닥거렸다.
이것도 이 나이 때에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근데…….’
아룬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리기는 했다.
잘생겨서 그런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 *
특별 왕합 회의.
이번에는 참석 인원이 상당히 많았다.
황제와 황후.
7명의 왕과 그들의 후계자.
로스일드 공작과 외동딸 레이나.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대표 나르모르.
그리고 황녀 이사벨까지.
언제나 그랬듯, 회의는 황후 세르나가 주관했다.
“왕합 회의를 시작할게요.”
각 왕이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하여 말을 했고 의견을 교류했다.
개중에는 후계자 자랑도 빠지지 않았다.
“크흠, 자랑거리는 아니나 이 아이는 벌써…….”
“그것참 멋지군요. 하나 이 아이도…….”
“그렇다면 이 아이의 업적도 빠뜨릴 수는 없겠죠.”
“훌륭합니다. 그렇다면 이 얘기는 어떻습니까?”
그들은 왕임과 동시에 부모였다.
모두가 후계자들의 업적을 치하했으나 결국 따지고 보면 ‘내 자식이 이렇게 잘났소!’를 말하는 자리였다.
후계자들을 왕들과 황제에게 각인시킨다는 명분이 있기는 했지만, 어찌 보면 단순한 자랑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후, 많은 안건이 오갔으나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지나친 확장’이었다.
제7왕 중 한 명, 서그렌이 말했다.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이 새로운 화폐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모든 분께서 아시다시피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은 이미 전 세계의 유통망을 장악했습니다. 거대한 독점 시스템을 갖추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라면으로 수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사벨 코인의 영향력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솔직한 말로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거대화에 제동을 걸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사실 많은 이가 우려를 표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특히나 이사벨 코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더욱 그랬다.
“화폐는 곧 신용을 뜻합니다. 쓸모도 없는 종이 쪼가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재화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겠습니까? 그런 종이 쪼가리가 재화로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막강한 힘을 지닌 빌로티안 제국이 보증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저는 이사벨 코인이 화폐를 대체할 수단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며, 혹여 인정한다면 이는 제국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 뻔합니다.”
세르나가 대답했다.
“어찌 됐든 여러분은 제국의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며,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의미지요?”
“그렇습니다.”
“그러합니다.”
다만, 알페아의 성왕 라헬라와 지르델의 아저씨 왕-수석보좌관, 가브리쟁이 붙여준 별명이다-발키오만 아무 말도 안 했다.
론이 그걸 짚었다.
“라헬라와 발키오, 둘은 말이 없군.”
“그야 전, 딱히 반대할 생각이 없거든요.”
“그건 동감이네. 동갑 아니고 동감! 으허허헛!”
“그렇군.”
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달리 론이 훨씬 적극적이었다.
“그렇다면 나르모르, 네 생각은 어떠한가?”
나르모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존경하는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 그리고 국왕 전하들…….”
약간의 인사치레 이후, 그가 말을 이었다.
“제국의 안녕을 위협할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서그렌 왕이 말했다.
“모든 거대 세력의 시작은 그러하다. 종국에는 기존의 질서와 평화를 위협해 왔지.”
“기존의 질서와 평화를 위협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실질적인 주인은 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뭐?”
서그렌 왕이 눈을 크게 뜬 채 물었다.
“그렇다면 주인은 황실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그대는 나와 말장난을 하겠다는 것인가?”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실질적 주인은 이사벨 황녀님이십니다.”
이사벨은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물론 나르모르 주식에 투자한 건 맞다.
이러려고 나르모르를 데려왔다.
그렇지만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주인이라니?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내가 죽고 난 다음, 황실이 로스일드에 밀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별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르모르에게 투자했었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냥 그게 다였다.
그런데 나르모르가 미리 준비한 서류 몇 장을 꺼내 들었다.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주인이 이사벨 황녀님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입니다. 저는 일선에 뛰는 실무자일 뿐이죠. 이 모든 것은 황녀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니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영향력 강화는 곧 황녀님의 영향력 강화이고, 그것은 황실의 힘이 될 것입니다.”
“…….”
500년간 부와 명성을 쌓아온 로스일드 공작가를 단숨에 위협하는 신흥 세력, 나르모르 코퍼레이션.
그 세력의 주인이 이사벨 황녀라는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각 후계자가 이룬 업적들은, 이사벨의 업적 앞에 모두 겸손하고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로스일드 공작가의 외동딸, 레이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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