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5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54화
‘약간 경계하는 모양새잖아?’
카린은 저 노인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좋은 관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 이런 곳에 그런 행색으로 있습니까?”
카린은 나를 보호하려는 듯 은근슬쩍 내 앞으로 왔다.
약간 긴장한 것 같기도 했다.
저 노인이 도대체 누구길래?
“정말 카린이 맞군. 모습을 보아하니 마력을 회복했는가?”
“……예.”
그 말에 노인이 눈을 크게 뜨며 반쯤 기어서 가까이 다가왔다.
순간, 카린이 어떤 마법을 사용해서 마력장을 펼쳤다.
퍽!
노인은 그 마력장에 부딪쳐 뒤로 나자빠졌다.
“어이쿠!”
영창도 없이 이렇게 수준 높은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걸 보면 좀 부럽기도 했다.
나는 마력량은 엄청나게 많은데 이렇게 정교한 마법은 못 쓴다.
내가 쓰면 아마 이따만 하고 투박한 결계가 생길 거다.
“접근하라 허락한 적 없습니다.”
“보다시피 나도 마력을 잃었네.”
노인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제발, 나를 좀 가엽게 여겨주게.”
“…….”
“나는 지금 아무런 힘도 없는 늙은이니 얘기를 좀 하지.”
“무슨 일인지는 들어보겠습니다만, 황녀님에게 접근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알겠네.”
블라독 공작령에서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좀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타고난 관종인 나는 그게 그렇게까지 싫지는 않아서 아주 약간은 즐기는 중이다.
“황녀님, 저자와 잠시 얘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저 사람이 누군데요?”
“저 사람은…… 넬튼입니다.”
“넬튼이요?”
정말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이내 한 사람이 떠올랐다.
저 노인과 매치하기가 어려운 이름이었다.
“예? 넬튼이요?”
설마하니, 그 넬튼?
“마법 연방 제1창성 마법사 넬튼 경이요?”
* * *
넬튼은 위대한 마법사였다.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압도적인 천재였던 베크사에 가려진 인물이기도 했다.
베크사의 은퇴 이후, 미로텔 마법 연방을 앞장서서 이끌던 제1창성 마법사로 활약했다.
넬튼은 현 미로텔 마법 연방에 관한 자세한 얘기를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카린에게는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모든 창성 마법사가 빌헬름의 수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왜 모두 빌헬름의 수하가 되거나 조종당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확실한 건, 미로텔 마법 연방 전체가 빌헬름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이야. 그걸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린 뒤였네.”
“…….”
“마법 연방은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
“사람을 조종하는 마법이라니. 이건 숫제 흑마법이 아닌가.”
마법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자유의지를 박탈하여 제멋대로 부리는 것은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흑마법이며, 마법사들이 경계하고 지양해야 할 것이었다.
“뒤늦게 깨닫고 대처하려 해봤으나 소용없었네. 보다시피 이렇게 되었지. 겨우 도망쳐서 이런 신세가 되었네.”
“…….”
“평생 마법만 익힌 내가 마력을 잃었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는 카린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내게도 마력 회로를 회복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겠나? 알려만 준다면 빌로티안 황실을 적극적으로 돕겠네.”
“저 혼자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비아톤 경과 상의를 좀 해봐야 합니다.”
이내, 연락을 받은 비아톤이 도착했다.
비아톤은 늘 그렇듯 따뜻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황녀님, 황제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고 싶은 모양이에요.”
자연스레 이사벨을 황궁에 복귀시켰다.
카린과 이사벨이 멀어지자, 비아톤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마력 회로가 없는 몸으로 잘도 여기까지 도망쳤구나.”
비아톤은 마력 고리를 만들어 넬튼의 몸을 감쌌다.
그것은 마치 포승줄처럼 넬튼을 단단히 옥죄었다.
비아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고서 넬튼의 멱살을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빌헬름의 냄새가 나는 놈들이 있더라.”
여러 번 경험하니까 느껴진다.
마력 속에 숨겨진 빌헬름 특유의 냄새가 있다.
“도대체 황녀님에게 무엇이 숨겨져 있길래 네놈들이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무, 무슨 말이냐, 비아톤?”
비아톤이 씨익 웃었다.
“창성 마법사들이, 마력을 잃은 그대를 놓쳤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사벨 황녀님이 자주 찾는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아주 불쌍하고 가여운 모습으로? 이것 참 너무 공교롭군.”
“비아톤! 나는 내 전부인 마법을 잃었어! 그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도 내 전부를 잃었어.”
유리 호수의 그 기억.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되찾았지.”
비아톤의 손에 어느새 단도가 들려 있었다.
“다시는 잃지 않을 거야.”
비아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넬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사벨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말이야, 황녀님의 고운 마음을 이용하려는 계략이 제일 역겹더라.”
“비, 비아톤!”
“재주껏, 마음껏, 어떻게든 해봐.”
비아톤은 겨우 되찾은 그의 전부를 빼앗길 생각이 없었다.
수석보좌관 비아톤은 상식과 절차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사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잔혹해질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든 지켜낼 테니.”
그날 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달이 유독 붉었다.
유리창을 통해 보는 달은 마치 붉은 물감에 절여진 것 같았다.
* * *
“좋은 밤 되세요.”
유리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자정이 되었지만 눈이 말똥말똥했다.
‘소설과는 너무 많이 달라졌어.’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듣지 못했다.
다만 비아톤 경에게서, 넬튼 또한 빌헬름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사실상 마법 연방의 창성 마법사 모두가 빌헬름의 수하라고 보면 된다나 뭐라나.
‘이런 건 없었는데.’
본래는 최종 흑막 카린과 남주 아룬이 가장 위협적인 인물들인데.
카린은 완전한 내 편이 되었고, 아룬은 검은 고래 소속 견습 기사가 되었다.
대신 빌헬름이라는 새로운 악역이 등장했다.
‘너무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자.’
개인은 변한다.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의 시한부 악녀인 나조차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유리도, 테이슬론도, 세르몬도, 카만도, 나르모르도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좀 더 큰 맥락에서 본다면…….’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어떠한 세력이 빌로티안 황실을 무너뜨린다’라는 것이 소설의 시작이다.
‘카린과 아룬이 바뀌었으니…… 그를 대체할 악역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면 아귀가 맞아.’
심지어 빌헬름은 제국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적했다.
랜서 경을 잃은 아빠는 빌헬름에게 이를 갈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 잡아내지 못했다는 건, 빌헬름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의미였다.
소설 속에서 빌헬름은 이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다.
‘야금야금 성장해서 마법 연방까지 모두 차지해 버렸을 줄이야.’
궁금한 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왜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를 노리는 걸까?
왜 나를 그렇게 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적어도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 결국 그 힘은 있어야 했다.
다음 날, 나는 비아톤 경과 카린 경, 테이슬론 경을 모두 소집했다.
테이슬론 경은 늘 그렇듯 비협조적이었다.
“아, 나는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게 싫은데. 무슨 일이냐?”
말만 비협조적이고 사실 해달라는 건 다 해준다.
그래서 요즘에는 일일이 대꾸 안 해주고 있다.
“내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해요.”
어제 카린 경이 펼치는 마력 결계 같은 거.
그런 걸 제대로 익혀놓으면 내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빌헬름이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적이 있잖아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위험이 다가올지 몰라요. 물론, 내 주변에는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겠죠.”
그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위험에 빠지면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시간은 벌 수 있어야 하잖아요. 선생님들이 나를 구하러 올 때까지. 최소한 버틸 수는 있어야 하잖아요. 그니까 가르쳐 주면 좋겠어요.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마법을요.”
세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비아톤 경이었다.
“황녀님을 지켜야겠다고만 생각했지, 그런 쪽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저도 이제 마냥 어린아이가 아니니까요.”
마침 저기 떨어져 있는 거울에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었다.
내 몫의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말에 세 사람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진 거 같은데, 그건 착각이겠지?
이내 카린이 말했다.
“어쩌면 황녀님에게 꼭 맞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카린은 비아톤 경과 함께 대마법사 베크사의 마법들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개중 나한테 딱 맞는 뭔가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베크사 경께서는 그 힘을 일컬어 차원이격결계라 불렀습니다.”
“……이름이 무지막지하네요?”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무지막지했다.
나를 포함하여 내가 있는 이 공간 자체를 잠시 다른 차원으로 이격시켜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마법이라나 뭐라나.
차원 자체가 달라지기에 그 어떤 물리적인 공격이나 마법력도 몸에 닿지 않는 극강의 마법이었다.
나는 감탄을 내뱉었다.
“우와아.”
이름은 약간 중2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런 이름이 붙을 만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 뭔데요?”
카린은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비아톤 경의 표정도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뭔데요? 왜 그래요, 표정이 다들?”
오